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폭망인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자가 있다면 간 큰 자라 하겠다. 흔히 그런 짓을 한다. 이명박근혜다. 한나라당이 급하다고 이명박근혜 카드를 쓰면 정권의 수명은 잠시 연장할 수 있겠으나 영구적으로 불리한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이후 암담해진다. 젊은 인재가 한나라당으로 진입할 기회를 봉쇄하는 결과로 된다. 액면으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상하원을 나눠가져서 서로 본전을 챙긴 셈이다. 그러나 인종주의라는 극약처방을 남발한 결과 공화당의 잔여수명이 길지 않게 되었다. 특히 젊은 여성을 적으로 돌린 것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민주당이 이익보는 구조가 세팅되었다는 의미다. 젊은 여성은 앞으로도 계속 태어나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함부로 걸면 위험하다. 젊은 여성이 공화와 민주로 반반씩 나눠지는게 아니고 한쪽으로 쏠려버리고 한 번 쏠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역으로 갈리면 항상 중립지대가 있는데 성별로 갈리면 중간이 없다. 이번에 상하원에서 백 명 이상의 여성 당선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의회는 대개 남성이 과점하고 있다. 왜일까? 소수파의 적은 소수파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적은 여성'인 현상이 나타난다. 여성 유권자가 소수파인 여성 후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현상이 어떤 임계를 지나면 극적으로 변화된다. 노무현 시절에 네티즌 몫 전국구를 배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실패했다. 네티즌은 네티즌을 싫어한다. 네티즌이 네티즌을 믿을 수 있는가? 불가다. 박근혜 손수조, 이준석을 실험했으나 결과는 꽝이었다. 손수조, 이준석은 젊은이들을 새누리당으로부터 등 돌리게 했다. 손수조, 이준석으로 바람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 바람에 모여온 유권자는 노인이었다. 젊은이의 적은 젊은이다. 이것이 대표성의 딜렘마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대표성 말이다. 민주노총에서 후보를 내면 노동자들이 좋아할까? 유권자들이 민주노총의 대표성을 인정할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반대효과 난다.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다. 왜 이렇게 될까? 젊은이는 평등하다. 네티즌은 평등하다. 여성은 평등하다. 노동자는 평등하다. 손수조, 이준석의 등장은 평등한 젊은이들 사이에 계급을 만든 것이다. 여성 정치는 평등한 여성들 사이에 계급을 만든다. 당연히 저항이 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의 적은 아웃사이더다. 광주학살 전두환이 면피목적으로 호남출신 정치인 장세동과 이정현을 키워주려고 한다고 치자. 둘이 단결할까? 절대 그럴 리 없다. 호남출신인 김대중이 영남출신인 이기택과 노무현을 키워줄 수 있을까? 절대 안 된다. 키운다 해도 단 한 사람만 키울 수 있다. 희소가치 때문이다. 이건 프레임이다. 남성의원들의 독무대에 여성의원은 구색맞추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얼굴로 뽑는다. 박근혜 정권에 이정현은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 절대로 클 수가 없다. 원리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도 클 수 없다. 실제로 후단협은 노무현 죽이기에 골몰했다. 노무현? 걔는 호남정권이 구색맞추기로 데려온 장식품이잖아? 이렇게 되는 거다. 소수파의 비극이 일어난다. 영남 유권자는 노무현을 찍지 않고 네티즌은 네티즌 몫 전국구를 인정하지 않고 젊은이의 적은 젊은이가 된다. 여성 유권자는 여성 후보를 찍지 않고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를 미워하며 약자는 약자를 싫어하고 흑인은 흑인을 경멸하고 비극은 계속될 뿐이며 상황은 진전되지 않는 것이다. 왜 한국 국회는 여성의원이 크지 못할까? 문재인이 여성몫 30퍼센트를 배당했지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그중에 일 잘하는 사람은 없다. 추미애가 밥값을 했을 뿐 대부분 체면치레도 못했다. 왜 그럴까? 소수파의 적은 소수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역으로 소수파가 결집되면 강력해진다는 의미다. 변화는 갑자기 일어난다. 비주류가 주류로 바뀌는 순간에 여성의원이 여성의원끼리 뭉쳐서 세력화된다. 지금 국회에 여성의원끼리 뭉친 경우가 있나? 없다. 여성의원은 서로 견제하고 거리를 두고 언제나 반목한다. 왜?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숫자가 적으면 백퍼센트 이렇게 된다. 같은 여성의원이 양향자를 크지 못하도록 밟는 것을 우리는 봤다. 전라도 정권에 경상도 인물 두 명이 등장하면 백퍼센트 서로 발목 잡는다. 경상도 정권에 전라도 인물 두 명이 들어가도 그렇다. 이는 필연적이다. 노론정권에서 남인들이 단결 못한다. 구조적으로 안 되는 거다. 소수파의 비극이다. 다수파 경상도는 쉽게 뭉치는데 소수파 충청도와 전라도는 반목한다. 소수파는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충청도와 전라도가 50 대 50으로 맞추려고 한다. 그런데 실패한다. 남의 떡이 커보이기 때문에 맞추지를 못한다. 다수파는 쪽수가 많으므로 포기한다.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경남과 경북 사이에 50 대 50으로 맞추자거나 이런거 없다. 그러므로 팀이 되려면 절대로 숫자가 많아야 한다. 어떻게든 여성의원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숫자가 어느 한계를 넘으면 여성의원이 여성의원을 밀어주게 된다. 관점이 180도로 바뀌게 된다. 동서고금 어느 분야든 소수파는 서로 발목을 잡고 반목한다. 오직 지방출신만 발목잡지 않는다. 그래서 정권은 항상 지방에서 나온다. 서울 대통령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지방은 제주, 호남, 영남, 강원, 충청, 경기라 다수고 서울은 하나뿐이라서 이번에는 서울이 소수파다. 서울출신 정치인들이 서로 발목을 잡는다. 뭉치려면 축과 날개가 세팅되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숫자가 받쳐줘야 그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를 해도 잘게 쪼개서 지방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필자가 도를 폐지하고 전국을 인구 50만 단위 100개 도시로 재편성하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도는 사이즈가 커서 숫자가 적으니 의사결정에 방해된다. 근대 일본이 흥한 이유는 봉건 다이묘의 영지가 작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도 마찬가지로 도시가 작아서 흥했다. 중국은 지방이 국가규모다. 망하는 구조다. 대개 구조의 문제다. 구조는 어느 임계에 도달하면 저울의 추가 180도로 역전된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고대 그리스는 그야말로 분열의 대명사였다. 그들은 언제나 분열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합친다. 그 시점에 알렉산더가 등장한다. 몽골은 언제나 분열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징기스칸이 등장한다. 역사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번에 트럼프가 큰 삽질 했다. 소수파의 딜레마에 빠져 분열을 거듭하던 여성과 흑인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를 단결시켰다. |
"이번에 트럼프가 큰 삽질 했다. 소수파의 딜레마에 빠져 분열을 거듭하던 여성과 흑인과 히스패닉과 아시아계를 단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