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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14 vote 0 2023.11.22 (00:07:35)

    중세인들은 헥토르를 좋아했다. 고난을 극복하는 가부장 캐릭터다. 철부지 동생 파리스와 대비된다. 파리스는 아킬레스를 죽인 영웅이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인물이다. 아킬레스 역시 헥토르를 죽였지만 사고뭉치다. 오디세우스는 지혜가 있지만 남을 속였기에 벌을 받았다.   

   

    현대인은 다르다. 파리스야말로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주인공의 정신적인 불안정은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된다.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스를 받쳐주는 것과 같다. 주인공은 결함 있는 영웅이어야 한다. 장비의 결함은 유비가 메워준다. 언제나 힐러가 붙어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주인공 키쿠치요는 농부출신 반쪽 사무라이다. 결함 있는 영웅이 전투를 거치면서 성숙해 가는 드라마다. 스타워즈만 해도 루크 스카이워커가 오비완 케노비와 한 솔로와 요다를 만나면서 성숙해진다. 원래부터 완벽한 영웅은 없다.   

   

    한국인들은 소설도 안 읽고 만화도 안 본다. 캐릭터가 다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발터 모델은 신중하다. 오다 노부나가와 롬멜은 창의적이지만 독단적이다. 독일인과 일본인이라면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다. 개성이 다르다. 한국인은 하나밖에 모른다. 스테레오 타입이다.   

   

    이순신과 세종처럼 완벽한 영웅은 동서고금에 없다. 장단점이 있다. 완벽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팀이다. 창의적인 오다 노부나가, 전쟁귀신 다케다 신겐, 기술을 알고 전쟁을 구조로 하는 건축왕 토요토미 히데요시, 음흉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서로 배우며 강해진다는 설정이다.   

   

    한국인들은 가르치는거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왜 조선왕조의 적장자 임금은 숙종을 제외하고 모두 단명했는가? 연산군, 문종, 단종, 현종, 인종, 순종. 적장자 임금은 모두 단명하거나 실패했다. 팀플레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적장자는 꿀릴 것이 없어서 타협하지 않는다.   

   

    태종, 세종, 세조, 영조, 정조 등 명군들은 다들 하나씩 사연이 있다. 적장자가 아니다. 옥타비아누스와 진시황도 그렇다. 이건희, 정의선, 구광모도 사연이 있다. 약점 있는 사람이 팀플레이를 한다. 클린스만이 잘하느냐는 팀플레이가 되는가에 달려 있으며 선수빨이 좋아야 한다. 


    선수와 상성이 맞아야 한다. 국대는 잠시 소집되므로 감독과 트러블을 일으킬 선수가 없다. 기성용 빼고. 상성을 보지 않고, 팀을 보지 않고, 클린스만 사단 전체의 역량을 보지 않고 개인의 기량만 강조하는건 일종의 어리광 행동이다. 자신을 못 믿기 때문에 남도 못 믿는 것이다.  

   

    한국인은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답답하다. 징징댄다. 단점은 주변에서 받쳐주면 된다. 히딩크는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었다. 클린스만은 강팀을 더 강하게 만든다. 축빠들이 황선홍과 클린스만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유는? 그들은 해맑은 캐릭터를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영웅들은 모두 비장하고 엄숙하다. 까불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인정하지 않고, 한 개의 정답만 찍는다. 입시 하나만 잘하면 돼. 강남에만 입성하면 돼. 영끌만 성공하면 돼. 무대뽀에 올인정신으로 보면 클린스만이 미덥지 않다. 


    완벽한 인물을 만나서 완벽한 결혼을 하려고 하므로 장가도 못 가고 시집도 못 가고 애도 안 낳는다. 그들은 쫄아 있다. 비겁하다. 헥토르 하나만 영웅이라고 우기는 중세인과 같다. 한국인들은 가난한 집안을 혼자 떠맡아 고뇌하며 집안을 일으키는 중세 가부장 캐릭터 좋아한다. 


    헐리우드가 30년 전에 버린 설정이다. 요즘 시대에 아직도 벤허 찾나? 벤허나 스파르타쿠스 같은 고뇌에 찬 '도꼬다이' 영웅은 이차대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60년대 캐릭터 아닌가? 그 시대에 그런 영웅이 필요했다. 혼자 신념과 의지로 악을 쓰며 고난을 헤쳐가는 독고탁 만화. 


    이상무 화백이 독고탁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독고다이 느낌을 주려는 것이다. 그때는 한국인들이 애를 많이 낳아서 우르르 몰려다녔기 때문에 혼자 다니는 독고다이가 인기가 있었다. 독고다이로 부족해서 팔이 하나 없는 외팔이 검객. 더 나가서 애 딸린 검객. 이런 식이다.


    21세기에 외팔이 검객, 독고다이 검객, 애 딸린 검객, 장님 검객 찾는 한국인들의 마인드. 비웃어 줄 만하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서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왜 서양은 일본에서 쫄딱 망한 라쇼몽에 상을 주었는가? 일본은 전쟁에 지고 서양을 배우며 구세주를 찾았다.


    그런데 거꾸로 서양에 한 방 먹인다. 구세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메시아를 기다리지 마. 진실은 어디에도 없어. 사지선다형의 고정된 정답을 찾지 말라고. 양자역학의 시대 아닌가. 강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가 먹히는 시대다. 21세기에는 프런트가 중요하다. 


    역할을 나누어 최고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 합이 맞아야 한다. 상성이 중요하다. 헥트로도 있고, 파리스도 있고, 아킬레스도 있고, 오디세우스도 있어야 한다. 황선홍과 클린스만은 써먹기 나름이다. 아직까지는 잘하고 있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60년대 가부장적 사고는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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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2 (12: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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