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논리는 상호의존성이다. 그것은 게임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 권력을 차지하려고 한다. 상대를 자극하여 반응을 끌어내려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유전자에 새겨진 사회의 단위는 부족원 20명 정도다. 동굴 하나를 공유하는 원시 부족민은 많아야 100명이다. 인간 사회는 커졌다. 서로 겉돌게 되었다. 눈치를 보며 신경전을 벌이게 되었다. 게임의 논리 반대편에 동기의 논리가 있다. 동기의 논리는 대개 허구다. 인간의 목적, 의도, 계획, 야심, 이념, 야망, 음모 따위는 대부분 개소리다. 동기는 상대의 자극에 맞대응을 하겠다는 경고다. 위협사격에 불과하다. 심부름을 하면 용돈을 준다. 용돈이 동기로 작용하여 행동한다? 천만에. 강아지는 간식을 주면 복종한다. 간식이 동기가 될까? 천만에. 강아지는 인간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다. 간식을 주면 거기서 규칙을 발견한다. 강아지는 간식을 통해 규칙의 존재를 깨닫는다. 눈멀고 귀먹어 말 못 하는 사람에게 글자를 가르치기 어렵다. 손바닥에 글씨를 써준다. 뭐하는 짓이야? 왜 손바닥을 간지럽게 하지? 장애인이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강아지가 원하는 것은 기여하는 것이다. 역할을 얻어 가족과 결속되는 것이다. 보통은 집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는다. 강아지는 무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간식은 무리와 결속되어 있다는 증거다. 동기의 논리가 먹힐 때가 있다. 상대가 확실히 제압되어 있을 때다. 엄마가 자녀에게 혹은 교사가 학생에게 하는 동기부여는 먹힌다. 제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의 숫자는 많지 않다. 한두 명에게는 먹힌다. 동기부여는 상대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산적들에게 동기부여는 먹히지 않는다. 게임이 걸려 있다. 산적은 정부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이겨먹을 마음을 먹는 즉 모든 동기는 무효다. 산적은 동기를 파괴하는데 관심이 있다. 동기부여는 인간을 제압하는 방법이며 산적은 제압되지 않으려고 한다. 산적이냐 아니냐, 반사회적이냐 아니냐, 상대가 제압되어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피아구분 중요하다. 비트코인으로 보자. 이것은 게임이다. 화폐가치 운운은 동기부여에 불과하다. 비트코인 세력은 각국 정부와 싸워서 이겨먹으려고 한다. 산적의 영토를 늘리려는 것이다. 은행이 산적과 결탁하면 정부는 바보가 된다. 청조 말년의 만주 군벌과 비슷하다. 유사은행, 유사수신 세력은 많다. 그들은 산적과 결탁한다. 화폐발행업은 예로부터 수지맞는 장사였다. 한국의 부동산 세력도 그렇다. 부동산은 유사화폐다. 수요억제는 동기억제다. 정부를 이겨먹을 연구를 하는 산적들에게 동기부여가 먹히겠는가? 정부와 산적은 맞대응을 거듭하면서 내시균형을 찾아간다. 동기부여는 같은 식구, 같은 무리, 같은 회사, 같은 학교에 소속된 즉 집단과 결속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이다.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다. 아군이 아니라 적이다. 동기가 먹힐 리가 없다. 이겨먹으려는 자는 맞대응하여 교착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내시균형으로 가서 상대의 의사결정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게 관종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피아구분 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