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는 강력한 이론이다. 모든 불필요한 논란을 한 방에 잠재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엔트로피를 충분히 써먹지 못한다. 사건의 다음 단계를 예측하는 게 엔트로피의 진정한 의미다. 그러나 엔트로피를 써서 사건의 다음 단계를 예측했다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바둑 고수라면 상대의 다음 수가 어디일지 뻔히 알고 있다. 상대는 가장 효율적인 곳에 둔다. 바둑판이 메워질수록 효율적인 자리는 점점 감소한다. 무질서도 증가다. 바둑 고수는 열역학을 배우지 않고도 엔트로피를 이용하고 있다. 상대의 다음 수를 예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엔트로피를 써먹지 못할까? '사건' 개념을 모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닫힌계에서 작동하고 닫힌계는 사건에서 성립한다. 바둑판은 닫혀 있다. 바둑판 밖에 돌을 놓고 상대방 돌을 따먹는 기술은 없다. 사건은 에너지의 1회 입력에 의한 전개로 닫혀 있다. 추가로 에너지가 들어오는 구멍은 없다. 세상이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엔트로피를 써먹지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다음 수를 예측하지 못한다. 바둑 고수들은 넉넉히 써먹고 있는 기술을 당신만 써먹지 못한다면 억울하지도 않은가? “영구엔진을 연구하는 자들이여! 얼마나 많이 헛된 키메라들을 쫓아왔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조차 조악한 영구기관 스케치를 남겼을 정도다. 안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한 방에 정리해줘야 한다. 바둑이 진행될수록 칸이 점점 메워진다. 마이너스 방향이다. 그렇다면 예측이 가능하다. 빈칸이 갑자기 생겨날 리가 없으므로 상대는 남아있는 칸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곳에 둔다. 엔트로피는 닫힌계에서 작동한다. 닫힌계를 추출하지 못하므로 써먹지 못한다. 닫힌계는 사건 속에 있다. 사건은 1회의 에너지 입력에 따른 전개다. 1회의 입력인 점이 각별하다. 우리가 엔트로피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무수히 반엔트로피적 상황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100을 공부했다면 성적은 최대 99까지 나와야 엔트로피와 맞다. 그런데 10을 공부하고도 100의 성적표를 받는 일은 현실에 얼마든지 있다. 몰래 컨닝을 하기 때문이다. 컨닝을 하면 에너지 입력이 2회다. 이런 경우는 배제해야 한다. 한 턴에 바둑알 두 개를 놓는 사람이 있다. 이런 짓은 반칙이므로 불계패를 선언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다들 반칙을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칙을 못 한다. 반칙으로 큰 안철수가 TV토론을 버벅거린다. 그런 지점이 있다. 딱 걸리는 지점이다. 사건 안에는 5회에 걸쳐 그런 식으로 딱 걸리는 지점이 있다. 병목구간이 있다. 전 국민이 TV로 감시하는 순간이 있다. 반칙을 못 한다. 그래도 박근혜는 최순실이 시켜준 몰래학습에 의지하여 반칙으로 당선되지만 촛불을 넘지 못했다. 나무는 자란다. 회사는 발전한다. 경제는 성장한다. 인구는 증가한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반엔트로피적 상황이다. 이런 현실의 반엔트로피적 경험 때문에 어쩌면 무한동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건 안에서 에너지는 효율을 따른다. 효율은 최대 100을 넘을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최진실이 지방촬영을 갔는데 야외촬영이라 변변한 화장실이 없었다. 20일 동안 식사를 줄이고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아랫배가 불편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연기는 잘 나왔다. 숲에서 고생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딜레마다. 20일간 화장실을 가지 않는 것을 보니 최진실은 원래 화장실을 안 가는 사람인가 보다. 소변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는가 보다. 아니다. 20일간 안 갔으니 이제 갈 때가 되었다. 그동안 변비를 참았던 거다. 어느 쪽이 맞을까? 여기서 고수와 하수가 갈린다. 해방 이후 30년간 학생들이 데모해서 뭔가 되는 꼴을 못 보았다. 그러므로 안 될 것이다. 아니다. 30년간 안 되었으니 이제는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때 엔트로피가 먹힌다. 어느 쪽이든 에너지가 바닥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 들어간 것은 나와야 한다. 독재는 막을 내려야 한다. 엔트로피를 알면 에너지의 결을 알 수 있다. 에너지가 치고 나가는 방향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미래의 예견에 써먹을 수 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 수 있다. 사건의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을 그으면 해답이 보인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이긴다. 손자병법을 배우지 못한 나폴레옹은 언제나 정공법으로 나왔다. 나폴레옹을 이기는 것은 간단하다. 나폴레옹의 방법을 그대로 되받으면 된다. 그런데 왜 못할까? 나폴레옹은 행군속도가 두 배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군도 두 배로 행군하면 된다. 그런데 왜 못하지? 신속하게 행군하라고 명령했더니 병사들이 신속하게 도주한다. 실패다. 프랑스군은 왜 도망가지 않지? 이탈리아 출정을 앞두고 나폴레옹은 10만 명의 병사를 받았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3만5천 명만 있었다. 혁명 이후로 장교들이 왕당파로 도망쳤다. 장교도 없는 오합지졸에다가 군복도 없고 군화도 없는 거지군대가 되어 있었다. 혁명 이후 거듭된 혼란으로 모든 게 개판이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엘리트가 죄다 외국으로 도망쳤으니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있을 리 없다. 그런 거지군대로도 보름 만에 밀라노에 입성했다. 게다가 25세 남짓 되는 젊은 장군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병사들은 나폴레옹을 꼬마 상사라고 불렀다. 상사는 대포심지에 불붙이는 역할인데 장군인 나폴레옹이 직접 대포를 쐈기 때문이다. 저격수가 대포 심지에 불붙이는 상사만 노리므로 대포를 쏘는 상사가 다 죽었다. 장군인 나폴레옹이 저격될 위험을 감수하고 대포를 쐈다. 나폴레옹이 이긴 비결은 하나다. 언변이 뛰어난 나폴레옹이 멋진 연설로 병사들을 사건 속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프랑스군이 행군속도를 두 배로 높일 수 있었던 이유는 행군 중에 도주하는 탈영병이 없기 때문이다. 왜 프랑스군은 도주하지 않나? 그 10만 중에 남은 3만5천은 도망쳐봤자 먹을 게 없어서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남은 군사였는데도 말이다. 나폴레옹은 원래 농민반란이 일어난 방데지역에 보내졌으나 악착같이 출전을 거부하고 버텼다. 지도부의 눈 밖에 나서 처형될 뻔했다. 줄을 잘 타서 운 좋게 그가 항상 원해왔던 이탈리아 정벌을 맡게 된 것이다. 방데지역에 가봤자 농민학살을 해야 하는데 그건 좋을 게 없다. 이탈리아에 가면? 황금이 있다. 나폴레옹은 원래부터 이탈리아가 혁명정부의 돈줄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계획을 금방 납득했다. 맞아. 군복과 군화를 받으려면 밀라노를 먹어야 해. 밀라노에는 황금이 태산같이 있어. 부자동네잖아. 프랑스군은 당연히 도망치지 않았다. 왜? 눈앞에 황금이 있으니깐. 혁명정부는 지방의 반란부터 진압해야 한다고 여겼던 거다. 나폴레옹은 황금부터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곡을 찌른 것이다. 이탈리아를 치자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당시 프랑스는 금이 없어서 종이 지폐를 찍어내고 있었는데 아무도 종이를 가지려 하지 않았다. 정부는 거의 파산상태였다. 나폴레옹이 제때 황금을 털어왔다. 사건 속에 가두어야 한다. 계획 속에 가두어야 한다. 사건의 다음 단계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뻔하다. 사건은 에너지의 효율성을 따라간다. 에너지는 황금이다. 황금은 밀라노에 있다. 나폴레옹은 밀라노 일대를 털어 황금을 파리로 보냈다. 프랑스인은 나폴레옹의 황금에 열광했다. 그 금으로 나폴레옹 금화를 찍었다. 나폴레옹은 계획이 있었고 병사들을 계획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사건 속에 가두면 기가 승을 치고 승이 전을 치고 전이 결을 쳐서 예정된 코스로 간다. 그 기세에 가둔다. 누구도 궤도에서 이탈할 수 없다. 에너지 흐름에 떠밀려 간다. 에너지 효율성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다. 우리는 바둑고수가 상대의 다음 수를 예측하듯이 사건을 손바닥처럼 내려다보고 다음 전개를 예견할 수 있다. 반기문과 안철수의 몰락을 점칠 수 있다. |
"누구도 궤도에서 이탈할 수 없다. 에너지 흐름에 떠밀려 간다. 에너지 효율성의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다."
'엔트로피 교과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