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자 석가 석초딩이 뭔가를 깨달았다고 떠벌인다. 저 인간 또 시작이네. 그래서 어쩌라고? 누가 물어봤냐고?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란 말인가? 깨달았건 깨먹었건 그건 제 사정이지. 나하고 상관없잖아. 초딩이 길 가다가 구슬을 하나 주웠다. 자랑질이다. 내겐 말야. 구슬이 있다구. 반짝반짝 빛난다네. 그래서 어쩌라구? 시큰둥할 뿐이다. 깨달음이란 초딩의 구슬 자랑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허무한데 부처가 되면 뭣하냐? 천국에 가면 뭣하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복이든 쾌락이든 영광이든 뇌 안에서의 전기신호에 불과하다. 색즉시공에 공즉시색이라 했다. 공하고 또 공하니 모든 것이 공허하다. 깨달음도 허무하고 부처도 허무하고 자랑질도 허무하다. 석가는 타고난 떠버리다. 하여간 말이 존나 많다. 썰 깨나 푼다. 경전만 두꺼워졌다. 사문출유에 생노병사에 고집멸도라. 그래봤자 스토리에 불과하다. 동쪽 문으로 갔더니 말야. 노인이 있더라구. 서쪽 문으로 갔더니 말야. 망자가 있더라구. 남쪽 문으로 갔더니 말야. 병자가 있더라구. 북쪽 문으로 갔더니 말이야. 행자가 있더라구. 그래서 어쩌라고? 신파 찍고 있네. 별거 아니다. 차라리 생후 7일 만에 엄마 잃고 외로웠다고 말하면 동정은 얻을 수 있다. 애정결핍에 분리불안에 까칠해졌어. 누구와도 깊은 관계는 맺지를 못해. 상대가 떠날까 봐 불안해서 내가 먼저 떠나고 말지. 뻔한 그림이지. 가출이든 출가든 이유가 있지. 중요한 건 대중이 반응했다는 거다. 왜 사람들이 석가의 너스레에 홀렸을까? 무식해서 용감한 예수의 무대뽀에 홀렸을까? 뭔가 있다. 예수는 그냥 전봇대에 대가리 박고 죽은 젊은이다. 철없는 애송이가 철없는 짓 했다. 보통 그렇게 하면 죽는다. 노무현처럼 죽는다. 역사에 무수히 반복된다. 기득권 건드리면 살해된다. 무모한 도발이었다. 끽소리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스토리가 남았다. 사실 인류사 동안 무수히 많은 예수가 다녀갔다. 천 명도 넘는, 만 명도 넘는 예수가 통곡의 벽에 머리 박고 죽었다. 그들의 무수한 희생자의 대표로 딱 한 사람 나사렛 아이의 이름이 기록된 거다. 대중은 석가의 깨달음에 반응했고 예수의 스토리에 열광했다. 그렇다면 뭔가 있다는 거다. 석가의 깨달음은 원리다. 부처라는 것은 그냥 수식어다. 졸라 깨달음? 와장창 깨달음? 삐까번쩍 깨달음? 적당치 않아. 존거 없냐? '부처 깨달음'은 어뗘? 오! 그거 괜찮네. 자애로운 인민의 어버이 김일성? 이건 너무 낯간지러운 수식어다. 부처는 눈을 뜬 자라는 뜻인데 괜찮다. '눈을 뜬 자 석가.' 제목장사 오지네. 조회수 오르네. 그게 뭐 대단하냐고? 어쨌든 에미 잃은 아이가 눈을 떴으니 스토리 쩔어준다. 스토리는 홍보용이고 본질은 호르몬이다. 눈을 뜨기는 쉽다. 다들 아침마다 눈 뜨잖아. 아침마다 부처 되잖아. 어쩌라고? 석가의 남긴 것은 하나의 단서에 불과하다. 추론은 각자의 몫. 눈을 떠야 하는 것은 인류다. 단서를 잡았으니 연결연결 해보자. 연기는 연결이다. 사물은 토막 나고 사건은 연결된다. 사물은 손을 댈수록 토막 나서 이탈하지만 사건은 연결되어 커다란 근원에 이른다. 그래서? 호르몬이 바뀐다. 만날 사람을 만났을 때 인간은 전율한다. 다들 그런 경험 있잖아. 필요한 건 자존감이잖아. 자존감 잃었을 때 버려졌다는 느낌 비참하잖아. 그 비참을 극복하고 싶잖아. 석가는 인류가 신과 연결될 수 있다는 단서를 남겼을 뿐이고 부처라는 건 과장된 수식어일 뿐이고 사건으로 연결되어 인간이 얻는 것은 자존감뿐이고 긍지를 가진 인간은 눈빛이 다를 뿐이고 그것이 전부다. 눈빛이 다른 사람이 모이면 세상이 바뀐다. 이심전심으로 커다란 프로젝트를 띄운다. 왜? 최소한 자존감은 건질 테니까. 예수도 마찬가지다. 사랑이란 것은 연결의 대중화된 표현이다. 사건의 연결이라고 하면 추상적 개념이다. 사람의 사랑이라고 하면 알아듣기 쉽잖아. 마구 연결하다 보면 뭔가 파워가 생기지 않을까? 감 잡았다. 그래 이 길로 쭉 가보는 거야. 사람을 마구 연결해버려. 사랑으로 연결해버려. 그런데 과연 잘 될까? 어? 쟤들 웃기네. 근데 쟤네들 꽤 진지해. 어? 바울 너 돌았냐? 왜 거기 가 있어? 파워를 느껴버린 거다. 이건 먹히는 그림이다. 흥행 된다. 입소문 탄다. 바이럴 마케팅에 천만관객 찍어보자. 그런 거다. 행복도 쾌락도 영광도 부질없다. 연결될 때 인간이 변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든 미션이든 연결될 때 인간은 자존감 얻고 긍지 느낀다. 칠일 만에 엄마 잃은 아이가 상처를 극복하고 눈을 떴다. 그 정도면 된다. 많은 것을 바라겠는가? 누구든 상처 하나 없겠나? 누구든 단절을 경험하지 않았겠나? 누구든 금 밖으로 떠밀려보지 않았겠나? 그럴 때 비참하잖아. 구원이 필요하잖아. 연기는 하나의 단서다. 사랑은 하나의 단서다. 끝까지 밀고 가면 세상을 모두 만난다. 누구든 상처 입은 점은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처 입은 자존감의 회복을 원할 뿐이다. 호르몬을 바꿀 수 있다면 충분하다.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을 부처라는 단어로 과장하든 천국이라는 표현으로 수식하든 상관없다. 길이 있으면 간다. 에너지가 있으면 올라탄다. 연결에 에너지가 있다. 파워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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