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겨야 산다. 왕년에 필자가 군입대를 하면서 군생활의 3대정신을 정했다. 빠지기와 개기기 그리고 짱박히기가 그것이다. 빠지기는 군기가 빠져야 한다는 거다. 긴장하고 있으면 두통을 앓는다. 신병 때는 너무 긴장을 풀어도 곤란하지만 내가 지나치게 긴장했다는 생각이 들면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고참들이 신병을 갈구는 이유는 자기 스트레스를 떠넘길 의도다. 고참의 지시내용은 대략 무시해도 된다. 중요한 건 명령전달 체계다. 명령이 간부에서 하사들을 거쳐 고참에게서 신병으로 무리 없이 전달되어야 하며 그 라인은 유지되어야 하며 만약 라인이 중간에 끊어져서 남들은 다 아는 정보를 나만 모르면 망한다. 그러므로 시키면 우렁차게 대답하고 무리한 명령이다 싶으면 행하지 않으면 된다. 이게 안 되지 말입니다 하고 대들다가는 욕을 먹는다. 고참은 그게 되는지 관심 없다. 명령이 전달되었는지만 관심이 있다. 저걸 옮기라고 하면 옮기는 척하면 된다. 실제로 옮길 필요가 없다. 어차피 3일 안에 원위치시키라고 하니깐. 그런 식이다. 본질을 지키는 게 중요하며 사소한 것들은 대략 개겨버리도록 하자. 본질은 부대원의 결속이다. 작업의 완수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년에 또 할 건데. 신병은 빠져야 살고, 일병은 개겨야 살고, 고참은 짱박혀야 산다. 부사관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중요하다. 병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장난을 치든가 무언가 일을 저지르든가 어떻게든 부대에 사고는 나게 되어 있다. 내무반 청소나 연병장 풀 뽑기나 잡일을 시켜서 사고확률을 낮춰야 한다. 시간이 남아돌고 힘이 남아돌아서 부대에 사고가 나는 것이니 병사들의 시간을 빼앗고 힘을 빼놔야 한다. 부사관 눈에 보이면 쓸데없는 잡일을 시킬 것이 뻔하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말을 잘 듣더라는 거다. 교장선생이 운동장 조회를 소집하여 수백 명을 한 시간 동안 세워 놓는다. 신기한 것은 다들 서 있으라니까 전봇대라도 된 양 서 있는 거다. 왜 말뚝처럼 서 있지? 소심해서 나서지 못했지만 용감한 학생이 나서면 동조할 생각인데 아무도 나서지 않더라. 바보 같은 일이다. 하란다고 하냐? 스스로 알아서 교회에 가서 줄을 서는 사람도 있다. 군대는 얼빠진 김정은 독재자 때문에 줄을 서는 것이고 학교는 또라이 교장이 시켜서 줄을 서 있다지만 교회에는 또 왜 줄 서러 가냐고? 아주 줄 서는 게 습관이 되었다. 패기를 잃고 아주 순한 양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 한심한 일이다. 하여간 인간들 진짜 말 잘 듣는다. 개겨야 한다. 그때 그 시절 오후 6시에 국기하강식을 하면 전 국민이 얼빠진 멍청이가 되어 5분씩 서 있다. 이건 정말 코미디가 아닌가? 구경거리다. 외국인들 불러 이런 등신짓을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고 구경시켜야 한다. 놀라운 건 미국도 그렇다는 거다. 맹세를 두 번씩 하더라. 국기에 대한 맹세뿐 아니라 텍사스주에 대한 맹세까지 있더라. 아직도 그러고 사는지 모르지만 영화에 나온다. 어쨌든 우리처럼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께 경례라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 게 그나마 양반이다. 하란다고 하면 안 된다. 납득할만한 행동을 해야 한다. 남에게 넘어가지 말 것이며 나 자신에게도 복종하지 마라. 아프다고 아파하면 지는 거다. 슬프다고 슬퍼하면 지는 거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집단에 정보를 전달할 의도 때문이다. 집단에 전달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의 사정까지 전달하려는 게 문제다. 많은 사건에서 황당한 것은 가해자는 발 뻗고 자는데 피해자는 자책하면서 자신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거다. 잘못한 건 가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벌 받지? 왜 자신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지? 이상하다. 집단에 알려 위험을 경고하려는 무의식의 명령이다. 무의식의 명령에 잘도 복종하는 인간들이 문제다. 역시 개겨야 한다. 무의식은 언제라도 늑대가 나타났다 하고 집단에 위험을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이익 보는 것은 집단이다. 개인들은 집단을 위해 희생한다. 자청하여 희생양이 된다면 바보다. 물론 알릴 위험은 알려야 한다. 내부고발을 해야 한다. 청와대에 청원하면 된다. 트위터에 올리고 페북에 써라. 단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국가를 괴롭히고 사회를 괴롭혀야 한다. 미세먼지가 문제면 중국에 항의해야 한다. 요 며칠 미세먼지가 줄었다. 미국의 제재에 기업이 죽어 나가자 잠깐 규제를 풀었던 중국이 깜짝 놀라 단속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잘해야 한국이 산다. 잘못한 중국을 갈구지 않고 피해자인 한국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창문을 닫고 외출을 삼가면 자기를 처벌하는 것이다. 왜 가해자인 중국을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인 자기 자신을 처벌하지? 만약 당신의 마음이 괴롭거나 아프다면 문제의 발생을 집단에 알려서 정보를 전파하라는 무의식의 명령인 것이다. 집단에 알릴 정보는 알리되 자신에 대한 2차 가해는 필요 없다. 개겨야 한다. 국가에 개기고, 집단에 개기고, 나 자신에게도 개겨야 한다. 납득할 만한 일은 실천하고 납득되지 않으면 끝까지 개겨야 한다. 주식투자에 실패했다면 자책할 이유가 없다. 내 인생동안 내 호주머니를 통과하는 총액이 10억 원 정도라 치자. 몇천만 원을 날려 먹었다면 내 인생 총액의 몇 퍼센트 안에서 숫자가 움직인 것이다. 그냥 숫자가 움직인 거지 나와 상관없다. 단 그런 짓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옛날에는 그 사실을 기록할 방법이 없었다. 원시 부족민에게는 일기장도 없고 수첩도 없다. 자기감정에 새겨놓는 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 동굴 벽에 새겨놓고자 해도 언문이고 진서고 알파벳이고 간에 글자가 없으므로 자기 마음에 상처를 내서 새겨놓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강하게 자신을 질책하여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까먹지 않고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기장도 있고 수첩도 있고 컴퓨터도 있다. 파일을 만들고 매뉴얼을 정하고 기록하여 두었다가 두 번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문명시대에 원시 부족민의 방법은 이제 버리자. 자책하고 자신을 2차 가해하고 나를 괴롭히며 고통을 주는 방법은 그 어떤 기록수단도 없었던 원시 부족민의 대책인 것이다. 개겨야 산다. 자기감정에도 개겨야 한다. 슬퍼하지 말라. 지는 거다. 고통스러워 말라. 집단 무의식에 지고 원시 부족민의 생존본능에 지는 거다. 그것은 게임이며 그 상황을 이겨야 한다. 상황에 맞게 납득이 되는 합리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줄기차게 대응하면 된다. 대응하지 않으면 에너지에 휘말려서 죽는다. |
그런데 사람들은 또 말을 드럽게 안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을 들어야 할까요? 말까요?"
사실 보통사람들의 이런 식의 사고습관이 문제이긴 합니다.
전제없는 진술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거든요.
그럼 질문을 바꿔서, "우리는 언제 말을 듣고, 또 언제 듣지 말아야 할까요?"
이때 "언제"라는 판단의 기준은 내가 발담그고 있는 사건의 크기에 따라 바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겉보기 말고, 속보기도 말고, 본질인 에너지를 기준으로,
지금 이 순간 내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본능의 말, 무의식의 말, 분위기의 말, 기세의 말
삐끼의 말, 바람잡이의 말, 목사나 스님의 말, 점쟁이의 말,
음모론자의 말, 사기꾼의 말, 보이스피싱 범죄자의 말
형식적 권위를 가진 사람을 잘 듣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의 말은 절대로 안 듣지요.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건의 흐름 안에서
이미 에너지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 그 에너지에 복종하는 거지요.
자신이 독립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에너지의 주인이 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줄이 만들어져 있다면 남 뒤에 가서 줄 서는 것을 좋아하고
별도로 자기 줄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되도록 뇌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며
그게 바보들에게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원시인이라면 똑똑한 척 하며 뇌를 사용하다가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거지요.
인간은 사건 속에서 사건의 흐름에 지배되는 동물인데
자신이 어떤 사건의 배를 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남들이 장에 가니까 영문을 모르며 거름 지고 장에 가는 거지요.
"대응하지 않으면 에너지에 휘말려서 죽는다. 상황에 맞게 납득이 되는 합리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줄기차게 대응하면 된다."
- http://gujoron.com/xe/1074563
그 동안 나온 모든 접근 중 트라우마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치유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