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이 과연 한국에서 200만 부씩이나 팔릴 책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가 과연 한국에서 100만 부씩 팔릴 가치가 있는 책인가? 전 세계 판매량 반이 한국에서 나왔다. 창피하지 않나? 과학에 대한 비뚤어진 관심을 들켰다. 한국인은 도무지 진지하지 않다. 가벼운 읽을거리를 원하면서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는 척하며 무게 잡을 수 있는 그런 절묘한 것을 원한다. 한때는 시집이 100만 부씩 팔리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죄다 시인이 된 것인가? 서정윤의 홀로서기. 솔직히 그게 시냐? 연애편지 대필집이냐? 얄궂은 일이다. 시를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만, 진짜라면 여전히 시집이 팔려야 한다. 그런데 팔리냐? 헛소동이었던 것이다. 부화뇌동의 전형.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에 좋은 영화가 많긴 하더라만, 과연 한국에서의 명성만큼 값어치가 있는가?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로 보는게 정상이다. 놀란의 이상한 인기는 한국인 특유의 허세 때문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조중동 보는 한국인들 말이다. 모르면 황색지 보고 알면 정론지 봐야 하는데 한국은 정론지도 아니고 황색지도 아닌 괴물신문을 본다. 부끄러운 일.
황색을 원하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흑색신문을 보니 정치적 황색이 된다. 사람을 꼬시는 매력의 선정주의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폭력의 선정주의 황색언론이 된다. 마녀사냥을 전문분야로 한다. 답은 하나다. 한국인의 정신적 식민지 상태를 들키는 것이다. 한국은 독립되었으나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식민지 노예상태에 머물러 있다. 노벨상 하나 안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바닥이 척박하다. 그들은 거들먹거리며 뭔가 대단한 것을 찾는 척하지만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진짜는 악착같이 피한다. 부담되기 때문이다. 적당히 독자에게 아부하는 가짜를 찾는다. 지식을 자신을 호위하는 하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내 입에 맞는 떡을 넣어줘. 내 입맛은 양반 입맛이라 까다롭다네.’ 이런 태도로 책을 찾는다. 책값이 비싼 이유도 같다. 종이에 돌이 많이 들었다. 외국서적은 일단 가볍다. 왜 한국 도서는 무거운가? 그게 초크를 넣은 것이다. 분필에 쓰는 석회암을 넣어서 종이가 불에 잘 타지도 않는다. 잘못 하면 종이에 손이 베인다. 괜히 무게만 많이 나간다. 초크는 컬러사진을 싣는데 필요한 것이다. 한국은 책이 지식의 도구가 아니라 신분의 표지다. 자신을 대접받아야 하는 양반 신분으로 규정하고 신분상승의 증거로 책을 고르고 영화를 본다. 내 신분에 걸맞는 영화는 뭐지? 이런 식이다. 그들은 지식 앞에서 진지하지 않은 것이다. 김용옥 광대처럼 공자, 노자 가지고 헛소리나 하는 말장난을 좋아하는 것이다. 인셉션? 메멘토의 한국 관객수인 20만 정도면 납득한다. 200만도 가능하지만 600만은 솔직히 창피하다. 기발한 영화일 뿐 극찬할 영화는 아니다. 취향에 맞으면 극찬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봐야 하는 영화는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잠들어 버렸다. 끝까지 보지 못해서 평도 하지 않는다. 팽이를 돌리기만 하면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그게 영화냐 최면술이지. 블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이 잠드는 장면만 나오면 나도 잠이 들었던 것과 같다. 블레이드 러너가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솔직히 잠드는 영화가 맞다. 더 문은 황당하다. 진짜 감독을 때려죽이고 싶다. 그러나 언론시사회에서 전문가들은 올해 최고의 관객수로 더 문을 찍었다. 못해도 300만 들어야 한다. 왜? 달이 나오잖아. 고증이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인터스텔라는? 그건 더하지. 인터스텔라 고증오류 무수하다. 초반 옥수수 농장부터 잘못된 것이다. 농사 좀 지어본 사람은 기함을 한다. 그래도 블랙홀이 나오기 때문에 용서되는 것이다. 적어도 하나는 건졌으니까. 오펜하이머는 왜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기 때문에 당연히 봐야 한다. 역시 많은 관객이 잠들었다고 한다. 모두에 말한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정의가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사전에 약속을 분명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념과 원칙과 헌법이 중요한 이유다.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왼쪽에 임산부 한 명 있고, 오른쪽에 노인 두 명이 있다. 기관사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사회가 약속을 하기에 달려 있다. 노인을 존중할지 임산부를 우대할지는 사회가 정해야 한다.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수정헌법 제 1조 때문이었다. 헌법에 박아놨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개헌하든가. 완벽한 정의, 기계적인 정의는 없는 것이며 정의는 사회가 합의하고 교육하고 준비하기에 달려 있다. 매뉴얼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A4지 한 장으로 결론 내릴 일을 두꺼운 책을 써서 200만 부씩 팔아먹는 것도 재주는 재주다. 문제는 한국인이다. 한국인들이 바보이기 때문에 이 책을 사는 것도 사실이다. 지식 앞에서 진지해져야 한다. 한국인들은 지식을 기호품처럼 생각한다. 지식은 냉정한 거다. 엄격한 것이다. LK99 소동 보면 알잖아. 왜 일이 이따위로 흘러가는가? 준엄한 꾸짖음을 내릴 진짜 지식이 없다. 왜 아무도 말하지 않나? 진중권, 유시민, 강준만은 입이 얼어붙었을까? 노벨상 받은 과학자가 한마디만 해주면 정리될 일인데 그 과학자가 한국에 없다. 어른이 없다. 평론가도 없다. 평론문화가 없다. 사람이 없다. 군중이 있을 뿐이다. 추상같은 목소리가 그립다. 여담으로 한마디 하자면 한국에 진짜 시는 이육사 외에 없다. 나머지는 추임새다. 내 혓바닥에 달달한 단어를 올려줘. 이런 똥들은 참. 감정과잉 신파의 변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