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125 vote 0 2024.04.23 (15:04:28)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식을 전수해 준다면 그들은 소통의 장벽을 의식하고 신중하게 말할 것이다. 역사 속의 철인들 중에는 공자가 홀로 우뚝하고 나머지는 모두 개소리를 했다. 맞는 말도 더러 섞여 있지만 대개 준엄하지 않았다. 옥을 돌 속에 숨기고 있다.


    외계인이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면 그들이 지구인을 얕본 것이다. 공자는 지구인을 얕보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얕보지도 않았다. 어리광은 자신을 얕보는 행동이다. 어리광은 소통의 장벽 문제를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행동이다. 정면돌파가 아니면 안 된다.


    인류 최고의 지식은 언어다. 언어의 장벽을 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언어는 공동작품이다. 언어의 결함과 언어의 주인인 인간의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석가의 시대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석가는 제대로 된 소통을 포기했다. 소통의 장벽을 우회하려고 했다. 승려가 출가한다거나 한쪽 어깨를 드러낸다거나 하는 것은 지식의 본질과 아무 상관이 없다. 소통의 장벽 앞에서 당황하여 상징과 비유와 꼼수에 숨는다.


    노자는 책을 쓴 적이 없다. 도덕경은 다른 사람이 대신 기록한 것이다. 노자가 암시와 비유에 의존한 것은 석가와 마찬가지로 지구인을 얕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통의 문제를 제기할 뿐 답을 말하지 않았다. 플라톤이 투덜댄 것은 자신을 얕보는 행동이다.


    ###


    공자의 말 중에 허튼소리는 없지만 온고이지신과 술이부작은 해석하기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 온고이지신은 확실한 것에 기초하여 불확실한 것을 규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연역법이다. 주장은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근거는 옛것일 수밖에 없다.


    술이부작은 귀납법의 폐해를 지적한다. 지식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주체인 자신의 입장을 배제하고 객체 내부의 자체 운동 메커니즘을 따라야 한다. 객체 안에서 동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객체 안에서 옛것과 새것의 연결을 찾아내야 한다.


    왜 공자가 홀로 바른말을 했을까? 그의 직업이 교사였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지구인 앞에서 허풍을 칠 수는 없다. 소통의 장벽이 있다. 준엄한 자세가 아니면 안 된다. 공자의 자세는 한 마디로 연역이다. 연역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다. 차원의 장벽이 있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안다고 했다. 옛것 하나와 새것 열은 차원이 다르다. 선 하나를 잘라 여러 점을 얻고 면 하나를 잘라 여러 선을 얻는다. 그것은 복제되는 것이므로 준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제의 원본을 다치면 안 되는 것이다.


    공자는 알고 있었다. 소통의 장벽이 차원의 벽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권력문제라는 사실을, 동력문제라는 사실을. 공유문제라는 사실을, 공사구분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준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소통의 장벽을 넘는 데서 진정한 지식은 시작된다.


   ###


    공자는 바라보는 지점이 달랐다. 시선의 각도가 달랐다. 높은 차원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정상에서 보는 관점이다. 계는 체를 보고, 체는 각을 보고, 각은 선을 보고, 선은 점을 본다. 높은 차원에 에너지가 걸려 있다. 주는 자와 받는 자는 같은 차원에 존재할 수 없다.


    병사는 암호를 정해야 하고, 컴퓨터는 프로토콜을 정해야 하고, 상인은 가격을 정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동력의 연결에 근거해야 한다. 집단의 의사결정은 권력에 근거해야 한다. 흔히 선악을 근거로 삼지만 그것은 결과 측이며 원본이 아니라 복제본이므로 실패한다.


    바르게 해석된 온고이지신과 술이부작이야말로 지식의 출발점이 된다. 온고이지신은 연역을 긍정하고 술이부작은 귀납을 부정한다. 전제 다음에 진술하고, 근거 다음에 추론하고, 옛것 다음에 새것 하고, 에너지 다음 결정한다. 그 외에 모든 논의는 출발점이 틀렸다.


    소통의 장벽이 있다. 차가 없는데 운전을 하라고 한다. 내리지 않았는데 타라고 한다. 주어가 없는데 말을 알아들으라고 한다. 우주의 첫 번째 지식은 머리가 꼬리에 앞선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변화에 앞선다. 본이 말에 앞선다. 권력이 선택에 앞선다. 규칙이 먼저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812 헤어질 결심 - 한국 지식인의 저급함 김동렬 2024-05-01 3912
6811 문화혁명의 진실 김동렬 2024-04-30 3987
6810 진리의 문 김동렬 2024-04-29 2726
6809 박찬욱과 헤어지기 김동렬 2024-04-29 3579
6808 대구와 광주의 차이 김동렬 2024-04-29 2695
6807 공자 외에 사람이 없다 김동렬 2024-04-27 3858
6806 방민전쟁. 선수들끼리 왜 이러셔. 1 김동렬 2024-04-26 4735
6805 방시혁과 민희진 3 김동렬 2024-04-25 5004
6804 부끄러운줄 모르는 한겨레 표절칼럼 김동렬 2024-04-25 2700
6803 빡대가리 동훈준석 멸망공식 김동렬 2024-04-24 3338
6802 방시혁 하이브 뉴진스 1 김동렬 2024-04-24 3402
» 공자 김동렬 2024-04-23 3125
6800 빡대가리 한동훈 1 김동렬 2024-04-23 3616
6799 제갈량이 유비를 따라간 이유 김동렬 2024-04-22 3801
6798 집단사고와 집단지성 1 김동렬 2024-04-22 2596
6797 한깐족과 황깐족 김동렬 2024-04-22 2737
6796 이정후와 야마모토 김동렬 2024-04-21 2674
6795 인간에게 고함 김동렬 2024-04-20 2726
6794 뇌는 왜 부정적 생각을 할까? 김동렬 2024-04-18 3373
6793 삼체와 문혁 image 김동렬 2024-04-18 3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