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이란 무엇인가? [게시판 답글을 부분수정합니다.] 좋은 교사는 학생 ‘기 살리는’ 교사다. 미소짓고 칭찬해주고 용기 북돋워주는 선생님이 좋다. 그거 쉬울 거 같은데 그렇게 하는 선생님이 드물더라. 적어도 필자 경험으로는. 칭찬하면 되는데 왜 안할까? 교육청이니 장학사니 교장선생님이니 하는 윗분들이 잡무다 뭐다 해서 선생님을 괴롭혀대니 그 스트레스가 학생들에게 전가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교실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았다. 교실 하나에 60명이 바글거리고 있어서 인원통제가 안 되니 학생들 윽박질러서라도 통제하려고 했던 것. 그 환경에서는 폭력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 인원이 30명 넘으면 교육은 실패라고 본다. 30명이 떠드는 소리를 교사 한 사람 목소리로 제압하려면 당연히 언성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 순간부터는 교육자의 가르침이 아니라 몽둥이의 물리력이 지배하는 정글로 변한다. 교사 처우가 나빴다. 교사가 사회의 가장 낮은 직종으로 분류되어서. 자부심 가진 교사가 없었다. 교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날 봐라. 학생때 공부 안해서 자가용도 못타고 이러지.’ ‘너희도 공부 안하면 나처럼 선생질이나 해야 된다. 알겠냐?’ 이런 푸념들. 꾀죄죄한 낡은 양복 아니면 헐렁한 잠바차림. 학부모 촌지에나 신경쓰는 비굴한 모습. 단지 비굴한 눈빛만 아니어도 좋은 교사다. 나쁜 교사는 사회의 권력서열 따위로 겁주는 교사. ‘세상에는 너희가 모르는 높은 권력이 있어서 개기면 죽어. 눈치를 봐야해. 인생은 요령이야. 튀지도 말고 처지지도 말고 딱 중간만 해. 그게 세상물정이라는 거야.’ 아마 군대서 배운게 아닌가 하는 느낌의 3류 처세술 비슷한 것을 신나게 떠들어대는 교사 꼭 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너를 괴롭힐 수 있다’는 식의 복수방법을 암시하여 알려주는. ‘눈밖에 나면 반드시 해코지하고 만다’는 느낌을 주는. 비열한.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의. ‘더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확실히 주제파악을 시켜주겠다’는 식. 학생과 싸워 이기려 하는. 환멸이다. 교감, 교장, 장학사 앞에서 교사들의 비굴한 행동. 거짓말을 하도록 가르치거나 요령껏 눈치껏 하도록 강요하는 선생들. 초교 1년 때 따귀맞은 후 실망했고 이후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했다. ### 물론 70년대 이야기. 지금은 교실당 학생 숫자도 적고 교사 처우도 개선되었을 거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고. 그때는 진짜 ‘더러워서 선생질 못해먹겠다’는 식의 푸념을 많이 들었다. 자기 직업에 자부심만 가져도 좋은 교사가 될 것이다. 좋은 교사는 당연히 가르침을 주는 교사다. 뭘 가르치는가? 자기 것을 가르치는 거다. 교과서 가르치는건 가르치는게 아니다. 그건 교육부가 정부 세금으로 하는 거고, 교사 자신만의 고유한 아이템을 가르쳐야 진정 가르치는 거다. 남은 아니하고 오직 나만 하는, 자신이 독점하는 그런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중요한건 교권이다. 교권도 권인데 권은 저울이다. 권의 저울원리는 지난번에 여러번 말했던 바와 같고. 권이 있어야만 대접을 받는다. ‘학원에서 배워도 되는데’.. 이렇게 되면 권의 소멸. 교육실패다. 교사가 권을 누리려면 자기가 창안해낸, 자기가 독점하는 고유한 가르침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좋은 교사 되기는 쉽다. 단지 남은 안가르치고 나만 가르치는.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학원에서 못 배우는. 그 무엇이 단 하나라도 있기만 하면 좋은 교사.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처럼. 그것이 시라도 좋고, 노래라도 좋고 이야기라도 좋고, 전원의 체험이라도 좋고. 외국에서의 경험이나 모험여행. 오지탐험, 발견과 발명, 신기한 취미. 스킨스쿠버나 패러글라이딩, 경비행기. 나무나 종이나 흙으로 뭔가 뚝닥 만들어내는 것도 좋고. 소재는 많다. 신기한 과학실험만 보여줘도 학생들은 금방 매료된다. ###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진짜 배우고 싶었던 것은 ‘동지의식’이다. ‘우리편’이라는 느낌. 그러나 선생들은 말한다. 세상은 정글이고 서로 잡아먹는 곳이며 강자와 약자로 금긋고 차별된다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결국 교사는 ‘나는 높고 너희는 낮다. 그러므로 내맘대로다.’ 이거였다. ‘어디를 가도 항상 그런 것들이 있어! 부자와 빈자, 승자와 패자, 사장과 종업원, 보스와 졸개, 강자에겐 숙이고 약자는 밟고 올라서라!’ 어디에서도 진정한 동지를, 한 사람의 내 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진리의 편, 역사의 편, 진보의 편, 약자의 편, 신의 편이 되기로 했다. 산다는 것의 근본은 바로 그것. 동지가 되어주는 것이 전부. 이 세상에 단 한 명의 끝까지 내편이 되어주는, 일관되게 내 편에서 생각해주고 옹호해주는, 나의 억울함을 이해해주는, 내가 가는 길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실패해도 타인과 비교하여 추궁하지 않는. 실패했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을 갔기 때문에 후회없이 행복했다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런 스승이 필요할 뿐. 지식으로 가르쳐서야 선생질에 불과. 사랑으로 감염시켜야 참스승이다. 나는 동지를 원했다. ∑ |
제게도 참 스승이 필요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 누구도 세상에 대한 질문에
바른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답은 스스로 찾아 내는 것이라는 것을.
빛은 있고, 그것을 찾아 가는 길목에서 동지를 만나 힘을 얻고 용기를 북돋우지만
무소의 뿔처럼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신이 내게 준 사명을 알아 가는 길.
실천을 통해 사랑으로 가는 길.
온전히 혼자 가야 하지만 그대가 있어 외롭지 않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