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먼가 체계화 하여 글을 써보려고 했으나,
글을 쓸만한 처지가 아니라서, 내용은 쓰지 못하였습니다.
몇개의 단어를 열거하였습니다.
단어와 단어를 이어서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왜 가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인간이 진보하려면, 두개의 날개가 필요합니다.
큰 힘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집단으로 맞서야하고, 집단으로 맞서려면 소통체계를 일방향으로 세팅해야지 효율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럴 수록 인간 개인의 삶은 작아지고, 모든 가치판단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의지하고, 점차 노예로 전락하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인간을 해방시켜주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시대마다 생산성 경쟁과 다양성 경쟁이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것은 자유형으로 수영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른팔과 왼 팔을 저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때문에 예술은 좋고, 체계는 나쁘다 라고만 말 할 수도 없는 거지요. 인류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니까요. 다만 나 자신이 룰을 만드는 사람인가? 룰에 종속되는 사람인가?가 가장 근본적인 것 입니다.
생산성 경쟁에서는 승자는 하나 뿐이지만, 다양성 경쟁이라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 경쟁의 승자는 또한 생산성 경쟁의 승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둘이 다른 것이 아니고, 같은 것 입니다.
최근엔 '천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천재'가 무엇일까? 라는 것이지요. <생활의 달인> 이라는 프로그램을 봐도 갖가지 기예와 솜씨를 가진 사람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엄청 빠르게 칼질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천재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재라는 이름은 대체로 자기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는 일에 선천적인 재능을 뜻하니까요. 스포츠나 예술, 요리, 문학, 등...
말하자면, 어떤 일을 얼마나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에 대해서 '기인' , '장인' 같은 호칭을 붙이지만, 천재라고 하지 않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하위 포지션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능숙하게 잘한다'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일을 '왜 하는가?' 에서 이미 그 포지션이 갈리는 것 입니다. 주인인가 노예인가? 지성인가? 야만인가? 하는 것 처럼 말이지요. '어떻게'는 하위고, '왜'는 상위 입니다. 근본적인 질문에 접근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 입니다.
다만, 좌측의 체계(system)나 자부심(집단)이라는 표현이 쬐끔 어색하게 들리오.
체계와 예술의 대칭 구조를 물질과 정신의 대칭 구조로 생각하면 어떨지요.
아울러, 집단의 자부심이라는 표현 보다는 집단의 복종심? 정도로...
암튼 언어의 한계라는 것이 늘 있게 마련인가 보오.
좋은 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