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단순한 것의 집합이다. 문제는 그 단순한 것이 뭐냐다. 관측자인 인간이 개입하는게 오류의 원인이다. 보통은 주체인 인간과 객체를 대칭시킨다. 가장 단순한 그것은 객체다? 틀렸다. 가장 단순한 것은 주체와 객체의 대칭 그 자체다. 그것은 어떤 둘의 만남이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가 가장 단순하다. 세상은 단순한 것의 무한집합이 아니라 단순한 구조의 무한복제다. 우리가 구조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구조는 어떤 둘의 대칭이다. 어떤 하나는 존재를 성립시킬 수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반응한다는 것이며, 반응한다는 것은 방향전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작용하는 ->에 맞서 <-로 방향전환을 일으키려면 둘이라야 한다. 어떤 하나의 갑작스런 방향전환은 질량보존의 법칙에 위배된다. 무에서 유가 생겨날 수 없다. 방향전환을 하려면 그 방향이 내부에 잠복하고 있어야 한다. 둘이 -><- 로 계를 이루고 있을 때 외부의 작용 ->에 반작용할 수 있다. 달리는 자동차가 멈추려면 마찰하여 브레이크를 잡아줄 도로가 있어야 한다. 반드시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어떤 하나는 외부의 작용에 맞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방향전환을 일으키는 의사결정 그 자체가 그 하나에 플러스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보는 방법이다. 제대로 보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주체가 객체를 보면 안 된다. 그것은 주관적 관점의 오류다. 상호작용하는 둘 사이의 구조를 보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원자론은 주체가 객체를 보는 관점이다. 인간이 관측의 주체가 된다. 틀렸다. 구조론은 관측자인 인간의 입장을 배제한 채로 계를 이루고 상호작용하는 두 객체 사이의 구조를 본다. 원자론의 오류에 주목해야 한다. 원자는 내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내부가 없다는 것은 구조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내부가 있고 내부에 상호작용하는 구조가 있다면 더 작은 단위로 분할되므로 그것은 원자가 아니다. 원자는 구조가 없으므로 성질을 가질 수 없다. 외부의 작용에 맞서 반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내부에 상호작용하는 구조가 있다. 상호작용은 둘 이상에서만 성립한다. 존재는 곧 방향전환이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방향전환이다. 방향전환이 없다면 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외부의 작용에 반작용하지 않으므로 존재가 부정된다. 반응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우주는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방향전환의 연속이며 방향을 만드는 것은 장의 진동이다. 이는 우주가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양자역학의 성과와 맞아떨어진다. 이 개념을 더 확장하면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비유하면 거미줄과 같다. 우리는 시공간이라는 거미줄에 원자라는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벌레는 없고 거미줄의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교차점이 물질이다. 거미줄은 전부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는 작은 것의 무한집합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무한분할이다. 물질은 실이 꼬인 것이며 꼬인 실은 다시 풀 수 있다. 우주를 풀면 한 가닥의 실이 된다. 거미는 무수한 방향전환을 통해 이 줄과 저 줄을 교차시켜 커다란 거미줄을 짠다. 우주는 그렇게 탄생한다. |
구조론의 우주론을 보면, 극도로 발달한 문명에선 우주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