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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60 vote 0 2019.03.26 (19:00:47)

      
    세상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사건을 일으킨다. 사건에는 시스템이 숨어 있다. 시스템은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메커니즘은 구조로 나타난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갈림길에서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한다. 우리는 최후에 그 판정되고 선택된 결과물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존재가 인간에게 포착되기까지의 숨겨진 과정이다. 어떤 것이 있어서 그것이 인간의 눈에 띄었다면 보이지 않아도 배후에 구조와 메커니즘과 시스템과 사건과 에너지가 있다. 최후의 궁극에는 에너지가 있고 에너지에는 방향성이 있으며 그 방향성에 의해 특정한 조건에서 특정한 결과를 획득하게 된다.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을 토대로 추론하여 최후에 에너지의 방향성에 도달하게 되며 그것으로 인식은 완성된다.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방향성이 작동하여 사건의 성립>시스템의 작동>메커니즘의 활동>구조의 결정을 거쳐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아는 삼라만상이 모두 결정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잘린 한 장의 색종이라면 그 색종이를 자르는 가위의 날에 각도를 결정하는 구조가 있다. 그 가윗날과 손잡이의 연결에 메커니즘이 있다. 가위 손잡이에 에너지를 태우는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에 에너지를 태워 작동시키는 사람의 사건이 있다. 그 사람이 가위를 사용하게 한 에너지가 있다. 


    모든 것의 출발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형체가 없으며 수학적으로 작동한다. 근본은 확률이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고 확률적으로 방향성이 충돌하여 대칭을 만들며 닫힌계 안에서 두 개의 대칭이 토대를 공유하면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토대의 공유로 에너지 효율성을 성립시키면 효율성만큼 에너지의 잉여가 있다.


    남는 에너지에 의해 시스템은 계에 작용하는 외부 에너지를 처리하고 자기를 보존할 수 있다. 원래는 에너지인데 외력의 작용을 견뎌낸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존재라고 한다. 외력의 작용에 무너지지 않고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반응을 나타낸다. 여기서부터는 수학적 확률의 세계가 아닌 시공간적 사물의 세계다.


    그사이에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추상적 사건과 구체적 사물 사이에 그것이 있다. 이것의 작용과 이에 연동된 저것의 변화를 시간의 원인과 결과뿐 아니라 공간의 전체와 부분으로도 판단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인과법칙은 시간이 아닌 공간에도 작동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원인이 이것이면 결과는 저것이니 시간의 엮임이다. 전체가 이것이면 부분은 저것이니 공간의 엮임이다. 이것과 저것이 엮여 사건을 이루니 곧 구조다. 칼의 날처럼, 볼펜의 심처럼, 사람의 마음처럼 모든 결정하는 것에 구조가 있다. 숨은 원인을 드러난 결과로 밝혀내고 배후의 전체를 현장의 부분으로 끌어낸다. 


    우리는 사건을 모른다. 대신 사물을 안다. 사건은 전체를 구성하고 사물은 부분을 구성한다. 사건을 모르므로 시간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도 공간의 전체와 부분을 모른다. 그러므로 에너지의 방향성을 모른다. 사건은 언제나 이것과 저것이 엮여 있는 전체에서 작동하는데 부분과 부분을 떼어놓고 판단하니 오류다.


    알아야 할 사건의 방향성은 언제나 이것과 저것이 엮인 전체에서만 보인다. 엮임은 대칭이다. 세상은 전방위로 대칭되어 있다. 공간의 대칭뿐 아니라 시간의 호응도 있다. 박자를 강약약으로 쳐도 거기에 대칭이 있다. 대칭은 2지만 1로 행세한다. 1도 되고 2도 된다. 방향이 확산←→이면 2가 되고 수렴→←이면 1이다.


    여기서 수학이 물체로 바뀐다. 추상의 수학이 구상의 그림으로 바뀌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이 있다. 파동이 색깔로 바뀌는 지점이 있다. 무가 유로 바뀌고, 허가 실로 바뀌고, 공이 존재로 바뀌고, 사건이 사물로 바뀌고, 에너지가 물질로 바뀌고, 컴퓨터 프로그램이 모니터의 영상으로 바뀐다. 붙잡는 것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구조다. 척력의 확산←→과 인력의 수렴→←은 무엇이 다른가? 붙잡는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가 무엇이 거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기에 붙잡힌다는 뜻이다. 색깔은 눈을 붙잡고, 소리는 귀를 붙잡고, 냄새는 코를 붙잡고, 아픔은 살을 붙잡으니 붙잡힐 때 인간은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존재라고 말한다. 또 그것을 믿는다. 붙잡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바둑의 고수라면 정치의 논객이라면 아직 붙잡히지 않은 마음속의 다음 수와 그 다음다음 수와 그 다음다음다음수까지 헤아려야 한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귀로는 들리지도 않고 마음으로는 붙잡히지도 않는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 사랑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결정된 결과물을 본다. 어떤 무엇이 있다면 그 배후에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속사정들이 있다. 엮여 있다. 서로 연동되어 있다. 널리 연결되어 있다. 줄지어 있다. 에너지를 태우고 있다. 관성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인간을 압박하고 있다. 기세로 있고 유행으로 있고 센세이션으로 있다. 


    우리는 그냥 원인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배후의 원인과 드러난 결과를 연결하는 장치들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의 어머니는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우리가 아는 공간과 시간은 그 에너지의 방향성을 추적하는 작은 단서에 불과하다. 바둑의 고수가 단숨에 열 수 앞 스무 수 앞을 내다보듯이 머리에 지도를 그릴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3.28 (03:58:43)

"에너지의 방향성이 작동하여 사건의 성립>시스템의 작동>메커니즘의 활동>구조의 결정을 거쳐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아는 삼라만상이 모두 결정된다."

http://gujoron.com/xe/1074986

[레벨:2]말시인

2019.04.08 (23:47:10)

붙잡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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