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8007 vote 0 2005.12.19 (18:39:27)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공포를 느낄까? 괴물이나 귀신, 살인자나 폭력배, 깜깜한 밤길의 비명소리.. 따위를 연상할 수 있다.


감독 히치코크는 다르게 접근한다. 강한 상대가 나를 해치려 할 때가 아니라 반대로 나 자신이 약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가 무섭다. 도망갈 곳이 없는 밀실.. 그 유명한 욕실에서의 샤워장면..


공포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들은 어떤 사람일까? 잔인한, 흉포한, 괴기스런, 남을 해치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들은 이야기인데.. 프로레슬링의 각본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이 쇼라서 구성작가가 있다는 건데... 남성 작가보다 여성작가가 더 잔혹한 각본을 쓴다는 거다.


예컨대 날카로운 종이에 손을 베인다든가 혹은 뾰족한 모서리에 찍힌다든가 하는 따위의 사소한 일상의 아픔들을 남자보다 여자가 잘 알고 있다는 거다. 남자들은 그저 던지고 메치고 밖에 몰라..!


김기덕감독의 영화들이 특히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영화를 만든 김기덕 감독은 잔인한 사람일까?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만나본 사람에 의하면 김기덕 감독은 의외로 순박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죽어가는 다람쥐 한 마리를 보고도 울 수 있는.. 의외로 눈물도 많고 정도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그를 인터뷰한 책도 나와 있다.)


그의 영화에는 유리조각으로 찌른다든가, 혹은 종이를 접어 목을 찌른다든가 심지어는 얼린 고등어로 살인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것이 흉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종이가 흉기라고? 얼린 고등어로 살인한다고? 동의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있다면 건장한 남성보다 섬세한 여성이 더 많이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종이에 손을 베이기도 하고 통조림 통을 따다가 다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는 여성이 더 민감할 것이다.


이건 역설이다. 잔인한 사람이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섬세한 사람이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링’이나 ‘주온’ 따위 일본 공포영화들의 흥행에서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도 마찬가지. 글의 스타일과 글쓰는 사람의 성격은 도리어 반대될 수 있다. 심성이 여린 사람이 거친 글을 쓸 수도 있고 거친 사람이 부드러운 글을 쓸 수도 있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예민한 사람이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고통이 최단기간에 종결될 수 있는지를 항상 생각한다.


내가 아쉬워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 방’이면 끝난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일이라는 것이 벌이기는 쉬워도 수습하기는 어려운데 말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사태를 종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잘 안 된다. 625를 도발한 김일성은 한 달 안에 끝낼 걸로 믿었고 2차대전을 도발한 히틀러는 6개월 정도를 희망했으며 역사이래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했다.


월남전을 몇 년 씩이나 하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부시도 3개월 만에 끝내려고 했는데 그놈의 끝이 나지 않아서 수천명의 자국군을 이라크에서 희생시키고 있는 거다.


얼른 끝이 났으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끝이 안 난다. 사라예보에서 한 방의 총성이 4년에 걸쳐 1500만명을 죽일 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잘못은 두 가지다. 하나는 좌파에 대한 불신이다. 두 번째는 갈등의 지속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느 분 말씀대로 내게도 지켜야 할 가치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갈등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


나는 왜 좌파를 불신했을까? 문제는 스타일이다. 이론은 이해할 수 있는데 이질감이 문제다. 그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말투, 표정관리를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나는 그들의 방법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차가운 유리벽의 느낌 말이다. 나와는 동화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듯 하다. 왜 그들은 문제를 꼭 이런식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나의 글쓰기에도 문제가 있지만 좌파들도 자벨경감 같은 말투나 행동거지는 좀 줄여주었으면 좋겠다. 미리엘 신부도 있는데 말이다. 언론이 빅브라더 역할을 하는데 따른 국민들의 공포감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빨리 끝날거 같지도 않고 또 끝난다 해도 또다른 형태의 후유증이 나타날 것만 같다. 와이래 춥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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