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원인측과 결과측이 있다. 원인측은 에너지가 작용하고 결과측은 보상이주어진다. 원인측의 에너지를 설명하는 말은 없고 결과측의 보상을 설명하는 말은 많다. 행복, 성공, 장수, 명성, 부유, 쾌락 따위로 사건의 결과측을 설명한다. 원인측을 설명하는 말은? 없다. 아무도 원인측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거대한 변화에는 관심이 없고 노무현이 마무리지은 일의 결과만 내놓으라고 닥달한다. 대선 투표율 80퍼센트는 70년대 엘리트주의를 떨치고 노무현이 민중을 정치에 참여시킨 결과다. 노무현 없었다면 일본처럼 된다. 한국의 지정학적 고립이 일본의 지리적 고립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심은 언제나 결과로 향한다. 원인을 묻지 않는다.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존감, 설레임, 전율함, 만남, 연결, 열림, 활력으로 원인측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필자가 지어낸 말이다. 인간에게는 결과의 보상이 아니라 원인을 격발하는 에너지가 중요하고, 활력이 중요하고, 자존감이 중요하고, 존엄이 중요하다. 임무와 만남과 연결과 열림과 의미가 중요하다. 결과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용해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된다. 성공이 실패의 원인이 되고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닫힌계 안에서 풍선효과로 에너지는 돌고 도는 것이다. 방향판단이 중요할 뿐이다. 네거리는 흥하고 막다른 골목이면 망한다. 그 외에는 다 똑같다. 더하고 빼면 제로섬이다. 국민의 총 행복지수보다 총 활력지수가 중요하다. 자연인들에게는 행복밖에 네세울 것이 없고, 핀란드인에게도 행복밖에 내세울 것이 없다. 날씨가 춥고 겨울이 길고 사람이 드문드문 있어서 활력이 없기 때문에 행복을 강조할 뿐이다. 그들이 행복한건 사실이다. 윤석열 되고 홀가분해졌다는 사람 많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굥이 알아서 하겠지. 자연인의 행복은 그런 것이다. 행복지수 1위라는 핀란드 사람의 행복은 그런 것이다. 인간에게는 활력이 더 중요하다. 상호작용 총량증대가 더 중요한 가치다. 자신이 신이라고 믿는 사람도 행복하다. 정신병원 안에서 대접받는다.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누워 있으면 왕처럼 대접받는다. 병원에 문병와서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작은 풀꽃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과도 같다. 커다란 장관을 찍지 못하니 작은 풀꽃을 찍는다. 그게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행복은 상대적이다. 풀꽃은 상대적이다. 좁쌀만한 꽃이라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으면 멋있어 보인다. 맛이 없으니 예쁘게 장식을 해서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인과 같다. 그게 슬픈 그림이다. 영국 해적들에게는 해적을 귀족 만들어주는 명예가 중요하다. 신분세탁을 하려면 기사 작위라도 하나 얻어놔야 한다. 교통로의 요지를 차지한 프랑스는 문화가 중요하다. 파리에서 옷장사라도 하려면 문화사업을 일으켜서 외국인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땅이 넓은 미국은 총질을 막 해도 되는 자유가 중요하다. 날씨도 최악이고 인구도 희박해서 우울한 북유럽인들은 행복이 중요하다. 지진이 무시로 나는 일본인들에게는 안전이 중요하다. 열도 밖은 위험해. 유럽은 소매치기와 강도가 많대. 이러고 자위하는 거다. 배신자가 넘치는 한국인에게는 의리가 중요하고,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중국인에게는 장수가 중요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 무슬림에게는 점성술로 신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 중요하다. 다들 자기가 처한 형편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자연인들은 그저 행복하다는 말 외에 분량을 뽑아먹을 스토리가 없다. 행복타령은 삶의 총량적 빈곤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존엄이 중요하다. 그것은 사건을 격발시킬 수 있는 스위치를 장악한 것이다.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쥔 것과 같다. 선물 받은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처럼 마음이 들뜨게 된다. 피가 끓어오른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흥분하게 된다. 의욕이 샘 솟는다. 눈을 번쩍 뜬다. 그게 사건을 격발한다. 나머지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후렴구에 불과하다. 국민 총 활력도가 행복도보다 중요하다. |
우리에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요즘에는 사람들이 이런다.
가오는 버려라, 돈이 중요하지.
그래서 말이 바뀌었다.
우리에게 가오는 필요없다. 돈이 중요하지.
우리에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비록 삼류영화 대사이기는 하나, 가오는 중요하다.
가오는 자존심이고, 끝내 지켜야 할 존엄과 연결되는 그런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을 협박하기 위해 가오잡는 것은 빼고,
스스로를 살리는 존심과 존엄으로 자리하면 일본말도 쓸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