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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307 vote 0 2017.10.16 (14:53:05)

       

    모든 것의 근원은 무엇인가? 에너지다. 물질의 집합논리가 아니라 에너지의 성질에 따른 사건의 복제논리 하나로 모두 설명되어야 한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같다. 지식영역 안에서의 모든 논의는 에너지의 성질 하나로 환원되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에너지를 얼마나 이해하느냐다.


    에너지는 일의 원인이다. 그 원인이 정확히 무엇이냐다. 에너지는 어떻게 일하는가다. 우리는 물질의 관측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들지만 물질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어원으로 보면 에너지energy는 안en에서 일ergy한다는 뜻이다. 안에서 일하니 알맹이다. 물질은 밖에서 보여지는바 껍데기다. 의사결정은 당연히 안에서 일어난다.


    안쪽은 보이지 않으니 관측으로는 알 수 없다.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가 있다. 운동에너지는 밖에서 관측되므로 안에서 일한다는 에너지의 본래 의미와 맞지 않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치에너지만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달리는 자동차의 무게와 속도를 알면 운동에너지를 알아낼 수 있다.


    밖에서 알 수 있으므로 그것은 에너지가 아니다. 위치에너지는 두 방향을 가지고 운동에너지는 한 방향을 가진다. 에너지는 두 방향이 엮여서 하나의 계를 형성한 것이다. 에너지는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건은 두 방향에서 한 방향으로 바뀌면서 에너지 효율성을 획득하여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확산에서 수렴으로 그리고 척력에서 인력으로 진행방향이 바뀐다. 두 방향을 가지면 계를 이루고 양자화된다. 에너지는 양자화된 상태다. 엔트로피에 의해 에너지의 작용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일어난다. 최초 두 방향에서 사건을 진행하며 한 방향을 남기면 그만큼 에너지 손실이 있다. 양자화되지 못하는 자투리가 남는다.


    에너지 손실분을 메꾸지 못하므로 엔트로피가 성립한다. 에너지는 사건을 진행하며 5회에 걸쳐 단계적으로 방향을 손실한다. 그만큼 의사결정능력을 잃는다. 양자화되지 못하게 된다. 에너지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특정 상황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 특정한 방향을 가진 외력의 작용에 대해 대칭형태로 반작용할 수 없게 된다.


    방향을 손실하여 에너지가 한 방향만을 가질 때 외력에 대해 더 안정된 상태가 된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된 상태로 변화하며 그 역은 방향의 손실에 의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임의로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방향전환을 하려면 미리 그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용수철은 수축되어 있어야 한다.


    에너지의 작용은 양자화를 따른다. 곧 대칭과 호응이다. 높은 단위의 대칭에서 낮은 단위의 대칭으로 바뀌며 높은 단위의 양방향에서 낮은 단위의 양방향으로 바뀌며 그 과정에서 방향손실이 일어난다. 에너지 총량은 보존되나 방향의 총량은 확실히 손실된다. 방향손실이 다른 말로 무질서도 증가다. 양자화가 깨져 연속화된다.


    대부분 열의 형태로 연속화된다. 열은 양자화된 상태에서의 두 방향 성질을 잃은 것이다. 양자화는 대칭되는 것이며 그 대칭성을 잃는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5회에 걸쳐 대칭성을 잃는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위치에너지의 대칭성이 깨지면서 운동에너지의 대칭성을 만들므로 양자화된 정도가 낮아질 뿐 곧바로 열로 변하지 않는다.


    부부관계가 깨져도 커플관계가 지속되므로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는 자연에 없으며 자연의 존재는 반드시 양자화되어 쌍을 이룬다. 존재는 곧 의사결정이며 의사결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다. 의사결정은 방향의 지정이다. 그 방향이 계 내부에 미리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하게 반응한다. 그것은 대칭의 붕괴다. 곧 양자화가 깨져 열로 변하는 것이다. 양자화된 것이 계다. 사건은 계 안에서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일어난다. 자연의 어떤 상태는 안정된 상태이며 외부자극에 의해 안정이 깨지면서 계 안의 구조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대칭과 호응의 밸런스가 통제가능성이다.


    자연에서는 양자화가 깨지는 형태로만 변화가 일어나므로 우리는 개입하여 사건을 통제할 수 있다. 짝수로만 진행하므로 반드시 자투리가 남는다. 계에서 홀수가 떨어져나오는 것이다. 이 떨어져나온 자투리들이 열로 변하여 보존될 뿐 방향을 획득하지 못하므로 자력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다시 되돌아가 계를 이루지 못한다.


    외력의 도움없이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커플이 깨질 수는 있어도 깨진 커플이 봉합될 수는 없다. 홀수로 된 자투리가 계에서 이탈하기 때문이다. 어떤 당의 당원은 짝수다. 외력이 작용하면 거기서 한 명이 떨어져나가서 홀수가 된다. 이때 축이 움직여 다시 내부적인 대칭을 만들어 다시 양자화되며 그 과정에 하나가 이탈한다.


    최초 100명인데 어떤 이유로 한 명이 이탈하게 된다. 한 명이 이탈하면 재질서화 과정에서 한 명이 더 이탈하여 98명이 된다. 99명은 될 수 없다. 떨어져 나온 둘의 재입당은? 외력의 개입없이는 불가능하다. 방향전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통제가능성 곧 효율성을 따른다. 대칭상태가 통제하기 좋은 상태다.


    멀쩡하게 서 있던 사람에게 외력이 개입하면 그 사람은 넘어진다. 그것은 통제실패다. 그 사람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통제하는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두 발과 두 손으로 항상 둘씩 있는 것은 짝수라야 대칭을 이루어 잘 통제되기 때문이다. 홀수면 약간의 외력이 작용해도 넘어진다.


    계속 넘어져 완전히 파멸하게 된다. 에너지는 빠른 길로 간다. 효율적인 길을 따라 진행한다. 비용 때문이다. 효율적인 쪽이 승리한다. 강물이 바다로 가되 각자 가지 않고 뭉쳐서 큰 강을 이루어 가는 것은 그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비효율로는 갈 수 없다. 그 경우는 의사결정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 때문이다.


    물방울이 뭉치지 않고 각자 바다로 갈 수 없다. 뭉친 쪽이 이겨버리기 때문이다.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을 삼킨다. 물방울이 저절로 떨어져 나갈 수는 없다. 이탈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왜? 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엮여 있는 것이다. 물방울을 이루는 물 입자들은 서로 잡아당기고 있다. 물의 점성이 있는 것이다.


    점성이 전혀 없다면 물 분자들은 이탈한다. 그 과정에서 열이 달아난다. 기화열이다. 즉 비효율적으로 되는 것이다. 존재는 짝수이므로 어떤 하나가 이탈하면 동시에 열이 이탈하여 다시 짝수가 된다. 엔트로피의 비가역성은 짝수를 만드는데 필요한 추가 1의 부족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10원이 필요한데 20원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10원을 받아가는데 필요한 전달비용 때문이다. 즉 어떤 사람에게 10원을 주려면 10원과 그 10원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비용까지 20원을 줘야 한다. 아프리카의 빈민에게 1만 원의 도움을 주려면 10만 원이 필요하다. 이런 추가비용의 문제 때문에 자연의 모든 존재는 양자화되어 있다. 짝수로만 존재하며 홀수는 열이다.


    열은 그 떨어져나간 자투리다. 결합하든 분리하든 모든 변화는 반드시 열손실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통제된다. 자연이 안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불안정을 일으키는데 들어가는 비용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양자화되어 짝수로 존재하므로 비용이 든다. 비가 온다면 그것은 변화다. 비를 오게 하는데 많은 비용이 지출된다.


    보통은 태양이 그 비용을 충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만 내버려둬도 저절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은 없다. 지구의 이득은 태양의 손실에 의해 일어나며 누구의 손실도 없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은 자연에 없다. 세상은 짝수이고 변화는 홀수이며 이때 발생한 나머지는 열로 변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을 삼킨다. 반대로 작은 물방울이 큰 물방울을 깰 수는 없다. 깨려면 작용해야 하고 작용한다는 것은 곧 대칭을 성립시킨다는 건데 작은 물방울이 1이고 큰 물방울이 2일 때 1이 2와 대칭을 성립시키는데는 1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2와 2가 대칭이다. 1이 모자라므로 엔트로피가 작동하게 된다.


    에너지는 2에서 1로 진행할 뿐 그 역은 절대로 없다. 1이 2에게 에너지를 주지 못한다. 부자가 빈자에게 돈을 줄 수는 있어도 빈자는 부자에게 돈을 줄 수 없다. 빈자가 부자에게 돈을 주려고 부자를 불러내려 해도 부자가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2로 2를 부를 수 있을 뿐 1은 2를 부를 수 없다. 2는 언제라도 1을 부를 수 있다.


    2는 1을 버리고 1만 남긴 다음 1을 불러 1 대 1로 대칭시키면 된다. 이때 2가 1을 버리게 되며 그만큼 열손실이 일어난다. 버려진 1은 열로 변해서 돌아다닌다. 2에서 1로 가는 수는 있어도 그 역은 없으므로 우리는 에너지의 진행방향을 읽고 적절히 대응하여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모든 변화는 대칭과 호응을 통과하게 된다.


    그냥 변화는 없다. 갑자기 고양이가 여우로 둔갑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비용문제 때문이다. 세상은 양자화되어 있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모두 양자화되어 있다. 뭐든 존재하는 것은 짝수다. 짝수에서 또 다른 짝수로 변하며 그 과정에서 손실을 일으킨다. 하나의 사건에서 마이너스로만 진행하며 플러스로는 가지 않는다. 


    에너지는 양자화되어 계를 이루고 내부에 두 방향이 엮여서 대칭을 갖추어 의사결정이 가능한 형태로 조직된 것이다. 예외는 없다. 세상은 불연속적 의사결정단위로 존재하며 연속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의 진행과정에서만 일어난다. 사과는 사과나무와 연결되어 있다. 연속되어 있다. 그 상태는 의사결정단위가 아닌 것이다.


    의사결정하려면 떨어져나와야 한다. 안철수는 아버지와 연속되어 있으므로 의사결정하지 못한다. 독립적인 존재자가 아니다. 존재하려면 의사결정해야 하며 의사결정하려면 떨어져나와야 하고 떨어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손실을 일으킨다. 1을 떼내면 2를 손실한다. 손으로 사과를 잡으려면 사과는 1이라도 손가락은 2다.


    사과 1을 잡는데 검지와 엄지 2가 필요하다. 하나를 처리하는데 2가 동원되므로 1만큼 손해다. 사과를 잡는데 운동에너지 사용에 따른 체온손실이 일어나므로 실제로는 2의 손실이다. 사람은 손가락이 2라서 포지션의 우위다. 사과는 1이라서 열세다. 언제라도 우위가 열세를 지배하므로 자연은 자연스럽게 통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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