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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공적인 일은 좋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아이와 어떤 관점으로 만날 것인가? 학부모와, 나아가 이 사회와 어떤 관점으로 만날 것인가? 이것은 지속적으로 보람있는 수업을 위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운영을 위해,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삶을 위해 깊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다.
교육을 하려면, 특히 창의성을 다루는 예술교육을 하려면 아이들의 편에 서겠다는 분명한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는 자신을 옹호할 수 없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고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 하나하나의 가능성이 깨어나 놀라운 성장의 드라마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과도하게 결과지향 목적지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리듬을 무시하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교사는 매 시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요구하는 조급한 사회에 맞서 아이의 동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한다. 아이의 부모나 그를 둘러싼 어른들의 몰이해로부터도 지켜야 하고 또 지지 않고 설득해나갈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교사는 기술 전달자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을 아무 말 없이 수용하고 따른다면 어쩌면 커다란 저항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수업시간에만 자신의 역량을 한정시켜놓으면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포기해버릴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수업마저도 자신이 바라는대로 지켜갈 수 없게 된다.
많은 교사들은 자신의 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불만족은 환경을 개선하는 동기가 된다. 불만이 없으면 개선도 없다. 그러나 개선을 향한 의미 있는 노력이 없는 한 불만은 영혼을 잠식하기만 할 뿐이다. 계속 불만족에 머무르지 말고 어떻게든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기획에 착수해야 한다.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중심을 공고히 해야 한다. 본질에 대한 충분한 통찰을 통해 생각을 단단하게 해야 한다.
생각을 단단하게 가진다는 것은 다름 아닌 철학을 가진다는 뜻이다. 철학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상황에 따라 아무렇게나 변하지 않고 내적 일관성을 가지며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다. 철학이 없는 사람은 변화된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애초의 태도를 바꾸어 상황에 대처한다. 중심을 가지게 되면 외적인 상황이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내적 일관성을 흩트리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개선해나갈 것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관습이 막아놓은 온갖 울타리를 해체시켜온 것이 예술의 역사이다. 예술교육은 아이들에게 표현의 한계를 넓혀줄 수 있어야 한다. 제약없는 범위에 대한 영감을 주는 것이 예술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깨달음이란 막힌 것을 단번에 뚫어주는 통찰이다. 아이들과 만날 때, 교사가 단지 지식 전달자의 입장을 고수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생겨나는 창의적인 순간들, 변화와 깨달음의 사건들을 맞이하게 된다.
깨달음의 순간들은 교사와 아이들의 체험을 확장시킨다. 좋은 환경에서 풍부한 체험을 축적하여야 건강한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다. 번득이는 순간들로부터 풍부한 체험을 쌓는 일은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교육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임은 분명하다. 좋은 토양에 뿌려진 좋은 씨앗이 풍성한 수확으로 이어지듯이, 체험이라는 교육의 출발점을 명확히 해야 창의적인 성취라는 열매를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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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놀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학습이다. 좋은 환경에서 충분히 놀지 못하면 건강한 동기를 발현시키지 못한다. 아이들은 온갖 물질을 스스로 만져보면서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흥미와 호기심을 따라가는 이 생동감 넘치는 과정은 외부에서 제시되는 구체적 목적에 대응하여 집중적이고 지속적이며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때문에 목적이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 이 활동을 교육내용으로 수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호기심은 충족되고 흥미는 계속 되어야 한다. 호기심이 충족되지 못하면 흥미를 잃고, 흥미가 없으면 직접 시도해보지 않는다. 해보지 않으면 느낌이 희미해지며 결국 자신감을 형성시키지 못한다. 무엇보다 엄청난 낭비처럼 보이는 이 과정을 잘 거치지 않으면 효율성을 추구하는 다음 단계로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조형적으로는 소재의 탐색이다. 조형 작업에 사용되는 온갖 재료와 도구, 그리고 개념들까지 모두 탐색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가르침만으로는 학생이 주도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 소재에 관한 가장 건강한 관점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내용에 가장 적합한 재료와 도구를 발견하고 결정하는 데 있다. 소재 탐색은 이렇게 소재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창조적 조형교육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소재건 충분한 탐색의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원시인이라도 된 듯 재료와 도구가 탄생하는 원초적인 과정을 체험해보도록 해야 한다. 물질에 대한 풍부한 체험을 통해 표현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 그러한 탐색의 기반 위에서 의식적인 조작의 욕구가 자라나는 것이다.
흥미를 쫓아가는 아이들의 탐색활동을 아무런 제한과 규칙도 없이 아무렇게나 노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이 과정은 정교한 규칙과 합의가 필요하다. 교사는 아이들이 재료와 도구, 개념을 더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좋은 진행자,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공이나 라켓만으로는 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선을 긋고 네트를 만들고 적절한 규칙을 합의해야 비로소 테니스라는 무궁무진한 즐거움이 창조된다. 온갖 화려한 기술이 개발되고 창조적인 플레이가 그 안에 생겨나는 것이다.
탐색작업은 즉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유연하게 허용하고, 또 참여해야 한다. 즉흥성이 넘치는 아이들의 탐색은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장의 그림이나 만들기에 한정되지 않는,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순간의 예술이다. 이런 순간들을 아이들과 충분히 즐기고 창조할 수 있어야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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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재와 접하고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경험이 쌓이면, 그것을 더욱 효율적으로 다루고 싶어진다. 그러면 물질을 자신의 의도를 향해 더 가까이 끌어당기기 위해 제어와 조작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기법을 익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풍성한 낭비의 과정을 지나 정교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단계이다.
탐색의 단계를 잘 거쳐서 조작의 욕구가 살아있다면 교사의 역할이 분명하게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이 때 교사는 꼭 필요한 만큼 정확하고 간결하게 개입해야 한다. 개입이 거추장스럽고 길어지면 오히려 교육적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자연스러운 몰입이 없다면 억지로 교육내용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하기보다 필요가 형성될 때까지 우회하는 것이 좋다.
한계 상황에 부딪혔을 때 아이는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막연한 불만족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는 그런 상태를 하나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불만족이 부르는 필요를 잘 살펴 적절한 방법론을 제시하여 교착된 상태를 넘어서게 해줘야 한다.
기법이나 기술은 한번에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기 위한 원리이다. 탐색의 과정에서는 수많은 시도를 통해 경험적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기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된다. 창의력 교육이라고 해서 아무런 기술이나 원리도 다루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적절한 시점에 기술이나 기법적 숙련을 통해 이해가 확장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표현은 언제까지나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나 무조건 잡다한 조형의 기법과 개념들을 수집해서 아이들에게 나열하는 식으로 가르쳐서는 곤란하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차원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그림을 그릴 때 인식수준이 평면에 머물러 있으면 여러 개의 대상을 나열하는 제한된 표현만 한다. 평면에서 공간의 인식으로 도약하지 못하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대상을 나열하는 식의 납작한 표현을 하고 있을 것이다.
탐색의 수준에서 표현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관찰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간과 입체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단지 공간을 그리거나 입체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평면에서 입체로 인식이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평면적 이해가 입체로 전환되면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표현이 풍부해지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평면에 나열하기만 하던 대상을 공간 속에 포개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납작한 종이가 깊은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입체물이 공간을 차지하는 덩어리라는 인식이 생기면 비로소 온갖 변형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해의 차원이 상승하는 것이다. 표현이 한계에 이르러 답답할 때 더 많은 가능성을 향해 새로운 이해를 받아들이게 된다.
20세기에 들어 조형예술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것은 예술 표현이 과거처럼 외부에서 규정하는 기준만 따르거나, 혹은 반대로 그저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이고 내적인 원리를 지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이들도 표현에 있어 즉흥적인 차원을 넘어 경험을 효율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 원리가 있다는 것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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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의 흐름이다. 사람의 관심사는 특정한 흐름을 가지고 이어진다. 조형적으로 주제는 화면을 구성하는 내적 원동력, 즉 모티브가 된다. 개체에 대한 표현이 모티브와 만나 확장되면서 화면 안에 힘의 긴장이 생긴다. 그 힘들을 엮어내는 일이 구성이다. 이렇게 화면을 조직하려는 욕구는 습득한 기술이나 객관화의 능력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아무리 객관적인 방법들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모티브와 만나지 못하면 금새 식상해지고 만다. 화면이 객관적인 공간을 연출하기만 한다면 남들에게 자랑거리로 삼는 정도의 동기를 가질 뿐이다. 기술은 개인의 모티브와 만나야 신나게 확장되고, 객관적 표현은 화면이나 공간의 구성으로 발전해야 폭넓은 표현의 가능성을 갖는다.
공간을 표현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따라하기다. 거기서 한 차원 더 올라서려면 화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화면을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로 인식하게 되면 또 다른 차원이 열린다. 주제를 통해 화면에 하나의 중심을 부여하고, 내부의 질서를 요구하게 된다.
화면에 배치하는 단순한 점과 선, 색, 형태들 사이의 긴장을 인식하게 되면 새로운 가능성을 접하는 것이다. 단순히 실제 공간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 내부의 힘의 균형을 다루면 더 많은 상상과 창의의 가능성을 열어젖힐 수 있다.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을 화면에 쏟아내다보면 자연스럽게 화면의 긴장을 느끼고 그 안의 변형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구성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상승을 경험하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일은 두 가지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킨다. 자신의 표현을 소통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얻게 되고, 동시에 다른 이가 표현하는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의 주제를 발견하는 과정은 자신의 세계를 펼쳐놓는 출발점이라고 하겠다. 평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풀어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조형적 개념의 이해를 응용, 확장하고 표현의 지속적인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다.
표현에 관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허용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표현을 보고 그것을 현실과 쉽사리 혼동한다. 현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내용은 표현해서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의 표현 내용을 재단하고 개입한다. 그러나 표현이 제약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표현을 즐기는 한은 그 내용에 대해 제약을 가하기보다, 그러한 내용을 표현하는 현실을 개선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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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이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저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사람의 주제는 관심사의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어간다. 지리멸렬한 개인의 주제를 한 줄로 꿰어낼 형식을 창조하지 못하면 소통이 되지 않는 자의적 만족으로 그치고 만다. 자기만족을 넘어 타인과 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제를 펼쳐낼 수 있는 양식을 창조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인의 창의성이 완결되며, 소통을 위한 열정이 발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통으로 자신이 확장되는 경험은 창의의 근본적인 원동력이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완성한 작품에 대해 보상을 원한다. 보상의 가장 세련된 표현이 소통이다. 심부름을 하면 사탕을 준다. 그러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 뿌듯한 느낌에 도달한 작업은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는 마음으로 하이파이브를 쳐주고 어울리는 곳에 전시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어떤 일이든지 그에 합당한 보상과 소통은 또 다시 새로운 동기가 되어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소통의 욕구도 더 커지고 넓어진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적절한 호응과 보상이 모든 것이다. 더 자라면 교사의 인정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까지 마음이 가닿는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은 자라서 대중과 접촉하고, 역사의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간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도 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 완전을 향한 열정이 자란다.
아이들의 소통에 대한 욕망을 잘 틔워주고 자라게 해주어야 한다. 소통의 기쁨이 새로운 작업의 동기가 되고, 완성의 열망이 되어 지속적이고 주체적인 작업을 부추긴다. 집이나 작업실 벽이나 복도에 작품을 걸어서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것, 전시장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작품 속에 담긴 완전을 향한 열정과 마주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잊은 어떤 우주적인 바탕을 떠올린다. 그 아름다움 앞에서 뒤돌아 있던 사람들이 비로소 서로를 향해 마주 앉는다. 사람들에게 가 닿는 길, 그것이 바로 양식(樣式, style)이다. 세상에 가닿을 자신만의 통로를 갖지 못하면 그의 삶은 제한되고 정체된다. 아이들이 완전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건강하게 지켜간다면 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조적인 방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공교육이거나 사교육이거나 할 것 없이 그저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들다.
저런 깨달음은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유연하고 성실하게 노력해왔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나 하나의 스텝이 체험 속에서 우러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탕소가 있기에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지쳐버리지 않을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다.
많은 교육 지침서들.
부모들을 교사들을 가르치려하고 자기자랑에 바쁘고, 보여주기에 바쁜 글과 결과물들.
그것이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지치고 힘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뭐가 진짜인지 세상에 솔직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눈치보지 않고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들은 (인간은) 저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환경로를 구축한 공동체라야 탐험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