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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237 vote 0 2021.07.25 (17:20:12)

    재판정에 앉은 판사와 배심원은 공방을 벌이는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 게임의 당사자가 되면 안 된다. 원고나 피고의 입장에 서면 안 된다. 우리는 게임에 올라타고 있고 게임에는 포지션이 있고 그 포지션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한다의 법칙'은 상대방의 말이 납득되지 않을 때 문장 뒤에 라고한다를 붙여보면 납득된다는 말이다. 상대방이 어떤 개소리를 해도 납득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어떤 유태인이 서기를 뽑으려고 면접을 보는데 지원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1+1의 답은 얼마냐 하는 것이었다. 2라고 대답한 사람은 불합격되었다. 채용된 사람의 정답은 '얼마로 해드릴까요?' 였다고. 유태인의 상술을 비꼬는 유머다.

    우리는 게임에 몰린다. 게임에 이겨야 한다. 쫓기는 마음이다. 정답을 맞추면 승리다. 그런데 게임 속에 또 다른 게임이 숨어 있다. 원고나 피고는 '1+1은 2잖아' 하고 화를 내지만, 판사는 사장이 유태인인 줄도 모르고 지원했냐고 웃는다. 다른 지점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게임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 속에 숨은 또 다른 게임을 찾아내야 한다. 선수는 당장 내 앞에 온 공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패스를 하든 드리블을 하든 슛을 쏘든 0.1초 안에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중석에 앉은 사람은 여유 있게 게임을 즐긴다. 문제와 대결하지 말고 출제자와 대결해야 한다.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내 손에 붙잡힌 상대와의 씨름에 매몰되지 말고 내가 손오공이 되어 부처님의 손바닥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지만 동시에 면접관에게 붙잡혀 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개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화가 나지만 '라고한다'를 적용하여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걸로 한다'고 표현하고 보니 갑자기 커다란 자유가 얻어졌다. 멋지잖아. 무슨 개소리든 다 가능하잖아. 도깨비방망이를 얻은 셈이다. 어떤 궤변도 가능하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 예수의 강력한 말이다. 예수는 게임에서 발을 빼고 배심원석으로 도망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같은 기술이다. 예수는 유태인이었다. 중립적인 포지션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알고 있었다. 탈무드의 지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마찬가지다. 


    가이사의 법을 따를 것인가? 율법을 따를 것인가? 가이사는 가이사라고 한다. 율법은 율법이라고 한다. 그것은 가이사의 말이고 율법의 말이다. 그것은 너의 말이다. 나는 나의 말을 던진다. 예수는 너의 문제에 답을 풀지 않고 나의 문제를 던진다. 너의 게임에 선수로 뛰지 않고 나의 게임을 개설하여 적을 그 무대에 초대하는 방법으로 당황시킨다.

    적들은 가이사의 말과 어긋나면 꽁꽁 묶어서 가이사 앞으로 끌고 갈 속셈이고, 율법사의 말과 어긋나면 역시 묶어서 율법사 앞으로 끌고 갈 요량이었다. 예수는 예수 자신의 말을 던졌다. 거꾸로 상대방을 예수의 잔치에 초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 당신의 말이 궁금해서 조금 더 지켜봐야 했다. 못 참고 결국 죽였지만 말이다.

    '1+1=2'는 수학의 말이고, '얼마로 해드릴까요'는 유태인 수전노의 말이다. 게임이 내게 불리하다 싶으면 하느님의 말을 끌고 오면 된다. 하느님의 말이 킹왕짱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각자는 각자의 말로 라고 한다. 이솝은 거북이가 이긴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솝의 말이다. 


    이솝이 개설한 풍자게임이다. 풍자를 이기려면 풍자로 받아야 한다는게 함정이다. 우리는 이솝의 말이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어야 한다. '그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하고 한바탕 쏘아붙이고 싶지만 이솝의 입은 쉬지 않는다. 그의 다음 말이 궁금해서 계속 듣고 있다가 천일야화는 두꺼워진다.

    남의 말에 선수로 뛰어서는 승산이 없고 자신의 게임을 개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그의 말이다. 그가 라고 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판정은 그의 게임 안에서 주어지는 맥락에 따라 성립한다. 


    계산은 계산으로 받고, 풍자는 풍자로 받고, 넌센스는 넌센스로 받고, 가이사는 가이사로 받고, 율법은 율법으로 받고, 하느님은 하느님으로 받는 것이 맥락이다. 그것은 게임 속의 게임이다. 이기려 하지 말고 써먹으려 해야 한다. 손오공은 부처님을 이길 수 없지만 써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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