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황장엽과 강철서신의 김영환들, 북한민주화운동을 함은 좋으나 배신자의 더러운 손으로 해서는 안된다.』 |
지식과 비지식이 있다. 지식인에게는 특별히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진리’라는 칼을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황장엽과 송두율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지식인의 위치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자연인 송두율은 용서할 수 있어도 지식인 송두율은 용서할 수 없다.
노동당가입을 통과의례로 생각한다면 준법서약서도 역시 통과의례가 된다. 준법서약서를 통과의례 정도로 보는 사람은 결단코 지식인이 아니다.
황석영씨가 방북해서 이상한 언동을 했다거나 혹은 정주영회장이 방북해서 황당한 발언을 했다거나는 용서된다. 남을 가르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 실정법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비지식을 구분하자는 거다.
자연인 아무개가 이한우 오(汚)와 대화함은 용서되나, 지식인 아무개가 조선일보 이한우기자와 철학적인 관심사를 토론한다든가는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수작이다. 그러므로 ‘지식’인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지식’이 아닌 거다.
조선시대 식으로 말하면
“진사 오늘부터 끊네”
이 한마디로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이다. 지식에서 비지식으로 굴러떨어진 즉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지식인 송두율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그가 한국에 남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겠다는 것은 황장엽이 미국을 방문하겠다는 거 만큼 역겨운 수작이다.
물론 자연인 송두율은 용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똘레랑스를 과시해야 한다. 정형근의 발언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거짓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대함은 정치적 판단에 해당되며, 국익을 고려하여 귀순한 간첩을 환영하는 것과 같으며, 자연인 송두율에 대한 대접이다.
나는 얼마든지 송두율의 귀국을 환영한다. 구속을 각오한 용기있는 결단임은 분명하다. 다만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는 지식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식인 송두율은 죽었다.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는 인물은 송두율의 두껍을 쓴 허깨비일 뿐이다.
우리는 그 허깨비를 환영하며, 그 허깨비로부터 북한에 대한 몇가지 고급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 것이며, 남북한 간의 냉전대결에서 작은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저 역겨운 황장엽의 귀순이 수구세력들에게는 커다란 전리품이 되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지식’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오버이트 쏠리는 일이다. 깨끗하게 칼 물고 자빠져 죽지 하루를 더 살아보겠다고 제 얼굴에 똥칠을 하냐?
까놓고 이야기하자. 입국사실 그 자체로서 이미 국정원과의 뒷거래가 아닌가? 오늘 인터뷰의 행간을 읽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국정원과 뒷거래 하겠다는 제안이 아닌가? 북한에 대한 정보 좀 줄테니 교수자리나 알아봐달라 이런거다.
“왜들 이래? 나 아직 이용가치 있어!”
국정원이 묻지도 않은 것을 술술 불었다고 제입으로 자랑하고 있다. 국정원의 수사에 협력했다는 그 자체로서 그는 이미 동료를 팔아먹은 것이다. 그를 아끼고 존경했던 모두를 팔아먹은 것이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좌우를 떠나서, 이념을 떠나서, 실정법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그는 유죄다.
황장엽과 송두율, 조폭의 의리도 없는 자들이다. 물론 따지자면 황장엽이 더 악질이다. 그러나 둘의 차이는 오십보백보다. 둘은 공통적으로 ‘인간’에 대한 죄를 저지른 것이다. 황장엽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친우(?) 송두율을 팔아먹은 것이며, 송두율 또한 국정원에 협력하므로서 사실상 그의 동료 모두를 팔아먹은 것이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다. 해외에 수십년씩 체류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국정원에서 발설한 것은 좌우이념을 떠나서, 인간의 양심으로서,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무덤까지 가져가야할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다. 남로당 고위간부 박정희가 그의 동료를 팔아먹은 것과 동일한 배신이다.
지식은 흰 비단과 같다. 오염(汚染)에는 경중의 차이가 없다. 약간 묻었든 많이 묻었든 세탁비 드는 것은 똑 같다. 통일의 시계는 뒤로 5분 늦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