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확률하면 무작위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근데 조금 공부하면 확률은 완전한 무작위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큰수의법칙이나 정규분포를 보면 이게 왜 무작위라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이거 작위잖아. 범위가 있고 예측이 되잖아? 근데 어딘가 떨떠름하다. 작위도 무작위도 아닌게 이상하다. 이쯤 되면 눈치를 까야 한다. 여기는 구조론연구소니깐. 사건 말이다.
누구나 30살 정도가 넘어가면 인간 관계에서는 알아도 모른척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부사이라도 한중관계라도 친구사이라도 모든 걸 들추고 넘어가겠다는 놈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굥 말이다. 굳이 대미대중관계를 들추어 일을 복잡하게 만드신다. 이렇게 사회생활을 못 해서야. 군대를 보내서 엉덩이로 밤송이라도 까야 이해를 할 수 있는 문제다. 관계에서 서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이유가 있다. 고슴도치처럼 서로 찌르니깐?
이 비유가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닌데, 비유는 비유일뿐,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라. 카드 게임을 하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내가 슬쩍 상대방의 카드를 봤다면? 그 순간 새로운 게임이 펼쳐진다. 내가 당신이 가진 카드를 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아챘으므로 이제부터 새로운 불확정성이 만들어진다. 고니한테 속은 아귀 말이다. 여태까지의 게임 진행은 무효가 되고 새로운 게임이 펼쳐진다. 오함마 들고와라. 그래서 사람들은 선을 넘지 않는다. 피곤해지니깐.
구조론의 사건은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공존한다. 사건이 완전히 펼쳐진다면야 모두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현재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나를 포함하여 진행하고 있는 사건에 올라타있는 상황이다. 설령 종결되었더라도 상대의 손에 든 카드를 까볼 수는 없다. 그거 까면 살인 나니깐. 우리는 선을 지켜야 한다. 손을 뻗어 상대에 닿는 순간 새로운 거리가 만들어진다는 게 관측의 한계다. 관측 또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관측은 객관적이지 않다.
사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지 확률의 원리를 보았던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뜬금없이 통계 어쩌구 하는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어라? 확률로 보니깐 맞네? 근데 이거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만들어낸 표현이 불확정성 원리. 이정도면 나름 성의는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건이라는 표현은 끝내 쓰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써줘야 한다. 허준이가 조합론 난제를 대수기하학 문제로 해석해서 필즈상을 받는 판이잖아.
사건은 간헐적이다. 원인이 지나가야 결과가 드러난다. 확정과 불확정은 동시적이지 않다. 버스가 지나가야 새로운 버스가 온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은 동시에 하지 말라는 게 화장실 법칙이다. 어쨌건 우리는 상대의 손에 남은 패는 끝내 알 수가 없다. 단지 승패의 결과만 확인할 뿐이다. 실망하지 말라. 그래도 결과라는 범위는 알았잖아. 정규분포 말이다.
정규분포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시그모이드 곡선 등장하신다. 이쯤되면 에너지 총량 및 엔트로피와 연결된다. 시그모이드 곡선의 범위는 0 ~ 1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생장곡선이라고 말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주시는 바로 그 곡선. 그래서 확률이 뭐냐고? 알 수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공존하는 것이 확률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건이다. 주사위를 던져보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닥면의 굴곡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사위의 분포는 반드시 정규분포를 띤다.
상대의 마음을 모두 알려고 하지 말라. 적어도 상대는 지금 당신과 얼굴은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그 정도면 알 거 알고 모를 거 모르는 적절한 상황인 거다. 상대를 들추면 당신은 제논의 역설로 들어선다. 영원히 끝이 안 나는 반사놀이가 펼쳐진다. 하나의 사건이 끝나고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는 말이다. 끝없는 반사는 무한 수렴한다. 무한 반사를 하나의 수로 묶으면 그게 파이요, 미적분이다.
들추지 말라. 왜곡된다. 왜곡된다는 말은 사실 새로운 사건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관측 또한 사건이라니깐. 그러나 무한 반사가 피곤해도 우리는 또한 들추어야 한다. 그래야 역사는 진행하니깐. 우주가 그렇게 생겨먹었거등. 정반합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