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8555 vote 0 2004.01.23 (18:15:51)

친구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친구를 필요로 하는가?

친구의 존재가 한 인간의 삶을 바꾸는 정도의 행위동기를 부여하는가?

오래도록 내 인생의 목표는
온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방치한 거다.

그렇게 나 자신을 제멋대로 방치해 두면
보다 못한 누군가가 개입하여
마구 참견하면서
자극을 줄 것이라는
소극적인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 참견자는 신이었다.

내 20대는 그렇게 정의될 수 있겠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빌어먹을
내가 그렇게도 저주해 마지 않던
30을 넘어
아아~
생각하기도 싫은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우째 이런 일이)
(시일야 방성 대통곡)

불혹..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올해는 큰 결심을 했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연초부터 수술도 하고
건강도 챙기기로 하고
말하자면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들을
의식하기 시작한거다.
우습게도 말이다.
당치않게도 말이다.
어줍잖게도 말이다.

나 자신이 좀 바뀌었다는
아니 바뀌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본질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사실이지 그동안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혹을 바라보면서
그 사실을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좀 목표를 잃고 있었던 느낌이다.

그렇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막상 눈 앞에 닥친 일이 되었다.
발 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무슨 고상한 변명을 생각해내어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으랴!

처음엔 그냥 자유인으로 살다가
자유인으로 죽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30살 이후엔 내 인생이 없다는 식으로
무절제하게 살았던 거다.
몸에 병이 있어도 방치했다.
이렇게 살다 죽을래 하고 말이다.
감기에 걸려도 약도 안먹고 버티는 식이었다.
병원의 검진은 해라 해도 안하고

왜?
어색했으니깐
그건 나 답지 않으니깐

나 다운건?
나는 세상의 불평분자였다.
좋은 말로 하면 자유인이다.
비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분노야 말로 네 에네르기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도 변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다시 오래된 그 녀석과 고독하게 대면한다.

그것은 미학이다
하나의 동그라미다.
지금까지는 아래로 내려가는 동그라미였다면
이제는 위로 올라가는 반원을 그릴 차례가 된 것인가?

이제는 그 나의 작은 동그라미 안에
나의 조그만 바운더리 안에
세상의 너무 많은 요소들이 들어와 있다.

우리는 동지가 된 거다.
나의 동그라미가 너의 동그라미를 만나
더 큰 하나의 동그라미를 이루면서
우리는 동업자가 된 거다.

하나의 세상이 있고
그 세상 속에는 굴러다니는 자본이 있다.
우리는 동지를 규합하여 이곳저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한다.
그 자본을 사냥하는 거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또다른 세상을 경영하여 가는 거다.

더 많이 의기투합한다면
더 큰 자본을 사냥할 수도 있고
더 큰 동그라미를 만들 수도 있다.
적절한 공동의 목표를 발견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들의 동그라미를 더 아름답게 포장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사냥한 가치들을
더 멋있게 소비하는 작전에
우리들 자신을 투입하기에 망설일 필요는 없는 거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너와 나의 존재가 먼저이고
그 동그라미의 확인이 먼저이고
그 동지의 규합이 먼저이고
그 의기투합이 먼저이고
그 다음은 세상을 혹은 자본을
사냥하는 혹은 경영하는 거다.
너와 나가 있기 이전에 공동체의식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불혹이라는 단어 앞에서
내가 나 자신을 유혹하는 방법의 하나가 된다.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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