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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47 vote 0 2024.07.02 (10:28:10)

    구조론으로 보면 평등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봉건주의 이념은 원래 세트로 가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도 버릴 수 없다.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는다. 계급을 철폐하면 직급이 생겨난다. 감독과 코치와 선수의 상하관계는 원리적으로 정해져 있다.


    선수가 감독보다 연봉이 높지만 상관없다. 문제는 끼워팔기다. 감독이 선수보다 높다고 해서 쓸데없는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킨다면? 그건 범죄다.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사회는 원래 질서에 의해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가 아기를 낳기는 불가능하다.


    수컷이 정자를 주지 않는데 암컷이 몰래 빼가기는 불가능하다. 세상은 변화다. 변화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다. 주는 자가 유리하다. 앉아서 주고 서서 받는다는 말이 있는 이유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높은데 돌려받을 때가 되면 전세역전이다. 현실이 그렇다.


    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누가 주는 자의 포지션에 서느냐다. 주는 자가 앞선다. 무엇이 앞서는가? 주의 논리로 보면 이념들은 공존할 수 없다. 봉건주의로 보면 신분제도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결정한다. 양반은 언제나 주는 자이고 상놈은 언제나 받는 자다.


    민주주의 평등주의 같은 다른 주의는 부정된다. 주의주의로 보면 하나의 주의만 인정되며 다른 주의는 부정된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부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다섯 가지 주의가 공존하며 어느 주의 하나도 버릴 수는 없다.


    주의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따라 평등, 자유, 민주, 자본, 봉건 다섯이다. 이 중에 평등주의는 다시 나누어져 사회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종교주의가 된다. 종교적 평등이든, 민족적 평등이든, 국가적 평등이든, 사회적 평등이든 본질은 집단의 건설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을 하려면 일단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평등해야 집단이 만들어진다. 평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국가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종교주의가 나온다. 국가주의는 전쟁에서 같은 편에 들어가면 평등해진다. 민족주의는 언어와 문화로 평등해진다.


    민족이라는 것은 사실 근거가 없다. 중국과 인도는 수백, 수천의 민족이 섞인 것이다. 특히 인도는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 명백히 다른 민족으로 보이지만 같은 힌두민족이다. 민족이 아닌데도 민족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민족이라는 관념 자체가 판타지다.


    민족은 민족적 동질성과 민족적 정체성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 적대세력과의 대치 중에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면 어디를 가도 칭챙총 소리를 듣는다. 중국인이 아니라고 이마에 써 붙여도 소용없다.


    민족은 인종, 문화, 언어, 역사의 공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 대결과 긴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필요성에 의해 민족이 출현한다. 미국인은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점차 미국민족으로 통합되고 있다.


    국가주의, 사회주의, 종교주의도 집단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 종교가 먹히면 종교를 앞세우고, 전쟁이 먹히면 국가주의를 들고나오고, 조합운동이 먹히면 사회주의를 들고나온다. 그것은 현장에서 그게 먹히느냐 먹히지 않느냐가 결정할 뿐이다.


    평등주의가 아니면 집단이 만들어지지 않고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의 시작이 평등이다. 단 평등은 어떤 일의 시작 부분에만 관여해야 한다.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면 피곤해진다. 원인의 잘못을 두고 결과를 조작하는 분식회계, 보상판정이 생겨나는 거다.


    출발선이 아닌 결승선에서 평등하려고 하므로 거짓말이 판을 치게 된다. 결승선의 평등은 쉽다. 승부조작을 하면 된다. 모든 학생의 점수를 만점으로 통일하면 된다. 결과의 평등은 재도전의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입시 하나로 끝내자는 것이 차별주의다.


    평등주의를 하면 자유주의를 할 수밖에 없고, 자유주의를 하면 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를 하면 자본주의를 할 수밖에 없고, 자본주의를 하면 봉건주의가 발생한다는 게 구조론이다. 결과의 평등이 아닌 원인의 평등으로 가면 자유주의가 따라온다.


    출발선에서 평등은 권력평등이며 권력의 평등은 의사결정권의 평등이기 때문이다. 권력평등은 필연적으로 자유주의로 귀결된다. 자유가 없는 평등은 권력평등이 아닌 것이며 그것은 본질에서 거짓말이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 게 필연이다.


    자유주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면 자유라는 말의 의미를 왜곡하려는 것이다. 평등=자유=민주=자본=봉건은 한 세트이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있을 뿐 부정할 수는 없다. 밥을 먼저 먹고 다음 소화시킬 수는 있지만 밥만 먹으면 되지 소화는 필요가 없어.


    이런 어거지는 불능이다. 소화만 하면 되고 배설은 필요가 없어. 그러다가 똥꼬가 막혀서 죽게 된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힘을 만드는 장치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도자에게 힘을 몰아준다. 그 결과는 자본주의 경쟁이다.


    자본주의 결과는 봉건주의다. 사실 봉건주의는 적당한 말이 아니지만 집단의 구성원 간 역할분담을 설명할 적절한 어휘가 없다. 문제는 주의라는 말이다. 주의라는 말은 내 주의만 중요하고 다른 주의는 필요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주의는 틀렸다.


    평등주의 – 국가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종교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봉건주의 – 역할분담, 나눠먹기, 사회질서


    주의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 이데올로기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며 집단의 나아가는 방향이 있는 것이며 진정한 이념은 집단의 나아가는 방향성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 방향은 문명의 진보다. 문명주의, 진보주의가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거짓말이다.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태도다. 진보의 속도조절이 보수다. 이념은 진보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밸런스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액션이 무엇이냐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면 평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평등이 해결되면 자유가 따라오고 자유가 해결되면 민주다.


    단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며 지금 해결할 과제가 뭐냐에 주목해야 한다. 노예해방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평등문제는 계속 제기된다. 이제는 인공지능 접근권 평등문제가 생긴다. 인공지능 접근권으로 차별과 독점과 저항이 일어난다. 본질은 권력메커니즘이다.


    권력은 집단의 방향전환에서 유도되며 집단 내부의 압력이 권력을 만든다. 평등이 압력을 만들고 자유, 민주, 자본은 그 조절장치이며 봉건은 그 결과다. 봉건은 왕이 귀족들에게 영토를 나눠주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나눠준다. 잘 나눠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잘 나눠주는 척 사기치는 사회도 있다. 우리는 행복해요를 외치는 북한과 부탄이 그렇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이 아니라 권력을 탐하는 동물이다. 권력은 원래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하는 거다. 어떻게든 차별은 일어난다.


    모순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낡은 모순을 새로운 모순으로 바꾸는 과정에 인류는 잠시 행복하며 어떻게든 또 모순을 만들어낸다. 이상사회는 절대로 없으며 이상적인 것은 부단한 전진뿐이다. 이상사회로 가는 과정이 이상사회다. 도달하지는 못한다.


    이념은 집단의 방향전환이다. 집단이 있어야 하고 방향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평등을 부정하면 집단이 발생하지 않고 자유, 민주, 자본을 부정하면 방향전환을 못 한다. 이념은 방향전환 그 자체라야 한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를 부정하고 싸운다면 곤란한 거다.


    태초에 권력이 탄생했다. 집단의 의사결정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집단이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이와 동시에 평등, 자유, 민주, 자본, 봉건은 발생한 것이며 나머지는 밥그릇 싸움이다. 내 논에 물대기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고 개소리 시전하는 거다.


    인간은 언어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주의라는 말은 포괄적이어서 이 다섯에 끼워넣기 어렵다. 인간들이 임의로 의미를 부여하여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출발선의 평등주의 요소도 있고 결승선의 봉건주의 나눠먹기 요소도 있다.


    문제는 억지를 쓴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제일 쉽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맹비난하면서 가장 쉽게 사회주의를 만든다. 전시체제가 바로 사회주의다. 전쟁이 벌어지면 배급제가 된다. 전쟁을 통해 손쉽게 집단을 결속하는 것이다.


    나치는 국가주의 사회주의 노동자당이다. 노동자당은 집권하려면 쪽수가 필요하다는 말이며 사회주의는 각자 몫을 나눠주겠다는 말이며 국가주의는 전쟁을 벌이겠다는 말이다. 전쟁 도박을 해서 이기면 몫을 나눠줄 테니 쪽수로 밀어달라는 말이다. 윤석열 생각.


    모든 주의 주장의 배후에는 권력게임이 숨어있다는 본질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 말에 복종할까? 일단 사람을 모으자. 평등. 모이면 건방이 들어 말을 안 듣는다. 다시 흩어놓자. 자유. 한 명씩 동의를 구하자. 민주. 경쟁을 붙여보자. 자본. 나눠주자. 봉건.


    순서는 있지만 순서가 앞설수록 큰 틀만 정하고 구체화하면 안 된다. 평등은 큰 틀이다. 구체적으로 가서 전부 똑같이 복장통일하자.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 총기소지의 자유처럼 구체적인 것이 자유가 되면 피곤해진다. 노예소유의 자유 주장하는 넘 나온다.


    평등의 남용, 자유의 남용이 되면 전건이 빠지지 않고 후건까지 따라오는 오류다. 반대로 후건이 전건을 치면 안 된다. 뒤의 자본이 앞의 평등과 자유와 민주를 치면 안 된다. 순서대로 가되 앞서는 것은 룰만 정하고 빠지며 뒤로 갈수록 점차 구체화 되는 것이다.


    이는 물리법칙이므로 인간이 임의로 해석하여 왜곡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정리된다. 에너지는 유체이며 유체가 가는 길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강체는 이리저리 인간이 굴리는 대로 굴러가지만 유체는 절대로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념을 두고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이게 권력게임이고 동원력게임이라는 본질을 잊기 때문이다. 집단이 최대 다수의 최대 역량을 끌어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서 다른 얄궂은 것을 내세우면 인간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이념은 인간을 깔때기에 쑤셔박아 쥐어짜는 장치다. 이익이 투자보다 크면 결국 그 짓을 하게 된다. 어떤 달콤한 말을 속삭이든 본질은 집단이 개인을 압박해서 역량을 빼먹는 기술이다. 이러한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에 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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