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여가는 상호작용의 근본원리는 덧셈이 아닌 뺄셈이다. 상호작용의 게임 안에서 뺄 수는 있으나 더할 수는 없다. 만약 더하려면 게임 밖으로 나가서 자원을 얻어와야 한다. 그런데 게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선수는 축구장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도박꾼은 하우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는 정해진 게임의 규칙이다. 반면 안에서 죽을 수는 있다. 광팔고 관전하기는 허용된다.
1이 0.5+0.5로 나누어질 수는 있지만 2가 될 수는 없다. 당신에게 1만원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그것을 버릴 수 있다. 찢어서 던져버릴 수 있다. 가치의 훼손은 가능하다. 마이너스는 가능하다. 그러나 1만원을 2만원으로 만들 수는 없다. 플러스는 불가능하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팔다리를 자를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당신을 하나 더 만들 수는 없다. 이것이 상호작용의 규칙이다. 이 규칙을 받아들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그것은 사건이다. 구조론은 사건 안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과정을 추적한다. 의사결정은 계에 투입된 에너지를 처리한다. 의사결정원리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따른다. 에너지는 결따라 간다. 비효율이면 에너지 부족으로 의사결정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추가로 에너지가 유입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닫아놓고 에너지 소모가 최소화 되는 경로를 추적하면 구조가 드러난다.
이에 닫힌계 개념이 도입된다. 모든 의사결정오류는 닫힌계 지정의 실패로 인해 외부에서 추가로 에너지가 투입되는 특권과 반칙에 의해 일어난다. 누구처럼 말타고 뒷문으로 대학에 입학한다면 닫힌계가 부정된 것이다.
닫힌계의 내부는 균일해야 한다. 그래야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외부에너지에 대한 반작용의 형태로 사건을 성립시킬 수 있다. 의사결정은 질≫입자≫힘≫운동≫량의 순서를 따른다. 질은 내부의 균일이다. 이 상태를 위상수학에서 상전이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빵과 도너츠와 프레첼에 비유한다면 질은 빵과 같다. 그런데 단지 균일하기만 해서는 외부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뿐 내부에서 그것을 처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사결정은 실패한다.
먼저 계를 균일하게 만들어 외부에서 유입된 에너지의 힘으로 내부에 작용반작용의 대칭을 이룬 다음에는 축을 성립시켜야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부부라면 자녀가 생겨야 의사결정이 쉬운 것과 같다. 자녀가 저울의 축이 된다. 자녀가 움직이는 쪽으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입자는 그렇게 축과 대칭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도너츠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축이 강하면 외력을 견디는 강고한 조직이 되지만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조직의 발전은 약한 고리인 축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균일한 빵에서 축이 형성되어 견고해진 것이 도너츠라면 약한 고리를 보호하면서 계속 생장하는 조직이 두 개의 구멍을 가진 프레첼이다. 도너츠의 의미가 축을 얻은데 있다면 프레첼의 의미는 축이 움직이는데 있다. 축이 움직이므로 약하고 위태로우나 계속 생장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의사결정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므로 프레첼에서 다시 도너츠로 퇴행한다. 이것이 운동이다. 운동은 그 과정에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다시 빵으로 되돌아간다. 의사결정의 1 사이클은 빵≫도너츠≫프레첼≫도너츠≫빵이다. 그대로 질≫입자≫힘≫운동≫량이라는 다섯 매개변수를 이룬다.
인간은 빵에서 시작하여 빵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최초의 빵과 마지막의 빵은 다르다. 최초의 빵은 에너지가 충전된 생생한 빵이며 마지막의 빵은 에너지가 고갈된 부스러기 빵이다. 프레첼 단계에서 의사결정하여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려서 구조가 찢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마이너스다. 제로에서 끝난다.
우주의 근본원리는 상호작용 원리입니다. 상호작용은 게임입니다. 둘의 조건이 일치해야 게임은 시작됩니다. 그 조건은 대칭입니다. 형태의 대칭은 보이지만 에너지의 대칭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얻을 때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