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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370 vote 0 2003.08.13 (13:00:07)

김용옥이 스스로 망가진 끝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정몽헌 회장의 돌연한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정몽준이 노무현 지지철회 할 때 늘어놓은 변명 같은 거고, 진짜 이유는 기자로서 겪는 심리적 부담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그 인간의 한계였던 거다.

『정몽헌회장의 영결식, 김윤규사장이 눈물을 훔치고 있고 얼굴내밀기 전문인 빠콩들은 오늘도 등수놀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어리버리 김동길은 순위권 밖으로 밀렸다.』

문화일보는 김용옥 덕을 많이 보았다. 신문사 내부에서 김기자의 위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그 비중에 맞먹는 메가톤급 기사가 하루 한건씩 터져주는 것도 아니고, 김용옥이 노무현에게 엉긴다고 새만금공사가 하루아침에 중단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다.

잠시 반짝 하기는 쉽지만 그 흐름을 이어가기엔 내공이 딸리는 것이 박찬종 효과다. 그렇다. 문제는 내공이다. 쇼맨십은 되는데 내공이 받쳐주질 않았던 거다. 문제는 그 내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거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들고 달라붙는 일 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 조리해 놓은 요리에 맛깔나게 간을 맞춰주는 일도 쉽다. 그런 정도가 김용옥류, 박찬종, 김동길들의 한계다. 어엿한 주연이 받쳐주면 감칠맛 나는 조연 정도는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조연이 스스로 주연으로 나서면 내공이 딸려서 안되는 것이 신하균 주연의 『지구를 지켜라』『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연이은 쪽박이다. 약방에 감초는 감초로 끝나야 한다.

내공이란 것이 뭔가? 자기 힘으로 밥상을 차리는 거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미리미리 포석을 놓아두는 거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점을 소홀히 여긴다는 점이다. 신주류가 탈당해서 신당을 해야 하는 이치도 결국은 10년 앞을 내다보고 미리미리 포석을 깔아두자는 내공의 문제 때문인데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권노갑 왜 아직도 하이방을 놓지 않았을까?

작년 말 쯤이다. 김대중대통령이 권노갑에게 해외체류를 종용했다. 권노갑은 감히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때 주위의 질문에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는 아마 우리가 모르는 대형사고를 친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DJ도 모르는 사고를 친 것이다. 보통 범죄자가 작은 사고를 치면 얼른 도망친다. 그러나 큰 사고를 치면 숨어서 현장을 지켜보려 한다. 혹시 모를 뒷탈을 자신이 수습하기 위해서이다."

분석은 맞아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몇 개월이 가지 않아 홍삼비리가 터져나왔다. 과연 그뿐일까? 과연 홍삼비리가 권노갑이 수습하려 했던 대형사고의 전부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숨기는 것이 있다. 권노갑은 DJ 모르게 자신이 나서서 수습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형사고를 쳐놓았고 그 때문에 감히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위 인용한 단락은 작년 가을에 썼던 필자의 글이다. DJ가 권노갑 더러 해외에 나가라고 권유한 때는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내공에 관한 것이다. 내공이란 것이 도무지 무엇인가? 오늘 권노갑의 일은 2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사건은 지금 터져나오지만 균열은 2년도 더 전에 일어났다는 말이다. 반대로 노무현이 지금 뿌리는 씨앗은 2년 후에 싹이 트게 되어 있다.

왜 정치개혁을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동교동비리 사이클을 끊기 위해서다. 왜 우리는 고생을 각오하고 신당을 해야 하는가? 또한 간단하다.

한나라당을 보라. 그들은 아직도 전두환의 망령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박통의 향수에 집착하는 한 영원히 권력을 창출할 수 없다. 끊을 것은 제때 끊어야 한다. 박통의 향수는 떼버려야 하고 전두환의 망령은 쫓아야 한다.

최병렬이 100만 알바를 양성해도 한나라당은 본질에서 노무현을 이길 수 없다. 최병렬 본인이 바로 전두환의 망령이고 박통의 향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우리는 한나라당 신세가 안되기 위해서 잠시 고생을 하더라도 신당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 사서 고생을 해두면 그것이 쌓여서 훗날의 내공이 된다는 말이다.

범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강준만의 오판, 진중권들의 오판은 한마디로 내공이 약한 것이다. 무엇인가? 강준만은 노무현의 남은 4년이 걱정된다고 한다. 20년 앞을 내다보아야 할 사람이 임기 4년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니 내공이 약한 것이다.

뭔가 잘 안되고 있다면 노무현이 뭐를 잘못해서 잘 안되는 것이 아니라, 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잘 안되는 것이다. 즉 내공이 딸리는 것이다. 내공은 결코 하루이틀에 다져지지 않는다. 10년전에 뿌려놓은 씨앗이 없다면 내공이 없는 거다.

나는 강준만 진중권들이 입으로 떠드는 논객놀음을 버리고 현실정치권에 깊숙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혁세력의 내공을 키우기 위해서다. 물론 강준만이 정치를 한다고 하루아침에 나라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놓지 않으면 20년 후를 바라볼 수 없다.

씨앗을 뿌리는 족족 싹이 트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확률을 높여놓아야 한다. 정치는 신념이 아니라 과학이다. 확률을 높이면 정치가 살고 확률을 낮추면 정치는 죽는다. 내공은 그 사전에 높여놓은 확률을 의미할 뿐이다.

김용옥 결국은 내공이 약했던 거다.
김용옥의 내공은 김용옥이 그동안 다져놓은 인맥에 있다. 옛날 이수성총리처럼 모두가 그의 친구다. 연예계에 조영남이 친구 아닌 사람 없듯이 말이다. 김수환추기경도 김용옥의 친구고 달라이라마도 친구고 성철스님도 살아계신다면 아마 김용옥의 친구였을 게다.

하여간 김용옥은 다져놓은 인맥 하나 믿고 기자직에 뛰어들었다가 그 인맥의 한계를 느끼고 사표를 쓴 것이다. 이게 본질이다. 로마 교황도 자기 친구라고 큰소리칠 배짱이 있었다면 기자생활 몇 달은 더했을 거다. 하나 다행인 것은 김정일과 친구 트기 전에 기자를 접었다는 사실이다.  

(짐작하기로 하면 노무현인터뷰도 성사시킨 마당에 김정일 인터뷰가 남은 그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정몽헌이 떠나므로 해서 김정일 인터뷰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기자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햇병아리 기자가 여기저기 출입하면서 감을 익히고 배우고 하는 것이 모르긴 해도 아마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김용옥은 그게 없었던 것이다. 인맥 하나 믿고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 인맥이 바닥나서 인터뷰 할 거리가 없어진 거다.

어쨌든 나는 김용옥의 기자생활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진정으로 언론개혁이 되려면 스타기자가 떠줘야 한다. 스타기자에 스타 칼럼니스트, 스타만평가 열명만 모이면 신문사 하나 차리고 언론개혁 할 수 있다. 지금처럼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사주에 예속된 상태에서 언론개혁은 구조적으로 불능이다.

김용옥! 뭐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판을 휘저어 놓는데는 성공했다. 더 많은 김용옥들이 나서주어야 한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어주어야 한다. 안전한 강단에 숨어서 에헴하고 큰소리만 칠 것이 아니라 현장에 뛰어들어 감을 익히고 씨앗을 뿌리고 터를 닦아야 한다.

때로는 상처입고 쓰러질 지라도.. 부단한 도전을 통하여 범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게 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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