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죽지 않는 이유
언론들은 한나라당의 보선전패 때문에 이명박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보도하지만 거짓이다. 진실은 따로 있다. 이명박 정권의 ’노무현 대통령 죽이기’ 때문에 이명박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다.
보선전패 역시 ‘노무현 죽이기’ 탓이다. 왜인가? 노무현의 침묵은 국민과 직거래, 직접 소통하는 정치의 좌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무현의 입을 막았지만 실제로 입이 틀어막힌 쪽은 국민이다.
답답해진건 국민이다. 피해본 쪽은 국민이다. 노무현의 침묵으로 인해 국민은 정치인과 직접 소통할 수단을 잃었다. 이명박이 왜 매주 라디오 연설을 하나? 다 노무현의 직접 소통을 흉내낸 것이다.
그들도 정답은 알고 있다. 알고도 해내지 못할 뿐. 국민이 원하는건 그거다. 정치자영업자, 정치 중간상인 빼고 국민과 직거래하자는 거다. 왜 우리가 다른 나라와 달리 내각제를 하지 않고 대통령제를 하는가?
국민은 ‘정치 직거래’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이 살아있는 한 노무현은 죽지 않는다. 시장원리는 살아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살아있다. 국민의 직거래 수요는 있고 정치업자의 공급은 없다.
이명박은 시장을 통제하고 시장질서를 왜곡하지만 실패다. 그들이 노상 강조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이번 보궐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시장원리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에도 작동한다.
아는 척 하는 먹물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노무현 끝났다 노빠들 해산하라!' 그러나 착각하고 있는건 그들이다. 설사 노무현의 정치가 끝났다 해도 노무현이 씨앗을 뿌린 ‘인터넷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집착한다. 어리석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건 따로 있다. 본질을 말하자. 노무현의 강직하고 청렴한 이미지는 우리가 중도적인 유권자를 설득하는 수단일 뿐이다.
이미지에 속지 말라. 우리는 노무현이 시범 보인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원했을 뿐, 노무현이 씨앗 뿌린 인터넷 정치를 원했을 뿐이다. 이러한 시장원리가 살아있는 한 노무현은 결코 죽지 않는다.
노무현을 죽이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이다. 노무현이 한 것을 그들이 하면 된다. 노무현이 했듯이 정치중개상 빼고 화끈하게 ‘국민과 직거래’ 하면 된다. 노무현이 했듯이 인터넷 정치 하면 된다.
그런데 왜 하지 않지? 이명박이 노무현의 소통을 흉내내어 라디오 연설을 하는데도 왜 소통되지 않지? 마이크만 잡으면 뭐하나? 가수가 노래를 못부르는데. 이명박도 소통은 시도하지만 소통은 불발이다.
최근 몇몇 정치인들이 노무현을 흉내내어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는 뉴라이트도 아고라에서 네티즌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왜 소통되지 않지? 왜 그들은 노무현만큼의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못하지?
간단하다. 마이크 잡는다고 다 가수인가? 소통이 본질이다. 소통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소통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말고 유권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누구 있나? 없다.
그냥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씨가 말랐다. 마이크는 누구나 잡을 수 있지만 가수는 되는 사람만 된다. 소통의 본질은 마이크 잡는게 아니다. 방송에서, 인터넷에서 말로 떠든다고 그게 소통이 아니다.
진정한 소통은 인류의 집단지능, 집단지성 형태로 존재한다. 손잡고 함께 일대사건을 만들어 나감에 있어서의 역할나누기 형태로 존재한다.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큰 흐름을 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다에 돛만 올린다고 배가 가나? 바람을 타야 간다. 역풍을 맞으면 배는 나아가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따라가는 한 그들의 소통시도는 계속 실패일 뿐이다.
노무현이 뜬 이유는 딱 하나다. 그는 자기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제멋대로 부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노래를 타이밍도 절묘하게 맞추어 제대로 불러주었다. 소통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된다.
노무현은 프로였다. 소통의 프로였고 인터넷 정치의 프로였다. 프로는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혼자 떠들지 않고 국민의 입에도 마이크를 돌려준다. 혼자 다하지 않고 국민에게도 일정한 역할을 나눠준다.
재신임을 비롯해서 노무현은 많은 부분을 국민에게 질문했다. 국민은 탄핵반대로 화답했다. 이명박은 라디오에 나와서 매주 떠들지만 국민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마이크 넘기지 않는다. 가짜다.
노무현은 방폐장 건설, 천성산과 사패산 터널 등에서 일일이 국민에게 질문했고 그 때문에 결정은 늦춰졌다. 조중동은 터널공사 늦춰진 손실이 몇 조원이라고 부풀렸다. 그게 먹혀서 한나라당이 집권했다.
이명박은 그런거 없다. 그냥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국민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국민이 말하면 촛불진압하듯이 바로 진압해버린다. 독재가 따로 있나? 이게 독재다. 소통이란 혼자 떠드는게 아니다.
국가적 의사결정이 미뤄진데 따르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소통이다. 이걸 해낸 사람이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혼자 결정하지 않고 국민과 역할을 나눠가졌다.
말로 하는 소통은 가짜다. 역할 나누는게 진짜 소통이다. 정치가는 무대를 마련하고 뒤로 빠져야 한다. 결정권은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이 정권에서는 아직도 대운하 망령이 떠돌아다닌다.
노무현처럼 국민이 결정하게 하면 바로 결판날 일을 밀실에서 결정하니 아직도 망령이 되어 떠돈다. 국민과 역할 나누는게 민주주의다. 역할은 나눈다고 나누어지지 않는다. 정교한 사전 세팅이 있어야 한다.
팀이 있어야 그라운드 있고, 그라운드 있어야 선수가 있고, 선수 있어야 포지션이 있고, 포지션 있어야 골이 있다. 이명박의 라디오연설은 수비수도 골키퍼도 없는 상황에서의 단독 드리블에 불과하다.
아고라에 글 올리는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싱거운 원맨쇼에 불과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직접민주정치를 가미한 노무현의 직접 소통, 인터넷 정치는 성공했고 그는 확실한 성공모델을 만들었다.
히딩크의 성공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노무현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었다. 본질에서 노무현은 성공한 대통령이다. 왜? 성공사례 만들었으니까. 성공사례가 전파되어 무수히 많은 이의 가슴에 성공의 싹을 틔우니까.
바보들은 ‘노빠들이 노무현의 청렴한 이미지에 속아 열광한다’고 말하지만 자기 기만이다. 나는 자연인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진짜는 노무현처럼만 하면 화끈하게 밀어주겠다는 사회를 향한 약속이다.
나는 노무현 개인을 추종하는게 아니라, 누구라도 노무현처럼만 하면 내가 노무현 화끈하게 밀어주었듯이, 누구라도 화끈하게 밀어주겠다는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공약이다.
나는 약속한다. 누구든 노무현 만큼만 해라. 노무현 이상으로 화끈하게 밀어준다.
미찬가지로 조중동 행태도 공약이다. 그들은 국민앞에 약속한다. ‘누구든 노무현처럼 하기만 해봐라. 악착같이 밟아죽인다’고. 아웃사이더가 주류질서에 도전하면 어떤 꼴을 보게 되는지 확실히 보여주었지 않느냐고.
그 어떤 언론도 말하지 않는 진실이 이것이다. 벌어진 이 싸움이 과거의 사실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공약’이라는 점이다. 공약 대 공약의 대결이다. 요 며칠 사이에 봉하마을 관광객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그들은 왜 봉하마을을 찾는가? 그분들이 노무현에게 의리 지키듯이 노무현처럼 하는 정치인 나오면 의리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그분들은 국민앞에 공약하기 위하여 그리로 달려간 것이다.
우리는 그 방법으로 정치한다. 정치는 결코 밀실의 정치인들에게 독점되지 않는다. 노무현을 향한 우리의 박수가 우리 방식의 정치다. 그리고 대결한다. 우리 ‘광장의 정치’와 그들 ‘어둠의 정치’가 치열하게 대결한다.
앞으로도 노무현처럼 소통하는 정치인 나오면 화끈하게 밀어주겠다는 우리의 공약과, 앞으로도 아웃사이더 권력이 나오면 철저히 씹어서 성공한 대통령이 못되도록 방해하겠다는 그들의 공약이 대결한다.
그렇게 살아있는 정치는 지금도 현장에서 계속된다. 그들이 칼로 친 것은 노무현의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다. 그들이 파괴하지 못한 것은 노무현이 국민에게 준 실익이다. 정치가와 직접 소통하는 기쁨이다.
그들이 노무현을 제거하는 확실한 방법은 노무현이 했던 대로 국민과 직접소통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손이 없기 때문에 국민과 악수할 수 없고, 입이 없기 때문에 마이크 잡고도 노래부르지 못한다.
노무현 흉내내어 주례 라디오연설 해봤자 전파낭비일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무시한다. 그들은 우리와 말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를 무시한다.
그들도 실제로는 간절히 우리와 말하고 싶어하지만 ‘집단지능, 집단지성을 통한 인류문명의 진보’라는 입이 없어서 말을 못한다. 말을 해라. 왜 말을 못해? 노무현은 우리를 존중했다. 존중하고 싶어서 존중한 것이 아니다.
그는 프로였다. 그는 ‘집단지성을 통한 문명의 진보’라는 이름을 가진 배의 항해를 책임질 수 있는 유능한 선장이었다. 그는 베테랑이었다. 그 차이는 엄연하게 존재한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크다. 이명박이 넘지 못하는 거대한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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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못하면서 마이크 안 놓으려는 사람들이 생각나네요 ^^.
ㅋㅋㅋ. 누가 좀 말려줘야 하는데... 쩝...
잘 읽고 갑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