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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192 vote 0 2011.06.27 (11: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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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천만에… "理性은 남과 싸워 이기려고 발달한 것"

美·佛 학자 파격 해석에 해외 학계 일제히 술렁


조선일보 | 전병근 기자 | 입력 2011.06.27 03:13


 



"이성은 진리 탐구의 수단이라기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투쟁의 무기로서 진화해온 것이다." 


인간 이성(理性)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이 해외 학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른바 '이성적 사고에 관한 논쟁 이론(argumentative theory of reasoning)'이다. 과학저널인 '행동·뇌과학 저널(The Journal of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이 지난 4월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데 이어 뉴욕 타임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 유력지들이 이 이론을 차례로 소개했다.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에서 이성이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고유 능력'으로 규정돼왔다. 계몽주의 이후에도 이성적 사고는 인간의 지식을 개선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논쟁론자들'은 이런 고전적 해석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프랑스 장-니코 연구소의 인지과학자인 댄 스퍼버 박사와 미 펜실베이니아대의 휴고 머시어 철학 교수는 공동 논문에서 "이성적 사고는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가 남을 확신시키거나, 섣불리 남에게 설득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실적인 인간은 고독한 진리탐구자가 아니라 무리 속에서 부단히 의견을 다투는 사람이다. 인간의 합리성이란 것도 상대를 이기려는 욕망이 논쟁의 영역에서 발현되면서 발달돼온 능력이라는 것. 


이 이론은 사회 현실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비이성적' 현상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이 출생증명서까지 공개했음에도 불구, 아직도 미국 에서는 그가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국내 '광우병 파동' 때도 마찬가지. 사실에 기초한 전문가들의 '해명'이나 '합리적' 설득에도 불구하고 '괴담'이 활개쳤다. 철학계에서는 '확증 편견(Confirmation Bias)'이라 부르는 뿌리 깊은 경향성을 원인으로 든다. 자기 생각에 맞는 의견만 청취하려는 사고의 습관을 가리킨다. 이는 '이성적 사고'를 갖고 있는 식자층도 마찬가지다. 자기 반대편 연구나 글에서 흠을 찾아낼 때는 훨씬 더 열성적이 되고, 자기 관점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반증에는 훨씬 더 비판적이 된다는 것. 스퍼버 박사는 "확증 편견은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할지는 몰라도 타인을 설복시키려 할 때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이성적 사고는 자기주장을 변론하는 방패이고, 유능한 논객이란 진리 추구자가 아니라 자기 입장을 강력하게 펼 수 있는 사람이다. 스퍼버 박사는 "인간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를 해왔다면 논리적 사고에 반하는 습성은 왜 도태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구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인간은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이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얻을 경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이런 '투쟁 도구로서의 이성'을 발전시켜온 것으로 풀이된다. 예일대의 헬렌 랜드모어 정치학 교수는 "민주주의도 이런 이성의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며 "인간이 논쟁과 평가 기술을 발달시켜 가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토론을 허용하는 정부를 최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법정 공방 시스템도 같은 예로 제시됐다. 


 



 

이게 전형적으로 ‘과학계의 비과학’이다. 이건 뭐 개소리다. 과학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하나하나 따지면 이 짧은 기사에서 수십 가지 잘못을 짚어낼 수 있다.

 

이성은 곧 의사결정 능력이다. 구조론에 따라 의사결정은 의사결정하기 편한대로 진행된다. 즉 인간은 의사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확증편견 어쩌고 하는 것도 개소리다.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사건의 기승전결 원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즉 의사결정의 결을 따라간다.

 

구조의 결이 있으며 그 결에 따라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다음 단계로 진도 나가주는 것이며 그것은 에너지 자원이 완전히 소모될 때 까지 진행된다.

 

인간은 오바마 대통령이 출생증명서를 공개해도 납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긴장을 조성해서 더 높은 레벨의 판단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1심에서 패소해도 무조건 2심을 가는 것은, 승패와 상관없이 2심판결을 받아보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걸 기록에 남기려는 것이다.

 

오바마가 미국인인지 케냐인인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3심까지 가서 미국사에 획을 그은 일대사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사건이다.

 

역사의 진보는 사건의 집적에 의해 일어난 거지 사실의 옳고 그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에 따라서 역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개입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며, 당시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을 개입시킬 수 있다면 뭐든지 할 테세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성은 사건을 증폭시켜 공동체의 중심까지 전개시키려는 의도에 의해서 즉 인간의 집단지성, 집단지능을 형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동물에게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맞다. 예컨대 개미의 역할분담에 의핸 고도의 군집생활은 당나귀나 혹돼지 무리에는 없는 것이다.

 

개미는 페로몬을 통해서 군집 안에서의 역할분담을 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사건을 공동체의 중심까지 끌고들어가서 집단지능을 형성하며 그 목적은 결국 사건을 1심이 아닌 2심, 3심 대법원까지 끌고들어가서 그 그룹 안에서 최고지성의 판단을 받아, 그 집단의 역사에 길이남을 일대사건으로 만들어, 거대한 역사의 이정표로 제시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들어간 에너지 대비 효과가 좋은 것이다.

 

오바마를 끈질기게 물고늘어져서 일대사건으로 만들어 미국사의 대전환을 연출하려는 것이었으며, 실상 미국독립의 원인이 된 보스턴 차사건이나 총알 한방에서 시작된 1차세계대전도 이런 '오바마 오해하기' 수법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만약 오해가 전혀 없었다면 미국은 아직 영국의 식민지다. 모든 것은 '의도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오해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싸움을 거는 것이며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개시켜 상황통제의 불가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결국 통치집단의 통제능력을 해체하려는 것이다.

 

원래는 존 행콕이라는 밀수업자가 돈벌이 목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의 전투에 의한 사망자는 고작 1200명에 불과하며 수많은 병사가 비타민 부족에 의한 괴혈병으로 죽었는데, 이는 미국식민지와 영국정부의 소통불능을 드러낸 것이다. 즉 미국독립의 당위성을 입증한 것, 규정이 어떻고 하면서 레몬 주스 한 잔으로 해결되는 비타민 공급을 못해서, 영국군 수만명이 병사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다.

 

촛불항쟁도 마찬가지다. 소통불능을 드러낸 것. 소통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자격이 없다. 여전히 이명박 정권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비타민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규정이 어떻길래 레몬 주스가 안 와서.

 

계에 밀도를 투입하면 핵이 형성되고 결이 전개되어 구조가 작동한다. 바로 그것을 얻으려는 것이며 거기에는 의도적인 오해하기부터 온갖 초식이 사용된다.

 

구조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얻지 않으면 과학은 총체적으로 실패다. 구조는 수학+물리학이므로 반박할 수 없다.

 


[레벨:15]오세

2011.06.27 (12: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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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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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13:11:33)

* 의하여는 결을 따라가는 것, 즉 커튼을 펼치듯 하는 연속적인 전개이며 그 에너지가 소진될때까지 무조건 가는 것.


* 위하여는 단편적인 부스러기들. 그 위하는 목표가 없어지면 사라지는 것. 그러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없어도 돈줄이 마를때까지는 계속 가듯이 자원이 소모될때까지는 계속 감. 안 가는게 이상. 안 가면 종단의 남은 재산은 누가 먹고?


현재 과학계는 위하여를 따라가므로 두서가 없음. 위 기사에는 '남과 싸워 이기려고'라 해놨는데 이기는게 뭔데? 이긴다라는 개념은 체면을 세워준다는 것인지, 생존한다는 것인지.. 이건 비과학적 표현. 건조한 뼈가 아니라 덧붙인 살.


불이 꺼졌는데 잔불이 남아서 계속 타는 것은 거기에 기름이 남아있어서이지 뭐 이길려고 불이 타는거 아님. 이성은 결국 의사결정이며 의사결정은 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문제는 계의 성립여부. 계는 밀도가 걸려야 성립하는데 그 밀도를 부여하는건 긴장. 스트레스. 최대한 집단에 스트레스를 주는 것임.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면 사건은 계속 진행. 그러나 보다 흥미있는 사건이 일어나면 순간에 해체. 결론적으로 오바마 출신지 집착환자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더 큰 소동을 일으켜서 거기에 홀리게 만드는 거. 신기한거 하나 던져주면 자동해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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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15:06:25)

맹자는 '누가 우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해주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지만, 나치 장교들은 태연하게 사람을 죽였다. 그들은 어린이를 구해주지 않았다. 이런 논쟁들은 대개 여기서 기원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무엇인가? 막연하게 동물에게 없는 어떤 고귀한 능력.’ 이러면 곤란하다. 이건 비과학이다.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어떤 고귀한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의 기사와 같이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구조로 보면 인간 행동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이다. 인간들은 대개 같은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살인자는 계속 살인하고 범죄자는 재범을 저지르고 말썽쟁이는 같은 말썽을 계속 부린다.

 

그것은 여러 개별적인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닭을 잡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닭의 목을 칠때마다 내가 닭을 죽여야 하나?’ 하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런 판단은 취업할 때 한번만 한다.

 

개가 주인에게 충성하는 행동은 실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단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습관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은 공동체에 일관된 신호를 보내려는 것이며, 공동체 안에서 어떤 정치적 긴장이 투입되었을 때 자신이 반복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우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해주는 이유는 일생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 결과 공동체로부터 배척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딱 한번만 잔인한 짓을 하고 다음부터는 잘하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한번 나쁜 짓을 하면 계속 한다.

 

계속 나쁜 짓을 하면 공동체로부터 추방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나치장교는 일관되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으므로 일관되게 나쁜 짓을 하고, 전쟁터의 병사는 일관되게 살인을 한다. 그것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닭집 주인이 닭모가지를 능숙하게 치는 것은 그것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세워놓고 일생에 딱 한번의 기회다. 닭모가지를 치라고 하면 아무도 치지 않을 것이다.

 

딱 한번 사형수를 죽이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망나니는 살인을 반복하므로 태연히 살인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결이 존재한다. 결은 개별적인 사건을 전체의 사건 안에 통합시켜 낸다. 인간의 행동은 그 결을 따라간다. 그 전개는 그러한 판단과 결정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매번 오바마는 케냐인이냐 미국인이냐?’ 하고 판단한다면 피곤한 거다. 그러므로 되도록 사건을 키워서 역사에 길이남을 일대사건으로 만들어 딱 한번으로 끝장보고 다음부터 골치 썩이는 일 없도록 하자는 거다.

 

즉 인간은 판단을 최소화 하는 쪽으로 판단하는데 멍청이들 때문에 오히려 판단이 늘어난다. 히틀러에게 판단을 맡겨버리면 히틀러가 유태인을 싹 처리해버릴 것이고 그러면 유태인과 관련하여 판단할 일은 없어질 것이다. 고로 히틀러가 하자는대로 하는 것이 판단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이게 그때 나치독일장교생각.

 

그러나 독일인들은 지금도 유태인에 대한 사죄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에 대한 사죄를 계속 저축하고 있다. 즉 그들은 판단과 결정을 최소화 하려 했지만 되려 최대화 된 것이다. ? 멍청하니까.

 

 

[레벨:15]오세

2011.06.27 (15: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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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최초의 판단과 결정에 에너지를 왕창투입해 최적의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이후의 지루한 노가다 반복 작업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대충 기존에 해오던대로, 아니면 남이 하는 것과 반대로, 혹은 아예 문제 자체를 무마시키는 방법으로 판단과 결정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려 들면, 되려 이후 지루한 노가다 반복 판단 결정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것. 


한 마디로, 첫 단추를 잘 꿰라는 말이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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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15:50:14)

그것은 만원버스 안에서 방귀를 참는 것과 같소.

내가 방귀를 뀌면 다른 넘도 뀔 것이고 모두가 뀌면 결국 질식해서 죽을 것이니까.

근데 과연 내가 방귀를 뀌면 결국 단체로 사망인가?

다음날 신문에 '만원버스 승객 80명 단체로 질식사?'

이걸 머리로 셈하면 복잡해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운전기사가 커브길에서 버스를 한번 휘청하게 만들어버리면

아 이거 공동운명체로구나 

몸으로 느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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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22:22:15)

 

"인간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를 해왔다면 논리적 사고에 반하는 습성은 왜 도태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연구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 이런건 최악의 비과학적 표현. 지가 뭐 논리가 뭔지 아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어. 과학자가 이런 모호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과학은 곧 죽어도 ‘1+1=2’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최초의 출발점 의하여부터 하나씩 전개시켜 오는 바로 그것이 논리다. 그런거 없이 중간에서 불쑥 끼어드는 이런 식의 비과학적 태도가 바로 논리적 사고에 반하는 행동인 것이다.

 

다 필요없고 모르는건 슈퍼 컴퓨터에 물어보면 된다. 슈퍼 컴퓨터는 인류 전체의 지혜를 한 자리에 모으면 그 순간에 만들어진다. 그 슈퍼컴퓨터로 계산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왜 하필 그걸 질문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1번의 사건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갈등을 증폭시켜 거대한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종교에서 잘 관찰된다.

 

아랍이나 인도에서 그리고 중국 서쪽지역에서 특히 종교가 발달한 이유는 그 쪽에 공기 상하층부의 기온차로 인한 신기루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뭐 하나라도 보기는 본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은 절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 봤으니까. 초자연적 현상을 직접 경험했으니까.

 

본인이 직접 봤다는데 뭐. 그 사람들이 들고나온 문제의 팩트에 있어서의 사실여부를 떠나 그것이 인생 전체를 가르는 우선순위 1번의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에게는 개인에서 공동체로, 부분에서 전체로, 순간에서 인생 전체로 사건을 확장시켜 나가며 그 과정에서 일관성을 추구하는 의사결정의 원리가 존재하며 그 안에 메커니즘 형태로 결이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판단을 공동체에 던지고, 부분의 판단을 전체에 던지고, 오늘 한 순간의 판단을 인생전체에 던지는 형태로 '와꾸'를 먼저 판단하고 방향성을 먼저 판단하고 그 다음에 세부적인 판단을 하려는 태도이다.

 

구조론에 따라 부분에서 전체로 전개한다.

와꾸()을 먼저 정하고 세부내용을 채워넣는다.

개인>공동체, 공간의 부분>전체, 시간의 지금>일생으로 확장시켜 그 과정에서의 일관성을 획득함으로써 와꾸에 도달한다. 거기서 기본적인 방향성이 획득된다. 그 방향성은 개인이 공동체와 마찰하지 않고, 부분이 전체와 마찰하지 않고, 지금이 일생과 마찰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팩트위주로 사실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공동체와 마찰하지 않는 방향, 부분이 전체와 마찰하지 않는 방향, 지금이 일생과 마찰하지 않는 방향성을 정해놓고 그 범위 안에서 점점 좁혀가면서 결론을 내린다.

 

이런 전개는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현명한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팩트가 희생된다는 거다.

 

예컨대 이런 거다. 어떤 사람이 헛것을 봤다고 치자. ‘내가 헛것을 봤다고 발표하면 다들 미쳤구만이럴 것이다. 그러므로 침묵하든가 아니면 귀신을 봤다고 과장하든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개인은 공동체가 합의 가능한 범위 안에서 즉 공동체의 행동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팩트를 조작한다. ‘맞아 내가 귀신을 본 거였어.’ 이런 전개는 비합리적인가? 천만에. 매우 합리적이다.

 

?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본 것이 공동체에 위해를 가할 위험성은 적어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즉 그 본 것이 맷돼지인지 고라니인지 신기루인지 용오름현상인지 그냥 백일몽인지 모르지만 뭔가 공동체에 위험을 던져줄 확률범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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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22:34:28)

최근의 옥주현 논란을 보면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신문기자, 전문가, 평론가 중에서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다. 말하자면 전체 한국인 중에서 옥주현 논란의 본질을 파악한 지식인, 전문가가 아주 없는 것이다. 정확하게 0명이다. 이거 매우 위태롭다.

 

무개념 기자, 평론가, PD에 의해서 사건이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오늘도 포탈 사이트 대문에 '대중에 찍힌 그녀 무슨 짓이든 밉다고?' 요런 제목의 수준이하 기사가 떴는데, 이는 안티들을 불러모아 최다댓글상에 도전하겠다는 식이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보도를 하면 희생자가 옥주현이 된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짓인가? 옥주현을 두둔하고 네티즌을 비판하는 척 하지만 본질은 저급한 제목장사. 기자는 클릭수를 원할 뿐이고.

 

네티즌은 긴장을 증폭시키는 수법을 쓰며 그것은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힘에 의해 연출되고 조정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망교회설부터 마당발설, 모 일간지 애인설, JK김동욱 희생설 등 다양한데 전문가, 기자, 평론가들은 이런 음모론을 낱낱이 반박해놓고 그러므로 옥주현은 억울하다, 마녀사냥이다 하는 식으로 쓰고 있다. 이건 마녀사냥 꼭 하라는 선동 아닌가?

 

이것이 사건의 진짜 원인을 파악한 행동일까? 이건 마치 광주항쟁 때 전두환이 광주시에 퍼졌던 일부 유언비어가 엉터리임을 입증해놓고 그러므로 니들은 폭도다' 하고 우기는 것과 같다. 본질을 봐야 한다. 광우병 위험이 과장되었다고 해서 대중을 불안하게 한 정부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건 별개다.

 

옥주현이 희생되고 있는 이유는 대중에 찍혀서도 아니고, 밉상이어서도 아니고, 코드가 어째서도 아니다. 옥주현과는 상관없다. 대중의 불만 에너지는 옥주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다.

 

애초에 팽팽하게 당겨진 활이 있었던 것이다. 깃털 하나의 움직임 만으로도 태풍이 발생할 수 있는 정도의 수증기를 머금은 구름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연장선 상에 이명박의 공정사회 어쩌구 하는 소동이 있다. 사회에 팽배한 분노는 특권층의 농간에 대한 것이다.

 

김건모의 재도전은 불공정으로 비추어졌다. 이게 촉발이다. 임재범이 그동안의 고생을 떨치고 대접받는 것을 공정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본질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래실력과는 무관하다.

 

나는 성대다어쩌구 하며 희화화 시키는 짓도 무모하다. 과연 지르기만 하면 1위인가? 대중은 고음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옥주현처럼 질러대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절규하는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이른바 뽕끼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가창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공정한 보상을 원하며 가창력이나, 고음이나, 이런건 '공정한 보상'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환풍기 수리공 허각이 우승한 것도, 가족이 한국에 가 있어서 외로운 소년기를 보낸 연변청년 백청강이 우승한 것도 공정한 보상차원이지 노래 잘 불렀다는거 아니다. 가창력? 고음? 지르기? 성대? 천만에. 허각이 존박보다 더 고생했기 때문에 더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며, 백청강이 이태권보다 더 고생했기에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다. 노래는 이태권이 더 잘 불렀을 수 있다.

 

그리고 보상받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은 꾸며지지 않은 것, 연출되고 조정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옥주현은 다이어트를 할때부터 이미 꾸며진 인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꾸며진 옥주현과 순수한 백청강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임재범의 가창력은 그 진정성을 드러내는 장치에 불과하다.

 

고생했다고 무조건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가치있는 고생을 한 사람이 보상받는 것이며 그것을 대중은 진정성이라고 하고 임재범의 노래에서 그것을 발견하고자 한다. 임재범의 실력은 단순한 실력 이상의 굴곡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지금 방송국은 어린이에게 흉기를 쥐어주고 장난치는 짓을 하고 있다. 개별적인 사실, 팩트가 아니라 전체가 가는 방향성, 와꾸, , 형식, 어젠다가 중요한 것이다. 컨셉이 중요한 것이다. 대중은 진정성+순수+공정한 보상을 원하며 옥주현은 그것을 드러내는데 딱 맞는 반면교사다.

 

진정성 : 외로운 호랑이 임재범<-> 자가발전 마당발 옥주현

순수 : 연변총각 백청강 <-> 아이돌 출신 옥주현

공정한 보상 : 탈락 김동욱 <-> 건재한 옥주현

 

대중은 매우 합리적인,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판관 포청천처럼. 그리고 시청률을 의식하는 방송국이나 당장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PD에게 그것은 매우 곤란한 문제로 되는 것이다. PD는 단지 예능을 원할 뿐이고, 방송국은 단지 광고수주를 원할 뿐이고, 대중은 그 이상의 것을 원하고.

 

대중이 원하는 컨셉인 진정성+순수+공정한 보상을 표현하는데 대비시키기 딱 좋은 옥주현을 PD가 선택한 그 자체가 매우 위험한 불장난이었던 것이다. 대중은 옥주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진정성+순수+공정한 보상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4]삐따기

2011.07.03 (02:16:04)

"이성은 진리 탐구의 수단이라기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투쟁의 무기로서 진화해온 것이다."

 

"이성은 사건을 증폭시켜 공동체의 중심까지 전개시키려는 의도에 의해서 즉 인간의 집단지성, 집단지능을 형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동물에게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 맞다"

 

두 글의 차이점이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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