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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374 vote 0 2008.01.12 (17:34:48)

깨달음을 권하며 2

단지 마음을 비우고 아무런 걱정이 없이 마냥 허허롭게 사는 것이 깨달음의 본의는 아니다. 그런 깨달음은 초등학생도 얻겠다. 마음의 평정을 얻기는 쉽다. 손을 떼고 내려 놓고 욕심 버리면 된다. 시험에 들지만 않는다면.

무(無)라든가 nothing이라든가 따위의 언설에 집착한다면 유치하다. 고(苦)가 있으니까 그 고에 대응해서 어떻게 하든 그것은 상대성의 영역이다. 오히려 그 고에 의해서 조종되고 통제될 뿐이다. 고를 피하려 할수록 고에 휘둘릴 뿐이다.

도망다니는 것이 깨달음은 아니다. 상대성이 아닌 절대성의 영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무(無)도 nothing도 그 내려놓고 비워낼 무언가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이 아닌 부정의 방법이다. 한계가 있다.

나는 열네살 때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는 죽음 그 다음이다. 전태일의 위치에 선다면 스스럼없이 휘발유 끼얹고 라이터를 당길 수 있다는 확신 그 다음이 문제다. 그래서 어쩌자고?

굳이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목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예술에 미친 사람들이다. 애호가들이다. 에베레스트 꼭대기에서 정상을 한 걸음 앞둔 사람이 죽음인들 두려워 하겠는가?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의미없다. ‘깨달은 사람이 되겠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깨닫고 난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에서 99.9를 왔기 때문에 나머지 0.1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는 ‘무언가 하는’ 사람이다. 완성시키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자궁에서 낳아내는 사람이다. 무에서 유를 끌어내는 사람이다. 그 완성의 힘이 인간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다.

깨달음은 하는 것이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기 내부에서 낳음이 있어야 한다. 깨달음을 무언가 ‘되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달마실에 동렬 등이 모여서 궁시렁 거린들 뭐가 되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되는게 아니고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바로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다. 되다는 되는 순간 이미 과거다.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 순간 이미 과거다. 가짜다. 지금 현재가 아니면 안 된다.

우리들은 이상향을 건설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그 옛날 위, 진 시대에 죽림칠현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동렬 등은 지금 현재 바로 이곳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형태의 창출에 관한 것이다. 인생에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공표하려는 것이다. 당신들 결혼하고 자식두고 재산갖고 탱자탱자 잘 살겠지만 그것 없이도 잘 사는 사람 있다는 사실 보여주기다.

예술가가 그 예술에 미치듯이, 그리고 그 예술에 미쳤으므로 언제든지 목숨을 버릴 수 있듯이, 달마실의 그들 또한 그러한 삶의 미학을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완성 앞에서 미치는 것이며, 미쳐서 목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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