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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164 vote 1 2012.01.11 (00:43:59)

긴장을 다루는 방식

 

모든 극은 에너지에 지배되며 그것은 긴장이다. 긴장을 주는 방법은 무언가를 감추는 것이다. 감추어둔 사실이 차례로 밝혀지는 것이 이야기의 플롯이다. 기본적으로는 승부가 감추어져 있다. 주인공과 악역이 대결하는 가운데 누가 어떻게 승리할지다. 그러나 관객은 알고 있다. 보나마나 주인공이 이긴다.

 

◎ 태작 - 인물들의 대결에서 긴장을 얻는다.
◎ 가작 - 인물과 판구조의 대결에서 긴장을 얻는다.
◎ 걸작 - 작가와 관객의 대결에서 긴장을 얻는다.

 

긴장을 유지하려면 되도록 감추어야 한다. 감추려면 감출 수 있는 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감추기에 가장 쉬운 장소는 인물의 캐릭터다. 주인공은 당연히 이중적인 성격이어야 한다. 천재와 바보를 넘나드는 인물이어야 한다.

 

고행석 화백의 불청객 구영탄이 대표적이다. 졸린 눈에 하는 짓도 괴상해서 바보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이큐 250이었다.

 

한국영화가 실패하는 이유는 구영탄과 같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조연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주인공은 미남배우 정우성이 아닌 이상한 놈 송강호다. 조연이 주연되니 영화가 망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 주인공이 ‘the Good’인 것과 비교가 된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당연히 미남 주인공이 탑 포지션을 차지해야 하는데 왜 조연이 탑 포지션을 차지할까? 간단하다. 탑을 차지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작가의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천재로 설정하려면 먼저 작가가 천재여야 한다. 한국영화가 극복하지 못하는 원초적인 딜렘마다. 작가가 바보라서 주인공도 바보다.

 

라즈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인도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 란초는 천재에다 미남이다. 불청객 구영탄 캐릭터와 완전히 같다. 뭔가 비밀을 감추고 어디서 틈입한 인물이며 한꺼풀씩 비밀이 벗겨진다. 이게 영화의 정석이다.

 

의사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면 의학지식이 있어야 한다. 우주탐험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면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이 부분에서 막힌다.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한다.

 

미남주인공에게 의사역할이나 우주비행사 역할과 같은 한 분야의 전문가 역할을 맡기지 못한다. 주인공을 맛깔없는 단순한 인물로 설정하고 조연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

 

미남배우에게 적합한 역할은 비밀을 감춘 채 나타난 불청객 천재 해결사 역할이다. 장동건, 원빈, 정우성이 보기좋게 이 캐릭터를 맡은 적은 없다. 배우의 연기력을 탓할 일은 아니다. 작가와 감독이 관습을 깨는 비범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우는 절대 작가와 감독을 넘을 수 없다.

 

한국 관객이 유독 ‘미션 임파서블’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한국영화 중에는 매력적인 미남배우가 멋지게 활약하는 영화가 없다. 정우성이 조연배우에게나 걸맞는 ‘똥개’에 출연하여 찌질하게 맞고 다니는 식이다.

 

잘 생긴 미남 주인공이 천재적인 활약을 펼치며 일방적으로 적을 유린하는 내용의 영화에 대한 갈증이 한국관객에게 축적되어 있었던 거다.

 

가뜩 명박이 시절에 울분이 쌓인 판이다. 지금 한국관객은 척 노리스와 같은 일방적 구타를 원한다. 그렇다. 나꼼수가 명박이 패듯 뒈지게 패줘야 한다. 왜 그런 통쾌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가? 작가와 감독의 책임이다.

 

한국영화의 주인공은 대개 찌질한 캐릭터로 설정된다. 악당에게 걸려서 처맞다가 운으로 이기는 식이다. 반면 악당은 멋진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 무사에서 악역 탐불화가 주인공 주진모보다 더 멋있게 나온다.

 

‘최종병기 활’에서도 주인공 남이의 애기살보다 악당 쥬신타의 육량시가 더 강한 인상을 준다. 실패다. 감독이 식민지 콤플렉스, 분단 콤플렉스, 독재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발전과정

 


◎ 아이디어(다름) - 흥미를 끌만한 이색적인 소재.
◎ 캐릭터(닮음) -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형의 창조.
◎ 플롯(대칭) - 극적 긴장을 끌어내는 피아간의 대결구조 조립.
◎ 주제(머리) - 이야기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바운더리 구조의 부각.
◎ 스타일(세력) - 판을 지배하는 작가와 관객의 대결.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겠다면 바보같은 생각이다. 그건 수준이하의 옛날 방식이다. 무언가 얻겠다면 애초에 번짓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문학의 의미, 예술의 의미는 없다.

 

문학의 가치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목소리가 아니라 순수하게 문학 내부의 메커니즘에서 찾아야 한다. 문학의 진정한 의미는 독자를 작가로 만드는 것이다. 독자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독자와 함께 힘을 모아 크게 세력을 형성해 나아감으로써 문예사조를 바꾸고 시대정신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학문의 의미는 인류 전체의 지적 능력을 하나로 결집하는 데 있다. 인류가 각자 퍼즐 한 조각씩 맞추어서 지적 네트워크를 완성하기다. 그 방법으로 인류의 아이큐를 올리자는 것이다. 문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인류 공동의 프로젝트에 벽돌 한 장 보태는 거다. 관객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관객 포지션에 머물러 있겠다면 곤란하다. 그거 극복해야 할 자기소외다.

 

다름≫닮음≫대칭≫머리≫세력으로 갈수록 독자의 참여 폭이 확대된다. 그 만큼 작품의 수준이 높아진다. 이는 만들어진 이야기를 독자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상당히 덜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음식으로 치면 비빔밥 같다.

 

한식이 양식이나 중식과 다른 점은 미완성된 음식을 고객이 완성시켜 먹는다는 점이다. 비빔밥은 비벼야 완성되고, 삼겹살은 구워야 완성되고, 쌈밥은 싸야 완성된다. 정식이라도 많은 반찬들 중에서 선택해야 완성된다.

 

◎ 상 - 작가와 독자 사이의 긴장(스타일)
◎ 중 – 판구조와 인물 사이의 긴장(주제)
◎ 하 – 인물 상호간의 긴장.(선악구도)

 

작품의 수준은 긴장을 조성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수준이 낮은 것은 인물들 간의 긴장이다. 대개 선악구도로 끌고 가서 막장드라마 식으로 출생의 비밀이니 고부갈등이니 하며 인위적으로 긴장을 만든다. 억지다.

 

중간은 인물과 배경간의 긴장이다. 인물이 시대의 흐름에 의해 필연적으로 사건에 휩쓸려 들어가는 과정을 노출하는 것이다. 거기서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부조리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래야 작품 전체가 탄탄하게 한 줄에 꿰어진다.

 

진정한 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새로운 문체를 쓰는 것이다.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하기다. 작가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다르게 한다. 그것은 확실히 독자의 신경을 긁는다. 왜?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사람과 시골사람이 대화한다면 어떨까? 작가에게 확실한 스타일이 있을 때 독자는 자신이 작가로부터 촌놈취급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체가 세련되었다는 것은 곧 말투가 세련되었다는 것이다. 서울내기다.

 

이때 작가가 탑 포지션이다. 독자는 어떻게든 작가의 세계로 쫓아가는 수 밖에 없다. 누구든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얻었다면 작가가 될 수 있다. 자기만의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얻어야 한다. 서슴없이 독자의 뒷통수를 때릴 수 있어야 한다.

 

◎ 아이디어≫캐릭터≫플롯≫주제≫스타일
◎ 다름≫닮음≫대칭≫머리≫세력
◎ 인물대결↔판구조의 대결↔작가와의 대결

 

창의는 아이디어≫캐릭터≫플롯≫주제≫스타일 순으로 고도화 된다. 곧 다름≫닮음≫대칭≫머리≫세력이다. 다름은 아이디어에서 얻어진다. 아이디어는 소재다. 소재는 기발할수록 좋다. 그저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극장에서 히트하는 영화의 특징은 둘이다. 하나는 대세에 편승하여 묻어가는 전략이다. 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비슷한 것을 만들면 된다. 다른 하나는 한동안 뜸했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 동안 전쟁영화가 뜸했다면 전쟁영화가 히트한다.

 

노골적인 정사신이 화제가 되는 영화는 일년에 두 편 정도 히트한다는 속설이 있다. 이미 그런 영화가 극장에 여러 편 나와 있다면 피해가야 한다. 이색적인 소재로 관객의 주의를 끄는 것이 창작의 기본이다.

 

다름-아이디어-소재는 워낙 기본이므로 작가를 꿈꾼다면 이미 그런 아이디어는 수십개씩 머리 속에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 작가지망생이 이제부터 아이디어를 찾아보겠다면 허당이니 꿈 깨시라고 할 밖에.

 

닮음은 캐릭터다. 캐릭터는 인물들 사이의 궁합 맞추기다. 이때 궁합은 다름을 전제로 한 조합이어야 한다. 남녀는 성별이 다르므로 조합될 수 있다. 춘향과 몽룡의 조합은 성공이다. 기사와 하인은 신분이 다르므로 조합될 수 있다. 돈 키호테와 산초의 조합도 성공이다.

 

부자와 가난뱅이, 일본인과 한국인, 성급한 사람과 미련한 사람 등으로 상반되게 조합을 만드는 것이 캐릭터다. 설까치와 마동탁, 구영탄과 마구만처럼 인물의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되어야 한다. 이들은 다르지만 크게 공통된다. 같은 야구선수거나 혹은 같은 축구선수거나 혹은 같은 여자를 사랑하거나다.

 

아이디어로 다름을 조달하고, 캐릭터로 닮음을 조달했다면 다음은 플롯이다. 플롯은 이 둘을 대결시킨다. 그 방법은 하나의 공간에 가두는 것이다. 성격이 다르고 캐릭터가 상반된 두 인물을 하나의 공간에 가두어 서로 마찰하게 함으로써 사건을 유발시킨다. 쉬운 방법은 이 둘을 아우르는 제 3자를 투입하는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더 굿’을 투입하여 탑 포지션을 차지하게 하고 바텀 포지션의 ‘더 배드’와 ‘더 어글리’를 포진시킨다. 서로 다른 둘을 충돌시키고 혹은 교착시킨다. 한 마디로 갖고 노는 것이다. 대부분의 연애소설은 여주인공이 탑 포지션을 차지한다.

 

이때 탑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이 주인공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극에 긴장을 조성하고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다.

 

걸작과 태작의 차이는 탑 포지션을 누가 차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당연히 활동성 있는 미남미녀 주인공이 탑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자주인공에게 탑을 주고 특별히 역할을 주지 않는다. 활동성이 없다.

 

왜? 남성작가들이 여자심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여자가 예뻐서 남자가 반했다는 식이다. 여자에게는 여자의 이중성이 있다. 여자의 이중성을 찾아내서 입체적인 여자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작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탑이 바텀의 동선을 제한한다는 거다. 탑이 동기를 부여하며 그 동기에 의해 주인공들의 활동무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뛰어난 작가라면 당연히 보폭이 넓고 활동성있는 주인공에게 탑을 맡겨야 한다. 탑을 차지한 인물에게 많은 역할을 주어야 한다.

 

주인공이 수시로 변덕을 부려야 한다. 중간에 동기가 바뀌어야 한다. 동기를 고정시켜서 ‘난 예쁜 여자만 차지하면 돼.’하는 식이라면 그다지 나올만한 이야기 건덕지가 없다.

 

주인공은 똑똑하고 유능하고 변덕스럽고 복합적인 성격이어야 한다. 주인공이 단순하고 멍청하면 사건이 유발되지 않아 에피소드가 생산되지 않는다.

 

이때 작가는 요리재료는 그대로 두고 양념만 추가하는 막장드라마식 저질수법을 쓴다. 악당을 더욱 지독한 악당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독한 악당은 정신병자이므로 이야기가 안 된다. 현실성 없는 억지부리기다.

 

주인공의 속이 검고 음흉하고 이중적이고 천재여야 한다. 흥선대원군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어야 한다. ‘세 얼간이’의 란초처럼 바보인데 천재여야 한다. 주인공은 수수께끼의 인물이어야 하며, 주인공이 변덕을 부려 중간에 극의 목표를 바꾸고 관객의 뒷통수를 쳐야 한다. 한 마디로 불청객이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하부구조다. 다름≫닮음≫대칭으로 이야기의 기본이 만들어진다. 중요한건 상부구조다. 상부구조에서 작품의 수준이 결정된다. 상부구조는 이러한 다름≫닮음≫대칭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그런데 상부구조는 이 다름≫닮음≫대칭이 토대가 되는 바운더리에서 벌어진다. 인물들이 서로 대칭되고 교착되어 갈등하는 구조가 실은 사회의 계급구조, 공간구조,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모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작품의 주제다.

 

공간대결의 의미는 필연성에 있다. 인물의 성격이 단지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일 뿐이라면 변학도가 갑자기 회개하고, 놀부가 갑자기 반성하여 이야기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변학도는 양반계급을 대표하고 놀부는 지주계급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이명박은 조중동 친일세력의 대표자 입장이기 때문에 임의로 반성할 수 없다. 필연의 구조를 드러내야 전체 에피소드들이 한 줄에 꿰어져서 극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가게 된다. 극이 힘을 얻는다.

 

선악구도로 가면 나쁜 놈이 사건을 일으킨다. 나쁜 놈이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이미 실패다. 나쁜놈이 신무기를 들고와서 새로운 유형의 테러를 일으키는 식이다. 나쁜놈이 먼저 공격하고 주인공이 뒤늦게 수비하면 보수 패러다임이다.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브루스 윌리스의 공통점은 공화당 성향이라는 거다. 다들 얼간이 부시가 좋아하는 캐릭터다. 이들의 영화에는 대개 상상력 넘치는 악당들이 신통방통한 신무기를 개발하여 주도권을 쥐고 난장판을 벌이는 가운데 찌질한 주인공이 개고생을 하며 바닥을 기다가 운좋게 악당을 물리친다는 식으로 되어 있다.

 

항상 악당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그런 비겁한 태도 때문에 헐리우드가 생각있는 평론가들에게 욕을 처먹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하부구조 싸움은 이제 끝내야 한다. 상부구조로 치고올라가야 한다. 상부구조에서는 공간이 주인공이다. 공간은 닫힌 공간이다. 바다 위의 배라도 좋고 두꺼운 쇠문이 잠긴 지하실이라도 좋다. 좁은 공간에 인물이 여럿인데 총이 한 자루 뿐이다. 이때 총을 쥔 사람이 갑이 된다. 탑 포지션을 차지하는 거다.

 

영화 풍산개나 큐브 혹은 쏘우를 떠올릴 수 있다. 이때 총이 주인공이다. 혹은 공간 그 자체가 주인공이다. 공간의 성격이 인물의 성격을 규정한다. 시소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쏘우의 고립된 공간, 큐브의 닫힌 공간, 풍산개의 지하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바로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인물이 갈등하듯이 계급이 갈등하고 인간의 본성이 갈등해야 한다. 인물이 갈팡질팡 고뇌하듯이 신분제도가 갈팡질팡 흔들리는 모습을 추적해야 한다. 인물에 입체적인 캐릭터의 탑 포지션이 있듯이 공간의 바운더리에도 입체적인 위상의 탑 포지션이 있다.

 

이쪽 세계에 속하면서 동시에 저쪽 세계에 속한 이중공간이 있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서 고리오 영감의 하숙집 같은 특이한 공간이 있다.

 

바다 위에 배가 한 척 떠 있다. 배 안에서 인물은 서로 다툰다. 혹은 화해한다. 그 과정은 그 바다와 배가 다투는 과정을 복제한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모든 행동은 실은 바다의 행동을 복제한 것이다. 노인이 늙은 것이 아니라 바다가 노회한 것이다.

 

바다는 할아버지다. 모비딕에서 에이허브 선장의 괴팍한 성격은 사실은 바다의 성격을 복제한 것이다. 태풍이 불고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가 괴팍하고 난폭한 것이다. 인물에서 판구조로 상승하기다. 깨달음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 장동건의 날고 뛰는 괴이한 행각은 전쟁 자체의 괴이함에서 배태된 것이다. 동족을 서로 갈라놓고 형제가 서로 죽고 죽이는 괴이한 전쟁이다. 인물의 성격이 실은 판구조의 모순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리얼리즘 문학이다. 인물에 더 굿과 더 배드와 더 어글리가 있다면 판구조에도 더 굿과 더 배드와 더 어글리가 있다.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는 군기빠진 8명의 이탈리아군이 이차대전때 그리스의 작은 섬에 침투했다가 본부와 연락이 끊긴채 주저앉아 3년 동안 헤헤거리고 노는 이야기다. 연합군과 추축군이 시소의 양 날개라면 그 그리스의 섬이 시소의 탑 포지션이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거기서 지중해의 작은 지상낙원이 연출된 것이다. 또 이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역시 짧은 순간 북한군 초소 지하에서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작은 천국이 건설되었다. 이 상황은 ‘고지전’까지 이어진다.

 

편지와 소주를 교환하는 참호 속의 작은 구덩이는 포화가 쏟아지는 지옥 속의 은밀한 천국이다. 그리고 마이웨이에서 박살난다. 마이웨이는 무대가 아닌 인물이 주인공이다. 공간의 포지션 대결이 아닌 인물의 선악대결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축이다. 망했다.

 

여기서 언제나 탑 포지션의 ‘더 굿’이 황당무계한 사고를 쳐서 상황을 헷갈리게 해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돈 키호테와 비슷하다. 도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당인지 알 수가 없다. 소설이라면 당연히 우리편과 나쁜편이 갈라져 있어야 하는데 돈 키호테는 죄수를 풀어주는 등 이상한 짓을 해서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다.

 

지중해의 나사 풀린 이탈리아 군인과 같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가 무의미해졌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도 마찬가지다. 서부영화라면 당연히 정의의 사나이인 보안관이 출동해서 무법자를 혼내줘야 하는데 아뿔싸 이건 주인공이 무법자다.

 

큰일났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주인공이 먼저 불법을 저지른다. 주인공이 적과 내통한다. 총살감이다. 동막골도 마찬가지다. 고지전도 약하나마 그런 에너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이웨이는 조져놓았다. 중요한 것은 세르지오 레오네가 규칙을 깨뜨림으로써 탑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거다. 연애소설은 대부분 3각관계고 3각관계는 탑을 차지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거다. 즉 규칙을 깨는 거다.

 

동막골에서 국군과 인민군이 섞여버리듯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리는 데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탑을 차지한다는 것은 선을 넘는 거다. 규칙을 깨는 거다. 터키인 믿다가 총을 도둑맞은 ‘지중해’의 이탈리아군처럼 나사를 빼놓아야 한다. 바로 거기서 에너지가 조달된다. 규칙을 깨뜨리는 데서 동기가 부여된다.

 

반드시 규칙을 깨는 인물이 등장해야 한다. 그 인물은 이중성을 가져야 한다. 보통 한국영화는 조연이 그 탑 포지션을 차지한다. 원래 조연급인 송강호나 최민식이 탑을 차지한 데서 한국영화의 비극은 시작된다.

 

당연히 한석규나 장동건 같은 미남배우가 탑을 차지하고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조연이 주연을 하니 관객이 들지 않고 블록버스터가 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들이 극본을 잘못 쓴 것이다.

 

한국영화의 실패는 미남주인공이 재미없고 전형적인 인물을 맡아 따분한 연기를 펼쳐서 연기 못한다는 소리나 듣게 되고, 반대로 괴팍하고 재미있는 성격은 항상 조연이 맡아서 명연기를 펼치는데 있다. 왜 못생긴 조연들만 연기를 잘 하나?

 

작가가 대본을 잘못 써서 그렇다. 작가가 대본을 잘 썼는데 주인공이 연기를 못하는 일은 없다. 김기덕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미남주인공에게 유쾌하고 이중적인 성격을 부여하려면 흥선대원군처럼 속을 숨기고 바보인척 하는 천재 캐릭터여야 한다.

 

인물의 정체를 숨기고 극을 진행하며 한꺼풀씩 벗겨가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어쨌든 주인공이 천재려면 작가도 천재여야 한다는게 장벽이 된다.

 

주인공의 의사라면 작가에게 의학지식이 있어야 하고 주인공이 박사라면 작가에게 박사급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시나리오 작가에게 전문성이 주어져야 한다. 사전에 충분한 자료조사를 해서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획득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영화의 문제는 작가가 전문가화 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제대로 된 프로가 아닌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무엇이 다른가? 괴상한 성격이 오히려 주인공이다. 미남 주인공이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인공이 이름도 없다. 아주 ‘이름없는 자’로 출연한다.

 

왜? 주인공이 속을 알 수 없는 괴상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고행석의 불청객 캐릭터와 비슷하다. 어디선가 굴러온 정체도 알 수 없는 괴상한 사나이가 마을을 평정한다.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도 그러하다. 미남 주인공이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다. 주인공이 이중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나는 아직 한국영화 중에서 이러한 스타일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래서는 헐리우드를 이길 수 없다. 찌질한 주인공이 뛰어난 악당에게 골고루 줘터지면서 개고생 하는 영화는 이제 끝내야 한다.

 

◎ 인물의 법칙 – 전형적인 두 인물이 대칭을 이루고 복합적인 캐릭터가 주인공을 맡아서 탑을 차지해야 한다.
◎ 바운더리의 법칙 – 전형적인 대결의 장이 대칭을 이루고 복합적인 장소가 주인공을 맡아서 탑을 차지해야 한다.

 

하부구조에서는 인물이 복합적인 캐릭터여야 하듯이 상부구조에서는 공간이 복합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지중해는 복합적인 장소다. 아군의 땅도 적군의 땅도 아니다. 동막골 역시 이상한 장소다. JSA 역시 이상한 장소다. 술을 숨겨놓고 편지를 전달하는 고지전의 참호 역시 이상한 장소다. 풍산개의 지하실 역시 이상한 장소다. 네땅이면서 내땅이다.

 

대부분 위대한 걸작들은 그러한 이상한 공간을 발굴하면서 소설을 시작한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서 고리오 영감이 묵는 이상한 하숙집과 같다. 그 공간은 귀족들의 공간이면서 하층민의 공간이다.

 

강자의 장소이면서 약자의 장소, 평범한 장소이면서 전복의 장소, 그런 기이한 장소가 있다. 을이 갑으로 변신하고 추녀가 미녀로 변신하는 4차원의 공간이 있다.

 

모든 소설에는 그런 이상한 공간이 하나씩 있다. 단오날 춘향의 그네 뛰는 광한루가 그런 공간이다. 그곳은 양반의 공간이면서 평민의 침범이 특별히 허용된다. 18가구가 사는 33번지 이상한 뒷방과 같은 그런 공간이 있다.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를 복제한다. 인물의 성격도 복합적이듯이 우리가 사는 공간의 성격, 사회의 성격, 계급제도의 성격도 당연히 복합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을 규명해 내는 것이 문학의 할 일이다. 그것이 리얼리즘의 진짜 의미다.

 

리얼리즘은 실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상당히 판타지에 속하지만 오히려 리얼리티가 있다. 그러나 다른 소설이나 영화들은 실제의 사실을 옮겨놓아도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그것은 인물의 성격과 공간의 구조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느냐에 달려 있다. 바로 그것이 리얼리티다. 그러한 연결에 성공하면 판타지가 날아다녀도 리얼리즘이며 그것이 없으면 실제 사실을 그대로 써놔도 보고서일 뿐 예술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리얼리즘이란 사실을 기록한 문학이 아니라 인물의 대결을 공간구조의 대결, 사회계급간의 대결로 전환시켜 인식의 비약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을 기록해도 리얼리티가 없을 수 있고 김기덕 영화처럼 판타지로 가도 오히려 리얼리티가 있을 수 있다. 공간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리얼리즘이다.

 

◎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를 복제한다.
◎ 하부구조는 인물이고 상부구조는 공간이다.
◎ 하부구조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 주인공을 맡아 탑을 차지하고 인물들에 동기를 부여하여 사건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전형적인 인물은 바텀을 차지하고 주인공과 대결함으로써 긴장을 유지한다.
◎ 상부구조는 복합적인 공간이 탑을 차지하여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감춰놓아 에너지를 공급하고 분명한 주제를 드러내어 관객이 극에 집중하게 한다. 전형적인 공간이 바텀을 차지하고 복합적인 공간과 대결하여 긴장을 유지한다.
◎ 작품의 성공은 인물의 갈등에서 공간의 갈등으로 비약하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갈등구조를 찾아내는데 있다. 더 나아가 관객과 작가의 갈등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모든 관객이 작가가 되게 하는데 있다. 작가를 만드는 작가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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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11 (09:28:49)

중복되고 혼선되니 머리가 아프지만 그런대로 만족이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11 (11:01:55)

다시 생각해 보니 누워서 떡 먹기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11 (14:49:37)

저는 최근 글들을 읽고, 저의 실생활에 적용해 보았는데요.

과정은 혼선이었지만, 결론은 제 스타일의 발견에 도움 되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11 (15:11:34)

폐쇄형 구조요. 황무지와 같은 황폐화였던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11 (21:08:10)

제 스타일이 폐쇄형인 이유는, 당연히 공간의 영향이 크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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