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내 친구 마키아 벨리’..들어보셨으리라! 도발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스타 여류작가가 500년 전을 거슬러 역사 속의 악당 마키아 벨리와 연애를 한다?’ 또한 매력적인 설정이 된다. 이건 ‘그림’이 되는거다.

누가 마키아벨리를 파문했는가? 도덕도 높은 기독교님이시다. ‘시오노 나나미’의 성공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다. 탈기독교에 성공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저술이 빛을 읽는 것은.. 종교의 편견, 혹은 이념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에 수입되는 서구의 저술들은 기독교 혹은 반기독교의 논리에 갇혀 있다. 문제는 반기독교의 논리 또한 일정부분 기독교의 논리를 카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어있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철저하게 기독교다.

‘기독교이거나 기독교에 반기를 든 기독교이거나.’

우리는 늘 이 둘 중에서 선택을 강요당한다. 반갑지 않다. 공통점은 과잉된 윤리의식, 혹은 도덕률이다. 유교주의의 압제에 시달려온 우리에게.. 그들은 또다시 우리의 분방한 상상력을 압살하며 유림질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주의.. 눈을 흘겨 뜨고 감시하며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나라 .. 사방이 감옥인 나라 대한민국.. 이 동토의 땅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기껏 탈출에 성공했나 했더니.. 거기가 또다른 ‘유림질의 왕국’이었을 줄이야!

가두지도 말고 해산시키지도 말라
기독교의 이름이든 혹은 사회주의의 이름이든, 근대의 이름이든 혹은 탈근대의 이름이든, 위에서 내려다보며 인간을 가르치려 드는 ‘엄숙주의’라는 본질에서 같다.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우리는 시장거리에 우르르 쏟아져 나온 한떼의 무리와 같다. 왁자지껄 하게 떠들면서 자유롭게 행진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근대’의 이름으로 규격화를 강요하거나, 혹은 탈근대의 이름으로 태클을 걸어오거나이다.

둘 다 반갑지 않다. 알아야 한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척 하지만 본질에서 같다. ‘기독교’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까닭이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다를 뿐 기저에서 그 발상법이 같다. 창세에서 말세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세계관이 같다.

부디 이르노니 우리의 이 무질서하고 자발적인 행진을 그냥 내버려두라. 알지 않는가? 이 흐트러진 대오에는 합리적 복종의 로멜도, 이기적 굴종의 괴링도, 맹목적 추종의 괴벨스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단지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몸을 내맡길 뿐이라는 사실을.

누가 해방자인가?

‘시오노 나나미’다. 책이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이사르다. 그녀는 역사속의 인물과 가상의 연애를 한다. 카이사르는 그녀의 새 연인이다. 그는 숙녀가 무도회에서 만난 파트너를 관찰하듯이 카이사르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자유롭다. 그 공기가 싱그러운 것이다. 그녀의 무도회에서는 엄중한 유교주의가, 혹은 도덕높은 기독교의, 혹은 품성도 고상한 사회주의 선생님이 감시자로 따라붙지 않아서 좋다.  

글쓰기에 임하여 필자의 입장도 그러하다. 밀고 당기고.. 삐치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독자들과 연애를 하듯이.. 참여정부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토닥토닥 사랑싸움을 하듯이.. 노무현을 비판하기도 하고 달래주기도 하고 애정고백도 하고..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후흑학의 대가 유비
마키아벨리의 작업은 처세술이거나 혹은 과학이다. 누구는 그 처세술을 비판하는 방법으로 우쭐댈 수 있겠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과학을 받아들인다. 적어도 우리에겐 골라먹는 지혜가 있다. 2004년의 우리에게 있어 그의 군주론은 과학이어야 한다.  

두 명의 마키아벨리스트가 있었다. 한 사람은 유비, 한 사람은 조조이다. 누가 승리했는가? 일단은 조조가 승리했지만 역사는 유비를 승리자로 바꿔놓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역사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역사에겐 역사의 생리와 논리가 있다.

생각하라. 역사가 조조를 승리자로 기록하면 우선하고 역사책이 팔리지 않는다. 역사가도 먹고 살아야 할 일이 아닌가? 그들은 조조를 깎아내리고 유비를 승리자로 기록하는 방법으로 매출을 확대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혜가 아니겠는가?

필자의 이러한 접근방식(역사는 역사생산자, 혹은 역사판매자, 혹은 역사소비자의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는)에 분개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마 기독교나, 유교주의나, 사회주의교의 도덕률에 갇혀 있는 독자일 것이다. 또한 권하고 싶다. 먼저 스스로를 해방하라고.

어쨌든 그쪽 동네 이름으로는 마키아벨리즘이고 이쪽 동네 이름으로는 후흑학이다. 누가 승자인가? 누가 역사까지도 완벽하게 속여내는데 성공했는가? 최종적인 승자는 유비다. 조조도 한 후흑 하지만 그는 두께가 없다.

초상화의 낯가죽을 비교해 보더라도 조조의 얼굴은 이회창처럼 얇고 유비의 얼굴은 노무현처럼 두껍다. 그러니 유비가 승자인 것이다.(후흑계에선 일단 두껍고 봐야 알아준다.)

마키아벨리.. 두꺼운 인간은 아니다. 그는 솔직하게 이면의 진실을 폭로했다. 교황들과 추기경들이 근엄한 도덕의 이름아래 감추어왔던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패배자가 되었다. 승리한 그들은 잊혀졌고 패배한 마키아벨리는 살아남았다.

역사이래 과학은 늘 폭로해 왔다. 과학이 폭로하면 그 과학도 폭로하지 못하는 새로운 덮개를 고안하곤 했다. 종교 혹은 이념이다. 과학과 이념(종교)이 경쟁하며 역사를 끌어온 것이다. 한쪽에선 부지런히 덮어대고 한쪽에선 열심히 까발기면서 말이다.

민간신앙이 얇은 덮개였다면, 뒤에 온 불교는 더 두터운 덮개였고, 유교는 더욱 세련된 덮개였다.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첨단의 덮개도 고안되었다. 새로운 덮개들은 그 시대 과학의 성과를 일정부분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방식으로 연명하곤 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처형

'대통령 못해먹겠다' 발언은 "제왕적 대통령의 처형" (이재현 교수, 청와대브리핑)

"대통령 못해 먹겠다".. (수십년간 권위주의적 화법의 우산 아래에만 머물러온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안중근 이래의 장거이며, 김재규 이래의 쾌거다. 우리 머릿속의 제왕적 대통령을 마침내 처형하는 체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이 스스로에게만 반칙과 특권을 허용했다. 딜레마에 빠진 것은 검사들이다. 대들면 권위에 맞서는 것이고 대들지 않으면 굴복하는 것이다. 검사들로서는 이미 지고 시작한 게임이었다.)

전주대 이재현교수가 계간지 '황해문화' 봄호에 '노무현, 수사학적 대통령 - 정치언어의 모더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에서 노 대통령의 정치 언어를 평가한 것이다.(하략)

권위주의.. 나름대로 쓸모있는 덮개였다. 복마전의 마귀들을 가두어놓는 덮개 말이다. 악마들을 가두어놓은 판도라의 상자 말이다. 노무현은 그 복마전의 덮개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제쳐 버린 것이다. 온갖 마귀들이 튀어나왔다.

차떼기귀신도 튀어나오고 책떼기귀신도 나왔다. 무법천지가 되어 자기네 손으로 뽑은 멀쩡한 당 대표를 축출하기도 한다. 난장판이다. 시끄럽다. 못살겠다. 마귀들의 등쌀에 전여옥, 이문열들의 비명소리가 요란하다.

노무현이 항상 ‘옳다’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은 ‘이기는 정치’를 할 뿐이다. 옳음은 이기고 난 다음에 추구해도 늦지 않다. 현재스코어로 노무현은 이기고 있다.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고, 조중동에 굴복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필자는 ‘노무현의 전략’을 이야기한다. 이쪽에서 속이지 않았는데 저쪽에서 알아서 속아준다. 오해도 많이 받는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후흑학의 대가라고 비아냥 댈 수도 있다. 그것이 ‘정치의 과학’임을 알아야 한다.

노무현을 비난해도 좋다. 언제나 노무현이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노무현의 전략은 배워두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의 전술은 늘 승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사업에 노무현의 전략을 반영한다면 그 사업은 성공할 것이다.

그대가 연애를 한다면 '노무현의 사랑학'을 연마해야 한다. 그대가 세일즈맨이라면 ‘노무현의 상술’을 배워야 한다. 그대 출세하고 싶다면 ‘노무현의 처세술’을 배워야 한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노무현의 전략’을 배워야 한다.

왜? 탈권위주의 시대에는 노무현 아니래도 누구나 노무현처럼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 무수한 짝퉁 노무현들이 등장하고 있듯이 말이다.

 

노무현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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