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할 자격을 묻다 소박한 감상주의로는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원숭이 새끼였어. 이놈의 원숭이들을 그냥 싹 죽여버릴 거야. 양차 세계대전으로 수억 죽었다. 다윈의 책임은 없을까? 다윈 진화론 핑계로 스펜서 사회진화론 나왔고 거기서 히틀러 인종주의 나왔다. 과학은 본래 위험하다. 그렇다고 창조론으로 돌아가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과학이 사람을 죽이고 또 과학이 사람을 살린다. 문명은 본래 위태로운 것이다. 문명 때문에 사람이 살고 문명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구실을 잡아 또라이짓 하는 애들은 사이트에 오지 못하게 차단하고 우리는 갈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인간들 사이에 우열을 논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관심사다. 집단의 서열을 조직하려는 것이다. 상대성이론 나오고 불확정성 이론 나오니까 그것을 이용하려는 상대주의 무리가 크게 일어났다. 노자와 장자를 떠벌이는 가짜들 말이다. 사실이지 상대성이론은 노자들의 상대론적 사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걍 가져다 붙인 것이다. 왜? 상대성이론은 광속의 절대성에 대한 이론이다. 이름이 상대성인 것은 인간의 관측에 대해서 상대성이라는 말이고 광속은 절대성을 가진다는 게 상대성이론이다. 말장난하지 말라는 거다. 애들 무서워서 과학 하겠나? 따라 할까 봐 냉수도 맘대로 못 마실 판이다.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다들 도끼눈을 하고 쌍심지를 켜고 트집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터놓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지금 세계는 도처에 벌집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상대주의 들고나온 탈근대 또라이들 때문이다. 진중권들 행태로 알 수 있다. 냉전시기 소련의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쇼크 먹은 서구 구조주의자들이 미개한 집단의 뻘짓을 방조한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 말이다. 여기에는 서구의 독주에 대한 견제의 의도가 상당하다. 주변부 세력에 대한 아부다. 그런데 교활하다. 서구문명을 비판할 의도인데 서구문명 근처에도 못 가 본 우리가 낚이면 안 된다. 서구문명의 자아비판에 속지 말라. 왜 양차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폭주에 책임이 없는 우리가 낚여서 파닥이느냐 말이다. 우리는 후발주자다. 선발주자의 시행착오를 참고하면서 의연하게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왜 서구에 아부하는가?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과학은 죄가 없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결은 과거의 지나간 레파토리다. 서구 구조주의는 그 시대의 고민을 반영한다. 탈근대 또라이 전성시대는 냉전이 첨예하던 70년대로 보면 된다. 그 시대에는 필요했던 사상이다. 지금은 정반대의 혼란이다. 그때 인류는 미국과 소련 두 맹주를 중심으로 훈련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서구 구조주의는 그 경직됨을 비판한다. 냉전을 데탕트로 바꾸자. 그것이 송두율의 내재적인 접근이다. 하긴 한반도는 아직 냉전상태라서 탈근대가 먹힌다. 눈을 돌려 세계를 보라. 지금은 맹주가 없어져서 개판이다. 큰 도둑을 잡았더니 작은 도둑들이 날뛴다. IS와 보코하람과 탈레반이 기세 올린다. 일베와 트럼프와 알트라이트가 준동한다. 왜 이렇게 세상은 개판이 되어버렸나? 역사의 반동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큰 도둑이 설칠 때는 탈근대가 소용되고 상대주의가 먹히고 노자와 장자가 필요했겠으나 지금은 반대로 공자가 필요하다. 왜 소크라테스가 등장했는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졌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비롯한 너절한 녀석들이 난장 치는 바람에 아테네의 정신이 훼손되어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보고 이데아를 앞세운 절대주의 철학으로 군기를 잡았다. 만인이 만인에게 아부하는 너절한 시대를 끝내고 진지한 시대를 열어가자. 다시 인류는 시험에 들었다. 트럼프가 날뛰고, 아베가 설치고, 일베가 준동하는 난맥상을 해결하려면 준엄한 사고가 필요하다. 춘추필법이 필요하다.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놔두면 정의당도 메갈리아에 발목 잡혀서 망한다. 문재인도 조만간 귀족노조와 한판 붙어야 한다. 피할 수 없다. 어차피 구질서는 끝장나고 있다. 지금 같은 글러 먹은 정신상태로 AI시대에 적응 못 한다. 수도권에 노동자 한 명도 없는 백 퍼센트 무인 자동차공장이 들어서는 게 4차산업혁명이다. ### 아무도 하지 않는 답변을 필자가 하고자 한다. 흑인은 왜 백인처럼 문명을 발달시키지 못했나? 이런 주제 건드리는 거 위험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지정학적 이유를 들이대는데 곁가지다. 구조론은 원래 지정학적 이유를 강조한다. 까놓고 이야기하자. 흑인이 백인과 같은 문명을 못 만든 게 아니고 백인이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였는데 흑인을 안 죽인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왜 흑인을 안 죽였을까? 그쪽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안 갔을까? 지리적인 이유가 그 답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아이디어가 참신하지만 엉뚱하다. 이동의 장애로 인해 흑인이 문명을 못 만든 게 아니고 이동의 장애로 인하여 백인이 흑인을 못 죽인 것이다. 만약 지리적인 환경이 양호해서 이동이 쉬웠다면 흑인을 죄다 죽였을 것이다. 아메리카에서는 아이티처럼 원주민을 백 퍼센트 죽이고 흑인노예를 채운 예도 있다. 북미인디언도 죄다 죽였다. 백인은 동서로 이동하며 무수히 살해한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그렇게 사라졌다. 이동이 어려운 지역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인종이 바뀌었다. 인정해야 한다. 20만 년 전 크로마뇽인과 현대인류는 다르다.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종이 바뀐 건 아니다. 여전히 크로마뇽인이다. 그러나 몇만 년 사이에 뇌용적이 200CC 작아졌다. 지금도 인류는 맹렬히 진화 중이다. 늑대와 개의 형편을 참고하자. 늑대와 개가 교배하면 늑대개가 탄생한다. 늑대와 개는 같은 조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개가 늑대보다 뛰어난 것은 확실하며 다 그런 건 아니고 보더콜리의 사회성이 뛰어나다. 문제는 여기에 방향성이 있다는 거다. 소련 과학자들의 여우실험으로 증명되었다. 늑대는 인간에 의해 사육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얼룩말은 길들여 탈 수 없다. 우리가 타는 말은 얼룩말과 다른 개량된 말이다. 왜 아프리카인은 얼룩말을 길들여 타지 않을까? 길들이기에 실패했다. 늑대와 여우와 얼룩말은 길들지 않는 동물이지만, 개는 길들었고 여우도 소련 과학자가 길들이는 데 성공했고 인간도 길들었다. 인간의 변화는 5만 년에서 3만 년 전의 어느 시기에 일어났다. 길들어서 갑자기 인류는 완전히 변한 거다. 소련 과학자의 성과에 의하면 길든 여우는 성격만 바뀌는 게 아니라 호르몬이 바뀌고, 개가 늑대보다 머리통이 작듯이 뇌용적이 작아지고, 외모도 바뀌고, 유전자가 바뀌었다고 한다. 브리더가 품종을 고정시키듯이 종자개량이 일어난 거다. 인간은 개량된 존재다. 개는 브리더가 개량했고 인간은 누가 개량했는가? 사제계급이 개량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보다 뒤에 나와 강력했지만, 크로마뇽인이 개량되자 전세역전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 백인에게 살해되었다. 그러한 개량이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미세한 진화가 진행 중이다. 변화는 백인과 황인에게서 두드러진다. 유전자를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 학계 연구에 의하면 아프리카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100이라면 황인과 백인은 1이나 2 정도라 한다. 비유로 말하면 늑대 중의 일부가 개로 변했는데 개 중에도 보더콜리가 가장 많이 변한 것이다. 여기서 방향성은 사회성의 증대 방향이다. 보더콜리가 유독 영리한 이유는 양을 몰이하기 때문이다. 브리더가 고의로 사회성을 발달시킨 거다. 더 많이 개로 변한 그룹은 백인과 흑인 일부와 황인이다. 흑인 일부인 이유는 원래 인종을 피부색으로 구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유전자로 봐야 한다. 유전적 다양성으로 보면 흑인은 매우 종류가 많다. 안다만 제도의 흑인을 예로 들 수 있다. 수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 그동안 외부와 교류 없이 4만 년 전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있다. 백인과 황인도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를 탈출했는데 이후로 피부색이 변했다. 그렇다면 안다만 제도의 흑인 피부색은 왜 변하지 않았는가? 피부가 검은 것은 멜라닌 색소가 햇볕과 세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안다만 제도의 정글은 바닷가 쪽으로 햇볕이 강해서 화상을 입기 쉽고 숲은 세균이 많다. 유전자가 변한다 해도 피부색은 변할 수 없다. 반대로 햇볕이 약한 지역에 살면 황인도 피부가 희게 되고 머리는 금발이 되는데 네네츠족이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흑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검은 개는 진돗개 흑구와 도베르만이 같은 개라고 우기는 개소리가 되겠다. 그렇다면 백인과 황인 및 일부 흑인은 왜 5만 년 전 혹은 그 이후의 어느 시기에 있었던 대격변을 지속했는가? 유전자로 알 수 있는데 황인과 백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약하다. 자연적 우생학이 적용된 결과로 변이가 많아 순종만 남았다는 거다. 백인이 특히 알레르기 질환이 많은 게 그렇다. 열성인자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종교의 등장과 빙하의 후퇴, 대집단의 발생으로 본다. 따져봐야 할 것은 20만 년 전의 인류도 지금 같은 언어를 사용했을 것인가다. 인도유럽어 중심으로 어원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 어휘가 상업의 발달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업이 발생한 이후 시기에 어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말이다. 그 이전에 인류의 어휘는 동사 중심으로 500단어 정도에 불과했다. 언어의 역사는 길지 않다. 원시어는 당연히 있었겠지만 어휘가 많지 않았다. 총균쇠는 농업의 등장을 강조하지만, 이는 학계의 최신연구성과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으로 보면 1만5천 년 전 무렵에 이미 종교가 등장했다. 종교가 등장하자 대부족이 출현했고 계급이 발생했으며 사제계급이 권력을 영속화할 의도로 다산을 해서 종자개량이 되었다. 농업은 대규모 종교집회를 위한 식량보관 목적이었다. 처음은 파종하지 않고 종자를 채집해 창고에 모아두었다. 주변에 떨어진 낱알이 성장하자 원시농업이 일어났다. 고대 농사기술은 극도로 단순하다. 홍수가 지나간 다음 진흙을 지팡이로 찔러 구멍을 낸 후 씨앗을 넣고 밟는다. 농사는 그걸로 끝이다. 보리는 겨울에 자라므로 잡초가 없어 할 일이 없다. 1년에 한 달 정도만 농사일을 한다. 나머지는 놀거나 수렵채집을 한다. 이들은 종교를 발명하고 대집단을 만들었으며 마침 일어난 빙하 후퇴기에 유럽으로 진출한 것이며 지나가는 곳마다 원주민을 대거 살해하여 죄다 멸절시켰다고 봐야 한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의 많은 원시종족이 그 무렵에 살해되었다고 봐야 한다. 일부는 아프리카로 되돌아가서 나일강 문명을 만들었다. 농업이 인류의 종자개량을 가속화시킨 것은 맞다. 자연적 인종개량은 사제계급 발생과 관련된다. 사제계급이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족내혼을 하며 우생학을 적용한 것이다. 종교와 계급이 농업보다 먼저 발생했다는 게 중요하다. 고대인은 거의 일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8시간 노동은 20만 년 크로마뇽인의 역사에서 터무니없이 길다. 부족민은 하루 4시간 일하면 많이 한다. 그러므로 농사일을 할 이유가 없다. 종교와 계급에 의해 대집단이 발생하고 대집단이 정복사업을 일으켰으며 그 와중에 인간의 노동시간이 점차 길어진 것이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알고 있다. 농업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종교와 계급이 먼저다. 정리하자. 인간은 원래 그다지 사회적 동물이 아니었는데 5만 년 전후의 어떤 시기에 일대사건이 일어나 크로마뇽인의 사회성이 높아졌으며 그 이전의 크로마뇽인과는 다른 인종이 되었다. 1만5천 년 전에 종교와 계급과 대집단이 발생하고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다. 1만 년 전의 어느 시기에 어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마침 일어난 빙하의 후퇴와 맞추어 북쪽으로 옮겨갔으며 그들은 추위에 적응해 있던 원시부족을 멸절시켰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인간의 독특한 권력의지가 작동하고 있다. 이전 시대의 인간에 비해 더 권력지향적이다. 집단에 관심이 많고 말을 잘하며 집단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개는 고양이보다 더 외로움을 많이 탄다. 사회성이 다르다. 사자는 호랑이보다 더 집단생활을 선호한다. 사자의 지능이 호랑이보다 높다. 발달한 사회성은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성은 여자와 어린이가 발달했다. 소년기가 더 길어져서 생존에 취약하게 된다. 동물은 3살이 되면 어른이다. 인간 중에 특히 한국인은 30살이 되도록 부모에게 의지한다. 미성숙하다. 소년기가 길면 생존에 취약하다. 인간 아기는 시끄럽게 울어댄다. 울음은 맹수를 끌어들이는 위험한 행동이다. 돼지도 화장실을 따로 두어 자신의 냄새를 감출 줄을 안다. 인간은 울음소리로 자기 존재를 광고한다. 살아남을 수가 없다. 자연에서는 늑대가 개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개는 인간이 길러서 살아남았다. 호주에 늑대를 풀어놓으면 야생견 딩고가 전멸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의존적으로 변한 것이다. 인간이 개를 길러서 개가 살아남았듯이, 인간이 인간을 길러서 인간이 살아남았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환경을 변화시킨 거다. 자연상태에서는 흑인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변화된 농업환경이나 종교환경에서는 백인과 황인이 살아남는다. 대규모 전쟁 때문이다. 유전자 세탁은 의외로 빠르게 일어난다. 각자 족보를 뒤져보면 양반의 후손일 확률이 높다. 양반들이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린 거다. 이런 경향은 생각보다 심한데 중국 북부지역은 죄다 징기스칸과 누르하치의 후손이다. 에스키모는 추위에 강하고, 흑인은 더위에 강하고, 피그미는 정글에 강하고, 뉴욕사람은 도시에 강하다. 도시에 약한 텍사스 사람은 트럼프를 찍었다. 사회성의 발달에 차이가 있다. 정글과 사막은 옛부터 있었으나 도시환경은 근래에 생겼다. 우리는 더 도시에 강해지고 있다. AI시대는 또 다른 환경변화를 예고한다. 도시를 넘어 글로벌 환경이다. 종교와 계급, 대집단, 전쟁이 많은 변화를 추동했다. 변화의 방향은 사회성의 증대 방향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사회적 동물이 되어 있다. 사건은 결 따라간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지정학적 이유가 결을 제공했다. 이동수단의 변화는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게 한다. 아직 도시는 바닷가 항구 중심이지만 미래사회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인터넷이 한계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진화와 진보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명의 진보와 인류의 진화가 사회성의 증대 방향으로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고 가야 한다. 페미니즘은 인간의 사회성을 증대시키는가? 진보주의는 사회성을 증대시키는가? 귀족노조 덕분에 사회성이 증대되었는가? 그들이 장벽을 쌓고 사회성의 증대를 차단시키지는 않았는가? 정의당 노선이 국지적으로는 사회성 증대를 추구하지만, 세계사로 보면 고립주의 경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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