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대 원룸으로 구성된 사회주택의 입주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회의를 한다. 몇 차례 친목을 다진 후 스스로 규약을 만들었다. 소음 흡연 쓰레기 처리와 옥상이나 홀 등 공유공간의 관리 등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약속을 만드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건물에 살게된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소한 규칙을 만들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함께 모여서 논의하는 모습이 흔한 풍경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사라진 '반상회'의 기억이 사회주택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법이나 제도가 우리와 동떨어진 어떤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한번 만들어진 이상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다.
그러나 참여를 통해 우리 공동체, 혹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든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시민의식의 기본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룰을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다. 공동체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하는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굴지의 기업들이 임대주택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이 만드는 공유주택 모델은 자칫 청소나 식사 등 서비스 제공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다. 그러나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주택과 여러 사람이 사는 공동주택의 운영 문제는 그러한 자본의 관점으로만 담아낼 수 없다.
공동주택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속성은 기업이 추구하는 영리적 관점 안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자발성이나 호혜성과 같은 다른 차원의 가치를 가진다. 공동체는 상호작용이 늘어날수록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상호작용이 늘어나려면 공동체 자체가 의사결정 경험을 축적하여 의사결정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만나고 부딪히고 그것을 규약으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의사결정 역량이 축적된다.
우리는 '권력'이라는 말을 부정적인 어감으로 받아들인다. 정치인이나 자본가들 같은 사회 상층부에서만 소유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권력은 의사결정과 관계 있다.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권력이 창출된다. 의사결정은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하는 일이며 상호작용의 본질이기도 하다.
사회 전체의 의사결정 역량을 키워주어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여가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려면 다양한 '권력'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주택 입주자들이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합의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권력이 창출된다.
예를 들면, 공동체적 관계가 전혀 없는 기존 고시원, 원룸,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에 살던 사람은 공론의 장이 없어 의사결정할 방법이 없으므로 소음 흡연 등 공유지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공동체 회비를 걷거나, 그것으로 함께 사용할 공간을 더 낫게 만들 아이디어를 낼 수도 없으며 이 과정에서 리더쉽을 발휘할 수도 없다.
아인슈타인의 공동연구자이기도 했던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존 휠러는 말년에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라는 유명한 화두를 던졌다. 실재It와 정보Bit는 전혀 별개로 생각되겠지만, 이 둘은 아주 긴밀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정보로부터 실체가 나온다는 말이다. 양자물리학에서 정보는 관찰자의 개입을 뜻한다. 관찰자의 개입은 곧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상호작용을 통한 전자기학적 정보전달이 우주의 본질인 것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상호작용과 의사결정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원 재료로 하여 사회를 구조화하고 고도화해야 한다. 과거처럼 상층부의 권력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권력이 사회 전반으로 분산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중간 권력이 창출되어 전체적으로 상호작용이 늘어나야 사회 전반의 창의성과 지속가능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권력이 사회 전반으로 분산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중간 권력이 창출되어 전체적으로 상호작용이 늘어나야 사회 전반의 창의성과 지속가능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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