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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아제
read 6828 vote 0 2010.09.18 (14:27:26)

나..
나는 권태로운 사람이다.
그 권태도 하도 오래됐기 때문에 권태조차 권태로워 딜렘마에 빠져있다.
뭐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할 이야기가 아니다마는..

그러나 권태가 개인적인 현상인 것은 아니다.
인간 전반과 연관이 있으며 인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히 "인생은 권태"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대략 여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권태"를 느끼지 못하는 자와는 일단 대화하지 않는다.
소위 잘 먹고 잘 살고 잘 지내는 자와는 나눌 게 없다..
무슨 할 말이 있는가..잘 있다는데..

"인생은 고해다."
아하..이 냥반과는 뭔가 대화가 되겠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
으음..귀가 솔깃한다.
<한 권태> 하는 사람이구먼..

그렇게 나의 권태는 병이 좀 깊다.지병이자 숙환이다.
권태를 권태할 정도면 이건 불치병이라 봐야 한다.
그러므로..이 <권태>에 약간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생각하는 그 권태가 아닐 수도 있으니..

권태의 이 쪽에 <의미>가 있다.
권태는 의미없음에 기인한다.
경상도 식으로 "그러면 뭐하노" 병이다.
봄날이 오며는 뭐하노 그쟈..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권태..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국이 짜다..반찬이 엉망이다..위생과 써비스까지..개판이다..짜증이 확~ 난다.
벌떡 일어나 다른 식당을 찾는다.
오호라~ 끝내주는 식당을 찾았다..값도 싸고 입맛에 딱 맞다..십문칠이다.
맛있게 먹는다..그 순간..

권태다.
이 짓을 한두번 해보나? 몇십년이다.
맛있으면 뭐하고 안 맛있으면 뭐할낀데?

숟가락 살며시 놓고나니..신음소리 나온다..확~ 죽고싶다.
이기 뭐하는 짓이고..인생이 와일노? 눈물이 나온다.
권태다.

권태는...의미없음이다.숟가락 놓음이다..죽음이다.
왜 의미가 없는가..

왜 의미가 없는가..
왜 의미가 없을까?

그건 진정한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접대용 술파티에서 그대는 권태를 느낀다. 구토를 느낀다.왜?
진정한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화밭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노예는 권태를 느낀다..왜?
그건 주인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아..미리 말했었다..권태를 느끼지 못하는 자는 괄호 밖이라고..
콧노래 부르며 즐겁게 일하는 노예..만족하는 자..에게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잘 먹고 잘 살고 잘 지내는 자..와는 이미 소통이 안되니..낑기지 말라.
내가 소통부재..라 말하는 것은 비난이 아니라 과학이다..그렇다..라는 것이다.

권태는 의미없음이고
의미없음은 그게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관있더라도 나의 전체를 흔들만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없다.

맛있다?
그게 정말 그대하고 상관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대가 그렇게 행복하거나 불행한 표정을 지어도 좋다고 생각하는가?

결혼식 날.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다.
신부는 제법 지성이 있는 데다가 처가집 또한 빵빵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결혼식만 무사히 치른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입이 바짝바짝 탄다.

근데..기어코 문제가 발생했다.
그건 내 결혼식이 아닌 것이다..
그 신부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이건 뭥미?

아무 의미없는 것이다.
신부가 아름답든 추하든..신부 아버지가 빵빵하든 아니든..
무사히 결혼식을 치루든 파토나든..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권태..이건 무서운 것이다.
한 방에 모든 논쟁이 떨어져 나간다.
"나하고는 상관이 없구나."

그대는 수비수를 어렵게 젖히고 골모서리를 향해 공을 날렸다..
골이 그물을 갈랐다..그대는 환호하며 골세레머니를 한다..
행복하다.

왜? 그대가 주인공이니깐..그 골은 그대의 것이니깐..
그대가 그 사건의 중심에 있으니깐..

근데 손기정은 울었다..비통해 했다..
아무 의미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없음..권태..

자기 자신 전체에 대해 권태를 느낀 적이 있는가?
세상 전체에 대해 권태를 느낀 적이 있는가?
인생 전반에 대해 권태를 느낀 적이 있는가?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어.>
세상은 나하고 아무 상관없고..
사회는 나하고 아무 상관없고..
인생은 나하고 아무 상관없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맛있다고?
누가 맛있어 한단 말인가.

기분좋다고?
누가 기분좋아 하는가.

아름답다고?
정말 그대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혹시 그렇게 프로그램 된 것은 아니고?

잘 산다고?
정말 그대가 잘 살고 있다고 여기는가?

실패했다고? 망했다고?
누가 실패한단 말인가..누가 죄를 짓는다 말인가.

그 전부를 권태한 적이 있는가?
아예 그대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결혼식이란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

권태다.

나는 질문하고 있다..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석가는 "고해다"라고 말했다..
이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예수는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고.."라고 말했다..
이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화두다.

인생은..권태다.
의미없음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답은 제각기 내려야 하고 제각기 찾아야 한다.

권태다.
어쩔텐가?

의미없음이다.
의미없으면 끝장이다.
어쩔텐가?

나와 관계없으면 아무 의미없는 것이다.
여하히 그대와의 관계를 창출할텐가? 그건 그대 몫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9.18 (15:20:15)


너무 권태로와 죽을 것 같아서..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오. 그 의미를 찾을 동안은 권태롭지 않으니까...목표가 있으므로...
하루에도 몇번씩 권태가 찾아오곤 하오..그러나 남들은 그것을 모르오. 내안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예전에 스물서너살 쯔음에..친구들과 낮부터 강남역 어느 호프집에서 술마시다 저녁 9시 무렵쯤 친구들이 다 모였기에..노래방을 갔는데...
그때 갑자기 어떤 권태가 물밀듯이 몰려 들었었소. 갑자기 세상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기분... 그래서 집에 돌아오고 나서 한 세달간은 그 상태가 유지되었었소.  벗어나려고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가 없었소. 그때 세상을 조금 달리보게 되었소.
그러나 한 5~6개월 지나니 다시 예전처럼 되었소. 그러나 그 뒤로 권태는 가끔가다 침범하지만... 그때만큼은 아니오 강도로 따진다면...
사실...권태는 늘 느끼지만... 조금씩 한두살 먹어가면서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는 참 우울했었소.
빠져나갈 곳이 없는 세상에서 모두 참 ...어쨌든 어렵소...
미학에 관심을 갖고, 또는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다 알고 나면 그 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내문제이고..세상은 여하튼 여기까지 흘러왔고 흘러가고 있소.
나에게 한정하여 생각하면 가치없는 것들, 나에게 한정하면 더이상 뚫고 나갈 것이 없는 것들도...밖을 보면 그런 건 무시하고 계속 전진하고 있소. 그런 것을 볼 때 권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오.
내가 권태로워도 아제님 잘 살듯이(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여짐), 아제님 권태로워도 저는 잘 살듯이... 모두 그렇게 비춰지며 타인을 자극시키며 긴장시키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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