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00125120302520 선한 인간이 선한 의도로 선을 행하며, 악한 인간이 악한 의도로 악을 행한다는 단세포적인 선악구도를 버려야 한다. 결과인 경제성장이 선하므로 원인인 박정희 인격도 훌륭하다? 원인인 쿠데타가 악하므로 결과인 경제성장도 사실이 아니고 재벌경제와 빈부격차로 망했다? 둘 다 틀렸다. 진영논리와 프레임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보자. 인간의 행위동기는 보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이고 중층적이다. 박정희와 김재규는 낫세르에 영향을 받은 자칭 혁명가다. 20세기는 영웅의 세기다. 드골, 로멜, 패튼, 처칠, 맥아더, 히틀러, 뭇솔리니, 낫세르, 체 게바라, 모택동, 스탈린, 카스트로, 김일성, 카다피, 후세인, 티토가 그들이다. 자뻑에 나르시시즘에 중이병 걸린 자칭 영웅이었다. 고등교육 받은 사람이 열에 하나도 안 되던 시대다. 봉건 부족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박정희나 김재규나 전형적인 20세기형 인물이다. 그들은 시민이 아니라 족장이므로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역사는 쿠데타로 규정하지만 그들 자신은 혁명가로 여겼다.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이며 안중근과 같은 지사라고 믿은 것이다. 사리사욕은 없고 언제든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자세가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빠들이 좋아할 그림이다. 그러나 도둑놈들도 처음에는 의적을 자처하며 의리를 강조하다가 황금을 손에 넣으면 순식간에 태도가 변한다. 동료 죽이기를 밥 먹듯이 한다. 원래 나쁜 놈인가, 아니면 원래는 좋은 사람인데 갑자기 사람이 변했나? 영화 ‘좋은 친구들’의 로버트 드 니로와 같다. 역시 좋은 친구인데 루프트한자 공항을 털어 600만 불을 손에 넣자 갑자기 의심병이 생겨 동료를 싸그리 죽인다. 순식간에 천사가 악마로 변한다. 마음이 변하는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통제가능성 때문이다. 이 영화 실화다. 그런 상황은 원래 통제가 안 된다. 516 쿠데타 세력도 초장부터 온갖 비리를 저질러 '구악일소'라는 혁명공약에 빗대어 ‘신악이 구악을 뺨친다’는 말을 들었다. 왜 그들은 미친 듯이 해먹었을까? 천천히 해먹어도 될 텐데 말이다. 친일재벌에게 권총을 겨누고 ‘우리는 목숨 걸고 쿠데타를 했는데 니들도 뭐 좀 내놔야 되는거 아냐?’ 이런 논리로 털었다. 강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인물이 부패해서가 아니라 군부세력의 자체 통제능력이 없었다. 이후 정권이 안정되자 부패는 제법 줄었다. 자금성을 점령한 이자성의 농민반란군과 같다. 그 직전까지 중국인 모두가 이자성을 칭송했는데 북경성에 입성하여 황궁을 접수하고 목표가 사라지자 일제히 개새끼로 변했다. 최고의 의적에서 최악의 쓰레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때까지 이자성은 농민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도시에 접근하면 주민들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이자성의 농민군을 환대했다. 나중 모택동이 이자성의 엄격한 군율을 흉내내어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김일성도 이걸 써먹어 보고 싶어서 침략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미친개가 됐을까? 긴장이 풀리면 한순간에 맛이 가는 거다. 목표를 상실한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 약탈욕심을 참았는데 이제 보상을 받아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방아쇠가 격발된다. 김재규는 자신을 박정희와 동급인 혁명가로 여겼다. 그는 마지막까지 박정희를 부정한 적이 없다. 박정희를 뼛속까지 존경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박정희와 동일시한 점이다. 이는 낭만주의적인 요소라 하겠다. 김재규 생각 – ‘박정희는 위대한 혁명가이며 영웅이다. 나는 박정희와 동급인 혁명가이며 유일하게 그의 진정한 동료다. 박정희는 지금 맛이 갔고 그를 천국에 보내주는 것이 그를 돕는 것이다. 총으로 일어선 박정희는 총에 맞아 죽어야 아름답다.’ 당시 장준하도 쿠데타를 지지했는데 암울한 시대에 쿠데타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훌륭한 이자성이 북경에서 한 짓을 동료가 본다면? 김재규는 박정희가 긴장이 풀리고 맛이 간 현장을 목격했다. 김재규 자신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자성의 경우도 같다. 정예병력을 거느린 오삼계가 산해관에 진을 쳤다. 오삼계 코앞에서 북경성을 약탈한다면 미친 짓이다. 생각이 있는 동료라면 이자성을 제지해야 했다. 좋은 친구들의 레이 리오타가 미친 로버트 드 니로를 제지하듯이. 물론 김재규도 파헤쳐보면 비리가 많은 사람이다. 목숨을 내놓고 일하기 때문에 뒤로 좀 챙겨 먹어도 괜찮다는 식의 자기합리화가 있었다. 개혁가들이 잘 빠지는 함정이다. 인물품평으로 역사를 대한다면 초딩이다. 선악을 떠나 더 깊은 부분을 봐야 한다. 우리 진영에도 긴장이 풀리고 나사가 빠진 인간들 많잖아.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을 헌신했는데 뒤로 좀 챙겨 먹은들 어떠리 하는 자들 있다. 보상받고 싶다. 도지사까지 됐고 대통령을 바라보는데 연애 좀 하면 어때 하는 안희정의 안이한 생각들이 그러하다. 정봉주의 나사 빠진 행각도 위태롭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해진다. 어두운 터널을 힘들게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다시는 그 긴장 속으로 들어가기가 싫다. 넌더리가 난다. 인간은 그렇게 타락하는 법이다. 우리는 그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보상을 주려는 유혹을 극복하자.
틀린 생각 -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아첨이나 하는 겁쟁이고 개인적인 권력욕에다 차지철과의 갈등 때문에 우발적으로 쏘았다. 그쪽 애들이 다 그렇듯이 그냥 쓰레기다. 바른 판단 - 박정희와 김재규는 20세기다운 영웅주의에 빠진 자칭 혁명가이고 목숨을 걸었으며 박정희는 긴장이 풀려서 맛이 갔고 김재규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박정희가 맛이 간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죽였다. 박정희가 더 이상 추태를 부리지 못하게 막았으니 김재규는 나름대로 친구에게 의리를 지킨 것이다. 김재규가 총을 쏜 이유는 당시 총체적 난국이었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쏜 것이다. 놔두었으면 김일성처럼 아주 왕조를 열었을 것이다. 지하에서 박정희가 김재규를 만나면 고맙다고 절할 것이 틀림없다. 김재규와 같은 좋은 동료를 두었으니 박정희가 아주 최악의 인물은 아니다. 물론 전두환과 같은 최악의 부하를 키운 것을 본다면. 보수꼴통들이 박정희를 우상화하기 때문에 박정희가 더 나쁘게 기록되는 것이 사실이다. 20세기의 영웅주의가 사태의 본질이다.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이며 다면적인 성향이 있다. 정주영이 구두 하나를 20년씩 아껴 신으면 그는 과연 근검절약의 화신일까? 어떤 재벌이 몰래 첩에게 고급 아파트를 사주는건 괜찮고? 인간의 양면성이다. 코오롱 재벌은 첩이 일곱이나 되었다. 신격호의 첩 서미경이 최근 뉴스에 나왔지만. 재벌이 다 그렇다. 구두 한 켤레를 몇 년씩 아껴 신는 것도 진실이고 첩에게 회사 하나를 통째로 소비하는 것도 진실이다. 박정희가 막걸리 마시는 것도 진실이고 여대생 끼고 시바스리갈 마시는 것도 진실이다. 권력자는 그런 양면성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런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김일성은 마지막까지 외연확장을 못하고 빨치산 패거리와 함께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역시 군인 시절 쫄다구들과 함께했을 뿐 외연확장을 못했다. 그가 김종필을 제거한 것은 나름 외연확장 노력을 보여준다고 제스처를 한 것이다. 끼리끼리 다 해먹으면 되냐? 공산주의는 인재를 물갈이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어서 시진핑처럼 세습하는 수 외에 잘하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소련뿐 아니라 모든 공산국가에 공통된 특징이다. 처음은 저항하는 엘리트 귀족세력을 제거하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재를 발탁한다. 다음은 세습하여 귀족을 대체한다. 그 상태로 망할 때까지 가는 것이며 다른 방법이 없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일어서서 전혀 문민화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주변에 군인들만 있었고 그래서 세력이 왜소해졌다. 군인이 민간인과 손잡고 점차 민간에 권력을 넘겨주면 되잖아? 이런 식으로 안이한 생각을 하기 쉽지만 환상이다. 현실은 냉정한 법. 절대 그렇게 안 되는 것이 봉건 시스템이다. 하나를 바꾸면 다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 바꾸지 못하므로 하나도 못 바꾼다. 박정희 죽음의 본질은 외연확장 실패다. 쿠데타 시점에 군부가 대한민국 엘리트의 집산지였지만 대학교육이 확대되면서 그들은 갈수록 소수파로 몰리고 있었다. 세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은 사람은 김재규다. 박정희는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기보다 역사책을 읽어보라. 그 상황에 세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권력을 내놓은 사람은 동서고금에 단 한 명도 없다. 바꾸는 과정에 혼란으로 더 나빠지는 경향 때문에 ‘더 나빠질 건데 왜 바꿔?’ 하고 안 바꾼다. 소련은 무리하게 바꾸다가 주정뱅이 옐친 때문에 더 나빠졌다. 고르바초프가 옳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소련처럼 개혁하다가 망한 예가 역사에 무수하다. 박정희는 점차 군부세력이 소수파로 몰리게 되자 본능적인 위기를 느끼고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럴수록 극단적 도박을 하게 된다. 도박이 성공하면 더 나빠진다. 우한폐렴에 중국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무려 중의학으로 페렴을 잡겠다고 덤빈다. 이거 도박이다. 그런데 만약 이 도박이 성공하면? 성공하면 중국은 더 퇴행하게 된다. 중국이 청나라에 정치를 맡긴건 도박인데 성공해서 더 나빠졌다. 누르하치와 도르곤에 이어 강희, 옹정, 건륭까지 청나라 초기에는 다섯 명의 천재 군주가 있었다. 그들이 중국을 번영시켰다. 선한 지배자에 대한 환상 때문에 모택동에서 시진핑까지 중국은 엉뚱한 길을 헤매고 있다. 러시아도 짜르 표트르에 대한 환상 때문에 망가졌다. 쿠데타는 도박인데 원래 도박은 성공하면 더 해롭다. 도박중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요행수로 도박이 성공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뒤탈이 난다. 도박은 애초에 안 하는게 정답이다.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치 쿠데타가 성공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등장한 것이다. 나쁜 정치는 망하는 것이 정답이고 만약 망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청구서를 받는다. 박정희가 성공했다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는 그 청구서다. 춘추필법이 필요한 이유다. 도박으로 잠시 잘 될 수 있어도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설사 트럼프의 도박이 성공한다 해도 그 환상 때문에 미국은 미끄러지게 되어 있다. 나쁜 정치의 성공만큼 나쁜 것이 없다. 박정희는 나쁘거나 나쁘지 않아서 더 나쁘거나다. 통제가능성에 답이 있다. 초기에 그들은 순진한 젊은이들이었고 자기통제를 못 해서 정권을 잡자마자 부패했다. 정권이 안정되자 부패가 줄었으나 민주세력이 성장하자 소수파로 몰려 위기의식을 느끼고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우리는 도박을 삼가고 긴장을 유지한 채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상대방을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우리는 그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보상을 주려는 유혹을 극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