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가 하면 장난이고, 다른 학생이 하면 폭력이다.
학폭으로부터 애를 보호한다면서 아이는 사회성을 기르지 못한다.
학생인권 보호해달라면서 자신은 친구들의 인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한다.
교사는 공무원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면서 스승 수준으로 가르치라고 요구한다.
피해자를 보호한다면서 피해자를 더 환자로 만든다.
뭐든지 2차 가해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쏙 빠진다.
아동학대 하지 말라면서 교사에게는 함부로 대한다.
집에서 교사를 험담하면서 자녀가 학교에서 잘 배우길 바란다.
학폭 피해를 치유하기 위해 부모가 보호하고 상담센터와 정신과 찾아다니는데 정작 자녀는 피해자 프레임에 갖혀서 회복되지 못한다.
평소에 자녀에 대해 별 관심 갖지 않던 학부모가 자녀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실 확인도 안하고 학교를 발칵 뒤짚어 놓는다.
교사에게 말 한마디로도 아동학대 하지 말라고 하면서 부모는 그 보다 몇 배로 자녀를 학대한다.
자신은 교장이고 교무 총괄권을 가졌다고 외치면서 정작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면 뒤로 쏙 빠지고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는다.
교감에게 뭐든 보고는 하라고 하면서 정작 학폭이나 교권침해가 있을 때 돕는 교감은 거의 없다.
학생 생활지도 법제화가 안되어 있어서 생활지도 포기한다면서 정작 교사인 본인은 생활지도에 대해서 책 한 권 안 읽고 연구하지 않는다.
학부모 상담이 어렵다면서 학부모상담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9가지 좋은 일을 경험하고 나서 집에 가서는 한가지 서운한 일, 안좋은 일을 정말 힘든 일로 포장해서 부모를 충동질 시킨다.
학생이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데, 그런 학생만 탓하면서 정작 교사는 왜곡된 정보를 바로 잡기 위해 부모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교권침해 당하면 그건 100% 교권침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이 교권침해 당했다고 하면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나 교권침해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교권침해 당해서 힘들 때 도와주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이 교권침해 당했을 때는 함부로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거라고 주변에 훈수한다.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면 나를 미워하고, 문제해결에 도움도 안되는 사이다같은 발언을 하면 나를 좋아해준다.
모순의 시대에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인가 보다. 하긴, 나는 이미 모순된 구조를 보고 내 방향을 정했으니까. 다 아는 사람은 답답함을 느낄 지언정 막막하지는 않다. 사실 내가 맡은 일도 답답하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새 해결되어 있고,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테니. 그러나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 않다. 정확한 상황판단 - 나의 포지션 정하기 - 묵묵한 실천 - 버티기와 기다림 -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적어도 확률적으로는 내가 더 나은 대응을 했으니. 선택이 아니라 대응이다. 선택은 불확실 속에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고, 대응은 정확한 현실 파악 뒤에 내리는 확률높은 실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