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190518090256996?f=m
제프 쿤스 그리고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한다. 이는 결이고 해는 풀어내는 것이다. 결을 풀어내는 것이 이해다. 결은 법칙이다. 법칙은 대칭되는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머리가 있으면 꼬리가 있고 시작이 있으면 종결이 있다. 원래 하나인데 사건 안에서 둘로 나누어진 것이 법칙이다. 둘에서 하나로 되돌리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엉킨 실의 머리와 꼬리를 찾아 한 줄로 정렬시켰다면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캔버스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면? 점 하나 찍혀 있다면? 이해할 게 없잖아. 그러므로 접수하면 된다. 이해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수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언어가 떳떳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애인이 선물을 줬다고 치자. 이해를 못 하나? 수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선물을 받든가 받지 않든가다. 작가는 관객에게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을 받거나 받지 않거나다. '도에 관심있으세요.' 언니가 말을 건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든가 아니면 응대를 하든가다. 왜 이해를 하려고 하지? 고전명화들은 그리스 신화를 그려놓았다. 아 저건 아폴론이고 저건 아프로디테 여신이야! 이런 건 이해할 만하다. 한국의 병풍그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로장수를 기원하거나 과거합격을 기원하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박쥐 그림은 박과 복의 발음이 유사하므로 복을 받으라는 뜻이다. 사군자 그림은 보나마나 선비의 품격을 지키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런 이해그림은 엿 같잖아.
왜 그림에다 무슨 암호를 숨겨놓고 해독하라고 하지? 장난하나? 초딩이냐? 주로 민화에 그런 메시지가 숨어 있다. 물론 가치 없다. 민화의 주요소재인 까치호랑이를 보자. 까치는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호랑이는 귀신을 막아준다. 입춘대길이라고 대문에 써 붙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과 같다. 근데 그거 부적이잖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으면 하느님이 실수로 벼락을 때리든가 하지 않겠지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중세에는 화약을 교회에 보관했는데 하느님이 자기집을 때려 부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첨탑 때문에 벼락을 맞아 교회가 폭발하곤 했다. 거 참 멍청한 하느님이네. 자기집도 못 알아보나. 하고 탄식하곤 했다. 나는 그 이해를 못 하겠다는 몰이해를 이해 못 하겠다. 그림에다 메시지를 넣으려는 천박한 수작이라니 화가 난다. 김정일 뒤에 그려진 금강산 그림 말이다. 촌스럽잖아. 왜 그런 짓을 하지? 금강산의 위엄으로 사람을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노골화된 것이다. 사람을 쫄게 만들겠다는 그 역겨운 의도를 나는 혐오한다. 매우 싫다. 유럽의 장식적인 가구들은 짜증이 난다. 돈을 비싸게 받으려고 요령을 부렸기 때문이다. 복잡한 무늬가 정신만 사납게 할 뿐이다. 사실 그런 무늬는 대량생산된다. 고객을 속여먹겠다는 의도가 짜증나잖아. 대부분의 유럽건물은 구경꾼을 탄복시키고 경탄하게 하고 감탄사를 끌어내고 심리적으로 제압하려는 꿍꿍이가 있다. 그런 천박한 의도가 밉잖아. 그런 것을 보고 감탄해서 우와 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초딩들과는 한순간도 같은 자리에 공존하고 싶지 않다. 눈요기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식은 사절이다. 중국의 골동품도 마찬가지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에는 작고 아기자기한데 손재주가 공교로운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거 유치한 거다. 쌀알에다 반야심경을 쓰는 사람도 있다. 한심한 짓이다. 사람의 눈길을 끌려고 원숭이 행동을 한다면 빌어먹을 짓이다. 길거리에서 순식간에 그림을 쓱쓱 그려내는 사람도 있고 한자를 쓰는 장님도 있고 벼라별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건 예술이 아니다. 서커스다. 요지경이나 만화경 말이다. 요지경은 초딩 때 소풍 가면 팔고 있다. 카메라처럼 생겼는데 눈을 대고 그림을 한 장씩 돌려보는 것이다. 만화경은 거울 몇 개를 겹쳐 알록달록한 무늬를 보는 것이다. 그런 초딩상술은 예술이 아니잖아. 그런 수작을 혐오해야 한다. 뒤샹의 변기는 개수작들에 대한 혐오와 반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을 유인하고 등쳐먹고 갖고 놀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항한다. 아직도 페인팅을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더러 있더라마는 알량한 손재주를 전시하여 밥 먹겠다는 구걸주의를 나는 경멸한다. 설사 남들보다 뛰어난 손재주가 있다 한들 그게 왜 밥 먹는 근거가 되는 거지? 화가 나야 한다. 싸워야 한다. 아닌 것들을 쳐내야 한다.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을 제압하려는 자들에 맞서자. 본론으로 돌아가자. 제프 쿤스다. 토끼다. 간단하잖아. 이해할 게 없잖아. 메시지가 없잖아. 가르치려는 게 없잖아. 의도가 없잖아. 좋잖아. 이해를 못 한다면 단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무너진 거다. 도대체 작품을 모르는 건지 맥락을 모르는 건지 예술을 모르는 건지 영감을 모르는 건지 에너지를 모르는 건지? 분명한 것은 제프 쿤스의 작품에서 뭔가 이해를 해보겠다는 자들은 우리의 적이라는 거다. 대만의 다층구는 15층이라 꽤 복잡하고 그래서 가치가 있는데 제프 쿤스의 토끼는 단순하니 잘못되었다는 식이면 우리의 적이다. 그들은 손재주로 사람을 제압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의 문제다. 현대를 관통하고 미래를 초대하는 뒤샹과 제프 쿤스와 앤디 워홀의 공통점은 추사의 말년 작품 판전과 같다. 그것은 어린이의 필의다. 세한도 역시 단순해서 가치가 있다. 인기가 있는 드래곤볼과 원피스와 조석의 그림체는 어린이의 기호가 반영되어 있다. 필자가 언급한 기아의 쏘울과 포르쉐 디자인도 어린이의 기호가 있다. 즉 어린이다운 것이 예술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미키 마우스를 우습게 보겠지만 그 선의 각도 하나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어린이는 호기심이 있고 에너지가 있고 사물을 향해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한다. 그런 느낌을 만화에 영화에 그림에 음악에 문학에 반영하면 예술이 된다. 예술은 인간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인사한다. 처음 말을 거는 사람이 나는 힘이 센 골리앗이야. 나의 힘을 볼래? 이러면 무례한 것이다. 정중한 인사를 건넨다 해도 답답하다. 매너가 어떻고 에티켓이 어떻고 따지면 피곤한 거다. 어떤 경우에도 환영받는 초대는 어린이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안에는 상대방을 향해 다가가 안기려는 적극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떠보려 하고 퀴즈문제를 내고 갖고 놀려고 하고 암호를 숨겨놓고 개수작을 하는 자는 불친절한 자이며 무례한 자이며 그런 자의 초대는 당연히 거절한다. 웅장한 건물이나 위압적인 선이나 사람을 놀래키려는 정신사나운 무늬는 소인배의 행동인 것이며 나는 초대를 거절한다. 예술은 사람을 초대하는 수단이다.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의 결을 드러내는 자만 타인을 초대할 자격이 있다. 겁주고 제압하고 놀래키고 억누르려는 자는 남을 초대할 자격이 없다. 그런 자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에너지의 꿀렁거림을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면 안 된다. 건축이든 음악이든 페인팅이든 조각이든 문학이든. 초대한다는 것 그리고 만난다는 것은 기승전결로 가는 사건의 시초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일이 일어난다. 기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기승전까지 해먹고 너는 결이야 하고 윽박지르면 안 된다. 사람을 제압하려는 그림이나 메시지가 숨겨진 그림은 기승전을 다 해먹고 껍데기를 주는 것이다. 설거지감을 남겨준다. 지가 다 처먹고 손님한테 껍데기를 내민다면 괘씸하다. 열려 있어야 한다. 다양한 접근과 해석과 변용이 가능해야 한다. 싹수가 보여야 한다. 파릇파릇해야 한다. 두툼해야 한다. 뻑적지근해야 한다. 이런 것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딱 봐도 감 오잖아. 전율하잖아. 멋지잖아. 세련되었잖아. 기분 좋잖아. 말이 필요해? |
"예술은 사람을 초대하는 수단이다.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의 결을 드러내는 자만 타인을 초대할 자격이 있다. ~ 에너지의 꿀렁거림을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면 안 된다."
아니다. 아마도 누구도 이해하려 들지않는게
제프의 작품이다. 이해는 무슨/ 오! 우! 하면
그냥,딱 보는 감각적 시각적 이미지다.
왜? 그렇게 비싼가?를 질투내지 부러워하는거다
대중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선사했으니
이미지 영상시대에,진일보한 그의 조각상이
엄청 비싸야 당연하다고나 할까.
오래된 건축물에, 넓은 광장에, 밋밋한 넓은
푸른잔듸밭에 설치되면 싼빡하다.
전시관에 놓이게 되면 심플하고 빛나고
친근해서 주위사물,작품들을 잠시 가리고
빛까뻔쩍하게 홀로 시선을 받는다.잠깐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