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의미 아니면 허무다. 의미는 사건을 연결하고 허무는 사물을 붙잡는다. 사건이 사랑이나 의리와 같은 추상적인 가치라면 사물은 눈에 보이는 보석이나 금덩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쥐면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고 증명할 수 있다. 우리는 어른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뭔가를 쟁취하여 남들 앞에서 자랑하고자 하지만 문제는 당신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생의 전략은 당장 습득하여 증명할 수 있는 작은 현물과 먼 훗날에 보탬이 되는 커다란 가치 사이에서 바꿔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눈앞의 사물을 얻은 자는 만족하겠으나 허무에 이르고 먼 훗날의 가치를 이룬 자는 권력을 쥐고 의미에 이른다. 의미는 다음 게임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어른에게는 권력이 필요하다. 어른은 게임을 새로 설계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때 잘나갔으나 허무해졌다. 다음 게임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명은 서구에서 일어나 신대륙으로 옮겨붙더니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거점을 마련했다가 다시 대륙에 상륙을 시도하며 한국이 새로운 교두보로 떠오르고 있다. 동시에 일본은 쓸쓸해졌다. 인류가 합동으로 벌이는 중국 길들이기 게임에서 역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을 다음 단계로 계속 연결시켜 가야 하는데 일본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밀당에 잘못 끼어들어 박쥐놀음을 하다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 버렸다. 사건은 주도하고 사물은 반응한다. 사건은 에너지와 기세가 있으므로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선제대응이 먹힌다. 사물은 자체 에너지가 없으므로 가치를 알아보는 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대응한다. 내가 계획을 가지고 환경을 장악하고 사건을 설계해야 주도권이 있다. 의미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의미를 알면 똑바로 갈 수 있다. 의미를 모르면 외부의 자극에 의지한다.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잔다. 바람이 불면 옷을 입고 비가 오면 집을 짓는다. 신체 내부의 감각이든, 신체 외부의 환경이든, 집단의 무의식이든, 호르몬이든, 본능이든 모두 자아의 바깥에서 오는 외부 환경의 자극이다. 자아는 의사결정권이다. 외부자극에 길들여지고 외부자극을 갈망하면 망한다. 환경은 변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은 상충되고 모순되고 변덕스럽다. 우왕좌왕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똥개훈련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는데 환경이 먼저 말을 건다. 환경이 갑이고 인간은 을이다. 환경에 제압되고 종속된다. 환경과의 게임에 지는 것이다. 무의식에 지고, 본능에 지고, 분위기에 진다. 낚이고 빠지고 중독되고 휩쓸린다. 목표를 향하여 직진을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를 반복한다. 그게 허무다. 의미를 알면 환경과의 게임에 이긴다. 무의식을 이기고 본능을 이기고 유행을 이긴다. 이기면 똑바로 간다. 갔던 길을 두 번 가지 않는다. 가다가 중간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의미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사람은 많은데 의미의 의미를 찾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의미는 사건의 연결이다. 부름에 응답이 있으면 연결된다. 파종에 수확이 있으면 연결된다. 쏘아서 과녁에 맞추면 연결된다. 노래해서 앵콜이 돌아오면 연결된다. 의미는 사건을 다음 단계로 이어간다. 내가 불렀는데 대답이 없고, 프로포즈 했는데 거절당하고, 어렵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씹히고, 종자를 심었는데 싹트지 않고, 화살을 쏘았는데 맞지 않으면 허무다. 의미는 방향성이 있다. A에서 격발된 사건이 B에서 끝나지 않고, C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방향성이다. B로 갔다가 다시 A로 되돌아와도 안 되고, B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안 된다. 봄의 파종은 가을의 수확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겨우내 그걸로 요리하는 것이다. 프로포즈의 수락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함께 데이트를 하는게 의미다. 의미에는 방향성이 있으므로 권력이 있다. 프로포즈의 수락은 상대가 하지만 다음 데이트 장소는 내가 물색한다. 그것이 의미의 의미다. 의미는 방향성이 있으며 순방향으로 작동하고 역방향은 배반이다. 하나의 변화가 또다른 변화를 부르며 두 번째 변화는 첫 번째 변화가 정해준 범위 안에서만 작동하는게 방향성이다. 정해준 범위를 벗어나면 배반이다. 첫 번째 변화가 두 번째 변화에 제한을 거는게 권력이다. 농부가 밀을 심으면 요리사는 그 밀로 빵을 만든다. 농부가 요리사의 메뉴에 제한을 건다. 농부가 콩을 심었는데 요리사가 팥을 요리할 수는 없다. 농부에게 권력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이유는 거기에 전율함이 있기 때문이다. 전율하는 이유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와 성과가 맞아떨어질 때 인간은 전율한다. 궁수가 사슴을 쏘아서 맞힐 때는 저녁 식탁에 오를 사슴요리를 기대한다. 그다음 단계의 활동에 미리 대비해야 하므로 일찌감치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지고,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발끝부터 머리꼭지까지 차오르는 충일감을 느끼게 된다.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 물이 몸에 흡수되어 갈증을 해결하는 최소 10분이 걸리는데 벌써 시원한 이유는 뇌가 미래를 예상하고 사전에 대비하기 때문이다. 뇌는 단계를 앞질러 가는 재주가 있다. 과식을 막으려면 미리 포만감을 느껴야 한다. 인간이 의미에 전율하는 이유는 뇌가 사건을 앞질러 가서 대비하는 해석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미리보기 능력을 이용하여 인간은 필요한 때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인간은 그렇게 끌어올려진 에너지에 취하는 것이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