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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856 vote 0 2015.11.30 (19:10:33)

 

    왕은 말합니다. '갑은 갑이고, 을은 을이다. 어기는 자에겐 죽음뿐이다.' 명상가는 말합니다. '갑이라고 생각하면 갑이고, 을이라고 생각하면 을이다.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철학자는 말합니다. '갑에게는 갑의 본질이 있고, 을에게는 을의 본질이 있다. 그 본질을 추구하라.' 유몰론자들은 말합니다. '갑과 을은 생산수단을, 설국열차의 엔진을, 자본을 누가 쥐느냐에 달려있다. 세상의 을들이여 궐기하라.' 구조론은 말합니다. '갑과 을은 한 배를 타고 있다. 을이 갑의 엔진을 탈취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배에 구멍을 내라. 엔진을 파괴하라. 배를 침몰시키고 신세계로 옮겨가서 독립을 선언하라.' [생각의 정석 7회]


    갑을관계는 일의 속성이므로 그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거기에 굴복하면 죽는다. 갑으로 되기를 포기한 을의 사회는 죽은 사회다. 왕은 포기하라고 한다. 죽어라는 말이다. 명상가는 도피하라고 말한다. 이왕 죽을거면 고통없이 죽자는 말이다. 철학자는 이 문제를 들어 사회에 경고하며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데 쓸 뿐 그 사회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지적 허영을 즐기는 댄디즘이다. 유물론자는 사회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어느새 자신이 타도되어야 할 갑이 되어 있다. 제한된 시공간 안에는 답이 없다. 그러므로 세계를 확장시켜야 한다. 새로운 대륙, 새로운 세대로 맥락을 이어가지 않으면 죽는다. 인간도 죽고 사회도 죽고 조직도 죽고 사랑도 죽는다. 문제해결은 도리어 중요하지 않다. 계속 가는 것이 진짜다.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사랑을 이어가는데 결혼이라는 장치가 쓰인다. 계속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의 호흡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갑을관계의 존재와 그 갑을관계의 부단한 전복과 그에 따른 부단한 계의 확장은 세상 자신이 호흡하는 방법이다. 하나라도 멈추면 죽는다. 설국열차처럼.


   


[레벨:30]솔숲길

2015.12.08 (11:29:12)

[생각의 정석 7회] 마음이 행복해지는 법

http://gujoron.com/xe/37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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