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했던가.

‘내’가 ‘네’다. 말로 읊조리기는 쉽지만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것은 커다란 두려움이다. 이에 지(知)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곧 너라는 개념은 ‘있음’과 ‘없음’을 초월해서 성립하고 있다. 한 차원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무섭다.

그것은 곧 나의 현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뿔사! 내가 이렇게 존재하여 있는 이상 나는 결코 너일 수 없다는 거다. 한소식맨의 99프로는 이 수준에서 나가떨어진다.

왜인가? 인류가 그렇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존본능이 자기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끊임없이 속삭이는 본능의 목소리를 물리치고 자기부정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당신이라면 가능한가?

‘있다/없다’로 논하면 이미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데카르트의 제 1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란 것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성(物性)의 멍석이 깔아진 자리에서 노는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물적 형태라는 건 아래동네 소식에 불과하다.

신의 존재로 말한다면 신은 ‘언제/어디에’ 있느냐가 문제로 된다. 이런 식의 논의라면 아주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언제/어디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다. 즉 ‘신이 존재한다’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신은 그 자체로 완전성을 표상하는 바, ‘언제/어디’에 얽매여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불완전한 것이다.

“신이 있느냐?” 라는 질문은 틀린 질문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 만약 ‘있다’고 답하면 신은 ‘언제/어딘가’에 있는 존재로 된다. 그 경우 신이 아니다.

질문자는 신을 ‘물(物)적 존재’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헛소리다.

‘없다’고 답하면 역시 틀린 대답이 된다. 완전성이야말로 ‘물(物)적 존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즉 완전성의 부정은 물(物)적 존재의 부정으로 연역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 질문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진실을 파악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대개 ‘있다/없다’에서 그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왜 두려울까? 그것이 영장류 3백만년 진화의 결과다. 그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남은 거다.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은 이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결과로 그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후손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 두려움 떨치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가이다. 순수하게 ‘이다/아니다’로 판단할 수 있는가이다. 그럴 때 당신은 알게 된다.

세상은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나란 어디에서 온 것이 아니므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삶도 없는 것이며 죽음 또한 없는 것이다. 태어남도 없고 사멸함도 없으며 태어남과 사멸함이 다함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언덕과 저 언덕의 경계선이다.

텅 빔도 없고, 그 텅 빔 가운데서 뭔가 홀연히 생겨나온 적도 없고, 그 뭔가 묘한 것이 거기에 있었던 적도 없다. 1


불을 켜면 만가지 사물이 보이고 불을 끄면 만가지 사물이 사라진다. 눈을 뜨면 만가지 사물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만가지 사물이 사라진다.

사람이 눈을 뜨거나 감을 뿐, 사람이 불을 켜거나 끌 뿐, 본래 텅 빔도 없고 우주가 생겨나온 적도 없고 묘한 넘도 없다.

‘있다/없다’가 없다. 이 언덕을 넘어설 자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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