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교장과 교감은 학교에서 필요한가?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관리자 역할

갈등 조정, 민원해결, 교육권 보장은 관리자의 역할

관리자 없이도 학교는 잘 돌아간다?

7년 전 타지역 선생님 한 분과 학교 관리자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 중 “무두일이 가장 좋다”는 말이 나왔다. 없을 무(無)에, 머리 두(頭). 즉 교감·교장 없이 교사들만 근무하는 날이란다. ‘무두일’은 참으로 슬픈 말이다. 관리자가 없어도 학교가 잘 돌아가고, 관리자가 학교에 있으면 오히려 부담이 되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반영된 말이기 때문이다.

한편, 예전에 비해 관리자가 많이 나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에 비해 독단적인 판단을 하고 교육적 권한을 남용하는 관리자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비합리적인 행태가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관리자 역할

지난해 대한민국 교육사에 유래가 없는 교사들의 뜨거운 외침에 교권회복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일어나고, 국회에서 교권 5법도 통과되었다. 교육부도 교사의 개인적 대응이 아닌, 학교차원의 민원대응시스템 마련을 포함한 교권보호 강화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그럼에도 현장 교사들은 교사의 교권이 온전히 보장되고 있다고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수업방해가 심한 학생의 교실 밖 분리조치를 위한 예산과 인력지원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명확했던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명문화(2022.12)되고, 이를 구체화한 교원의 생활지도고시(2023. 9)가 제정되었다. 이에 발맞춰 단위학교에서도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교규칙(학생생활규정 포함) 개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학교규칙에 관한 시도교육청의 세부 지침이 나왔음에도 학교규칙을 개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이 일을 학교규칙 개정 담당 교사 개인에게 떠넘겼다. 담당자 혼자서 복잡한 규정개정 절차와 기한을 준수하고 학교공동체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며, 교원들의 역할을 수차례 조율하고 분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교육활동 보호정책이 신속하게 도입되었음에도 단위학교의 컨트럴 타워인 '관리자의 역할'은 부족하다 못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지난 5월 13일 전교조가 발표한, 민원대응·분리실태조사 결과(관련 기사 보기)에 따르면, 즉시분리 장소로 학교(원)장실이 지정된 경우는 13.6%에 불과했다. 응답자 절반이 넘는 54.3%에서 교실 밖 분리 조치 학생 인솔 담당자를 아예 정하지 않았고, 담당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비율도 34.9%에 달했다.

역량있는 관리자 기르기 힘든 승진제도

그렇다면 학교관리자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승진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적어도 10년 이상 소요되는 승진 준비기간 동안 승진 점수를 쌓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부당한 명령에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로서 교육적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경험을 쌓기가 힘들어진다. 학교장의 압박에 시달리고 승진 점수를 채우는 데 치중하다보니 교직원 간 동료성을 발휘하고 학부모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키울 기회도 적어진다. 이런 교사들이 학교관리자가 되고 그런 관리자 밑에서 승진 준비를 한 교사들에게서 문제해결과 갈등조정 역량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근 들어 교사 간에도 생활지도나 담당 업무, 학생평가와 관련하여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는 일이 잦다. 이때 학교장은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고 합리적인 중재를 하기보다는 대충 무마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모른 척하기 일쑤다. 이로 인해 학교 구성원의 협력은 부재하고 학교교육력은 약화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관리자 역할

우리나라는 학교장에게 법적으로 교무총괄권, 교직원에 대한 지도·감독권, 학생징계권 등 폭넓은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작 학교장의 교육적 역할과 의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명문화하지 않았다. 교장은 그저 결재만 하고 하루 2~3시간만 일을 하면 되니, 그 다음은 교장의 자율에 맡겨진 형국이다. 지금의 학교현장에서 교장이 할 일을 교감이 하고, 교감이 할 일을 교무부장이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10년 이전에는 학교 관리자의 역할이 크지 않고 독단적인 판단을 하는 관리자의 해악 때문에 “무두일이 좋다”는 말도 나왔지만, 지금은 학교관리자가 꼭 필요한 시기이다. 학교 관리자는 회사의 CEO같은 경영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학교관리자’다.

갈수록 대한민국은 법화사회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개인 간, 집단 간의 갈등과 분쟁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서 교사가 수업방해를 받지 않도록 미리 예방책을 마련하고, 학생의 교실 밖 분리 조치가 필요한 경우 교감이 담당자로서 교장실로 인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법령에 제시된 대로 학교장이 민원처리를 책임지고 교장과 교감이 적극 나서는 자세를 보여줘야 학교공동체의 신뢰를 얻고 학교 관리자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교장과 교감의 교육적 성패는 교사의 교육권 보호와 악성학부모민원 대처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진과정에서 이 역량을 기르기 어려웠다면 이제라도 지역교장단 차원에서 계속적인 해법을 찾으면서 교사 지원모델을 만들어가고, 지역의 교원노조와 소통하며 교육지원청에 적절한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교사의 의견과 민주적인 협의 결과를 존중하고, 지금도 수업방해와 악성민원으로 신음하는 교사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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