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에는 전통적으로 완전성에 대한 사유가 없다. 크게 빈곤하다. 이상주의가 없다. 굳이 말하자면 노자가 슬쩍 언급하고 넘어간 정도다. 살짝 핥아보기는 했다. 맛만 본 거다. 깊이 발을 담그지는 않았다. 유교는 실사구시를 주장하는 현실주의 철학이다. 도교 역시 내 한 몸의 불로장수를 추구하는 현실주의 사상이다. 성리학에 와서 일부 형이상학적 진전이 있었으나 불교와 도교의 사유를 표절한 거다. 내세에 대한 사유가 없다. 귀, 신, 혼, 백 따위 어휘가 있으나 대개 산만하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죽고 난 다음의 일을 논해서 무엇하느냐는 식으로 냉소적이라면 곤란하다. 이죽거리지 말고 진지해지자.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인간이 죽음을 말한다면 사실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번듯하게 잘 살다가 돌연 엎어져 죽는다. 불완전하다. 갑자기 진행이 뚝 끊어지는 것이다. 인생은 미완성이다. 타는 불이 문득 꺼져 버린다.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말이다. 연주되던 음악이 갑자기 끊어진다. 추고 있던 춤이 갑자기 중단된다. 그렇다면 당황할밖에. 그래서 인간은 내세를 사유한다. 인생이 불완전하므로 완성하기 위해 내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서양사에는 기본적으로 완전성에 대한 사유가 풍부하다. 이상주의가 있다. healing, health, saint 등의 어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완전성 개념이 제사 때 바치는 제물의 선택에서 왔다는 점이다. 염소를 제물로 바친다. 미리 검사를 해야 한다. 몸에 상처가 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가는 천벌을 받는다. 델피의 신전에 바치는 제물도 비슷하리라. 완전한 것은 몸에 상처가 없는 것이며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다. 잉카의 전사들은 서로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경쟁했다. 축구시합을 해서 이기는 선수가 자기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쳤다. 완전성의 개념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들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나 결정론, 이를 발전시킨 기독교의 예정설도 완전성의 사유다. 세상이라는 건물을 건축하려면 벽돌부터 완전해야 한다. 탈레스의 물 일원론도 그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완전수나 황금비례를 통해 완전성에 도달하려 했다. 피타고라스가 화음을 발견한 것도 수의 비밀을 풀어서 완전성에 도달하면 신과 직통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제자와 무리는 점점 종교집단과 유사해졌다. 완전성에 대한 집착이 걸작인 밀로의 비너스상을 만들게 했다. 완전한 것을 찾아 감탄하고 예찬하려고 한 것이다. 아폴론이 완전하다. 비너스신상의 발등에 입을 맞추면 비너스신의 미가 내 몸으로 옮겨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다투어 신전에 돈을 바쳤다. 미남인 아폴론 신도 마찬가지다. 사람 중에는 모범생 헥토르가 완전하고 아킬레스는 불완전하다. 감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박카스 신처럼 격정적인 것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여겼다. 헥토르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높이 쳐주었다. 이는 잦은 전쟁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남성우월주의 태도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여자는 변덕스럽다는 식의 태도이다. 고전주의는 점잖은 것이며 완전성에 가깝고 낭만주의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식이다. 현대인은 고전주의에서 완고한 가부장을 떠올릴 게다. 어쨌든 아폴론은 젊은 꽃미남에 엄친아다. 고집불통 할아버지 제우스와는 느낌이 다르다. 유토피아 사상도 완전성의 개념이라 하겠다. 동양에도 무릉도원이 있지만 사유의 양과 질 면에서 게임이 안 된다. 풍부하지 않다. 콘텐츠가 부실하다. 업데이트가 없다. 완전성의 최종결론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와 계약하고 돌아다니며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완전한 경지를 찾았다.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 하고 소리 지른 순간 지옥행이 결정되었으나 신이 개입하여 구원해 주었다. 인간의 계약문서 따위가 중요하랴. 완전으로 보면 신의 계획이 중요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끊임없이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열정 그 자체는 완전하다는 것이 괴테의 결론이다. 서양이 수학을 발달시킨 것은 완전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동양인의 실사구시 관점으로 본다면 수학은 천하에 쓸모없는 공리공론이다. 계산을 해서 문제를 풀어봤자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수학문제를 풀다가 죽었다. 그를 살해한 무사는 그의 허세를 비웃었다. 수학에서 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수학이 네 목숨을 지켜주나? 이 마지막 문제 하나만 풀게 잠시만 기다려다오. 하고 부탁했지만 칼날은 그의 목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문제는 풀렸고 그래서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 무사는 차별주의자 지식인이 자신의 우월주의를 증명하기 위해 헛되이 수학문제 따위나 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아르키메데스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은 2500년 후의 일이었다. 이천오백 년간 보상받지 못했지만 완전성은 그곳에 있다. 완전성에 도전한다면 이천오백 년짜리 사업을 벌여볼 일이다. 빛나는 정신이라면 말이다. 동양인은 완전성을 사유하지 않았다. 현실주의였기 때문이다. 수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공리공론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천오백 년 후를 대비해서 수학공식을 만들고 있겠는가? 유클리드의 원론이 동양에는 없다. 완전성을 탐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유의 출발점을 찾아보지 않는다. 애초에 이데아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완전성은 황금비례처럼 규격화된다. 그림이라도 소실점 이론이 적용되어 꽉 조여진 옷처럼 갑갑하다. 소실점의 발견도 완전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산물이겠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완전성을 느끼게 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구의 건축은 인간을 제압하려 한다. 일본정원이 답답한 것이나 베르사이유의 정원이 답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프랑스인은 가로수도 사각형으로 네모지게 깎는다. 답답한 자들이라 하겠다. 에너지의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여유가 없다. 고전주의는 있고 낭만주의는 없다. 동양의 회화는 출발부터 인상주의였다. 동양인은 자연스러움에서 완전성을 찾았다. 노자의 도道 개념이 완전성에 대한 제안이다. 서양의 완전성이 원자론, 결정론, 소실점, 황금비례와 같이 규격화되고 딱딱한 것에 있다면 동양의 완전성은 석가의 중도, 공자의 중용처럼 에너지의 밸런스가 갖추어진 것에 있다.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인 것에 완전성이 있다. 도道는 연결한다. 연결하여 부단히 움직여 간다. 진정한 완전성은 어떤 것에 있지 않고 둘의 사이에 연결로 있다. 동양의 완전성이 진짜다. 그러나 동양은 기본적으로 완전성에 대한 사유가 빈곤하다. 별로 생각을 안 해본 것이다. 노자의 도라는 것도 그냥 화두를 툭 던져놓을 뿐 더 이상 사유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2천 년 동안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노자가 불로장수에나 집착하는 실용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합리주의가 아니었다. 공자는 합리주의자였지만 형이상학을 하지 않았다. 주역이 에너지의 밸런스를 강조하는 점에서 각별하지만 그걸로 점을 쳤을 뿐이다. 주역은 거대한 아이디어의 자궁이다. 그러나 원리를 깊이 탐구하지 않고 당장 써먹으려고 점을 친 것이다. 그리스의 많은 도시국가와 달리 중원은 뻥 뚫려서 다양한 사유의 생장점을 키우지 못했다. 그들은 점점 획일화되어 갔다. 진시황이 숨통을 끊어버렸다. 2천 년간 중국은 멈추었다. 21세기다. 서양의 고전주의는 끝장이 났다. 그들의 완전성은 단세포적이다. 죽은 사물의 완전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의 완전성을 찾아야 한다. 고매한 이상, 건강한 신체, 매력적인 몸매, 아킬레스의 용맹, 헥토르의 정신, 아폴론의 고결함, 비너스의 매력, 이런 것에서 완전성을 찾는다면 유치하다. 산만하고 파편화되어 있다. 신은 그곳에 없다. 동양은 완전성에 대한 사유가 없거나 혹은 관념적으로 흐르는게 문제고 서양은 완전성을 딱딱한 것에서 찾는게 문제다. 이상주의가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이상주의 부재로 자기네들끼리 치고받다가 망하고 사회주의는 이상주의가 편협해서 구석으로 몰려서 말라 죽는다. 마르크스의 이상은 유치하다. 천하에 대한 감각이 없다. 대표성에 대한 개념이 없다. 잘 먹고 잘살면 장땡이라는 식은 유치한 거다. 평등, 평화, 사랑 이런 거 유치하다. 수준이하다. 충, 효, 애국, 우정 따위 유치한 단어를 거론하면 안 된다. 완전은 시작에 있지 종결에 없다. 행복이든 평화든 사랑이든 쾌락이든 어떤 결과로서의 완전은 불성립이다. 진정한 완전성은 사건을 연결시켜 부단히 다음 스테이지로 전진하는 것이다. 천하에 큰불을 지르는 것이다. 위대한 만남을 연출하는 데 있다. 하나가 되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완전은 원인에 있고 시작에 있고 머리에 있고 문제에 있고 입력에 있다. 결과, 종결, 꼬리, 해답, 출력에 없다. 인간은 완전성에 도달하려 하지만 어떤 것이든 도달하면 완전하지 않다. 음악을 잘 연주했다 하더라도 완전하지 않다. 음악은 춤을 불러내는 도구인 것이다. 청중의 호응을 끌어내는 도구다. 청중의 흥을 끌어내는 것으로 역할은 끝난다. 다른 것을 격발하여 움직이게 하는게 완전하다. 연결하여 다음 단계의 사건을 끌어내는 것이 완전하다. 음식은 완전할 수 없다. 음식을 고리로 그대를 초대하면 완전하다. 진짜는 초대하고 연결하고 주최하고 주도할 뿐 결말은 짓지 않는다. 열매를 수확하고 소득을 챙기겠다는 태도라면 곤란하다. 완전은 내가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천하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가담하는 것이다. 씨앗은 심어질 때 완전하고 초딩은 입학할 때 완전하다. 졸업할 때는 불완전하다. 자본은 투자될 때 완전하고 생명은 잉태될 때 완전하다. 동양적 사유와 서구적 사유를 동시에 갖춘 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98퍼센트의 완전성은 서양사에 있고 부족한 마지막 2퍼센트를 채워 완성시키는 것은 동양사에 있다. 서양의 사유는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고 동양의 사유는 순풍에 돛 달아 그 배를 항해하게 한다. 배의 운전기술이 금상첨화가 된다. 화룡점정이 된다. |
"진정한 완전성은 사건을 연결시켜 부단히 다음 스테이지로 전진하는 것이다."
신의 개념과 '명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 사고방식과
'우리'라는 개념과 '동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의 사고방식,
왜 이런 차이가 생겼나 궁금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래 링크 책을 읽어보면 답이 나올까 싶던 중이었는데,
http://www.yes24.com/Product/Goods/1379588?scode=032&OzSrank=3
안 읽어봐도 될 것 같습니당.
동렬님 이 글 읽고 궁금증이 해소 되었어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