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저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진작부터 회의적입니다.
한 때는 한 십여년 가까이
속세와 끊고 고립된 삶을 잇기도 했습니다.
인간들과 상종하기 싫어서이지요.

87년의 경험은 약간의 희망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아주 약간의 희망.
절망이 99프로이고 희망은 0.1프로 쯤.

세상을 움직여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21세기에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일까요?

19세기라면 개척과 모험의 시대, 지리상의 발견의 시대였습니다.

세상 끝까지 다 가본 사람이 없었죠.
저 산 너머에, 저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누구도 세상을 다 알지 못했기에 희망이 있었습니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지요.
인간이란 존재에 환멸과 좌절,
문명이란 것에 대한 철저한 회의.

달나라에 처음으로 깃발을 꽂기도 했지만 펄럭이지 못하는 깃발입니다.
달나라에는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21세기에 인간은 무엇일까요?

밖에서 답을 구하지 못한다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19세기에 인류는 밖으로 밖으로 내달렸습니다.
한사코 밖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요.
그 결과 제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파멸이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입니다.
대 파국.

밖에서 답을 찾지 못하므로 밖을 파괴한 것입니다.
21세기에 인류는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합니다.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하면 안을 파괴할 뿐입니다.

밖으로 밖으로 뻗어나가려 한 결과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전쟁으로 다 죽거나
안으로 안으로 기어들어간 결과 인간이 파괴되거나 인간이 구원되거나

과연 희망은 어느 곳에.

우리는 약간의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까?

우리보다 먼저 민주화를 외쳤던 필리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중남미의 민주화 붐은 어디로 갔습니까?
가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것이 아닙니다.
데탕트와 냉전의 해소.

러시아가 붕괴되자 그 데탕트의 힘의 여진이 극동으로 치달아
남북간의 대결을 완화하고
그 끝에 한국에도 약간의 빛이 쪼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본질을 봐야 합니다.

한국인들이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한
우리는 실패할 수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87년을 전후로 한 한국의 민주화가
소련의 붕괴에 따른 여진의 결과인지
아니면 한국의 경제성장에 의한 한국인의 총체적 성장의 결과인지
그 판정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현재로 드러나는 조짐은
소련의 붕괴로 인한 동서냉전구조 붕괴의 득을 약간 봤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아직 민주화를 담보할 성숙한 중산층의 토대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0년 전 영국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쓰레기통에 우연히 지나가던 장미 한송이가 떨어진 것인지
한국의 쓰레기통이 천지개벽해서 쓰레기를 졸업하고 예쁜 화단으로 거듭났는지
심판의 때가 온 것입니다.

절망입니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구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100년전만 해도 한국인은 평균적인 지적 수준은 유럽의 16세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묘사된 인간이
최초의 근대주의적 인간형입니다.
근대적 사고의 흔적이 최초로 발아된 것입니다.
그러한 흔적이 한국에서는 19세기 말에 와서 약간 보여집니다.

16세기 인간들이 100년 사이에 21세기 인간으로 비약할 수 있는가?
그러한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근대인이 존재하는가?
있다면 몇명이나 존재하는가?
솔직히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회창이 되면 확실한 것 하나는
한국은 소련의 붕괴에 영향을 받아 약간의 햇빛을 쪼이다가
그 국민 개개인의 전근대적인 의식구조의 한계를 노정하고
다시 19세기의 암흑으로 되돌아간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로
인류학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나라들 중의 하나임이 확인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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