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 황석영 원작의 드라마 장길산이 방영되고 있군요. 광대 패거리에 지나지 않는 장길산과 그 일당이 한 세상을 엎어먹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드라마는 보통 사실과 다르게 주인공을 미화합니다. 그렇다면 드라마의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청자를 속이는 것일까요? 천만에. 그렇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당연히 민중의 염원을 반영하여 모범형을 창출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는 미학이 있습니다. 미학은 내적인 완결성을 지향하며, 드라마의 작가는 그 완전성을 드러내는 모범형을 창출해 보일 뿐입니다. 거기에 각별한 의의가 있습니다.
수천 병사를 거느리고 활약했던 실존인물 장길산은 드라마 속의 완전무결한 인간 장길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부족한 부분 만큼은 이제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보고 깨닫고 실천하므로써 채워넣어야 하는 우리의 몫으로 남는 것입니다.
동학의 봉화불을 올렸던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 일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겁대가리 없이 날뛰는 임실의 김개남, 대책없이 당돌한 아이 고부의 전봉준, 선운사에서 비결서를 꺼냈다고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선동가 고창의 손화중이라 묘사하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서영석과 그 일당들 또한 대단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도 큰 일을 맡으면 훌륭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더라는 것이 역사의 정설입니다. 또 반드시 그러해야만 한다는 당위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승자를 미화합니다. 이순신은 어린시절 전쟁놀이 할 때 부터 의협심이 있어서 불량배를 혼내주곤 했고, 워싱턴은 거짓말이라곤 할줄 모르는 정직한 소년이었으며, 탐구심이 남달랐든 에디슨은 헛간에서 병아리를 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위인전 작가들이 꾸며낸 말에 불과합니다.
체 게바라 최후의 일기를 읽으셨다면 샤르트르에 의해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물’로 찬양된 그 역시 우리와 같이 번민도 많고 실수도 많은 평범한 인물 중 한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비범한 점도 물론 많으나)
우리는 역사상 영웅들의 일대기에서 무수히 많은 인간적인 결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훌륭한 인물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유해야 할 이상입니다. 장길산이 인격적으로 훌륭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장길산과 같은 평범한 민초들도 ‘국가의 경영’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면 훌륭한 인격자로 변신할 수 있으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밑바닥에서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장길산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왕조 시대에 그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은 거지요.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를 토벌하고 유신회천을 성공시킨 사카모토 료마와 그들의 무리 100여명은 게다를 신을 자격조차 없어 초리(우리말로 ‘쪽발이’라 부르는 뒤축 없는 일본 짚신)를 신고 까치발로 종종걸음하며 다녀야 했던 평범에도 못미치는 시골무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성공을 가능케 했을까요? 참고로 장길산에 대해 웹에서 찾은 자료를 인용하면
성호새설(星湖僿說)의 이익은 조선의 3대 도둑으로 연산군 때의 홍길동, 명종 때의 임꺽정, 숙종 때의 장길산을 꼽았다. 그 중 장길산은 신분이 광대라는 점과 10년 이상 활동했음에도 끝내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주목할만 하다. “극적(劇敵) 장길산은 날래고 사납기가 견줄 데 없다. 이영창의 역모에 장길산이 관련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숙종은, 장길산이 10년이 넘도록 잡히지 않음을 개탄하고 후한 상을 내세워 체포를 독려했지만 끝내 잡을 수 없었다”(숙종실록) “장길산은 본래 광대로서 곤두박질을 잘하고 용맹하고 민첩한 것이 보통이 넘더니 드디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조정에서는 특별히 신엽을 황해도 감사로 삼아 그를 체포하도록 조치 했으나 실패하였다”(성호사설) |
양반은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양반은 기득권세력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양반이 뒤집는다 해도 그것은 왕조의 이름이 바뀔 뿐 본질에서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상놈이 뒤집어야 진짜가 됩니다.
왜 상놈이어야 진짜인가? 상놈은 실패합니다. 왜? 양반들이 협조하지 않으므로 실패할 수 밖에 없지요. 이때 상놈의 방법은? 더 크게 바꾸므로써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래도 상놈은 실패합니다. 왜? 기득권세력이 집요하게 저항하기 때문이지요.
이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놈이 쓰는 최후의 방법은? 몽땅 바꾸는 것입니다. 몽땅 바꾸면 장사치도, 농민도, 서얼도, 천민도 모두 지지하게 됩니다. 즉..
● 양반은 기득권 세력의 협조를 얻을 수 있으므로 조금만 바꾸어도 집권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완전히 바꾸지 않는다.
● 상놈은 기득권세력이 방해하므로 조금만 바꾸려 들다가는 실패한다. 완전히 바꾸어야만 집권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놈은 완전히 바꾼다.
왜 노무현이어야만 하는가? 이회창이라면 조금 개혁하는 시늉만 내어도 됩니다. 왜? 조중동이 도와주니까요. 노무현이 개혁의 시늉만 내다가는 지금처럼 지지도가 폭락해서 망합니다. 그러므로 노무현이 살려면 완전히 바꾸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서프라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다가는 기득권의 총반격을 당하여 망할 수 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한층 고집스럽게 개혁의 외길로 달려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입니다.
장길산과 그의 무리는 상놈 하고도 천민입니다. 요는 관군의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장길산은 끝내 잡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점입니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기는 하지만 밑바닥에서의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장길산의 무리는 말장사를 했습니다. 인삼장수들을 통하여 자본을 조달하기도 했습니다. 승려나 서얼 등 광범위한 사회불만세력과 결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길산의 '외연의 확대'가 그의 부분적 성공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카모토 료마와 한줌도 안되는 그의 무리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항파들과 손잡을 수 있었던 즉, 충분한 외연의 확대가 있었기에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받아 막부를 타도하고 유신회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관군의 집요한 추적을 당하여 죽게 된 장길산은 본인이 살기 위해 말장수와도 손을 잡고, 인삼장수들과도 손을 잡는 등 외연의 확대를 꾀한 것이고 그러한 외연의 확대를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이라는 담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서프라이즈도 살려면 ‘외연의 확대’를 꾀해야 합니다. 좌파들처럼 나만 잘났다며 우쭐대서 안됩니다. 외연의 확대를 가능케 하려면 커다란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인격의 면에서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역사에 도둑은 많습니다. 그러나 관군의 소탕을 당하지 않으려면 저항해야 합니다. 저항하려면 무리를 모아야 합니다. 무리를 모으려면 개벽이라는 커다란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서프라이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씩 쓰러질 때 마다 두 배의 큰 비전으로 일어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안티조선 하나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참된 세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계사에 남을 한국식 모델의 모범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큰 꿈을 공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웅 장길산은 민초들의 협력을 얻은 끝에 끝끝내 잡히지 않고 살아남아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었던 것입니다.
위기상황에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지금은 위기입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사안의 경중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야 겠지요.
손자병법에서 손빈은 말하였습니다.
‘병사를 내가족처럼 사랑하라 그러나 전투에 임해서는 초개처럼 버려라.’
(손무병법과 손빈병법이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은 손무병법이다. 손빈병법은 완벽하게 사라졌다가 10년전 중국의 어느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손무병법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등 낭만적인 전쟁관을 주장하는데 비해, 손빈병법은 적극적인 전술구사를 주장하고 있다. 손빈병법이 더 냉혹한 실전위주의 전쟁관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대통령이 문제인물 안희정을 일컬어 ‘동업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손빈이 그의 병법에서 말한 바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며, 그들을 구태여 감옥으로 보내 처벌받게 한 것은 전투에 임해서 초개처럼 버린 일에 해당될 것입니다.
평소에는 가족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전에 임해서 버려야만 할 타이밍이라면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 옛 사람의 지혜입니다.
필진 명의의 사과문 (이하 내용은 ‘김동렬의 박력의정치’에 올렸다가 서영석님께서 대문에 사과문을 올렸고, 김효님의 기자회견 계획도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현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게시판에서 내렸습니다만 참고로 첨부합니다.) 서영석님과 관련하여 아름답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프라이즈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대사회적인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독자님들도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희는 이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프라이즈의 신뢰를 연대보증 격으로 담보하고 있는 저희 필진들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책임과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하고 두배로 분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아웃사이더가 메인스트림을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댓가가 있습니다. ‘그러는 너희는 잘났느냐'는 검증입니다. 피해갈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가 그다지 잘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잘하도록 노력할 밖에요. ‘어려운 일을 당하여 옛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번 일로 하여 독자여러분이 서프라이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습니다. 서프라이즈는 더 한층 개혁네티즌 모두의 품으로 깊숙히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서프라이즈는 조직되지 않은 무질서한 군중의 우매함과, 독점적인 소수의 편협함을 동시에 극복하고 ‘우리당을 견인하고 참여정부를 감시하는 개혁의 황금률’을 따라 이 원대한 항해의 진로를 잡아갈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비바람이 몰아쳐도 서프라이즈는 흔들림 없이 계속 갑니다. 한번 쓰러질 때 마다 두배씩 큰 목표를 세우기입니다. -서영석, 김동렬, 공희준, 마케터, 지승호 (요한3장3절님 이하 다른 분은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