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사건의 원인이다. 일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 원인이 뭐냐다. 원인은 계의 상태다. 다른 원인도 있지만 부수적이다.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 진짜 원인이고 부수적 원인은 하필 그 장소에서, 하필 그 시점에, 하필 그 형태로 일어났는지 즉 사건의 장소와 시점과 양상을 결정하는 조건일 뿐 사건 자체의 격발조건은 아니다. 총을 맞았는데 누군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 진짜 원인이고 빗맞았거나 불발탄이 되었거나 유탄을 맞았거나 이런 건 부수적 원인이다. 부수적인 원인을 들고나와서 본질을 흐리려고 하면 안 된다. 공부를 안해서 시험을 망쳐놓고 출제범위가 넓었다니 날씨가 추웠다니 하며 잡다한 부수적인 것을 들고나와 면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경사진 길에 공을 놓으면 아래로 굴러간다. 길이 경사져 있기 때문에 공이 굴러가는 걸까 아니면 공이 둥글기 때문에 굴러가는 걸까? 둘 다 맞지만 우리는 통제가능성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공을 네모로 깎아 각지게 만들기보다 길을 평탄하게 닦는게 맞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공을 탓할 뿐 큰 길에 대해서는 모르쇠하기 다반사다. 공은 작아서 만만하지만 큰 길을 새로 닦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은 안에 있고 길은 밖에 있다. 진짜 원인은 바깥에 있다. 바깥을 해결해야 확실히 통제된다. 안의 대응은 미봉책이니 임시방편이 되나 부분적 해결에 불과하다. 언제라도 외부의 시스템을 탓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계의 상태에서 통제가능한 정도라고 길게 말하자니 어색하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이 사건의 주도권을 장악한 정도라고 말해도 어색하다. 계는 시스템 형태로 존재한다. 시스템은 이것과 저것이 맞물려서 메커니즘을 이루며 거기에 에너지가 태워져 있다. 이것을 모두 설명하려면 진이 빠진다. 그냥 이명박 때문이라 하자. 물리학 용어지만 에너지라는 좋은 단어가 있으니까 빌어쓰기로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어폐가 있는 개념은 많다. 고객충성도customer loyalty라는 표현이 그렇다. 네이버나 다음을 찾는 방문자가 다른 사이트에 비해 그 사이트에 집중하고 상호작용하는 정도인데 충성이라는 군사용어가 들어가 있어 어색하지만 다른 표현이 없다. 무슨 얼어죽을 충성이냐고? 논산훈련소 거수경례 구호도 아닐 테고 말이다. 별수 없다. 사실 정치에 있어서도 단순 지지지와 열성 지지자의 차이는 큰 것이며 소수의 열성 지지자가 다수의 단순 지지자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이회창이 40퍼센트로 노무현의 3퍼센트를 이기지 못한 것이 그렇다. 지지자의 충성도가 말하자면 에너지다. 왜 어떤 정치인은 지지자의 충성도가 높고 어떤 사이트는 고객충성도가 높고 왜 어린이는 에너지가 넘치고 또 왜 3대 지랄견은 야단을 쳐도 계속 말썽을 부리는가? 에너지를 통제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에너지는 환경과의 관계에서 유도되는 사건의 기승전결 연결에서의 주도권인데 어린이는 관계의 숫자가 크게 증가한다. 오늘은 닭을 만나고 내일은 병아리를 만난다. 모레는 강아지를 만나고 다음 날은 망아지를 만난다. 어린왕자가 여우를 기다리듯이 매일 무언가를 만나고 또 기다리며 많은 사건이 그 첫 만남에 연동되어 결정된다. 이때 다음 단계의 사건을 지배하는 정도가 강력한 것이 에너지의 낙차다. 각운동량이 큰 것과 같다. 감추어진 힘이다. 겉으로는 돌고 있는 팽이나 그냥 가만히 있는 팽이나 같아 보인다. 회전하고 있는 파워볼을 쥐면 강한 저항이 느껴진다. 한참 들고 있으면 땀이 날 정도다. 숨은 관성력이다. 이 힘은 상대적인 힘이어서 외부에서 잘 포착되지 않는다. 만져봐야 아는 것이다. 에너지의 구체적인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계를 정의하여 포괄할 수 있다. 어린이는 매일 새롭게 자연과 만나고 친구와 만나고 자기 자신과 만난다. 첫 만남이 이후 많은 것을 결정한다. 에너지는 그 연쇄적인 만남에서의 상대적인 관계로 존재한다. 어원으로 보면 에너지energy는 안en에서 일한다ergy는 뜻이다. 이는 외부에서 포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에너지는 대개 외부와의 관계로 존재한다. 돈이 있건 빽이 있건 친척이 있건 학벌이 있건 지연이 있건 간에 외부에 있다. 내부에는 단백질과 수분과 회분이 있는데 그다지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는 내부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 연결하여 일하는데 어쨌든 숨어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구조론의 에너지도 복잡하게 존재하지만 해석하면 수학적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 에너지가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다. 단 사건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 각별하다. 국어시간에 졸다가도 음악시간만 되면 기운을 차리는 사람이 있다. 체육시간 되면 기가 살아나는 사람도 있다. 자연의 물질도 에너지에 의해 지배되고 사람의 마음도 에너지에 의해 결정된다. 개도 에너지의 조율에 의해 길들여진다. 물리학 용어라고 해서 딱딱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계를 지정하면 쉽다. 네까짓게 이 바닥을 벗어날 수 없지 하고 바닥의 경계를 그어주면 손바닥보듯 확인이 된다. 사건에는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변희재는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고 낸시랭도 연예계 주변을 기웃거리며 그 바닥에 있다. 통제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