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균형을 잡는 것이더라.
인간 관계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하여튼 모든 것이 그렇더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독립성만 강조하면 애정과 소속감에 목이 말라 어문데서 애정과 소속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를 만들기 쉽상이고
그렇다고 완전 오냐오냐하면서 키우면 이건 뭐, 그야말로 욕망의 몬스터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어느 선까지 제어할 지 주체를 못하더이다.
독립심을 키워주면서도, 자율성을 키워주면서도, 특정 공동체 안에서의 소속감도 길러줘야 하오. 다만 그 공동체의 바운더리를 가정-또래집단-사회-국가-세계까지 확장시키지 못하면 이건 뭐 완전 지 잘난 멋에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만 충실한 인간이 되고 도통 나 외의 다른 존재들에 관심을 쏟질 않게되니, 마치 자라는 뱀이 허물을 벗지만, 결국 새로운 피부라는 경계 안에 자신을 가두듯, 인간도 자신의 허물을 벗으면서, 이전에 자신이 동일시했던 집단을 벗어던지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오. 그것이 진정한 성장인 것이오.
진정한 발달 심리학은 바로 나-삶-관계-세계-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오. 어떻게 인간의 의식이 인식론적 관점에서 나-삶-관계-세계-신으로 비약하는 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하오.
이렇게 인식이 비약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가 될 것이오. 부모나 사회, 교육이 지나치게 개입해도 문제가 되며 아예 개입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오. 독립성-자율성-성공-경쟁만 강조해도 실패고 소속감-안정감-평등만 강조해도 안 되오. 지나치게 긴장시켜도 안 되고 지나치게 풀어줘도 안 되오.
이러한 밸런스가 성장의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오.
그러나 알되 실천하기가 어렵소.
아이가 꾸물대는 모습을 보면 뭔가 거들어주고 싶어지고, 성적이 좀만 안 나와도 얼릉 학원이나 과외를 보내주려 하오.
아이 스스로가 성장 과정에서 밸런스를 잡아가게 내버려두지 않소. 밸런스의 축을 성장의 당사자인 아이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욕망에 두고마오.
한 번 자신의 주도로 성장의 밸런스를 잡아가는 경험을 놓치게 된 사람은 그 이후로도 계속 놓치기 마련이오.
무언가 기존의 바운더리를 넘어 더 큰 세계로 비약해야 할 때 머뭇거리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고, 엄마를 찾다가 결국 안주하게 되오.
지금의 20~30대들은 자신의 힘으로 밸런스를 잡을 기회가 없었소.
나는 초등학생 부터 가장 중요한 결정은 무조건 내가 내리는 습관을 들였소.
내가 잘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때 무언가 이런 느낌이 있었소.
"이 결정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내려야한다. 내가 중심이다"
요즘 상담을 하다보니, 아이들에게 저런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소.
순간 자신이 인생의 중심에 선 듯한 느낌. 자신이 밸런스의 축임을 자각하는 순간.
나와 엄마를 대칭시키고, 나와 친구를 대칭시키고, 나와 학교를 대칭시키고, 나와 사회를 대칭시키고, 나와 국가를 대칭시키고, 나와 세계를 대칭시키고, 나아가 나와 신을 대칭시켜 보기.
그리고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험을 하기.
밸런스의 축을 장악하므로써 가능하오.
인간 관계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하여튼 모든 것이 그렇더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독립성만 강조하면 애정과 소속감에 목이 말라 어문데서 애정과 소속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를 만들기 쉽상이고
그렇다고 완전 오냐오냐하면서 키우면 이건 뭐, 그야말로 욕망의 몬스터가 되어 자신의 욕망을 어느 선까지 제어할 지 주체를 못하더이다.
독립심을 키워주면서도, 자율성을 키워주면서도, 특정 공동체 안에서의 소속감도 길러줘야 하오. 다만 그 공동체의 바운더리를 가정-또래집단-사회-국가-세계까지 확장시키지 못하면 이건 뭐 완전 지 잘난 멋에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만 충실한 인간이 되고 도통 나 외의 다른 존재들에 관심을 쏟질 않게되니, 마치 자라는 뱀이 허물을 벗지만, 결국 새로운 피부라는 경계 안에 자신을 가두듯, 인간도 자신의 허물을 벗으면서, 이전에 자신이 동일시했던 집단을 벗어던지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오. 그것이 진정한 성장인 것이오.
진정한 발달 심리학은 바로 나-삶-관계-세계-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오. 어떻게 인간의 의식이 인식론적 관점에서 나-삶-관계-세계-신으로 비약하는 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하오.
이렇게 인식이 비약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가 될 것이오. 부모나 사회, 교육이 지나치게 개입해도 문제가 되며 아예 개입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오. 독립성-자율성-성공-경쟁만 강조해도 실패고 소속감-안정감-평등만 강조해도 안 되오. 지나치게 긴장시켜도 안 되고 지나치게 풀어줘도 안 되오.
이러한 밸런스가 성장의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오.
그러나 알되 실천하기가 어렵소.
아이가 꾸물대는 모습을 보면 뭔가 거들어주고 싶어지고, 성적이 좀만 안 나와도 얼릉 학원이나 과외를 보내주려 하오.
아이 스스로가 성장 과정에서 밸런스를 잡아가게 내버려두지 않소. 밸런스의 축을 성장의 당사자인 아이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이라는 이름에, 자신의 욕망에 두고마오.
한 번 자신의 주도로 성장의 밸런스를 잡아가는 경험을 놓치게 된 사람은 그 이후로도 계속 놓치기 마련이오.
무언가 기존의 바운더리를 넘어 더 큰 세계로 비약해야 할 때 머뭇거리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고, 엄마를 찾다가 결국 안주하게 되오.
지금의 20~30대들은 자신의 힘으로 밸런스를 잡을 기회가 없었소.
나는 초등학생 부터 가장 중요한 결정은 무조건 내가 내리는 습관을 들였소.
내가 잘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때 무언가 이런 느낌이 있었소.
"이 결정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내려야한다. 내가 중심이다"
요즘 상담을 하다보니, 아이들에게 저런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소.
순간 자신이 인생의 중심에 선 듯한 느낌. 자신이 밸런스의 축임을 자각하는 순간.
나와 엄마를 대칭시키고, 나와 친구를 대칭시키고, 나와 학교를 대칭시키고, 나와 사회를 대칭시키고, 나와 국가를 대칭시키고, 나와 세계를 대칭시키고, 나아가 나와 신을 대칭시켜 보기.
그리고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경험을 하기.
밸런스의 축을 장악하므로써 가능하오.
이상우
양을 쫓는 모험
내 삶의 지향점은 '완전한 자유' 라고 생각하오.
'완전한 자유' 라는 것이 한없이 모호하게 들리지만, 집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결정권을 위임하거나, 대중의 폭력에 굴복하는 것은 자유가 없는 노예고, 또한 자기 세계 안에서 갖혀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 것도 자유가 없는 것이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자유롭고자 하면 끊임없이 자기세계를 확장시켜야지만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개입해야 하오. 개입해서 외부의 작용과 내부의 반작용의 데이터를 축적해야지 스스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완전한 자유' 라는 것이 한없이 모호하게 들리지만, 집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결정권을 위임하거나, 대중의 폭력에 굴복하는 것은 자유가 없는 노예고, 또한 자기 세계 안에서 갖혀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 것도 자유가 없는 것이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자유롭고자 하면 끊임없이 자기세계를 확장시켜야지만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개입해야 하오. 개입해서 외부의 작용과 내부의 반작용의 데이터를 축적해야지 스스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鄭敬和
성장과정이 한사람의 가치관을 형성시키는데 일조 한다는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실수를갖다가 부모의 양육탓으로 돌리며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일단 나처럼 아직 재정적인것을 포함해 모든영역에서 독립한것이 아니라면
마마보이라고 봐야겠지?
자신의 성향을 깨닫고 비운을 채워나가려고 노력하는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밸런스도 중요하지만, 초등시절에는
자신이 심이 되어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오는 것 , 동기부여가 우선이란 생각이 드오.
제대로 입력되는게 없으니,
아니 스스로 입력하는 것이 없으니
주변에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동기부여가 되도록, 욕구가 치밀어 오르도록 바람잡이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보오.
그리고 나서는 저장,제어, 연산부분을 셋팅하고, 도우미가 최소개입의 방식으로 관조하는 것이 필요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