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된 관념은 버려라.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라. 힘은 눈에 보인다. 힘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때는 눈에 힘을 주고 잘 살펴보라.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들여다 보라. 속에는 구조가 있다. 구조론은 닫힌계 내부에 숨은 힘을 들추어 보는 방법이다. 힘은 추상적인 존재다. 우리는 직접 힘을 만져볼 수 없다. 어떤 둘의 위상 차이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힘의 존재를 알아낸다. 아니다. 우리는 힘을 직접 볼 수 있다. 뜨거운 불을 눈으로 본다. 과학자는 더 많이 본다. 스펙트럼을 이용하여 멀리 있는 별의 온도를 잴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힘이다. 우리는 자연의 힘을 느껴볼 수 있다. 산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비탈길과 평지길은 수고로움이 다르다. 집단의 기세를 느낄 수 있고 우두머리의 위세를 느낄 수 있다. 사회에는 다섯 가지 힘이 있다. 첫째는 출산력이다. 둘째는 지식력이다. 셋째는 생산력이다. 넷째는 혁신력이다. 다섯째는 반동력이다. 부모가 낳아서 인구가 증가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니 지식이 증가하고, 자연과 결합하니 생산이 증가한다. 무언가 늘어나는게 힘이다. 구조론은 거기에 기세의 힘을 추가한다. 그것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맞물려 돌아갈 때 톱니가 맞물리는 정도에 따른 힘이다. 그것은 권력이며 영향력이고 관성력이다. 그에 따른 반동의 힘도 있다. 이 다섯 가지 힘이 합종연횡하여 세상을 크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인구가 많으면 힘이 있다. 배움이 높으면 힘이 있다. 생산이 많으면 힘이 있다. 이때 놓치는 부분은 가속도의 힘이다. GDP 숫자로 보면 일본이 높지만 성장률로 보면 한국이 일본을 능가한다. 인구대비 지구촌에 미치는 영향력은 한국이 더 크다. 일인당 영향력 크기다. 1억 3천 일본인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은 5천 300 한국인의 영향력보다 크지만 그것을 인구수로 나누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반동의 힘도 있다. 중국의 치고 나오는 기세가 매섭기에 각국이 중국을 경계한다. 일본의 혐한도 반동력이다. 반동에 대한 역반동도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떠들수록 오히려 손해보는 것이 반동의 역반동이다. '한국인들이 뭘 몰라서 그런 소리 하는데 내가 잘 설명해줄게.' 이준석을 붙잡아 앉혀놓고 가르치겠다는 진중권 짓을 하는 것이다. 이준석은 이미 금맥을 잡았다.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정치는 단체전이고 개인은 몸값 올리고 먹튀하면 된다. 옳고 그르고는 단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용해되는 것이고 개인은 명성만 얻으면 된다. 미국에도 이준석 짓으로 뜬 악질명사가 많더라. 다 알면서 그런다. 상호작용을 증대시켜 기세를 관리하는게 중요하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고민할 필요없이 상호작용 총량관리만 하면 된다. 그러면 51 대 49로 최후에 진보가 이긴다. 그것이 방향성의 판단이다. 큰 방향이 옳으면 세부가 틀릴 때 오히려 상호작용이 증대해서 문제가 더 빨리 해결된다. 중요한건 옳음이 아니라 긴밀함이다. 어긋난 길을 가고 막말을 하더라도 눈 크게 뜨고 정신차리고 있는 사람이 외부 환경변화를 빨리 포착해서 매를 먼저 맞고 빨리 수습하는 법이다. 올바른 길을 간다며 심심해지고 편협해지고 상아탑에 갇혀 오만해지고 동선이 좁아지는게 진중권 병이다. 결국 변절해 있다. |