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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반대한다 1: 경쟁은 무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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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경쟁하는가?


경쟁하는가
?
도대체 왜 경쟁하는가
?

조용히, 위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 잔잔하던 마음의 수면에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나는 왜 숨을 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우리가 숨을 쉬었고, 지금도 쉬고 있고, 앞으로도 쉬듯이, 우리가 경쟁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해 보인다. 이것에 대해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심지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겐 마치 '공기'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쟁'은 공기도 아니고 결코 자연스럽지도 않다
.

경쟁이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그 속에서 당신의 지위와 보상이 결정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큼 경쟁이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경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경쟁을 거부하는 쪽에 가까웠다. 한 번 떠올려보라. 우리들 대부분은 어린시절 승패가 갈리는 게임을 하다가도 패자가 되어 슬퍼하는 친구를 보면 게임의 룰을 기꺼이 바꿔가면서까지도 친구가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하였으며, 설령 친구가 여전히 승부에 불복하고 게임을 거부하더라도 승패가 갈리지 않는 다른 형태의 놀이로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경쟁을 완전히 내면화하기 이전의 우리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나에게 진 친구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기 보단 함께 누리는 기쁨을
더욱 가치있게 여겼다.

올릭은 또한 아이들이 협력적인 게임을 할 때 더 행복해 한다고 썼다.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 9~10세 남자 아이들의 2/3과 모든 여자 아이들은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놀이보다 모두 지지 않는 놀이를 택했다
".............

아이들이 협력을 배울 수 있으며,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면 협력의 방식을 더 선호한다는 이러한 연구 결과는 경쟁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는 증거로 매우 설득력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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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반대한다> 50페이지-


아직 사회의 경쟁 구조를 교육을 통해 완전히 내면화하지 않은 아이들은 '공동체'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나와 같이 놀이를 즐기는 상대방의 패배도 나의 패배처럼 여기고 상대방의 슬픔을 마치 내 것과도 같이 느낀다. 아직 교육이란 이름의 숱한 경쟁과 서열 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은 터라, 아이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고난 '공감본능'을 활용하여 놀이의 규칙을 패한 친구에게 유리하게 바꿔가면서까지 경쟁 구조의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아예 승패가 없는 놀이로 전환해버린다. 이는 아이들이 즐기는 것이 승부가 아니라 놀이를 통한 친구와의 상호작용 및 그로 인한 정서적 교류, 관계 맺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배타적인 상호목표달성을 특징으로 하는 경쟁구조가 친구와 자신을 포함한
'
공동체'의 유지에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가차없이 경쟁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이들이 특별히 순수하고 착한 존재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건 우리의 마음이 애초부터 '공동체'를 지향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주2)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공동체' 지향성 및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감본능'이란 메커니즘은 '낡은 세상의 체제Old World System(주1)' 하에선 철저히 한정되고 왜곡되고 위축된다. '경쟁'은 세상의 진보와 더불어 점점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낡은 체제의 대표적인 도그마 중 하나이며,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 외의 대안을 떠올리는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주기도문'이다
.


주기도문에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외치듯, 자본주의의 경쟁 구조라는 하늘은 이제 인간의
마음이라는 땅에서도 철저히 내면화되어, 우리는 '경쟁력'을 갖춰 남보다 앞서고 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자기계발서'의 주문들을 되뇌이며 하루하루를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살아가는 군상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군상들은 바로 우리다.


2.
경쟁의 필요조건


우리가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었는가를 본격적으로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상호배타적인 목표달성을 위한 경쟁'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 두가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경쟁은 원래 인간의 공동체 생활에서 '특정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대인 사이에서 또는 복수의 공동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행동양식/구조이다. 경쟁은 본래 한정된/부족한/희소한 자원을 둘러싸고 개인 또는 집단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구조화된 행동 양식이기 때문에 누군가 2/3을 차지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1/3을 차지할 수 밖에 없는 상호배타적인 목표달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

이러한 경쟁의 본질은 간단하다.
무언가가 희소하다고 여겨지면,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무언가가 한정되어 있다고 여겨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 어떤 자원이 넘친다면, 도무지 그걸 두고 경쟁할 이유따윈 없다. 태양빛을 두고 경쟁하는 바보는 없다. 그냥 나가서 햇볕을 쬐면 그만이다. 내 앞에 콸콸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두고 옆 친구의 수통을 탐하는 바보는 없다. 그냥 계곡물을 떠마시면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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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 조건 1번은 바로 '자원의 희소성'이다.

그러나 유념하자. 자원이 희소하다고 해서 반드시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원의 희소성이 곧 경쟁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원이 아무리 희소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상호 협의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 자원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최대한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분배'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저녁 때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할 때 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였다. 그리고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어 큰 무리로 먹게
하였는데, 5천 명(여자와 어린이는 뺀 숫자)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는 것이다.

[출처] 오병이어의 기적 [五餠二魚─奇蹟 ] | 네이버 백과사전


혹자는 위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두고 말그대로 예수의 초자연적인 능력의 발현으로 해석하지만, 필자는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가 5천명이라는 구성원들이 만족할만한 '분배의 기준'을 제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매우 희소한 자원을 '경쟁' 없이도 성공적으로 나눌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수가 실제로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알수없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이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공감본능을 극대화한 사례라면, 아마도 예수가 오병이어를 그 상황에서 가장 그것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이를 어떤 강제나 협박이 아닌 사랑의 '말씀'을 통해 이뤄내 순식간에 5천명의 개개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다시 '자원의 희소성'이라는 필요조건으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말하는 '자원의 희소성'은 실제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원의 희소하지 않은데도 희소하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해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자원의 희소하다는 믿음이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빵이 10개가 있는데 9개를 감춰놓고 1개만 있다고 뻥을 쳐서 배고픈 사람들이 빵 하나를 놓고 피튀기게 싸우게 만들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경쟁사회인것은 한국인이 유달리 경쟁심이 강해서가 아니다. 나눠줄 9개의 빵을 뒤로 숨겨 소수가 나눠먹고 나머지 1개를 가지고 다수에게 던져주기 때문에 그 1개를 두고 경쟁이 그토록 치열한 것이다
.

이제는 희소한 자원이 되어버린 '사랑'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 무한한 것이라고, 사랑은 한정되지 않고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도 그렇게 노래하고 성인들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부모님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가? 우리 시대에 사랑만큼 한정되고 구속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없다. 우리들 대다수가 경험한 부모의 사랑이 그러했고 연인과의 사랑도 그러했으며 자식과의 사랑도 그러했다. 다들 사랑이 무한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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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우리는 '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양육되었으며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고 긍정되고 수용되는 경험을 한 적이 극히 드물다. 부모에 의해서도 형제 간에 혹은 '엄친아'와의 끊임없는 비교가 이뤄졌으며 학교에서는 성적이라는 이름으로 평가받았고 직장에선 연봉으로 비교당했다. 끝없는 비교 속에서 우리의 존엄은 형편없이 구겨졌으며 우리의 가슴을 타고 흘러야 할 바다와도 같은 사랑은 이제 가끔씩 운이 좋으면 새어 나오는 수도꼭지의 물한방울이 되어버렸다. 사랑이라는 무한한 자원이 낡은 체제 하에선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 이제 예술가나 철학자, 성인들이나 무모하게 달려들어 캐내는 폐광이 되었다. 폐광이 된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사랑의 무한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한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희소자원이 된 사랑을 두고 모두가 경쟁에 뛰어든다. 부모의 조건적인 사랑이나마 받기 위해, 선생님의 인색한 칭찬이라도 듣고자, 동료들의 제한된 존중이나마 받으려 모두가 경쟁에 뛰어든다. 1등을 하면 그만큼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중받겠지란 믿음 속에 불나방처럼 잘도 뛰어든다.

그러나 그 어떤 1등도 사랑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한다. 그 어떤 1등도 진정한 존엄에 이르지 못한다.
애당초 인간 정신의 존엄성이 경쟁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서 어떠한 일거리를 얻어오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인간이 60억 인류를 대표하여 신과 단독자로 마주하여 신 자신이 풀수 없어 인류에게 떠 맡긴 문제의 답을 내놓는데서 확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다시 경쟁의 본질이란 문제로 돌아와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경쟁은 자원이 부족한 상황 또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믿음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경쟁이 성립하기 위해선 앞서 말한 필요조건 1 외에도 한 가지 필요조건이 더 필요하다
.

경쟁의 필요조건 1: 자원의 부족함/한정/희소성 또는 그에 대한 믿음

경쟁의 필요조건 2: 경쟁의 대안 부재에 대한 믿음

앞서 필요조건 1은 설명했으니, 이제 필요조건 2를 살펴볼 차례다. 경쟁이 성립하기 위해선 경쟁의 대안이 부재해야 한다. 아니, 경쟁의 대안이 없다고 믿어야 한다. 이 경쟁의 대안이 없다는 믿음이 피드백되어 경쟁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

한국의 교육제도를 예로 들면 이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국 교육 시스템의 핵심은 '경쟁을 통한 서열화'에 있으며 지금까지 있어온 모든 교육 개혁 시도는 이 본질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한 채 사교육 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한국 교육 정책의 입안자 및 학부모들의 절대다수가 여전히 '경쟁'이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고, 학습 동기를 불어넣는데 있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근거없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이것을
'미신'으로 간주한다. 그 근거는 경쟁을 반대한다 2편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이들은 경쟁을 떠난 교육체제를 상상하지 못하며, 상상한다 하더라도 그 상상을 현실화하려면 교육시스템 전체를 들어내고 다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압박감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경쟁을 기초로 한 교육이
전세계적인 분산 에너지의 확산과 공감 능력의 심화라는 문명의 방향성을 따라 따라잡지 못하고 '근대'와 더불어 도태될 것이란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 번 경쟁이라는 토대를 바꾸면 그에 따라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 때문에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다
. 그러나 점점더 '경쟁 교육'이 국제사회에서 전혀 경쟁적이지 못하다는 증거들이 속속히 들어나고 있다. 경쟁에 기반한 대한민국의 현 교육 시스템은 이제 곧 수술대에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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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필요조건 1,2가 어우러져 경쟁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든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혹은 그에 대한 믿음과 경쟁의 대안이 부재하다는 믿음이 결합되어 '경쟁'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을 낳는다. 이 두가지 조건이 성립되면, 혹은 이 두가지 조건을 사람들이 '믿으면' 그때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되어 마침내 인간의 본성, 혹은 신의 섭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그 정도 되면 아래처럼 경쟁이라는 복음의 전도사 역할을 맡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공병호씨는 교육문제 해결의 지름길은 경쟁논리 확대에 있으며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소수인재를 위한 시스템으로 교육을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
-한겨레 21 기사 교육부는 신자유주의 돌격대? 중에서-


공병호씨처럼 입만 열면, 경쟁 경쟁을 외치며 개인이 경쟁력을 갖추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들은 그로 인해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엔
무감각하다. 이미 자신들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다고 믿기 때문인걸까? 아무튼 그런 그들의 저서를 열심히
읽으며 오늘도 어제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격증에 토익에 해외연수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경쟁엔 점점 능하지만 타인의 고통엔 무감각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뒤로 하고 한 점의 의심도 없이 경쟁을 향해 질주하게 된다
.


3.
경쟁은 무의식이다
.

우리는 부모, 학교, 직장 등 사회 공동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의 성공이 곧 친구의 패배이고, 친구의 성공이 곧
나의 패배인 상호배타적인 목표달성의 경쟁 구조 속에 편입되어 끊임없이 비교되고, 순위매겨지고, 가치평가되고, 보상받아 왔다. 우리는 그 속에서 경쟁을 철저히 '내면화'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경쟁은 결코 '의식적'인 것일 수 없다. 우리에게 경쟁과 협력 사이에서 제대로 된 선택권이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당초 우리에게 경쟁을 거부할 권리 따윈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우리는 사랑이 '희소하고', '한정되고', '조건적'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길러진 부모 밑에서 양육되면서 그렇게 위축되고 왜곡된 사랑과 관심이라도 얻기 위해 1등을 향해, 100점을 향해, 금메달을 향해, 상장을 향해 시험장/콩쿨/컨테스트/스포츠 등 경쟁의 무대로 나아갔다. 경쟁에서 승리를 하면 사랑과 관심, 인정이라는 정신적인 보상과 상금, 상품 등의 물질적 보상까지 받고, 패배하면 기껏해야 위로 밖에 받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기꺼이 경쟁의 무대로 뛰어든다. 그러나 당신은 애당초 사랑이 무한하며, 무조건적이고,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한정되지 않는 것이란 걸 결코 알지 못한다
.

우리는 대학과 학과에 서열을 매겨놓고, 그 거대한 위계질서 속에서 아이들을 '수학능력'에 따라 분류하고 할당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개인당 1평도 안 되는 공간에 인간을 가둬놓고 온갖 지식을 쑤셔넣는 것을 교육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친구들과의 끝없는 경쟁을 강요 받았다. 선생들이 매기는 등수에 지친 아이들은 성적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 별도의
위계질서들을 싸움실력, 언변, 미모, 운동 실력 등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보지만, 결국 고3이 되면 '수능'이라는 거대한 경쟁의 물결에 휩싸여 버린다. 대안 교육이란 이름이 아직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결국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모든 교육이 '대학'으로 수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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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교육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더라도 혹은 의식적으로 받아들여 대입이라는 경쟁을 통과했다손 치더라도, 그걸로 경쟁은 끝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경쟁을 벗어날 수 없다. 이젠 취업이라는 경쟁의 무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이 사회에 쓸모있는 존재임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임을, 나아가 조직에게
'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입중해야 한다.

물론 취업을 해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돈을 모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나면 이제 정말로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OECD 국가에서도 손꼽히는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왼손엔엔 생존의 바이블인 자기계발서, 오른손엔 24시간 업무도구인 트폰을 들고 출길에 올라 직장이라는 경쟁 무대로 향한다

.

이런 우리에게 경쟁은 차라리 '무의식'이다
.


구조론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의 축을 타고 움직이며 일한다. 구조론 마음이론에서, 정신은 외부환경에서 일거리를 얻어오면서 존엄을 지향하며, 의식은 일거리를 내 마음 안으로 들여와 자유를 통해 자아의 영역을 확보한다. 의도는 일하는 대상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기 위해 포지션을 선점하려 들며 생각은 일상의 활동을 통해 실제로 일을 행하고 감정은 일의 결과를 점검하고 평가하여 우리에게 일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실시간으로 피드백해준다
.

하지만 경쟁은 이러한 인간 마음의 구조에서의 상부구조 정신-의식-의도를 왜곡시킨다
.

정신은 마음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외부환경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는데, 경쟁은 나와 외부환경 사이에 불필요한 경계선을 그어 에너지를 제한한다. 경쟁은 불필요하게 외부환경과 대립하면서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외부환경을 적대시하면서 스스로 에너지 공급원을 차단해버린다.
쉽게 예를 들자면, 경쟁에서 1등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자신의 학습 방법과 이해한 내용을 공유하지 않고 혼자서만 열심히 공부하지만 결국 스터디 그룹을 이뤄 서로의 학습 방법과 내용을 공유한 아이들에게 뒤쳐지고마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서 정신은 어떤 외부의 상황과 최초에 맞닥뜨렸을 때 작동하여 한 번 세팅되면 그 다음부턴 비슷한 상황에선 반복적으로 써먹게 된다. 경쟁에 대한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부모에 의해 경쟁 구조를 접하여 이를 정신을 통해 들여올 땐 의식적으로 경쟁 구조를 점검할 수가 없다. 아이에겐 부모가 강요한 경쟁 구조가 부당하다는 느낌은 있으나 이를 표현할 방법이 거의 없으며, 설령 표현한다 할지라도 부모는 이를 아이의 어리광으로 알고 무시하기 일수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누구나 최초 경쟁구조 속에 강제로 편입될 때 이에 대해 울음이나 짜증, 분노의 형태로 표현한다.

이는 아이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여 혼내거나 무시했을 때 아이가 보이는 반응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경쟁 구조를 당연시 여기는 부모들은 이러한 아이의 반응을 산뜻하게 무시하고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으로 계속해서 아이에게 경쟁 구조를 강요하며 이것이 부모에게 자신의 생존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아이들에게 한 번 각인되면 이후 아이의 의식-의도-생각-감정은 한 번 세팅된 경쟁 구조를 따라 작동하게 된다
.

최초 부모가 외부 환경의 경쟁 구조를 아이에게 끌어와 정신에 세팅시켜 놓으면 이후의 의식-의도는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전개된다
.

정신: 부모에 의한 경쟁 구조의 내면화. 이를 아이는 '의식적'으로 거부하지 못한다. 아직 아이는 경쟁 구조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의사(싫어!)만을 표현할 수 있을 뿐, 경쟁 구조 자체를 의식하고 이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히진 못한다.
인지능력, 특히 언어적 표현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도 자신에게 강요된 경쟁 구조가 부당하다는 것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말을 조리있게 못할 뿐이다
.

의식: 경쟁적인 자아 혹은 경쟁을 두려워하는 자아. 한 번 경쟁 구조가 정신에 세팅되면 이후에 아이의 정신이 물어오는 일거리는 주로 경쟁적인 활동들이 된다. 정신이 무언가 서열이 매겨지고 순위가 매겨지고 점수가 매겨져 타인과 비교되는 활동들을 물어오면 이를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성공 또는 실패를 겪게 되며 아이의 능력과 주변의 지지 수준에 따라 겪는 성공 및 실패의 빈도수가 달라진다. 성공을 보다 많이 겪은 아이들은 경쟁적인 자아가 되어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로부터 오는 긴장과 보상을 즐기게 되지만 실패를 보다 많이 겪은 아이는 경쟁을 두려워 하고 그로부터 오는 긴장과 보상 받지 못함을 두려워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경쟁 구조에 아이가 노출된 이후 아이의 정신이 협력적인 외부 환경과 접촉하지 못하면 아이의 협력적인 자아 역시 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식은 정신이 물어온 일거리에 유기체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의사결정의 축이며 이 축은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타격이 없으면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가 협력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외부의 교육 환경이나 양육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아이가 향후 타인과 원활하게 협력하며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


의도: 의식에서 세팅된 자아에 따라 의도에선 자신의 포지션(역할)을 정하게 된다. 외부 환경의 경쟁 구조에 이미 세팅된 승자/패자 구도에 따라 자아는 경쟁 경험을 반복적으로 쌓으면서 그 빈도에 따라 자신을 승자 혹은 패자로 설정하게 된다. 한 번 자아가 승자 혹은 패자로 설정되면, 승자는 계속해서 이겨서 공동체 내에서 보다 높은 지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품게 되며, 패자는 자동적으로 승자보다 낮은 지위를 점유하게 되며, 패자 역할에 따르게 된다
.

경쟁 구조에 주로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의도 수준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할 때 타인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 우위에 서려하며 이는 공동체 내에서 끊임없이 높은 지위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쟁적 의도는 개인에게 '비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무의식적인 압력으로 나타나며, 이는 경쟁을 근간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 대다수가 앓고있는 일종의 신경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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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의 경우를 한 번 떠올려보자. 우리는 누구나 쓸데없는 호승심에 타인과
갈등을 빚은 경험을 갖고 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의도에 조종당해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이기고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예 자신의 캐릭터를 '패자'로 설정하여 경쟁을 회피하고 공동체 내에서의 자신의 지위를 자동적으로 승자의 밑으로 고정시켜 놓고 더 이상 포지션 이동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채 경쟁의 대안도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사회적으론 저소득층 및 빈곤층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그 유명한
'
학습된 무기력'이란 개념은 바로 이러한 의도 차원의 '패자' 설정을 의미한다
.

이처럼 경쟁은 마음의 상부구조인 정신-의식-의도를 거쳐가며 마음 깊숙히 자각되지 않은 채 '무의식'으로 남게 된다. 연인이랑 가볍게 시작한 게임이 어느새 상대를 이기기 위한 작은 전쟁으로 변한 경우, 나도 모르게 강사의 안내에 따라 타인과 박수 큰소리로 치기 경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 자신도 모르게 내 차를 앞서 나간 이를 추월하려 무리해서 과속을 하는 경우, 우리는 바로 내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경쟁'이란 무의식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이 '무의식'이 문제다. 탐진치 삼독의 뿌리가 무명, 밝지못함, 인간의 의식하지 못함에서 비롯되듯, 경쟁이라는 문제의 근원은 사실 '무의식'에 있다. 어린 시절, 아직 어른들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고 자신의 의사를 조리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의 양육, 공동체의 교육에 의해 경쟁을 주입받은 것이 문제다.
비극은, 우리가 이 경쟁의 대안 없이 '경쟁 위주로' 주입받았다는 점에 있다. 경쟁 외에도 외부환경에서 일거리를 내 마음 안으로 들여와 일하는 대상과 관계를 긴밀해 맺고 일을 행해 그 결과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우리는 그러한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그러한 방법이 실천되는 외부 환경에도 제대로 노출되지 못했다
.

그렇기 때문에 경쟁은 우리에게 깊은 무의식으로 남아버렸다. 부모에게서 아이에게로, 다시 그 아이가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로 넘겨주는 거대한 무지
. 그 대를 이은 무지로부터 마침내 현대판 신화가 하나 탄생했다.

바로, 경쟁이라는 신화이다
.
.
.
.

written
by 오세



<다음편은 "경쟁은 신화다"로 찾아뵙겠습니다.>

주1. 여기에서 말하는 '낡은 세상의
체제Old World System'는 캐나다의 사회학자 마이클 샤프가 고안한 용어로, 현 세상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인 노예를 양성하기 위해
고안된 일련의 원형Archetype, 신화, 이야기 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낡은 세상의 체제는 현실 세계의 제도적 억압 장치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학교/사회의 강제적 주입에 의해 우리들의 무의식 깊숙히 박혀 자아관/세계관/우주관을 주조하는
일종의 형틀templates같은 이야기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하시라. 앞으로 이 '깨어남의 심리학' 칼럼에선 이 표현을 자주 쓸
것이다.

2. 매우 흥미롭게도, 우리에게 개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적 선을
자연스럽게 낳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 역시 일찍이 자신의 책
<
도덕감정론> 서문에서 인간 마음의 공동체 지향성을 논한 바 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로 평가받든 간에, 인간의
본성에는, 비록 지켜보는 만족감 외에 아무런 이익도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그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타인의 운명이나 행복에 참여하게 만드는 뿌리 깊은 성향이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주3.한국 교육체제의 모델이 되었던 영미는 기존의
경쟁위주 교육정책을 최근들어 본격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하였으며 국제사회에서 EU의 파워가 세지면서 점점 더 유럽식 비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이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가 핀란드식 교육에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관련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39382.html

 

 


[레벨:15]오세

2011.03.23 (14: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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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렬옹의 구조론은 비경쟁이다를 읽고 글을 쓸 맘이 사라졌다가, 기왕에 쓴 글이니 일단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계속 씁니다. --; 제가경쟁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쟁을 기초 사회전반을 디자인 할 경우 그 사회는 지속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때문입니다. 사회는 경쟁으로 인한 상호불신과 고립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신뢰구축과 연대를 기본으로 디자인되어야 하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잔인하고 불공정한 경쟁은 상호배타적목표달성을 본질로 하는 경쟁을 바탕으로 사회를 디자인 할 경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경쟁 자체의 구조적 결함상 경쟁을 기반으로 인간 사회를 구축할 겨우 반드시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며 우리는이미 그 부작용을 온몸으로 맞고 있습니다.

20세기를 규정하는 핵심적 아이디어는 다윈의 진화론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관통하는 생존경쟁 혹은 시장경쟁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은 두고 와야 할 20세기의 것이다. 우리는 21세기로가야 한다.” 동렬옹의 말처럼, 저 역시 경쟁이란 개념을 낡은 세상의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에대한 우리의 무의식을 뒤흔들고 그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 이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구조론 회원님들의 덧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경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글에서도 구조론 회원님들의 기탄 없는 의견개진 부탁드립니다.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3.23 (15:46:08)


'경쟁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외국책이 이 서점에 나와 있군요.


만약 한국 작가 중에 없다면 

오세님이 이런 제목으로 책을 써도 되겠는데.


경쟁의 반대가 반드시 협력인 것은 아니오. 

또 경쟁은 자본주의, 비경쟁은 사회주의로 도식화 시켜 볼 이유도 없소.


자본주의가 경쟁의 산물이라는 고정관념도 착시에 불과하오.

경쟁은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가지고 놀때 쓰는 수법에 불과하오.


실제로는 뒷구멍으로 향응과 접대를 받고 결정하면서도 

겉으로는 '니가 경쟁에 탈락했다'고 둘러대는 거.


경쟁은 주도권 경쟁, 결정권 경쟁이며 

그것은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입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오.


경쟁은 2등까지 가능하며 1등은 불가능하오.

1등은 오직 깨달음과 소통에서만 의해 가능하오.


그것은 협력이지만 막연한 협력은 아니고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오.

조합이 안 맞으면 백날 협력해도 아무 것도 안 되오.


서프라이즈 초기 멤버들 간에는 그 조합이 맞았는데

그 뒤에 들어온 무수한 논객들 사이에는 전혀 조합이 맞지 않았소.


꼭 필요한 몇몇 결정적 포지션이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이 빠져나가면 나머지 백명 천명 만명 있어도 효과는 0.


마찬가지로 유빠 없는 서프라이즈는 존재가치가 없소.

앙꼬없는 찐빵이 백날 협력해봤자요.


옛날 다음 까페에 회원 수십만 명 있는 거대까페가 있었는데

남녀회원이 모여서 미팅하는 모임이었던가 뭐 그랬소.


그런데 정모날 여성회원이 한 명도 안 왔소.

그래서 까페는 결국 해산되었소.


남녀가 모여서 미팅하는 사이트에 여자가 없는데

남자끼리 백날 협력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소?



[레벨:15]오세

2011.03.23 (15: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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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아니라 협력, 그것도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어 구성원들의 힘을 결집시키는 것. 

이것을 어떤 형태로 펼칠지가 고민이오. 고민. 하나의 양식을 완성하면 가능할텐데......


동렬옹의 댓글에서 "경쟁은 주도권 경쟁, 결정권 경쟁이며 그것은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입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오"라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소. 입자가 되려는 것을 왜 경쟁이라 하는지, 왜 우리는 주도권, 결정권을 쥐려고 하는지, 주도권은 꼭 경쟁에 의해 획득되는 것인지 등을 알고 싶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3.23 (16:20:02)

뭔가가 모이면 나름대로 각축이 펼쳐지고, 사람에 따라서 경쟁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과 경쟁한다는 생각없이 그저 자기 할 바를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경쟁은 혼자서 죽어라고 경쟁해야지 마음 먹는다고 경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이나....큰 틀에서 보자면 반드시 앞서가는 자가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경쟁으로 비춰진다고 생각됩니다.

뒤에가는 자는 죽어라고 쫒아가고 혼자서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고 해서...그것이 경쟁일까? 도 의문입니다.

 

주도권을 가져야 발언권이 생기고, 발언권이 있어야 뭔가 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런데 이등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고 하는 경우도 없지만, 이등을 흉내내면 백프로 짝퉁이 되기 때문에 발전이 없다고 생각되며... 일등은 반드시 아류들을 반들어 내고, 또한 어떤 길을 내게 되어 있기에... 일등이 확산시키는 질은 또 다른 길을 내게 되기 때문에 방향성을 선점한 것이 되기 때문에...사회에 혹은 시장에 비전을 제시하거나 제안한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죽어라고 혼자 경쟁마인드 가지고 쫒아가서 이등에 머문다 하여도 그것은 개인 자신을 위한 것이지 멀리 확산이 되지는 않는다고 보며, 그러한 생각들이 경쟁을 부추긴다고 생각도 됩니다. 즉 경쟁을 조장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등인 것을 속이기 위해 이렇게 하면 일등이 된다고 부추기는 것이라고 보며, 어찌보면 억하심정 같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죽어라고 쫒아가서 이등했으니 너희도 죽어라고 해봐라....그리고 나서 왜 그렇게 열심히 경쟁마인드 가지고 했는데 이등밖에 안되나 따진다면 더 경쟁해야 돼...더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일등이 되려면 뭔가에 있어서 치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이등의 길이 일등으로 가는 길인줄 알고 백날 이등이 되는 도를 닦고 있으니...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어떤 괴리감, 허탈감 등이 생길 수 밖에 없기에... 일등이 되는 길보다는 이등이 되는 길을 우리 사회가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일등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라고 생각됩니다. 질과 입자는 차원이 달라지기에... 일등과 이등도 길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서로의 마인드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보며, 무엇을 해도 경쟁이 아니게 하는 사람과 무엇을 해도 옆사람 흘깃흘깃 눈치보며 따라가는 그 자체가 같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눈에 비치는 것이 경쟁으로 비춰져도 사실은 경쟁이 아닌 경우가 더 많고, 단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기는 현상이 더 크다고 생각되며, 또한 경쟁이 아니어도 될 것에 경쟁 마인드를 자꾸 심어주고 몰아 부치는 것은 그 사회가 아직은 일등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러한 일등 사회를 만들어 본 적도 경험해 본적도 없기 때문에.... 어찌보면 사회를 끌고가는 자들의 마음이 이등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것에 연동되어 사는 사람들 마음도 이등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역시 들구요.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들을 파악해본다면...오세님의 경쟁은 무의식이다라는 명제가 맞는 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등이 일등이 되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경쟁을 조장하는 그 행태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니..이등의 무의식에 갇혀버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갇혀 있으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겠지요. 그러면 자유인데...그것이 입자를 선점하여 질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주도권을 얻어서 발언권을 얻어 확산시키는 것...사회에 비전과 제안이 가능해지는 것...비전과 제안으로 소통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길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입자에 도달해 주도권을 가지고도 질에 도달하지 못해서 헛소리하고, 사회를 이상한 진탕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 요즘 너무나 흔하므로 굳이 예가 필요없이 시사 리트윗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3.24 (00:00:40)

[[[입자가 되려는 것을 왜 경쟁이라 하는지, 왜 우리는 주도권, 결정권을 쥐려고 하는지, 주도권은 꼭 경쟁에 의해 획득되는 것인지 등을 알고 싶소.]]]

 

이걸 다 설명하려면 구조론을 첨부터 다시 읽어봐라고 하는게 낫겠고 음. 당연한걸 질문하면 곤란하오. 당연한 질문은 딱 한 단어로 대답하든가 아니면 책 한권으로 대답해야 하니까. ‘1+1이 왜 2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겠소? ‘그럼 3으로 하리?’ 하고 쏘아붙이면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이유는, 간단히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오. 이는 다분히 인간의 공동체적 본능이오. 다른 동물은 그렇지 않고 유독 인간만이 그렇소. 그리고 이는 대개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오.

 

인간들은 말이오. ‘이보게 젊은이! 저 고지에 깃발을 꽂고 오게. 그러면 자네는 영웅이 될 수 있어.’ 하면 빗발치는 총알 속으로 미친듯이 뛰어가서 깃발을 꽂고 오는 존재이오. 그렇지 않을 것 같소?

 

현대인은 교양이 되어서 그렇지 않지만 부족민들은 다르오. 부족민 마을에 40세 이상의 남자가 드문 것은 그 때문이오. 그들은 쉽게 목숨을 내던지오. 뉴기니 정글의 한 부족은 여자들이 18년째 남자아기를 살해하고 있는데, 그래서 18세 미만의 남자아이가 없소. TV엔가 나온 내용. 그 이유는 남자들의 전쟁을 보다 못해 남자를 없애버려야 전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계속 남아를 살해하고 있다고 하오. 여아만 키우고.

 

한국인들도 불과 백년 전까지만 해도 보름날 석전을 벌이는데 만리동고개에 5만명씩 모여서 던지는데, 남녀노소, 사대부, 양반, 부인, 기생, 백정, 선비 할것없이 다 나와서 던지는데 대가리 깨져서 수십명 죽고 다치고 그랬소.

 

현대인도 마찬가지. 자기 글을 RT하면 다들 좋아하오. 여자들도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면 다들 좋아하오. 거기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소.

 

이런걸 단순히 호전성이나 야만성으로 설명하는건 수준이하고, 이 역시 미학원리에 따라 사건을 유발하는 기가 되려고 하는 심리이오. 긴장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이오. 중국인의 전족이나 할례나 아프리카인의 칼자국 문신이나 등등 고통을 주는 방법을 특히 선호하오. 요즘 TV에 나오기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상처가 나도록 매맞는걸 좋아하더만. 피투성이가 될수록 만족.

 

태국 등에는 칼로 볼을 뚫고 채찍으로 등을 때려서 피를 내는 축제가 유행이고. 신라때는 등가죽을 뚫어 꼬챙이로 꿰어서 줄을 잇고 통나무를 매달아 산꼭대기까지 끌고가는 의식이 있었고.

 

잔인성, 폭력성, 과시욕, 명예욕, 영웅심리, 치기, 객기, 우쭐, 잘난척, 등으로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지만 사건의 기가 되어 다른 사람의 가슴에 파문을 남김으로써 승으로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오.

 

즉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오. 잔인성, 폭력성.. 이런 표현은 감정적인 표현으로 과학의 언어로 볼 수 없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냉철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오. 과시욕, 명예욕 이런 것은 결과론인데 의하여가 아니고 위하여이므로 논리적으로 모순이오. 엄밀하게 따지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사건의 원인측이 됨으로써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려는 것이오. 그들은 강렬한 반응을 끌어내기 원하고 그것은 강한 자극이나 고통, 자해, 심하면 살인, 뭐 이렇게 되는 것이오.

 

여자가 명품백으로 주의를 끌려고 하거나 남자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같은 것이오. 사건의 원인측이 되려고 하는 것. 그것이 주도권, 결정권이오. 그렇다면 그것이 왜 경쟁에 의해서 되는가? 그것은 구조론적으로 기승전결에서 기가 1이면 승은 5가 되는데 1의 찬스가 드물기 때문이오. 즉 사건의 원인측에 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오. 자신이 먼저 애드립을 쳤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도 웃지 않으면? 기가 될 수 없소. 그러므로 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오. 사장님이 웃겼는데 웃지 않으면 해고니까.

 

###

 

계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밀도가 탄생하여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구조의 심으로부터 날로 전개하며 밀도에 따라 순서대로 정렬하게 되오. 즉 핵은 가장 단단한 것이며, 가장자리가 가장 무르고 속에서부터 단단한 순서대로 정렬해야 하오. 바퀴축이 가장 단단해야 하고 그 반대로 되면 구조가 붕괴되어 무너지오.

 

눈을 뭉치려면 속에 심을 넣어야 하고, 눈을 굴리면 그 눈을 굴리는 힘(원래는 중력이나 처음엔 사람이 팔 힘으로 눌러줌)이 전달되며, 속에서부터 단단한 순서대로 정렬하게 되어 있소. 안쪽이 가장 단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쪼개지오.

 

모래시계로 말하면 모래알들은 중력에 눌려 있고, 그 무게를 가장 많이 받는 모래알이 모래시계의 구녕 입구에 위치하며 거기서부터 한알씩 차례로 빠지도록 세팅이 되어 있소. 즉 경쟁이란 모래알들이 중력에 눌려 밑으로 내려가려는 즉 먼저 구녕으로 빠져나가려는 현상이오.

 

그러므로 사건의 원인측이 되려면 가장 강해야 하오. 아니면 원인이 되지 않소. 즉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오. 즉 사장님이 아니면 개그를 쳐도 웃기는 커녕 비웃는다는 말이오. 그러면 곤란하잖소.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방법은 하나 뿐이오. 마이너스 전략을 플러스로 바꾸는 것이오. 즉 사건의 원인측이 되기 위하여 폭력, 과시, 위협, 잔인, 악랄, 사기, 함정, 모함, 배반, 강도, 공갈.. 이런 것을 하는 것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오. 즉 부족민이 주로 살인을 통해서 사건을 생산하는 것은 사건 생산의 아이디어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요. 예술을 배워서 연주하거나 그림을 배워서 조형하거나 개그를 배워서 웃기거나 소설을 배워서 읽히거나 드라마를 만들어서 시청하게 하면 되는 것이오. 이것은 플러스 방법이오.

 

결론적으로 인간은 사건의 원인측에 섬으로써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본능은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소란, 폭력, 야료, 거짓말, 행패, 못된 짓, 잔인, 희생, 악랄, 파괴, 함정, 모함 이런 형태로 나타나며 수준이 높은 상태에서 우스개, , 문학, 드라마, 스포츠, 예술, 영화, 패션, 무드, 연애, 등으로 고상하게 나타나는 것이오. 잡배는 파괴하므로써 사건의 원인측이 되고 군자는 생산함으로써 사건의 원인측이 되오. 그런데 파괴하는 잡배의 방법을 쓰다가는 감방에 잡혀가므로 건설하는 방법을 써야 하오. 근데 건설해도 반응이 없는 것이오. 그러므로 승진을 해야만 하오. 승진하면 안웃겨도 웃어주니까. 노래 엉망으로 불러도 박수쳐주니까. 즉 사회에 경쟁이 만연한 이유는 인간이 워낙 웃길줄을 모르기 때문에 웃기는 방법은 간부가 되어 '안 웃으면 몽땅 해고야' 이 방법을 쓰기 때문이오.

 

 

결론적으로 인간사회에 경쟁이 만연한 이유는? 띨빵해서 그렇소.

[레벨:15]오세

2011.03.24 (00: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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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인간사회에 경쟁이 만연한 이유는? 띨빵해서 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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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한큐에 정리가 되는구려. 답변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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