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국을 변호하지 않았다. 이게 물리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아쇠가 한 번 격발되면 그 탄환이 어디에 떨어지든 누군가는 죽는다. 유탄을 맞으면 살릴 수 없다. 단 나는 조국을 이용한다. 조국을 변호할 수는 없고 대신 조국이 당한 만큼 되갚아준다. 진중권의 교활한 레토릭을 보라. ‘이제 조국문제 알겠냐?’ 조국이 사과를 안 해서 당했고 쥴리도 사과를 안 하면 조국처럼 당한다는 궤변이다. 자기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망하면 쥴리 때문에 망했으니 용병으로 고용된 내 책임은 아니라는 발뺌이다. 어차피 쥴리는 사과할 타이밍을 놓쳤다. 사과를 한다해도 시늉일 뿐이다. 진정성? 그런거 우주 안에 없다. 그전에 사과로 해결될 성격의 개인비리가 아니다. 이건 권력형 비리다. 조국의 경우 그게 사과로 해결될 성격의 개인비리 문제라면 수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왜 조국은 사과해도 털리는가? 국민이 분노해 있기 때문이다. 이건 물리학이다. 조국에 대한 일각의 분노는 이명박근혜 구속 때문이다. 조국이 이명박근혜를 석방시켜 줄 수도 없고. 어설픈 사과는 상대방을 더 흥분시킨다. 사과하면 더 죽는다. 이런 것은 애들도 안다. 권성동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다. 사과하는 순간 낙인이 찍힌다. 쥴리가 사과하는 순간 윤석열 아웃이다. 왜? 범죄자는 인생 자체가 범죄이기 때문이다. 한 건의 범죄가 아니다. 신분하락인 것이다. 의대생이 죽으면 난리를 치고 이재명에 대해서는 가혹한게 신분문제다. 공주는 사과하지 않기 때문에 공주다. 사과하면 하녀로 신분하락이다. 사람들은 박근혜보다 최순실을 더 미워한다. 그게 캐릭터이기 때문에. 하녀는 원래 욕받이다. 조국은 버텼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살아있다. 조국은 지렛대로 쓸 수 있는 만큼 이용가치가 남아있다. 섣부른 사과가 위험한 이유는 '슬쩍 찔러봤는데 넘겨짚기에 당하네' 하는 생각 때문이다. 사과받고 만족하는게 아니라 '더 세게 찔러볼 걸'하고 후회한다. 100을 찔러서 100의 사과를 받으면 백 받고 천, 이번에는 1000을 찔러본다. 사과요구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진중권에게 해줄 말이 있다. 그러는 진중권 너는 선수가 아닌 줄 아느냐? 너도 링 위에 올랐어. 너도 쥴리야. 이게 다 노무현 타살이라는 브루투스의 원죄 때문이다. 에너지가 돌고 도는 것이다. 사과는 의미가 없다. 군중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 이건 물리학이니까. 방아쇠가 격발되면 어쩔 수 없다. 인간의 시간은 24시. 인간의 시간이 다하고 25시는 신의 시간. 정해진 운명을 따라갈밖에. 조국이 털리고, 쥴리도 털리고, 중권이도 털리고 이건 다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다. 너 죽고 나 죽고 다 죽으면 최종 승자는 인구가 많은 쪽이다. 소련이 독일보다 인구가 많아서 이긴 것이다, 미국이 일본보다 인구가 많아서 이긴 것이다. 한국은 젊은이가 노인보다 많다. 진보는 최후에 쪽수로 이긴다. 링 위에 오른 자는 모두 죽는다. '난쏘공'의 굴뚝청소부와 같다. 그 굴뚝 속에서 흰 얼굴로 나오는 청소부는 없다. 박근혜 미우면 최순실 때리고, 노무현 미우면 명계남 때리고, 문재인 미우면 조국을 때리고, 윤석열 미우면 진중권 때린다. 권력자 주변을 맴도는 얼떨리우스 아저씨는 반드시 죽는다. 똠방각하처럼 똠방똠방 죽는다. 아큐정전의 아큐처럼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