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정의 문제
가족의 울타리에서 문제가 일어난다면, 그 원인은 외부로 부터 온 것이다. 가족이라는 제한된 사람과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대체로 부부간의 갈등(배우자의 외도), 갑작스러운 외부 환경변화(경제적인 대박, 쪽박), 세대간의 갈등(고부간의 갈등, 부모 자식간의 갈등) 이정도 선에서 일어나곤 한다.
남편이 바람났다거나, 부인이 바람나는 문제는 개인의 관성에 의하여 바람이 나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가정 내부의 것과 가정 외부의 것 중에 가정 외부의 것이 '나'에게 더 많을 것을 줄 수 있을때(이럴경우 가정외부의 것 = 상부구조) 발생하는 선택적인 경우다.
남편이 바람났다는 것(결과)은 외부의 다른 여자가 나타났기(원인) 때문이고, [외부의 여자 > 내부의 아내] 라는 것이다. 내부의 아내가 상위 포지션을 잡으면 남편의 외도는 없다. 왜? 외부보다 아내가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으니까.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 빼어난 미모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해방감이 될 수도 있고, 아이가 될 수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고, 하여간 그녀가 생산할 수 있는 가치의 총 량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이 바람을 핀다고 가정할 때, 홍라희 여사가 테클걸지 못하는 것은, 테클 거는 순간 더 많은 것을 잃기 때문이고, 바람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많은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 갑작스레 로또 대박이 나거나, 반대로 잘나가던 사람이 주식 쪽박차게 되어도 가정 내부에서 밸런스가 깨져서 문제가 생긴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도 외부에서 온 것이고, 아내가 비교하는 옆집 돈잘버는 남편 얘기도 결국 외부에서 온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서 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가족갈등의 대표격은 '고부간의 갈등' 이다. 말 그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이고, 원인은 가정의 외부에서 여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그 자체인 것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뭘 좀 알아서라기보다는 구조론의 원리를 적용시킬 만한 문제이고, 구조론은 문제해결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핵가족화 되어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나타나는 갈등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고부간의 갈등을 전제로 서술하기로 한다.)
2. 인과율과 밸런스
가족이 구성되고 확장되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가계(家系)라고 한다. 이것 또한 하나의 고리를 완성하는, [아버지 > 어머니 > 아들 > 며느리 > 손자] 로 이어지는 완전성의 1싸이클이 존재한다. 때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역시 인과율로 설명이 가능한데, 시어머니는 가족의 기원(원인, 1세대 기준)이고, 며느리는 가족의 확장(결과)로 볼 수가 있다.
갈등의 원인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 다 여자이기에 가정 내에서 포지션이 겹치기 때문이고(아들 또는 남편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불균형 때문이다. 말하자면, 처음 시집에 오면 며느리는 개인이지만, 시어머니에겐 세력(시아버지, 도련님, 시누이 등등...)이 있다.
원인은 외부에서 오지만, 현상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똑같이 불량식품을 먹었는데, 배탈이 난 아이가 있고, 배탈이 안 난 아이가 있다면, 내부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안무너지고의 차이일 것이다. 대체로 부부사이에 아이가 있는 집이, 아이가 없는 집보다는 이혼 할 확률이 낮은 것은 아이가 알게모르게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무게중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아빠가 밖에서 매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 하거나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면, 아이는 엄마쪽에 더 의지를 하여 엄마의 세력를 만들어 어느정도 균형을 맞추게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는 것은 괜한 짓이 아니다. MBC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처럼, 모계사회에서 힘센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여자들이 세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3. 소통
아무리 비슷한 환경이라고 해도, 새로운 가정에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행성에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 시골쥐가 친구인 서울쥐 따라서 서울 갔더니, 이건 머, 말도 안통하고, 쥐 살곳이 아니더라... 라는 하소연과 다르지 않고, 처음 군대간 신병이 겪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각각의 가족은 각각의 나라이며, 각각의 행성이다. 때문에 시집온 며느리는 언어가 통하질 않는다.
그 가족의 언어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기억과 학습에 의한 것이다. 어느 타이밍에 웃어야 하는지, 시아버지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다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시어머니한테 점수따겠다고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 스스로 긁어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 시어머니께 맘에없는 칭찬을 남발하고, 선물공세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시어머니가 원하는 것인가가 문제다. 그럴경우 시어머니는 계속 기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며느리를 똥개훈련 시킨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밸런스를 맞추는 무게중심의 축과 양 날이 있다. 며느리가 가족이 되는 것은 그 집안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 남편이 무게중심이 되어 양쪽을 오가며 통역을 하고 밸런스 맞추는 것이 해법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은 오해를 살 뿐이다.
심1이 날2를 제어한다. 그렇다고 남편이 역할 하겠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섣불리 효도한답시고 어머니께 고분고분해도 한쪽이 섭섭하고, 세력이 없는 며느리 편을 들어도 욕을 얻어먹는다. 양쪽으로부터 원투펀치를 얻어 맞는다. 무엇인가? 이미 결혼 이전부터 컨트롤이 가능했어야 한다. 한쪽에서 어머니를 컨트롤 할 수 있고, 한쪽에서 아내를 컨트롤 할 수 있을 적에,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양쪽으로부터 정보를 독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수천년 전부터 우리민족이 해왔던 등거리 외교와 같고, [노무현 + 반기문] 콤비가 6자회담에서 성과를 낸 것과 같다. 세력이 있는 미국에 체면을 세워주고, 북한에게 실리를 내준다. 세력이 있는 시어머니 권위를 세워주고, 며느리한테 실리를 챙겨준다. 시어머니는 아들 말을 듣고 알면서 못이기는 척 내주고, 며느리도 남편 말을 듣고 섭섭해도 세워주고, 모두 짜고치는 고스톱, 결국 모두 한 팀이 되어야 된다.
4. 응용편 - 고부간의 김장
일전에 TVN의 <남녀탐구생활> - 며느리 편, 시어머니 편 - 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김장을 할 때의 시각차이와 갈등이 나타난다. 며느리는 새벽부터 고생고생하며 김장했는데, 손에 물하나 안묻힌 시누이와 똑같은 양의 김장김치를 챙겨주는 시어머니가 섭섭하고, 시어머니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말귀도 못 알아먹는 며느리 탓에 혼자 김장 다 했단다.
무게중심의 역할은 커녕, 시어머니와 며느리 근처에도 가지 않는 남편의 문제. 대체로 남자들은 역할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괜히 연루되어 피곤해지기만 할까봐...) 하지만 피하면 피할수록 역설로 관계가 더 꼬인다. 김장에 직접 관여를 하면 좋겠지만, 안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양쪽을 컨트롤 하는 것이 옳다.
가족이 함께 김장을 한다고 가정하자. 김장의 목적은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여야 한다. 애초에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김장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면 문제, 골탕먹일 생각을 해도 문제,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작업(?)시킬 권리는 있어도 가르칠 권리는 없다.(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김장하는 법 검색하면 될 일을 뭐하러 머리 조아리면서, 욕 먹어가면서 김장을 배우는가? 시어머니가 "오늘 네게 김장 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라고 하면, 며느리는 속으로 "누가 물어봤어?" 라고 말한다. 이럴 경우 '김장 레시피 검색'과 '시어머니께 물어보기' 둘 중에 선택할 권리가 며느리에게 있다. 남편이 며느리로 하여금 시어머니께 물어보도록 유도하여, 시어머니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순서다.
결국 모두 한 팀이 되어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부구조에서 시어머니가 맛과 양념을 디자인하고, 하부구조에서 며느리가 배추 저리고, 무 씻고, 채썰고, 등등의 단순작업을 하고, 남편은 시어머니의 명령어를 통역해준다. (물론 남편이 힘쓰는 일을 도우면 훨 수월하겠지만...)
(간혹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으라거나, 젓갈을 '적당히' 넣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넉넉히', '적당히' 가 어느정도인지 며느리는 도통 감을 못잡는다. 이럴 때에 남편이 바로 개입하지 않으면, 양쪽 다 짜증난다.)
그리고 난데없이 빈 김치통 들고 등장한 철없는 시누이의 개입을 제한하고, 완성된 김치를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많이 내 주도록 유도한다. 김장할 줄 모르는 며느리도 딱히 가르치지 않아도 몇회 반복하면 그 집안 입맛을 알고,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시어머니, 며느리, 남편이 손발이 맞으면 하나의 시스템이 된다. 무엇을 입력하든 결과물이 나온다.
5. 세력의 균형
이렇게 시집 온 며느리가 몇 해 지나면, 남편의 무게중심 역할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하나는 그간의 균형에 대한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이고, 둘은 며느리가 가족의 언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또 며느리가 손자를 낳게 되면, 며느리도 세력이 생기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세력의 균형이 맞춰진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각 가정마다, 개개인마다의 성격과 데이터가 다른데, 같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구조론의 인과율, 1심 2날의 밸런스 이론, 입력과 출력 시스템으로 고부간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워보시라.
The fountain of wisdom
만약 그 어머니라는 사람이 아들의 가정에 티클 만큼이라도 왈가왈부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지성'의 문제입니다.
덜떨어진 인간이죠.
덜떨어진 인간과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냥 죽도록 패는게 답.
이래서 뭉동이 찜질이라는것이 필요한것.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아들집에 하루 묵는데 며느리라는 사람이 아들출근하는데 아침도 채려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티끌이라도 뭐라고 소리를 한다던지
자신의 친척들에게 가서 뒷다마를 깐다면
그 인간은 어머니로서의 자격이 없다는것
덜떨어진 인간이라는것
그것을 깨닫는것이 성숙하다는것
나이만 처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된다는것이 아니라는것
애초에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것 자체가 어른들의 모습이 아니라는것.
그것이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것. 그것이 자연의 모습이라는것.
고부간의 갈등이란 마치 아들이라는 사람이 가정을 꾸리는데 '나 가정 못꾸리겠소' 하면서 다시 어머니품에 덤썩 안기는것과 같다는것.
이런 웃기는 상황이 아직 이곳 '대한민국'에서 활개를 치는것을 보면 당최 이 한국인들의 수준이라는 자체가 의심스럽다는것 입니다.
제발 수준좀 높여서 삽시다.
이런것을 말로 설명해야할 부문인가?
이러니 20살 넘어서 나이 50을 퍼먹어서도 술주정 부리고 기집질 하러 다니지..좀 인간답게 삽시다. 우리.
양모님, 글 잘 읽었습니다. 김장김치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 중 한 가지만 간단하게 적어볼께요.
몇 년 전, 다 구찮아 저 혼자 배추 오십 포기를 절궈 제 방식대로 후다닥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서 후다닥은 시어머님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다음날 난리가 났습니다. 시어머님께서, 김장하는데 어떻게 시어머니를 부르지 않았냐며 굉장히 노하셨지요.
(간을 반드시 보셔야 된다는 말씀)
시어머님과 관계가 갈수록 서먹해지자 더 길어지면 안될 것 같아 남편에게, 퇴근하고 들어오면서 쇠고기 서너근 사서
시어머님 드리고 오라 하였지요.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웃으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기 잘먹겠다고...^^
에효...^^
그 후 김장은 거의 가족끼리 다함께 차차차!^^
그렇지만 내방식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김장담기도 하나의 창작이다란 나의 생각....^^
즉 내가 연출하고 싶은 게 너무 많기에...^^
'세력의 균형맞추기' 끄덕끄덕!
사교육만 없어지면 부모의 사랑과 자식의 효도를 빙자한 권리관계도 사라지고,
사교육비를 모아 노후에 대비할 수 있으니 자식에게 의존할 필요도 없소.
고부간의 갈등은 부모자식간의 비정상적인 경제적 유착관계가 원인이오.
사교육만 사라지면 우리나라 부모자식 관계도 정상으로 돌아갈거요.
사교육이 사라지려면 우리나라의 기업 형태가
지금의 재벌기업(공룡) + 자영업자(먹이) 중심에서 벗어나,
전문 대기업(몸통) + 벤처 중소기업(머리) 체제로 바껴야 하오.
재미있는 것은 ,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이 IMF와 FDA로 인해 글로벌화된 후, 역량을 집중하는 바람에 전문 대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거요.
역시 바깥으로 나가야 답이 있나보오. 삼성은 전자, 현대는 자동차에 그룹의 역량을 모아 전문 대기업화함.
'사교육' 이라는 말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자기 판단과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그것을 자식에게 떠넘기는 것이 문제요. 자식에게 올인하고, 그것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결혼했다고 이럴 수가 있니?" 라는 본전생각나는 반응을 하는게요.
사교육이라는 것도 부모의 자격지심을 자식을 공부시켜서 대박내어 보상받자는 의도와 집에서 피둥피둥 노는 꼴을 보기 답답해서 학원이라도 보내놓으면 속이라도 편하겠지 라는 심정으로 보내는 의도가 있소. 결국 두 경우 모두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열정을 쏟을 곳이 없기 때문에, 자위하는데에 지나지 않소. 부모 스스로가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는데, 자식이 성장한 들 제대로 된 삶을 살수가 있겠소?
씨족 전체가 한 사람의 과거급제에 목을 메야했소. 실제로 과외공부나 대리시험, 문제유출사건도 빈번했고.
지금의 사교육은 한 개인의 성공을 가문전체의 영광으로 돌리던 당시 관습의 흔적기관이오.
가문에 의지하지않고 성공한 개인들이 쏟아지지 않는한 요원한 문제요.
그게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벤처신화나 앱스토어같은 새로운 외부세계가 열려줘야하오.
조선시대 양반은 임란이후 급격히 늘어서 숙종때 벌써 10%나 되었소.
영정조때는 거의 40%에 육박했고, 철종때는 양반이 70%가 넘어가오.
조선초만 해도 보통 과거시험은 3년에 한번 서른명 정도를 뽑는데 응시자가 10만이 넘소.
그에 비하면 지금의 사시는 눈감고 헤엄치기.. 모든 국민이 양반되려다가 신분제도가 붕괴된 측면도 있소.
집에서 쉬는 동안 가족문제에 신경을 쏟다가(아니 저절로 신경이 써지다가).. 다시 직장에 나가고 더 넓은 세상에서 좀 더 높은 차원의 목표를 가지게 되니 그냥 저절로 신경이 꺼집디다.
김장.. 걍 담기 힘들면 사다먹으면 되지요. 뭐~
고부갈등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과도기사회의 현상이므로 조만간 저절로 사라집니다.
고부가 한 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틀려먹은 거지요. 옛날에 16살에 시집와서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
합이 9년을 고생해야 곳간열쇠 물려받고 어른대접 받는다 했는데 그래봤자 고작 25살입니다.
근데 요즘은 30살이 넘어서 결혼들을 하니. 전문교육 다 받은 30살 넘은 성인에게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 이건 아니지요.
왕조시대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16세 미성년자 대접하던 방식을 전문지식을 배운 성인에게 강요한다는건 코미디에요.
그럴바에 근대식 고등교육은 왜 한답니까?
근대식 고등교육을 받고 독립적 인격으로 재탄생한 성인이
어떤 이유로든 누군가의 명령과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이하입니다.
부부도 싫으면 이혼하는 판인데, 고부간에 갈등을 겪는다는건 원초적으로 넌센스입니다.
최초 1회갈등발생시에 모든 관계를 완벽하게 차단함으로써 애초에 갈등의 소지를 원천봉쇄 하는게 맞습니다.
그게 싫다면 본인이 선택한 삶이니 옛날식으로 그냥 사는게 맞고.
갈등은 조정을 통해서 해결되는게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든 갈등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서 근대식 고등교육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학교 왜 다녔죠?
경제적 독립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에서 인격적으로 독립하라는 것이 근대식 고등교육의 교육목표가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이미 학교를 다닌 사람을 어떤 이유로든 어떤 틀에 가둔다는 것은
자유민을 다시 노예로 붙잡아두는 만큼이나 상식이하입니다.
요즘 TV에 '추노'라 해서 양반남자를 다시 노예로 만든다는 설정이 있다던데
만약 그렇다면 역사를 눈꼽만큼도 안 배운 작자가 엉터리 각본을 쓴 거에요.
자유민이 된 성인 남자는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노예가 안 됩니다.
어떻게든 몰래 작당해서 흩어진 옛 패거리 다시 모아서 기어코 반역합니다.
그냥 고분고분한 노예가 되는 일은 역사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인 남자는 죽입니다.
죽이는게 대접하는 거죠.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흐른다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배웠으면 적용을 해야 한는데..전혀 안되고 있다라는 것이 문제인거라고 봅니다.
그러고보면 교육따로 사는거 따로이네요.
그러니 사회에 많은 모순이 발생한가 봅니다.
왜 학교에서 배운데로 세상이 안돌아가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겠네요.
배운데로만 살면 좋으련만...^^;
그래도 본질은 교육의 실패입니다.
중국은 적어도 이쪽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중국은 왜? 사회주의식 교육 때문이지요.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질 일은 아니고.
어쨌든 교육에 의해서 해소됩니다.
한국경제도 새마을운동같은 푸닥거리 열나게 해서 그나마 이렇게 된 겁니다.
새마을운동도 본질은 시민재교육입니다. 그거 해서 주민소득이 증가된게 아니에요.
미신, 도박, 괴이한 시골관습, 허례허식 등을 온존하게 만드는 마을 내부의 봉건질서를 깨고
국가 위주의 근대적 질서 관념을 주입한 거지요.
그런데 가정에서는 그게 안되었습니다.
가정에서도 새마을운동 같은 푸닥거리 걸죽한 거 한 판이 일어났어야 했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학생혁명 같은 것이 일어났다면 벌써 해결되었을 문제입니다.
아직도 학생들 두발단속을 한다는 그 자체로 교육파탄이지요.
두발단속을 하면서 근대적인 시민을 양성한다는건 코미디입니다.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독립된 인격체에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가하면 바로 쳐내라 이것이 근대교육의 출발점입니다.
이게 안 되면 도무지 이야기가 안 되는 거지요.
그렇지요..본질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은 실패한 것이지요.
교육이 교육의 효과를 보지못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이고 보면...그냥 쓸데없이 돈 날리는 짓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서로가 편하게 살자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사람이 사람답게 좀 같이 살자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일 겁니다.
전교조 때문에 학생들 성적 내려간다고 주장하는 뻘소리들...
아직도 학생들이 자신의 외모를 통제받아야 하고 그것을 풀기위해 결의를 해야하는 지금의 상황이고 보면...
그것을 걱정하는 학부모나 선생들이나...그러면 선진국 학교는 이미 사단이 나도 몇번이 나야 정상인데...
현대식 교육을 하면서도 가정은 유교적 가부장제를 그대로 이어가고..아들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것이 문제...
딸은 자유롭게(현대적 사고) 키우고 아들은 차마폭(유고적 사고)에서 키우고...그들이 만나서 사단이 나는 것은 당연한 문제...
그러나 이제는 그런 사단을 극복하는 방향으로의 모색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결국 가정내에서 생겨나는 고부간의 갈등은 남편이 시어머니를 컨트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컨트롤이라는 것이 제 부모한테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말이 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일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결혼 이후에 남편이 세력균형 역할을 하는게 아니라, 결혼 이전에 이미 어머니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시어머니가 과도하게 자식의 삶에 관여하려는 것은 극우 노인네들이 단체행동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보로 부터 소외된 것에 대해서 상처받고,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지요. 저의 경우엔 약 5년에 걸쳐서 어머니께 인터넷 사용할 수 있도록하고, 한나라당 지지자에서 노무현 지지자로 변화를 유도하고, 함께 촛불시위에도 동참하게 하였습니다.(그날 광화문에서 김동렬 선생님을 뵈었지요.)
확실히 촛불시위와 같은 경험은 부모님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정보가 열리고, 스스로 자기판단을 할 수 있게되니까 아들이 의식에서 앞서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고,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서도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사실 보통 부모님들은 자식이 뭘 하든 인정을 잘 안하려고 합니다. 어쨌거나 가정 내부에서는 부모님이 상위포지션에 있고, 부모님이 먹여살리고, 교육시켰으니까요. 자기 부모를 가정의 외부로 끌어낼 수 있을 때에(사실은 외부의 힘을 안으로 끌어내는 것) 룰이 바뀌고 구조의 역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의식과 논리에서 자식이 상위포지션을 잡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가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부모님을 컨트롤 하는 것보다 훨 쉬운 문제 입니다. 왜냐하면 두사람 모두 같은 개인 대 개인, 같은 눈높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부모님과의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문제고, 대화를 하기 위한 코드가 없기 때문에 문제고, 그 이전에 정보의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본문을 쓴 이면에는 내가 충분히 어머니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점은 어머니 스스로도 인정하시구요. 가정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준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직 구조론으로 어떤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의 의식을 전환시킨 것이 최고의 성공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가정 내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독재사회를 민주사회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관심을 가질 것에 대해서 넓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는데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며느리보다는 아들이 유리한 지점에 있다는 것도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서로 말을 들어 주는데에 있어서 덜 막혀 있으니까요.
앞으로 우리나라는 아들들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절감하구요.
아들들이 바뀜으로 인해서 그동안 여자들에게 떠넘겨진 고부간의 갈등도 완화될 걸로 예상합니다.
부모들은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라고 하시지만...대부분 그 싸움의 원인이 부모님들한테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자식의 인생을 존중해줘야 하고...아들이 행복하려면 아들이 일군 가정이 행복해야 하므로..그래야 부모들 자신도 행복해지므로...그런 관계들에 대해서 서로가 많은 생각을 해야 하겠지요.
저역시도 구조론을 가정에 도입한다고 생각했을 때...나름대로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무엇보다 끌려가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
순종해서 좋을 것이 있겠지만...자신을 괴롭게 하면서까지 하는 순종은 서로를 불행하게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 것 같구요.
결국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면 주변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동렬님 말씀따나..왕도가 있다고 하면 또 그 왕도 찾기위해 난리가 날 수도 있으나...왕도를 찾아야 서로가 사는 길이기에..찾아보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결국 교육과 사회안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입장에 대해서 관계설정이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지금부터 생각지 않으면 그런 현상은 반복되어 되풀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사람은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리므로....^^;
서로를 인격체로 대하면 되는데...예전에는 며느리에게는 인격이 없는것처럼 대했기에....그러나 며느리도 인격체이므로 ..예전과 같은 대접을 받을 필요가 없겠지요.그래서 며느리도 강한 개인이 되어야 하고 시어머니도 강한 개인이 되면 문제는 해결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참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그러자니 차라리 참자 이러고 지나가는 경우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결국 다 지나가게 되어 있으므로...
그러나 설사 그렇다치라도 제가 나이가 들었을 때도 그것이 반복되고 있으면 큰일이니 지금부터 변해가려고 하는 것이지요.^^()
모두 자신 스스로 지성인이 되면 해결되는 것이겠지요.그리고 당신은 지성인이니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도 있는 것이구요.교육을 받은 값어치를 하고 살아보자는 것이겠지요.^^;
교육이란 것이 참 허망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그럴듯한 민주주의 잘도 배우는데 PD수첩 기소가 웬말이냐고요.
도대체 학교에서 뭘 가르치고 뭘 배웠다는 거죠?
시계바늘을 일주일 전으로 되돌려서 여론조사 하면 아마 PD수첩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할 겁니다.
아직도 이나라에 명박 지지자가 인구의 절반은 된다는데 대개 그 나물에 그밥 아니겠습니까?
나머지 절반의 명박 비판자 중에서도 대개 지역여론 따라가는 거고
자신이 소속한 그룹이나 세대의 여론 따라가는 거지 알고 비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1+1=2를 알면 판단할수 있는 간단한 문제인데 그거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의 성인 중에 몇 프로나 될까요?
그나마 지식집단이 지식인 흉내를 내고 사는 것은 그 양반들 머리 속에 뭔가 들어있어서가 아니고
유럽이라면 유럽 전체에 한 백명 정도 되는 지식인이 방향을 잡고 흐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비판을 해서
세력을 중심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기독교세계 인구가 대략 15억이라면 그 중에서 한 백명 정도가 지성인 문화를 이끌고 가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한국은 고립되어 있어서 아직 지식인집단의 세가 만들어져 있지 않지만 잘 찾아보면 이 나라에 한 다섯명은 아는 사람이 있지 싶은데
설사 아는 사람이 한국에 한 다섯명쯤 있다 해도 그 다섯 사람 힘으로 세를 만들지 못합니다.
분위기 못 띄운다는 거지요.
조선왕조 후기 유교문화의 전성기때도
추사와 다산을 비롯해서 몇몇이 바람잡이 노릇 한 거고
그것도 추사가 중국물을 좀 먹었다니 옹방강과 어쨌다니 하면서 유학파 이름으로 어째 해본거고
좀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토록 꽉 막힌 세상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예술작품을 볼 때에는 감탄하지만 돌아서면 딴판
드라마에 나오는 전여옥 보고는 손가락질 하지만 영등포에 출마한 전여옥은 투표 꾹~!
티브이에 맨날 나오는 팥쥐엄마 뺑덕어멈이 전여옥인데 도대체 뭘 보는 건지.
눈은 감고 티비를 본다는 건지.
집안 내외를 막론하고...
한 집안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주도권을 잡은 사람의 수준이 어떤가에 따라서 결판이 납니다.
그 집안에 설혹 한 사람의 깨달은 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 깨달은 자가 주도권을 못잡으면 소승적 수준.
허나 주도권을 잡은 자가 다행히 깨달음을 갖고 있다면, 딱 그 수준까지 실행되는 게지요.
구성원 중에 덜 떠러진 먹물들이 무더기로 있어봐야 허당.
백과사전적 지식 나부랭이로는 허망한 것.
자신을 알고, 삶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을 갖춘자가 주도권을 잡으면, 그 수준까지 레벨업 되는 것이지요.
한 사람도 좋고 두 사람도 좋습니다.
그 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소승적 깨달음과 대승적 실천으로 나아가면 집단적 지성이 펼쳐질 터이지요.
고부간은 물론 부모와 자식간, 형제간의 문제 또한 두루 다를 게 없지요.
주도권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