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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086 vote 0 2014.03.24 (20:47:06)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lecture&wr_id=215012

 

  

위에 있는 세 그래프의 수치가 사실에 가깝다면 결과적으로 루소가 주장(자연으로 돌아가자!)하는 평화로운 원시시대나 자연상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홉스의 통찰처럼 유기체에게 폭력은 유전자에 내재된 생존방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침탈 직전 아즈텍이나 잉카제국의 내면을 다룬 영화 아포칼립토는 평화로운 밀림 속 부족을 사악한 제국이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하는지를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에 숨겨진 면은 사실 밀림 속 부족도 자신의 이웃 부족에 대해 비슷한 수준(사실 카니발리즘과 여성에 대한 갖가지 폭력이 일상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됨)의 폭력을 행사하였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도 경계지역에서 자기 영역을 지나가는 타부족을 조우할때 굉장히 긴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수렵영역 내에 들어오는 경쟁자에 대해서 당시에 자비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렵생활 중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서는 제인 구달의 침팬지에 대한 연구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영역 경계선에서 폭력적 상황이 자주 일어나고 이웃 집단에 대한 기습과 학살 그리고 카니발리즘이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흔히 유인원 중 침팬지의 공격성에 대비되는 보노보의 평화애호적 특질이 언급되는데 최근 연구에서는 보노보의 성적 탐닉에 의한 평화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즉, 쉽게 관측되지는 않지만 보노보도 경계영역에서는 폭력성을 보이고 있으며 굶주림과 같은 스트레스에서 더 높게 나오고 있답니다(사실 자연적 상태는 굶주림과의 공존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매우 한정된 개체수로 멸종위기에 있는 보노보가 유인원의 특성을 모두 대변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루소가 주장한 자연은 사실 공중보건의 부재로 인한 질병과 기아에 대한 공포 외에도 일상적인 폭력이 존재하던 곳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 예로는 최후의 에덴이라는 부제가 달린 야노마모 족에 대한 책을 보면 놀라게 되는 이 종족의 폭력성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 선사시대 또는 국가형성 이전 단계의 사회에서는 일상적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http://blog.naver.com/alfjh5?Redirect=Log&logNo=100044139727


또 다른 예로 말레이시아 쪽 안다만 해역에 사는 세마이족의 경우 한때, "The Semai: A Nonviolent People of Malaya"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비폭력적 원시부족으로 이야기 되었지만 가까이서 관찰한 보고에 따르면 10만명당 30명 이상의 살인사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들의 폭력성은 외부인에 대한 가차없는 응징(술에 취해 떠 내려온 두 어부를 즉각 처형시킨 2006년 사례)처럼 그렇게 평화적이지는 않다고 합니다.

 

사실 국가 이전 단계의 폭력성은 원시부족의 일상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서구인과 많은 한국인의 필독서(?)가 된 성경(특히 구약) 속의 여러 에피소드는 당시 유목민의 폭력적 일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한 사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종교적 이야기가 아닌 당시 사회상의 단편으로 이해해 주셔으면 합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친부에 의해 큰일 날뻔 했었죠.)의 딸 디나는 다른 유목 부족(세겜)에 납치를 당해 성폭력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로인해 부족간의 갈등이 커지게되자 당시 전통대로 가해 부족은 피해자인 디나와 가해자를 정식으로 결혼시키겠다고 야곱 가족에게 제안을 합니다. 야곱 가족은 이들 부족 남자들이 할례를 하지 않은 것이 꺼림직하여 할례를 하면 결혼을 시키겠다고 역제안을 합니다.


이에 가해 부족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치르게 되는데 상처가 아물기 이전 즉 이들이 무력화된 시점을 노려 야곱의 아들들이 사람을 이끌고 가해 부족을 쳐들어가 몰살을 시킵니다. 명분은 자기 동생을 창녀처럼 놔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해 부족 전체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남자들을 몰살시키고 여자들과 가축은 전리품으로 취했습니다.       

 

결국 국가라는 보다 큰 규제집단이 형성되고 나서 국가권력에 의한 강제적 질서가 이전의 일상적 폭력을 감소시킨 면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형성이 결국 강제적 평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 사례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뉴기니아 점령기를 들 수 있는데 소위 팍스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 각 부족의 지난한 폭력적 충돌이 잦아들었습니다. 한 아우야나 원주민은 이제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른 아침에 소변을 보러 집 밖을 두려움 없이 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팍스 오스트레일리아가 가져온 변화를 이야기했답니다. 


다만 뉴기니의 독립 후 다시 폭력적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는데 비슷한 역주행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남아공화국 등이 있습니다. 물론 남아공의 백인정부가 옳았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중앙권력의 존재가 다른 폭력을 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즉 국가성립 이후 세계는 평화로와졌다(peaceful)기 보다는 강제적 평화(pacification)의 시대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홉스가 바라본 폭력의 기원 및 국가

 

루소와 달리 폭력에 대해 보다 본질적 통찰을 가한 이는 홉스입니다. 홉스는 폭력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경쟁(competetion)

모든 생명체는 일종의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로서 다른 생명체와의 경쟁은 기본적인 것이며 이 경쟁관계로 인해 폭력이 유발된다고 봤습니다. 결국 경쟁과정의 폭력은 자신의 이익(gain)을 얻기 위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공포(diffidence)

사실 diffidence는 주저함으로 번역되지만 홉스가 사용한 실제 의미는 공포나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비폭력적인 사람들이라도 상대가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면 결국 내가 먼저 선제적 조치(pre-emptive action)를 취하게 됩니다. 공포로 인한 폭력은 안전(safety)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명예(glory)

홉스는 glory라고 했지만 honor에 가까운 의미입니다. 사실 부질 없는 미소를 위해 폭력을 벌이는 일을 의미합니다. 복수도 포함해서 말이죠. 복수와 같은 행위는 억지(deterrence)적 폭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 공포와 관련되어 흥미있는 주제는 국가간의 공포게임입니다. 상대국이 나를 공격할 지 모른다는 공포는 결국 내가 선제공격을 해야하는 선택에 몰리게 되는데, 만약 상대국이 첫번째 공격에서 살아남아 다시 보복을 할 수 있다면 결국 선제공격이 억제되는 상황이 되고, 양쪽이 보복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결국 공포의 균형이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핵공격의 위험에 대해 보복능력을 서로 가지고 있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는 상호억제(mutual deterrence)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국이 보복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상대국이 반대편이 공격을 받아도 '이미 내가 손해를 본 상황에서 보복을 한들 뭘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즉각적 보복시기를 놓치는' 이성적 판단을 할 여지가 있다면 마음껏 선제공격이 가능해집니다.  

 

홉스가 폭력의 본질에 대해서 정의한 이익(gain, 경쟁을 통한 획득), 안전(safety, 공포의 제거), 억지(deterrence, 복수를 통한)는 선사시대부터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점차 이해 당사자간의 폭력이 제3자인 국가가 개입되어 일반적 폭력을 억제하는 식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 삼각형과 같습니다. 공격자와 희생자간의 침탈과 보복이 전형적인 1대1의 폭력이라고 한다면 방관자(bystander)는 해당 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이익 침해(소위 collateral damage)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홉스의 Leviathan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구성원간의 싸움으로부터 이익을 얻기보다는 손해(누가 이기든 어차피 국가재산상의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강제력을 동원해 사적충돌을 억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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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룻소의 자연은 구조론의 완전성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 룻소가 어떤 의미로 말했는가와 상관없이, 인간이 그러한 가르침에 영감을 받는 부분, 곧 뇌가 열렬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종교적 완전성의 의미다. 그냥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멍청한 뜻으로 받아들였다면 벌써 잊혀졌다. 인간은 자연과 우주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2) 부족민들은 폭력에 무감각해져 있으므로, 현대인이 아침에 뉴스를 보고 커피를 마시며 뇌를 긴장시키듯이 폭력적 뉴스에 의해 기운을 차린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맞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식이다. 이러한 부분은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공양미 300석에 딸을 팔아먹은 심봉사의 폭력성도 그렇다. 그런데 부족민은 그러한 잔인한 측면을 즐기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3) 폭력이 경쟁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폭력의 상당한 부분은 집단의 의사결정을 위한 긴장상태 곧 부족민에게 스트레스를 가할 목적으로 생산된다. 이러한 점은 가속적으로 폭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평화로운 부족이 갑자기 잔인한 부족으로 돌변하는 일은 흔하다. 70년대까지 중국의 오지 마을에서는 외부인을 살해하여 해골을 집집마다 장대에 꽂아두는 마을이 있었다.

4) 복수의 대상인 원수의 존재는 부족민에게 중요하다. 원수가 없으면 위엄을 잃으며 이웃 부족이 얕잡아본다는 생각 때문에 어떻게든 복수대상, 원한, 증오, 원수를 생산해낸다. 모든 부족은 반드시 때려죽일 원수부족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조상대대로 원수진 가문이 있어야 뭔가 있어보인다.

5) 강력한 중앙권력의 존재는 패닉에 의한 마녀사냥식 무절제한 폭력을 줄여왔다. 흉년이 들거나 하면 갑자기 인간은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럴때 권력이 기능한다. 우크라이나, 리비아, 이집트와 같은 혁명직후의 혼란기에 무절제한 폭력이 기승을 부리게 되는데 이는 적의 침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의사결정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다. 의사결정이 안 되면 될때까지 집단에 스트레스를 가한다. 그 때문에 혁명 직후에는 공포정치가 나타난다.


[레벨:10]다원이

2014.03.25 (00:08:44)

인간의(생물의) 역사 속에서 A폭력성과 B비폭력성이 찰나의 차이로 비켜간 그 순간이랄까 접점이랄까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게 유전자 아니면 환경인지, 야튼 A와 B가 만났음직한 어떤 접점같은게 있었을 것같은... 그러다 그 무슨 숭악한 운명의 장난인지, 그만 폭력으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하는 쪽으로 대칭의 저울침이 기울었던 겐지...
많이 아쉬운 찰나가 있었던 게 틀림없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3.25 (00:54:32)

의사결정구조입니다.

다른 말로는 권리, 권력, 권입니다. 

[레벨:10]다원이

2014.03.25 (01:30:08)

모든걸 그 근원까지 추적해 들어가면 의사결정 혹은 저울추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결정적인 한 지점이 있다는 말씀!
[레벨:11]큰바위

2014.03.25 (09:24:15)

거꾸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평화적인가?


인류 역사는 폭력이 없었던 평화의 시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만큼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야 할지 제대로 된 예를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런데 평화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의 3.1운동,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는 인도 간디의 무저항 운동보다 앞서 일어났고, 

손양원 목사의 사랑의 원자탄은 미국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해방운동 보다 거의 20년 앞섰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예가 없었던 것이 아니지요. 

뿐만 아니라 여호와 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채 몇 십년 침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예수, 톨스토이, 테레사, 넬슨 만델라, 데스몬드 투투, 보노, 콘라드, 윌렘스, 평화교회리더들, 아웅산 수치, 마샬 로젠버그, 비앙카 제거, 함석헌, 존 레논, 틱낫한, 달라이 라마 등 여러 예들이 있지만, 평화를 실현하는 건 또 다른 용기와 인류를 위한 헌신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인권을 자신에게 제한하지 않고, 인류를 위해 넓힌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의사결정권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입지를 불편하게 하면서 평화를 이룬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인류는 폭력적인가? 그렇다. 

인류는 평화적인가? 그렇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지금 지구 저편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핵안보 정상회의를 열고 있는데, 

폭력을 만들어 놓은 인류가 

다시금 폭력의 물량을 줄여보자는 아이러니한 회의입니다. 


힘자랑하려고 만들 때는 다른 사람들이 힘이 없을 때였거나 

몇 사람만 힘을 소유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다 핵을 갖고 있게 되자, 좀 그만하자는 말입니다. 


인간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재밌는 희비극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3.25 (10:13:29)

중요한 점은 인간이 폭력모드로 방향을 잡으면 한없이 폭력적이 되고

폭력에 무감각해지며 폭력을 즐기며 .. 오늘은 줄빳다 30대를 맞아서 기분이 조아조아.. 이러고


반대로 비폭력모드로 방향을 잡으면 한없이 비폭력적으로 되어

폭력에 예민해지며 평화를 즐기며.. 오늘은 줄뽀뽀 30번을 해서 기분이 조아조아 .. 이러고


근데 어느 쪽이 더 폭력적일까요? 

엉덩이 30대 맞는 폭력과 키스 30번의 폭력이 뇌에 주는 부담총량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쪽이든 그 방향에 따른 하위문화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폭력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인구감소가 일어나므로 답이 없습니다. 


염전 노예 구출해봤자 또 거기 가서 그러고 있는데 이걸 단순히 세뇌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염전일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 소금철도 아니고 할 일도 없어요.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염전노예를 폭력에서 구하는 방법은 구출하여 육지에 팽개치는게 아니고 


계속 염전일을 하게 하면서 매일 방문하는 것입니다.

근데 누가 매일 방문하겠느냐고요? 

[레벨:2]무진

2014.03.25 (22:56:45)

인간은 폭력적인가? 라는 질문에 학교숙제처럼 생각하고 적어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유전적으로도 근본적으로도 폭력적은 아닙니다

폭력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평화적이지도 않다고 할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악과를 따먹어서 인간의 근본이 악하여 죄인인것도 아니고

성선설처럼 선한것도 아니고 성악설 처럼 악한것만도 아니고

선과악이 공존하며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 폭력성과 평화성의 에너지가 팽팽하게 대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폭력적이지도 않고 평화적이지도 않은 양면성의 대칭구조로 세팅되어 있는데

에너지의 무게추가 폭력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어느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성향이 나타나는겁니다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하니

인간의 마음속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있어 음과양 밝음과어둠 폭력성과평화성으로 존재합니다

 

인디언 우화중에

인간의 마음속에 선한늑대와 악한늑대가 끊임없이 싸우는데

먹이를 선한늑대에게 주면 선한 늑대가 이기고

악한늑대에게 주면 악한 늑대가 이긴다는 우화가 있습니다

먹이인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에 따라 대칭구조가 깨지면서

비대칭인 선과악의 방향성이 정해집니다

소실점인 칼자루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강도가 되느냐  맛있는 요리냐로 나타납니다

 

인간이 폭력적인가?는

유전적인것도 아니고 근본적인 것도 아닙니다

주위의 무관심이. 내재해 있는 폭력성을 폭력으로 나타내는겁니다

사이코패스성향이여도 전부다 폭력과 살인등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것을 보면

인간은 폭력적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수 없습니다

성향이 높을뿐이지  폭력적이다로 단정지을수 없습니다

 

전두환이가 광주에서 수백명을 학살한것도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

저항하지 않을것이라고 판단하여 겁대가리가 상실되어 학살을 했고

히틀러가 유태인을 대량학살한것도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대중이 무관심 했기 때문에  일어났고

아이들의 왕따도 아이들과 선생의 무관심에 때문에 일어났고

가정폭력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이유는 

이웃의 따뜻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브레이크 없는 질주처럼  폭력의 강도가 높아지고

염전노예가 되는 이유는 이웃의 무관심 때문에 양심이 마비되어 노예를 만들어 버리고

중국에서는 대낮 대로변에서 강간을 당하는데도 무관심하게 지켜보다 가버리고 등등

 

폭력을 막는것은 미약하고 작은힘만 있어도 폭력을 막을수 있습니다

주위에서 말한마디 거들어 진정시키고 달래는것과 폭력을 휘두를려고 하는 사람의 옷깃을 합심하여 잡으면

큰폭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수 있습니다. 합심하여 같이 때릴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옷깃만 잡아도

꼼짝 못합니다 인간이 합심하면 코끼리도 꼼짝못하게 하는힘이 있는데. 얼마든지 폭력 막을수 있습니다

구조론적으로 이해하면 폭력 발생시점의 소실점을 선점하여 싸움의 권을 획득하는것입니다

화딱지로 부풀어 팽팽한 대칭상태의 풍선을 조그만 바늘로 김을 빼버려 비대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말로 달래고 화해시키고 허리띠를 붙잡고 말리면 별탈없이 마무리 됩니다

 

내가 알고있는  칼에 맞아 죽었는데

그 과정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참 안타까웠습니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칼을 들게 되었는데 찌를 용기 있으면 찔러봐라하고

진짜 찔러 버린다하고 설전을 벌이다가 사고가 나버렸는데

이 안타까운 사연도 주변에서 설마하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은 주변에서 방관과 무관심에 가까운 행동 때문에 사단이 난겁니다

한사람은 살인죄로 교도소행 한사람은 부모먼저 가버린 불효자가 돼버리고

옷깃만 잡아도 되는것을  ..

 

 

 

여기 동영상 보면 자괴감 마저 듭니다

방관과 무관심이 중국 욕할 입장 못됩니다

고작 하는 말이  아저씨 경찰서로 가주세요...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clusterview?newsId=20110830080333592&page=1&list_type=all&clusterId=406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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