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한지 몇 주밖에 되지 않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쓴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의 영어 번역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와 그 주제가 바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라고 하는데요. 파리경제대학 피케티 교수의 15년에 걸친 연구 결과가 오늘날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과 맞물려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케티 교수와 UC버클리의 임마누엘 사에즈(Emmanuel Saez) 교수는 미국 내 소득 5분위, 혹은 10분위와 관련된 그 동안의 지루한 논의를 훨씬 더 날카로운 논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상위 1퍼센트 부자들, 그리고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힘든 0.1퍼센트와 0.1퍼센트 부자들의 자본 축적에 대한 논쟁으로 말이죠. 피케티 교수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세금과 관련된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해 이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프랑스, 영국, 일본과 그 외의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된 것입니다. 엄청난 두께를 가진 야심작이라고 볼 수 있죠. 제목부터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대놓고 상기시킵니다. 작년에 출간된 이 책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엄청난 찬사는 영어권 국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지난 몇 주간 다들 그 책 얘기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모두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 책이 과연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파이낸셜타임즈의 마틴 울프(Martain Wolf)는 이를 매력적이라고 호평했고, 제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마치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책을 굉장히 길고, 질척거리는 구불구불한 강에 비유하고 싶네요. 엄청난 물살로 끊임없이 떠내려갈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양 옆으로 펼쳐지는 멋진 풍경들을 감상할 수도 있는 그런 강 말입니다. 끝없는 숫자와 그래프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동시에 발자크와 오스틴의 소설, 그리고 디즈니 사의 만화 ‘아리스토캣(The Aristocats)’에 대한 짧은 분석 역시 실려 있습니다. 일반 대중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지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꼭 사서 보세요. 서가에 꽂아놓기만 해도 꽤 괜찮을 겁니다. 이 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피케티 교수는 부자가 되겠죠. 그가 부자가 되고 나면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꿀지 안 바꿀지도 두고 볼 만하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현재의 피케티 교수는 소득 불평등 증가에 대한 부정적 입장과 이에 대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글을 쓰는 다른 많은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견해를 책에서 제시한 데이터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데요. 책 말미에 “저의 모든 견해는 본질적으로 미약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비판 받고 도전 받아야 합니다”라고 쓴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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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여전히 이 책을 다 읽기가 어려운 분들이 있겠죠. 바쁜 사람들을 위한, 결코 짧지만은 않은 요약을 여기 준비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본(피케티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부(富)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방한)이 증식하는 속도는 전체 경제의 성장 속도보다 빠릅니다. 자본으로부터 얻는 소득은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합쳐져서 불평등을 증가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피케티 교수는 자본주의가 결국 스스로를 붕괴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마르크스만큼이나 급진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데이터 수집 방식을 신뢰하지도 않고요. 그가 진짜로 불만을 가지는 것은, 더 많은 자본과 낮은 세금이 성장을 촉진하고 임금 상승을 불러오며 결국에는 이를 통해 불평등은 자연적으로 해소된다는 주류 경제학의 가르침입니다. 2-300년 동안의 데이터들을 모두 분석해 보았을 때, 자본 이윤율과 경제적 불평등의 감소는 오직 1차, 2차 세계대전 이후에만 예외적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대량 증세와 자본 파괴가 이루어졌던 바로 그 시기에만 말이지요. 그리고 이 자본 파괴 현상이 엄청난 경제 성장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의 평화로운 시절이 지난 오늘날, 성장은 둔화되었고 세율은 낮아졌으며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는 모든 선진국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이런 흐름을 대체할 무언가가 나타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합니다.
다음은 방법론입니다. 피케티 교수는 이 책에서 경제 성장을 이끄는 원인이나 자본 소득 대 노동 소득의 최적 비율 같은 것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습니다. 현대 경제학의 이론 중심적 접근은 이제 끝났다는 것이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케티는 “보스턴 근처의 한 대학”(MIT)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쓴 글에 따르면 그는 “그곳은 경제학자가 존중 받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끌어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과학적으로 들리는 이론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회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증거 중심적인 그의 방법론은 이 책이 가진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가 이 책을 “질척거린다”고 말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피케티는 이 책에서 자본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인지, 불평등의 적정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세율을 어디까지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이 가장 풍부하게 데이터를 끌어 오는 부분은 프랑스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는 1789년 혁명 이후부터 부과되기 시작한 상속세, 그리고 기록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오래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볼 수 있지요. 프랑스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자본 대 소득의 비율이 7대 1 정도로 수백 년 동안 지속되었으나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2차 대전이 끝난 다음부터 점차 원래의 수치를 회복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1차 대전 이전의 수준까지는 아닙니다만, 그것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프랑스의 소득 불평등은 아마도 프랑스혁명 직전에 정점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서도 비교적 굉장히 높은 수치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고요. 1914년부터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고, 다시 원래의 높은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피케티 교수는 말합니다. 프랑스만큼 완전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기록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속도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빨랐다고 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다음은 21세기에 대한 예측입니다. 피케티 교수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유럽에서 부(富)가 증가하는 현상이 궁극적으로는 19세기 세습자본주의의 부활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 소설 속의 인물들을 묘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재산을 상속받거나 결혼을 통해서 이를 획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21세기의 상황이 19세기만큼이나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피케티가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앤소니 트롤러프의 소설에 보면 영국 왕족과 귀족이 부유한 사업가들과 야망 있는 전문가 집단과 거의 대등한 관계로 교류하기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19세기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피케티의 데이터가 제시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세계대전의 여파와 높은 세율이 부의 세습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되살아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부를 세습 받는 사람들은 재산을 흥청망청 써버리진 않는다는 피케티 교수의 가정을 물론 의심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는 돈이 돈을 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는 미국 내 대학들의 기금 운용을 하나의 사례로 제시하면서, 가장 많은 액수의 기금을 모집한 대학들의 수익률이 나머지 대학들과 극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은 미국 내의 불평등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19세기 미국의 부와 소득은 유럽보다는 덜 집중되어 있었죠.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 고소득자들의 소득이 더욱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유럽의 경우보다 덜 극적이긴 하지만 이후 미국에서도 소득 격차가 줄어드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1970년대부터는 미국의 1%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상위 0.1%들에게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가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자본과 상속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케티는 “슈퍼매니저”들의 등장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미국 내 0.1%들의 소득 중 60%가 기업의 관리직과 금융 전문가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득이 이렇게 엄청나게 치솟게 된 주된 원인이 최고소득세율의 인하에 있음을 밝혔습니다. 물론 이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그는 미국의 불평등에 대해서만은 다른 국가들에 대한 분석과 달리 역사적 분석을 깊게 사용하지 않습니다.그러나 확실히 흥미로운 점은, 그와 그의 동료들이 아메리칸이코노믹저널(American Economic Journal)에 실은 논문에서 최고소득세율 인하와 상위 1%의 소득 증가가 13개국에 걸쳐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증명해 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상대적 소득 불평등의 증가가 어떤 경제적 효용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로운 것이죠. 미국의 경제 성장이 다른 국가들보다 약간 빠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인구 증가로 인한 것으로, 1980년대부터 1인당 경제 성장률은 미국에서든 서유럽에서든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균형 때문에, 미국의 중간 소득은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요.
피케티는 여러분이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법한 결론을 제시하는데요, 세계적 차원에서의 누진적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 년에 0.1%에서 시작해서 50억 유로(69억 달러) 이상의 자산에 대해서는 2%까지 부과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처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책에서 여러 번 자신의 생각을 “이상적”인 것이라 표현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이 생각이 왜 더 현실적이고 공정한 방법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이것이 다른 방법들보다 자본주의 내에서 부(富)가 창출해 내는 긍정적 결과들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있습니다. 전 유럽 차원의 부유세를 도입하는 것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다른 어떤 방법들보다 간단하며, 공정하고, 유로존 재정위기에 있어서도 훨씬 성장 친화적인 방법이라는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강제로라도 부의 재분배를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요. 미국이 최고소득구간 세율을 80%까지 올려 거의 “몰수”(그의 말에 따르면)에 가까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비록 그런다고 해서 조세 수입도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겠지만(이 부분에서 그가 근본적으로 아서 래퍼(Arthur Laffer)의 이론에 동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이죠. 어쨌거나 이런 그의 주장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줍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의 책에 대한 열광적인 칭찬을 담은 기사와 함께, 뉴욕타임즈는 온라인에 <21세기 자본론>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그리고 케인즈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과 함께 나란히 놓은 그래픽을 게재했습니다. 그러기엔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 이전에도 피케티와 그의 동료들은 소득 불평등에 대한 전 세계적 차원의 논의를 이미 시작하고 있었죠. <21세기 자본론>으로 피케티는 경제학계 안팎의 역학관계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불평등의 증가가 경제성장의 부산물이라거나, 자본이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쉽게 전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를 가지고 증명해야만 할 테니까요.
번역 |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 장은빈
저스틴 폭스(Justin Fox)
저스틴 폭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그룹의 편집장이자 <합리적 시장의 신화>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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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보면 웬지 동렬님이 보고 구조론 칼럼이 한 편 나올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듬
오세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소.
이 내용을 지지한다는건지 반대한다는건지.
눈에 띄는 내용은 없네요.
조낸 긴데 먼 소린지 딱 석줄로 요약해주면 좋겠소.
하여간 증세하자는 말은 백만년 전부터 나온 말이니 새삼스러울게 없고.
중요한건 이런 논의들이 다 거짓말 게임이라는 겁니다.
아마 감세론자들의 거짓말이 더 센 거짓말이라는걸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거짓말 같은데
부분적으로 맞는 말도 더러 섞여 있겠지만
어떻든 다 거짓말 공화국 안에서 일어나는 거짓말 게임이므로 안 쳐줍니다.
본질이 거짓말이면 부분적으로 참말이 제법 섞여 있어도 어차피 다 거짓말이라는 거죠.
하등의 가치가 없는 그냥 거짓말놀이일 뿐. 같은편끼리 시시덕대기 좋은 소리.
제 견해는 학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정치는 상부구조, 경제는 하부구조이며
정치는 전쟁이고 경제는 역시 전쟁입니다.
미국이 전쟁으로 세계를 다 먹고 그 덕에 맘껏 증세를 했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니 증세로 미국경제가 일본경제에 밀렸죠.
그때 그시절 미국의 재난은 세 가지.
첫째 냉전으로 인한 군비증가, 둘째 석유값 폭등, 셋째 일본경제의 질주
미국이 패배한 겁니다. 왜? 실탄이 없었거든요.
그런 판에 달나라 간다니 어쩐다니 하며 흥청망청 놀아먹었으니.
월남전이라니 이런 사치는 네로황제도 누려보지 못한 사치입니다.
얼마나 사치스런 전쟁입니까?
단지 패권국가 기분내려고 300만 때려죽이기 살인놀이.
증세로 패권전선에서 기분 내다가 경제전선에서 밀리자
아뜨거라 하고 뒤늦게 기업에 실탄 밀어준게 감세죠.
그래서 이겼습니다. 일본기업이 다 거꾸러졌죠.
이겼으니 다시 증세할 때가 된 거죠.
증세해서 생긴 돈으로 세계를 다 패죽여야죠.
깡패가 깡패의 본업으로 돌아가는거.
경제전쟁의 목적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며
돈으로 실탄을 마련하고 그 실탄으로 사람을 죽이는게 미국의 직업입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을 죽이죠.
이러한 전쟁의 본질을 위의 본문내용 어디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하는 거에요.
최근 독일이 잘 나가는 이유가 뭐에요?
감세? 증세? 장난하나? 놀구있네. 초딩이냐?
독일은 EU통합으로 EU를 다 먹은 거에요. 땅따먹기.
그냥 유럽을 통째로 쌈밥으로 싸서 독일 입에다 넣어준 꼴이 되었죠.
독일은 2차대전의 가해자입니다.
피해자가 홀딱 벗고 가해자에게 날 잡아잡슈 하니까 가해자 왈
그래 너를 잡아먹어줄께. 그리고 홀랑 털어먹었죠.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는 날로 거지가 되어가고.
이게 전쟁입니다. 결국 영토싸움인 거에요.
물론 이 역시 그때 잘 나가던 일본을 주저앉히려는 정치적 기동의 일환이었죠.
증세냐 감세냐는 세금 걷는 기술에 달린거고
대개 오른쪽 호주머니 돈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뻘짓입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신용카드 사용으로 세원이 들통난게 중요한 거죠.
법인세를 내든, 소비세를 내든, 상속세를 내든, 재산세를 내든 어디 하나는 걸립니다.
이건 세무기술자들이 알아서 할 기술의 문제이고
그 어떤 세무기술자도 마피아 돈은 못 털겠지만.
결국 경제는 전쟁이고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첫째 병사를 양성해야 합니다. 교육에서 결판이 난다는 거죠.
둘째 동맹을 강화해야 합니다. EU통합과 FTA같은 시장확대, 경제블록에서 결판납니다.
셋째 실탄지급.. 이건 환율조작이나 감세, 금리조정으로 기업과 가계를 밀어주는 거죠.
교육을 잘 하고, 외교를 잘 하고, 환율조정, 금리조정을 잘 하면 경제가 됩니다.
세금도 그 과정에 한 꼽살이 들어가는 건데 본질은 아네요.
그래도 비중이 뭐 한 20퍼센트는 되겠죠.
승부는 총구에서 납니다.
정신 못차리고 뻘소리 하는 넘은 패죽여야 합니다.
전쟁 판에 장난하냐?
그리고 경제가 더 이상 성장을 안 하는 것은 인간의 수요가 원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식, 의, 주, 차, 휴.. 이 다섯가지 외에 더 할게 없어요.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자 65퍼센트 여자 55퍼센트 정도라는데
이걸 80퍼센트선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런건 세금의 문제가 아니고 교육과 문화, 사회관계의 문제입니다.
경제활동을 안하는 가부장제 문화를 그냥 놔두고 세금이니 성장이니 미친 넘들.
곧죽어도 본질을 건드려야 합니다.
첫째 전쟁.. 둘째 병사.. 셋째 동원입니다.
전쟁은 땅따먹기고, 병사는 교육이고, 동원은 경제활동참가율입니다.
이 외에는 경제가 어느 정도 한계에서 더 성장을 하지 않으므로
이 범위 안에서 최적화만 가능할 뿐 더 이상은 없습니다.
경제는 절대 무한히 성장하지 않습니다.
승부는 총에서,,,,,냉철한 결론입니다,,,,,힘이죠,,,총,,,머리가 맑끔 해집니다,,,,,감사
21세기자본론,,,,,이거이갱독 했슴,,, 주류경제학 논리들,,,,,별차이가 없던데,,,,,,차라리 구조론에서 나온책들 보는것이 심신에 평온 답을주던데,,,,
소득의 불평등과 증세가 자본주의의 근간입니다.
경제란 성장을 위한 유인책으로서의 소득 불평등, 복지를 위한 증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거죠.
성장과 분배의 황금비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상위 20% 계층이 총 수익의 80%를 가지고 나머지 20%를 세금으로 내놓는다면 어떨까요?
성장이 멈추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비율이면 경제효용이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