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한 칼럼방의 제목은 위에 씌어 있듯이 '깔놈은 깐다'입니다. 이는 조선일보의 슬로건 '할말은 한다'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어떤 허접은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조선일보보다 더 편파적이라고 엉뚱한 시비를 하더군요. 가소로운 일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조선일보보다 더 악랄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깔놈은 깐다'입니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 한 토막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놈은 분기 대발하여 다시 천장에 매달고 세 놈이 둘러서서 태(苔)로 장(杖)으로 무수히 난타한다.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세 놈이 마주 들어다가 유치장에 들여다 뉘일 때 동녘이 훤하였고 내가 신문실에 끌려가던 때는 전날 해질 무렵이다.
처음에 성명부터 신문을 시작하던 놈이 촛불을 켜 놓고 밤을 꼬박 넘기는 것과, 그 놈들이 힘과 정성을 다하여 사무에 충실한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평일에 무슨 사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를 구호코자 즉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또 씹어대는 저 왜구처럼 밤새워 일해본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자문하매, 전신이 바늘방석에 누운 듯이 고통스런 중에도 '네가 과연 망국노의 근성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찬다."
왜놈들은 이미 잡아먹은 조선을 더 잘 소화시키기 위하여 퇴근도 아니하고 밤을 꼬박 새우며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있는데, 독립운동 하는 김구선생은 밤새워 일하지 않았음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는 '할 이회창 편들기는 한다'고 저토록 극성스러운데, 우리는 태연자약 중립에, 양비론에, 불편부당에 신선놀음 해서 독립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깔 놈은 깐다'입니다.
논객입네 하고 중립을 자처하고 심판을 자처하며 방관자노릇 안됩니다. 먹물 깨나 들었다는 저 잘난 척 용서 안됩니다. 지금은 성인 군자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고 한 사람의 전사(戰士)가 필요한 때입니다.
[왜 노무현이고 추미애인가?]
조중동을 위시한 기성일간지들 보세요. 칼럼이란 것이 이놈도 나쁘고 저놈도 나쁘고 저만 잘났다는 식입니다. 이른바 양비론이지요.
"그래 너 잘났다!"
저희는 다릅니다. 저희는 총알받이로 몸을 낮춥니다. 자신을 낮추고 노무현과 추미애를 드높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노무현이고 추미애인가?
법을 바꾸는 것은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를 바꾸는 것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집권당이 바뀌는 것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유권자의 머릿속 생각이 바뀌어야 진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유권자의 생각을 움직일 하나의 성공사례입니다.
왜 노무현인가? 노무현이 가장 많은 것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왜 추미애인가? 추미애가 가장 많은 것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왜 노무현과 추미애인가?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김근태도 좋고, 정몽준도 인물이고, 정동영도 재주는 있습니다. 이 나라 책임 맡아 잘 이끌어낼 지도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지도자는 의미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가?
잘난 엘리트들, 많이 배웠다는 먹물들, 암만 떠들어봤자 바뀌는 거 없습니다. 우리 서민이 변하고 여성이 변하면 한국이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서민출신 지도자 노무현으로 바뀌는 것은 엘리트가 무지렁이를 지도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바꾸려 들 때 진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평범한 서민들, 여성들은 스스로 바뀔 생각은 아니하고, 잘난 엘리트들이 자신을 잘 이끌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래서 안됩니다. 나를 바꿀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절이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지도해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서민들, 여성들 본인이 스스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민지도자 노무현이 필요하고 여성지도자 추미애가 요구됩니다.
[국운융성의 기회가 왔다]
지난 6월의 일입니다. 월드컵이 국운융성의 계기가 된다고 한 마디 했더니 허접 좌파들이 난리를 떨더군요. 그렇지만 월드컵은 명백히 이번 촛불시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운융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한쪽으로 모으자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싸워온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의 싸움 이제는 끝내자는 것입니다. 끝낼 승부는 끝내고 패자는 승복하고 승자는 지도하며 진도 나가자는 것입니다.
阿Q와 小don이 서로 상대방의 변발을 부여잡고 실랑이하며 옴짝달싹 못하는 지긋지긋한 시대를 이제는 끝막는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 스스로가 바뀌어야 합니다.
독재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들이 패배를 승복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좀 결과에 승복하고 힘을 한쪽으로 몰아 주세요! 아 진도 좀 나가자는 데 왠 잔말이 많습니까?
월드컵은 방관자였던 관객이 승부에 개입한 사건입니다. 방관자였던 유권자가 개입한 것이 촛불시위입니다. 월드컵 이후 더 이상 우리는 구경꾼이 아닙니다. 서민이 개입하면 한국이 바뀝니다.
월드컵? 자신감입니다. 높으신 엘리트가 서민을 지도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시위? 자부심입니다. 높으신 미국님이 밖에서 감놔라 대추놔라 훈수 두며 우리를 지도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한국인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가장 크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과 추미애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민이 변하고 여성이 변해야 한국이 변합니다.
[민족의 소원 백범의 소원]
끝으로 백범의 나의 소원을 부분 인용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중략)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중략)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조선일보보다 더 악랄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깔놈은 깐다'입니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 한 토막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놈은 분기 대발하여 다시 천장에 매달고 세 놈이 둘러서서 태(苔)로 장(杖)으로 무수히 난타한다.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세 놈이 마주 들어다가 유치장에 들여다 뉘일 때 동녘이 훤하였고 내가 신문실에 끌려가던 때는 전날 해질 무렵이다.
처음에 성명부터 신문을 시작하던 놈이 촛불을 켜 놓고 밤을 꼬박 넘기는 것과, 그 놈들이 힘과 정성을 다하여 사무에 충실한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평일에 무슨 사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를 구호코자 즉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또 씹어대는 저 왜구처럼 밤새워 일해본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자문하매, 전신이 바늘방석에 누운 듯이 고통스런 중에도 '네가 과연 망국노의 근성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찬다."
왜놈들은 이미 잡아먹은 조선을 더 잘 소화시키기 위하여 퇴근도 아니하고 밤을 꼬박 새우며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있는데, 독립운동 하는 김구선생은 밤새워 일하지 않았음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는 '할 이회창 편들기는 한다'고 저토록 극성스러운데, 우리는 태연자약 중립에, 양비론에, 불편부당에 신선놀음 해서 독립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깔 놈은 깐다'입니다.
논객입네 하고 중립을 자처하고 심판을 자처하며 방관자노릇 안됩니다. 먹물 깨나 들었다는 저 잘난 척 용서 안됩니다. 지금은 성인 군자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고 한 사람의 전사(戰士)가 필요한 때입니다.
[왜 노무현이고 추미애인가?]
조중동을 위시한 기성일간지들 보세요. 칼럼이란 것이 이놈도 나쁘고 저놈도 나쁘고 저만 잘났다는 식입니다. 이른바 양비론이지요.
"그래 너 잘났다!"
저희는 다릅니다. 저희는 총알받이로 몸을 낮춥니다. 자신을 낮추고 노무현과 추미애를 드높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노무현이고 추미애인가?
법을 바꾸는 것은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를 바꾸는 것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집권당이 바뀌는 것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유권자의 머릿속 생각이 바뀌어야 진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유권자의 생각을 움직일 하나의 성공사례입니다.
왜 노무현인가? 노무현이 가장 많은 것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왜 추미애인가? 추미애가 가장 많은 것을 바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왜 노무현과 추미애인가?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김근태도 좋고, 정몽준도 인물이고, 정동영도 재주는 있습니다. 이 나라 책임 맡아 잘 이끌어낼 지도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지도자는 의미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가?
잘난 엘리트들, 많이 배웠다는 먹물들, 암만 떠들어봤자 바뀌는 거 없습니다. 우리 서민이 변하고 여성이 변하면 한국이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서민출신 지도자 노무현으로 바뀌는 것은 엘리트가 무지렁이를 지도한다는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바꾸려 들 때 진정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평범한 서민들, 여성들은 스스로 바뀔 생각은 아니하고, 잘난 엘리트들이 자신을 잘 이끌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래서 안됩니다. 나를 바꿀 사람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절이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지도해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서민들, 여성들 본인이 스스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민지도자 노무현이 필요하고 여성지도자 추미애가 요구됩니다.
[국운융성의 기회가 왔다]
지난 6월의 일입니다. 월드컵이 국운융성의 계기가 된다고 한 마디 했더니 허접 좌파들이 난리를 떨더군요. 그렇지만 월드컵은 명백히 이번 촛불시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운융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한쪽으로 모으자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싸워온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의 싸움 이제는 끝내자는 것입니다. 끝낼 승부는 끝내고 패자는 승복하고 승자는 지도하며 진도 나가자는 것입니다.
阿Q와 小don이 서로 상대방의 변발을 부여잡고 실랑이하며 옴짝달싹 못하는 지긋지긋한 시대를 이제는 끝막는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 스스로가 바뀌어야 합니다.
독재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들이 패배를 승복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좀 결과에 승복하고 힘을 한쪽으로 몰아 주세요! 아 진도 좀 나가자는 데 왠 잔말이 많습니까?
월드컵은 방관자였던 관객이 승부에 개입한 사건입니다. 방관자였던 유권자가 개입한 것이 촛불시위입니다. 월드컵 이후 더 이상 우리는 구경꾼이 아닙니다. 서민이 개입하면 한국이 바뀝니다.
월드컵? 자신감입니다. 높으신 엘리트가 서민을 지도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시위? 자부심입니다. 높으신 미국님이 밖에서 감놔라 대추놔라 훈수 두며 우리를 지도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한국인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가장 크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과 추미애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민이 변하고 여성이 변해야 한국이 변합니다.
[민족의 소원 백범의 소원]
끝으로 백범의 나의 소원을 부분 인용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중략)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중략)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